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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좌부 불교의 주요 수행처와 스승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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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열권 (vipasana@hanmail.net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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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들어가는 말
우리 나라에 불교가 들어온 지 1600여 년이 되지만 부처님의 깨달음과 제자들에게 가르친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기는 어렵다. 한국불교는 지리적, 문화적, 역사적으로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아 왔고 지금도 선방 수행 체계의 주류나 강원의 교과 과정이 중국 영향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20세기 말부터 교통의 발달과 국제 교류가 불교 쪽에서도 이루어지면서 동남아, 티베트 등으로 유학을 떠나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우리 불교의 정체성과 장·단점을 재조명하여 부처님 당시의 근본 불교 쪽으로 수행과 교학을 실천, 연구하기에 이르렀다. 흔히 불교를 소승불교, 대승불교 혹은 남방, 북방 불교로 분류하고 있으나, 불교 역사상 소승불교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대승불교의 일방적인 폄하에서 비롯된 오류였다. 필자 역시 남방에서 승려 생활을 해 보았으나 남방에서는 북방 불교가 힌두교화되었다고 하면서 북방 불교 승려들의 신분조차도 승려로서 인정하지 않고 있음을 직접 보았다. 양쪽 다 편견 속에서 자신들의 입장만 고수하고 있는 실정이다.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다. 깨달음은 부처님의 정확한 가르침과 수행법을 이해하고 실천할 때 가능하다. 필자 역시 교학 공부의 한계점을 극복하고자 화두 수행을 10년 정도 하고 부처님 당시 불교의 원형에 비교적 가깝다고 여겨지는 수행법을 찾고자 1989년 미얀마로 출가했다. 그 후 계속 위빠사나 수행을 해오고 있다. 그 과정에서 느낀 것은 남방, 북방 불교의 차이점은 팔리어 경전인 니까야와 산스끄리트인 아함경, 대승 경전을 보는 아비달마 논서에 있는 것이다. 남·북방 불교의 상호간의 오해를 불식하고 좀더 깊이 이해하여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하여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아비달마 교학의 비교 연구와 근본 경전인 니끼야와 아함경에 바탕을 둔 수행 실천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완전히 깨달은 아라한들의 체험에서는 남·북방이 없고 그대로 부처님의 가르침과 일치하지만 편견에 사로잡힌 일방적인 시작과 중간 단계의 수행 체험에서 오는 섣부른 결론은 근본 불법에서 멀어져 집단적 편견과 집착에 사로잡히게 할 수 있다.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과 수행법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남방 불교를 보다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 남방의 주요 불교 국가인 태국, 미얀마, 스리랑카 불교의 알려진 수행처와 그 수행처의 스승들 및 가르침과 수행의 특징을 간략히 살펴보겠다. 