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시간에 <나목>을 가르치다가 문득 작가 박완서가 그리워진다.
그러자 언