참고로 남방 불교의 자료는 가산불교재단에서 발간된 《남방 상좌 불교 승가공동체의 교학체계와 수행체계》 중 일중 스님과 정원 스님의 논문, 스리랑카에서 교학과 수행을 수년간 공부한 아눌라 스님의 자료와 필자가 번역한 《위빠사나 열두 선사》에서 주로 발췌했다 필자가 태국에서 수행한 것은 1989년과 1990년 사이 촌부리에서였다. 처음 태국에 갔을 때 통역을 해준, 태국에서 수년 동안 머문 구로담모라는 인도 승려가 계율의 중요성을 얘기해 주었다. “미국에서 온 흑인 한 명이 태국에서 비구가 되었는데 어느 날 옛날 여자 친구가 찾아왔다. 그 여자 친구와 파타야 해변을 거닐고 있었는데 그때 태국 시민 한 분이 그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일간 신문에 공개했다. 과연 스님이 이렇게 행동을 해도 되는가? 결국 그 흑인 스님은 비구 옷을 벗고 일반인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스님이 정오가 넘어서 시내에서 식사를 하면 일반인이 경찰에 신고하여 경찰이 그 스님을 절로 돌려보낸다. 계율을 파하려면 일반인으로 돌아가서 파하고 승복을 입고 있는 한 부처님의 계율과 수행을 엄수해야 한다는 것이 태국 승려들과 시민들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남방 불교의 모든 수행은 팔리어 경전, 아비달마, 《청정도론》이 중심이다. 주로 호흡 관찰법인 아나파아나 삿띠를 중심으로 하면서 이를 응용한 수행과 사마타 수행이 가미된 수행법으로 나눌 수 있다. 이를 지역 별로 살펴보겠다. 그는 숲속 수행을 통하여 아라한과를 성취하여 숙명통과 천안통까지 겸하여 인간 세계는 물론 천인들까지 제도하였다. 그의 수행의 특징은 아나파아나 삿띠를 중심으로 수행하는 것인데 초보자가 삼매에 들기 어려울 때는 “붓도(Buddaho)”라는 염불을 겸해서 관찰하도록 한다. 이것은 태국에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수행법 중 하나이다. 향후 우리 나라 염불선에 이 수행법이 도입되면 많은 재가 신도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본다. 아짠 마하부와는 염불식 아나파아나 삿띠와 염불식 경행(Walking meditation) 외에 부정관, 시체관도 예비 수행으로 다루고 있다. 계·정·혜를 강조하고, 지혜 수행은 전통적인 오온에 대한 관찰을 중심으로 한다. 아짠 마하부와는 사마타 선정과 위빠사나 수행에 정통하고 있으며 그의 가풍은 엄격하고 맹렬하다. 현재는 연세가 많아 외국인도 친견하기가 어렵다. 왓 농파퐁 (Wat Nong Pah Pong) 일단 심신이 고요해지면 호흡, 몸, 마음의 흐름을 관찰하게 한다. 매일 매일 수행 점검은 하지 않고 법문을 통하여 수행을 지시하고 질문이 있으면 언제든지 상담에 응한다. 특별한 테크닉은 강조하지 않고 “모든 수행은 단지 마음의 균형과 무집착 그리고 비이기성을 계발하는 것이다.”라는 것을 강조한다. 보통 때 20∼30명 정도가 수행하며 우안거 중에는 100여 명 정도의 승려가 수행한다. 왓 파나나차(Wat Pah Nanacha, International Forest Monastery) 왓 람펑(Wat Ram Poeng, Northern Vipassana Center) 수완 목(Suan Mokkh) 아짠 붓다다사는 자연스러운 선정과 지혜의 길을 강조한다. 그는 “자연스러운 선정과 지혜의 길을 요약하면, 아무것도 가질 만하고 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없다는 진리를 매일 그리고 온종일 생활 가운데서 실증해 나감으로써 열반과 자유를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를 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자유를 체험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정화하고 모범적인 인격을 계발하기 위해 분투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정화로부터 그 자신 내부의 정신적 기쁨을 일하면서 여가를 즐기는 가운데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내관으로부터 참으로 가질 만한 것은 없고 될 만한 것은 없다는 지혜가 일어나고, 마음은 지금까지 붙잡아 왔고 매달려 왔던 대상에 대한 모든 욕망을 버린다. 이미 어디에도 머무를 곳이 없어 고통은 줄어들고 고통을 제거하는 작업도 이루어졌다. 이것이 그 보답이다. 그것은 우리들 중 누구에 의해서도 자연스럽게 얻어질 수 있다. 집착을 초월하고 어떠한 경험이나 대상을 ‘나’ 혹은 ‘나의 것’으로 동일시하는 것을 초월한 내적 평화가 최고의 청정심이고, 이것이 진정한 붓다의 자유이다.”2)라고 말한다. 특히 호흡 출입관인 아나파아나 삿띠의 교재(현재에 필자에 의해 편역 중임)은 이 분야의 책 중 가장 상세하고 광범위하게 다루어져 있다. 특히 그는 남방 불교의 교과서격인 《청정도론》도 비판적으로 보고 삼세양중인과의 12연기설도 아트만 사상이 깔린 것으로 비판하면서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으로 돌아갈 것을 강조했다. 수완 목에서 1.5Km 떨어진 국제 수행림(International Dhamma Hermi-Tage)이 있는데 이곳에는 10일간의 집중 코스가 있다. 수행법은 아나파아나 삿띠가 중심이다. 평소에는 50여 명의 승려, 10여 명의 외국인 수행자들이 있다. 수안 목의 말사격인 왓 우몽(Wat U Mong)에서는 아짠 붓다다사의 아나파아나 삿띠를 기본으로 수행하지만 마하시 방법의 위빠사나나 다른 수행법도 자유롭게 수행할 수 있는 곳도 있다. 왓 마하타트(Wat Maha That) 왓 팍남(Wat Pak Nam) 위潽아좀(Viwea Asom Vipassana Metitation Center) 왓 사이감(Wat Sai Ngam) 명상의 계발을 설명하는 데 있어 그는 감각에 대한 마음집중이 어떻게 해서 심장 근저에 있는 모든 감각을 바로 경험하게끔 하는가에 대해 설명한다. 모든 경험 심지어 마음까지도, 심장 근저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감각으로서 명백하게 인식될 때, 우리들은 무상·고·무아를 본다. 이것으로 해서 우리들은 가장 심오한 진리, 고의 멸, 열반의 체험에 도달한다3)고 아짠 담마다로는 가르친다. 아짠 담마다로가 가르치는 수행법은 다음과 같다. 왓 스라케트 아짠 나에브는 달마에 관한 중요한 사항들을 체계적으로 언급하였는데, 수행하기 전에 올바른 개념적 이해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그녀는 지혜 명상과 선정 명상의 구분을 강조한다. 선정과 특별한 수행에 대한 어떠한 집착이라도 지혜 계발에 방해가 되고, 지혜는 현재 순간의 마음과 몸을 직시함으로써 온다고 가르친다. 지혜 수련에 있어서 지혜가 일어나는 것은 몸과 마음을 직시하는 것을 통해서만 일어난다고 그녀는 강조한다.아짠 나에브가 설명하는 위빠사나는 《청정도론》의 16단계에 근거를 두고 있다. 왓 수콩타와즈 그는 여러 다양한 수행법을 익혔으며, 한 방법만 고수하기보다는 제자들의 필요성이나 개성 혹은 특별히 선호하는 것에 따라 다양한 수행법을 제시한다는 것이 그의 지도의 특징이다. 그러나 어떤 테크닉을 계발하더라도, 결국은 제자들에게 몸과 마음의 본성을 무상·고·무아로 보게 하는 지혜 수련으로 귀일하도록 이끈다. “수행자가 법에 향상하고 못하고는 자신에 책임이 있다. 우리들은 비록 특별한 명상 테크닉을 당분간 이용하지만 수행은 우리들 모두에게 전 인생의 과정이며, 수행은 모든 고통을 종식시키고 궁극의 평화에 이르게 하기 위함이다.”4) 아짠 줌니엔은 자비관을 예비 수행으로 하면서 무집착을 강조한다. 위빠사나 수행은 아짠 담마다로의 수행법을 이용한다. 보통 100∼200명 정도의 승려와 10여 명 정도의 서구인들이 있다. 이상에서 태국의 주요 수행처와 스승들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태국에서의 불교 수행은 ① 아짠 붓다다사와 같은 아나파아나 삿띠 중심의 전통 수행법과 ② 아짠 문의 염불식 위빠사나, 담마카야 수행의 광명편, 아짠 담마다로의 기 수행과 관련된 사마타와 위빠사나가 결합된 수행 ③ 미얀마에서 들어온 마하시 위빠사나 등으로 크게 분류할 수 있다. 스리랑카는 필자가 가보지 않아 일중 스님의 연구서와 아눌라 비구니 스님의 자료에 의해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스리랑카 불교가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된 경위와 수행처의 구분 등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한 다음 수행처와 스승들에 대해서 소개하기로 한다. 1) 스리랑카 불교에서의 수행의 일반 양상 스리랑카 승가는 400여 년 동안 서양의 식민지 세력 아래에서 암흑기를 보내야 했다. 위빠사나 운동은 1950년에 불자 지식층이 중심이 되어 일어났다. ‘랑카 위빠사나 수행회’라는 조직을 결성하여 마하시 사야도에게 지도자를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마하시 사야도의 제자 4명이 콜롬보에 파견되면서 현대적인 수행 체계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마하시 사야도의 수행법이 소개되면서 초기 경전에 근거를 둔, 전통을 주장하는 신전통주의자와 개혁주의자들의 두 그룹으로 갈라졌다. 개혁주의자의 5가지 견해는 ①현 시대에도 아라한과를 성취할 수 있다. ②일반 신도도 아라한이 될 수 있다. ③교학에 대한 이론을 공부하지 않아도 깨달을 수 있다. ④아라한이 되기 위해 반드시 승려가 될 필요는 없다. ⑤사마타 수행을 무시하고 위빠사나만 강조하면서 코끝이 아닌 배의 일어남, 사라짐의 현상을 관찰하라는 마하시 수행법은 대승이나 탄트라 수행법이지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은 아니다. 그러나 이 수행법으로도 궁극의 목표에 도달할 수는 있다(마얀마에서의 마하시 방법이 전통이 아니라는 주장을 반박하기 위하여 마하시 선사는 직접 경전에 근거하여 책까지 저술하여 논박하였다). 개혁주의자와 신전통주의자 간의 논쟁 결과로 스리랑카에는 새로운 아란냐와 명상 센터가 생겨났다. 승가의 수행법 ① 경전과 《청정도론》 등의 주석서에 의한 방법 숲속에 거주하는 아란냐 수행승들은 근본 불교의 가장 전통적인 아나파아나 삿띠(호흡관)와 삿띠파타나(사념처), 붓다의 공덕을 기리는 염불 수행법인 붓다누삿띠, 자비관, 부정관, 시체관, 카시나관 등을 실천 수행한다. 아란냐 (숲속 수행처)와 수행 센터 아란냐 명상 센터는 30여 군데 있다. 사원이 8천여 개가 되는데 그 중 170여 곳이 아란냐이다. 3만여 명의 승려 중 1000여 명이 아란냐 수행승이다. 2) 주요 수행처와 스승들 삼스타아란냐(Sri Kalyani Yogasrama Samsthava) 16개의 꾸띠(원두막같은 방)가 있으며 외국 승려가 이 곳에 머물고자 한다면 일정 기간 테스트를 받은 후 가능하다. 또한 무문관과 같은 미트리갈라 아란냐도 있다. 이곳은 ‘열반 아니면 죽음’만 있을 뿐, 한 번 이곳에 들어오면 죽기 전까지 수행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들의 원칙은 다음과 같다.
② 재가든 승려든 아란냐 밖의 사람들과 말하지 않는다. ③ 불교의 제반 문제에 대해 기사나 편지를 쓰지 않는다. ④ 숨이 다할 때까지 수행을 포기하지 않는다. ⑤ 해탈을 하기 전에는 법을 설하지 않는다. 아일랜드 헐미티지(Island Hermitage) 와 투 루윌라 아란냐(Waturuyila Aranna) 칸두보다 명상 센터(Kanduboda Meditation Center) 닐람베 명상 센터(Nillambe Meditation Center) 이상에서 보듯이 국내에서 스리랑카 하면 교학만 발달된 불교 국가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수행도 많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끝으로 현재 스리랑카의 대표적인 두 분의 스님을 소개하면서 개략적이나마 글을 맺고저 한다. 비구 보리 스님 하루 일종식을 하며 동굴에서 머물렀다. 그의 수행법에서는 자비관, 죽음관, 부정관, 염불관(Buddahanussati)을 먼저 한 후에 위빠사나 본 수행에 들어간다. 위빠사나 수행은 마하시의 수행법처럼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한두 번 정도 알아차리고는 1차 명상 주제인 일어남, 사라짐으로 돌아오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필자가 미얀마에 간 것은 1989년 4월이었다. 도착 후 비구계를 받고 탁발을 나갔는데 3살 정도밖에 안 되는 아이들이 스님이 지나가면 합장을 한다. 그리고 부모님들과 함께 매일 아침 공양을 스님께 올린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자비 교육이 실시되고 방학이면 초등 학생들이 집단적으로 머리를 깎고 사미가 되어 절에서 경전을 공부하고 수행을 시작한다. 승복을 입고 밖에 나가면 신도들이 땅바닥에 엎드려 그대로 삼배를 올린다. 스님들은 매일 아침 비구계 250계를 외우면서 일과를 시작하는 분도 있고 사소한 계율을 파하면 선배 스님에게 참회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그들은 삶 자체가 하나의 불교 수행이다. 미얀마에는 다양한 사마타와 위빠사나의 수행법이 있다. 수행법을 중심으로 설명해 보겠다. 미얀마의 대표적인 수행 체계는 데이리 사야도의 수행법, 마하시 사야도의 수행법 그리고 기타 수행 선원의 그것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마하시 위빠사나 선원(Mahasi Vipassana Yeiktha Meditation Center) 기타 일반 생활 속에서 행동과 동작 속에서 지, 수, 화, 풍의 4대를 관찰하는 것을 위주로 수행한다. 특히 1주일에 한 번씩 큰스님이 설법하시고 매일 1∼2일에 한 번씩 수행 상태를 점검하는 면담은 단 시일내에 빠른 효과를 나타낸다. 필자도 그곳에서 통역도 해보고 수행을 해보았지만 한국에서 혼자서 수행할 때보다 휠씬 효과가 좋았다. 그곳에서 수년동안 통역을 한 분들의 공통적인 결론은 혼자서 10년 수행하는 것보다 이곳에서 지도를 받으면서 수행하는 1년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마하시 선원에서는 노스님들이 어린 사미나 젊은 비구들을 직접 지도하고 1년에 한번씩 각 분원의 지도 스님들이 모여서 효과적인 가르침과 수행에 도움이 되는 방법들에 대해서 연구를 한다. 그 결과 본인이 수행을 게을리 하지 않고 그곳의 지도를 받는 대로 수행하는 한 매일 매일 수행의 진전을 확인할 수 있다. 《대념처경》에 의한 4념처를 대상으로 한 위빠사나로 하루 16시간 동안 좌선과 경행을 번갈아 하며 계속 수련한다. 마음집중에 대한 마하시의 접근법은 어느 한 가지 대상에만 몰두하는 사마타 계발은 없고 처음부터 지혜 수련인 위빠사나로 시작하여 심도있게 계발한다. 그리하여 몸과 마음의 순간순간 변화의 특성을 알아차리게 한다. 순간순간 실제로 일어나는 것을 단순히 보다 깊게 보다 명확하게, 있는 그대로 관찰하였을 때 수행은 깊어지고 지혜는 가장 깊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계발된다. 제일 먼저 마음을 배에 집중하여 배의 수축과 팽창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배가 팽창될 때 움직임이 일어남에 마음을 집중하는 것이다. 배의 모양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임으로 생긴 육체적 감각을 자각하는 한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현재에 머물지 않고 과거, 미래를 왔다갔다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가 이 순간에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관찰해야 하며, 그럴 때 무상·고·무아의 진실을 보게 되며 정신과 육체의 자연적인 과정을 수행자 스스로 체험하도록 이끄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날마다 법문과 점검(인터뷰)을 통해 개인 개인의 수행력을 바르게 잡아 주는 것도 큰 특징이다. 여름 방학 때는 초등하교 학생들이 1,000여 명 이상씩 이곳에 와서 사미계를 받고 수행과 이론 공부를 배운다. 보통 때도 미얀마 승려가 150명 이상, 재가 신자가 250명, 외국인 수행자가 30여 명 정도이다. 이 선원은 3,000여 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다. 철저히 오후 불식을 지키며, 하루에 3∼5시간의 수면 이외에는 하루 종일 수행만 해야 하고, 대화를 하다가 몇 번 지적당하면 퇴출당한다. 양곤에도 마하시 선사의 제자인 우판디타 선사의 판디타라마, 우자나카 선사의 참매이 선원, 쿤달라비왐사의 삿담마란시 수행 센터 등이 있다. 쉐우민 위빠사나 센터(Shwe Oomin Dhamma Sukha Tawya) 모든 행동과 좌선할 때에도 가슴에서 느끼는 마음의 상태를 주로 관찰하므로 향후 우리 나라의 ‘이뭣고’ 화두와 상호 보완한다면 훌륭한 수행법이 되리라 본다. 특히 무엇을 하든 평등심을 유지하면서 욕망과 성냄을 제거하게 한다. 지금 현재 한국인 수행자가 30여 명이 넘고 지도는 쉐우민 사야도의 제자인 중국인 지도 스님이 맡고 있다. 새로운 건물을 증축하여 많은 사람들이 수행하고 있다. 한국의 청현 비구니 스님이 통역하므로 쉽게 수행할 수 있는 곳이다. 순룬 불교 수행 센터(Sunlungu Buddhist Meditation Center) 특히 그의 제자 냥룬 사야도는 7일 만에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불교 이론에는 무지하지만 그가 얻은 체험은 어떠한 불교학자의 질문에도 막힘없이 대답할 수 있게 했다. 랭군에 4곳, 전국에 100개 이상의 지부가 있다. 특히 수행 전에 1시간 정도 격렬한 ‘들’, ‘토’ 호흡을 한 후에 3시간 이상 움직이지 않고 좌선하게 하는 특징이 있다. 좌선 시에는 주로 감각을 관찰하는데 몸을 움직이지 않고 계속 몸의 고통이나 호흡의 감각을 관찰한다. 순룬 사야도의 명상 지도자들은 다른 수련법들도 가능하다고 인정은 하지만 그들의 방법이 가장 명쾌하고 단도직입적인 길이라고 강조한다. 그들은 아짠 차와 아짠 붓다다사의 자연스러운 방법은 너무 느리고 간접적이라고 한다. 그리고 마하시 사야도와 타웅푸루 사야도와 같은 기법은 직접적인 지혜 계발이 아닌 개념을 통한 집중 계발이라고 비판한다. 순룬 수련의 열쇠는 감각을 직시하는 데에 집중하는 강렬한 노력에 있다. 고통과 산만함을 극복하게 하기 위하여 전심전력하는 것이 순룬 사야도의 방법이다. 강한 호흡에 대한 집중력과 감각은 수행자들을 산만하게 하는 많은 장애들을 쉽게 극복하게 한다. 순룬 수행법은 혼침의 상태에 있는 마음을 맑게 깨우고 수행자를 맑고 집중된 상태로 이끌어 준다는 특징이 있다. 현재 중부 미양잔의 순룬 센터에는 순룬 사야도의 시신이 아무런 화학적 처리도 하지 않은 채 50여 년 동안 안치되어 있다. 이것은 아라한 과위와 관계없이 독특한 호흡법에 있다고 한다. 필자도 회원들에게 이 호흡을 수련한 후에 위빠사나를 수행하게 하니까 쉽게 망상과 졸음이 극복되어 집중이 잘됨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에 따라 위빠사나도 사마타의 예비 수행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우바킨 국제 수행 센터(International Meditation Center) 머리에서 발끝까지 몸 전체의 감각 위주로 관찰한다. 처음에는 아나파아나 삿띠를 통해 호흡으로 몸과 마음을 안정시킨다. 그 다음에는 몸 전체의 감각 변화를 관찰하고 나중에는 몸의 미립자인 까라파를 관찰하여 몸과 마음에서 무상·고·무아를 느끼게 하는 수행법이다. 하루에 8시간 좌선을 기준으로 한 번의 좌선 시간은 초보자는 1시간, 고참자는 2∼3시간씩 수행한다. 10일 코스가 기본이다. 마얀마에는 지부가 없고 영국을 중심으로 15개의 지부가 있다. 인도에 있는 유명한 고엔카가 우바킨의 제자이다. 고엔카(1924∼ )는 1955년 우바킨을 만난 후 14년간 수행하였으며 1969년 인도 봄베이에서 위빠사나 센터를 설립하여 세계 각지에 많은 지부를 두고 있으며 지도자만 해도 250명에 이르고 있다. 모곡 수행 센터(Mogok Meditation Center) 모곡 수행 센터는 모곡 사야도가 입적한 후에 그의 제자에 의해 설립되었고 7명의 재가 신자에 의해 운영된다. 양곤에 10개, 전국에 228개의 지부가 있다. 정기적인 10일 코스가 있으며 매 코스에 100명 정도가 참석한다. 5시간의 법문과 8시간의 수행 시간으로 짜여져 있다. 기타 수행 센터 타웅푸르 사야도 명상 센터는 부정관을 중심으로 몸의 32부분을 관찰한다. 몸에 대한 마음 챙김을 맛보지 못한 수행자는 죽음을 초월하지 못한다고 강조하면서 몸의 32개 부분을 6그룹으로 나누어 165일 코스를 수련한다. 짜우신 명상 센터(Kyauk Sin Tawya Forest Monastery)에서는 두타행을 수련한다. 탁발시에 여자 신도 손을 슬쩍 스치기만 해도 6일간 94가지 벌칙을 받으면서 제일 나쁜 곳에 있어야 한다. 외부 챵 센터에서는 하루종일 호흡만 관찰하게 한다. 파욱 명상 센터는 필자의 《보면 사라진다》에 소개한 수행법이다. 40여 가지의 사마타 수행이 있고 4선정 중심으로 몸에서 까라파를 관찰하여 16단계를 거치게 하는 수행법이다. 현재 서구인들이 많이 찾아간다. 이상 개략적으로 살펴 본 바와 같이 미얀마에는 전통적인 수행법인 테이디 사야도에 의한 아나파아나 삿띠와 마하시 사야도의 동작 관찰로 대별될 수 있다. 기타 파욱 사야도 등 다양한 수행법이 있다. “중생의 정화(淨化, 心淸淨)를 위한 근심과 슬픔(苦)을 극복하기 위한, 진리의 길을 건너기 위한, 열반을 증득하기 위한 유일한 길이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사념처(위빠사나)이니라.”라고 붓다는 《대념처경》에서 설파하고 있다. 경전상의 해석은 지역에 따라, 종파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겠지만, 수행법만큼은 남방이든 북방이든, 한결같이 사념처 위빠사나가 붓다가 발견한 유일한 수행법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누구나 실제로 분별과 집착 없이 수행해 보면 똑같은 체험과 경지에 도달한다. 문제는 끝까지 도달하지 않고 중간 단계의 과정에 집착해 있는 것이라고 본다. 고해에 허덕이고 있는 우리에겐 뗏목과 나침반이 필요하다. 도달한 후의 일은 미래의 일이다. 교리의 논쟁이나 추론에 앞서 가장 절실한 것은 체험에서 얻은 해탈 지혜이다. 달마(達磨)도 마음을 관하는 한 법이 모든 법을 총섭한다고 했다. 우리가 정확한 수행법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전심전력으로 실천해 나간다면, 언젠가는 아니 지금 당장이라도 탐·진·치의 화살을 뽑고, 마음을 정화하고, 모든 정신적 갈등과 생사의 고해에서 벗어나고 진리를 철견할 수 있는 지혜를 얻고 열반을 증득할 수 있을 것이다. 본 원고에서 남방 불교 3개국의 주요 수행처와 스승들을 소개하였는데, 각 수행처에서 실천되고 스승들이 가르친 방법은 서로 다르게 보이거나 심지어는 상반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가르침의 핵심은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탐·진·치의 삼독을 제거하고 그대로 여실히 몸과 마음을 철견하는 것으로 이끈다는 점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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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열권 | ||
고려대 경영대학원 졸업. 1990년 미얀마 마하시 명상 수도원으로 출가, 한국인 최초로 미얀마에서 비구계 받음. 태국, 미얀마, 말레이시아의 수도원에서 위빠사나 수행. 현재 위빠사나 선원,불교방송국 등에서 위빠사나 지도.편저로 <위빠사나 1,2>역저로 <고요한 숲속의 연못><위빠사나 열두선사>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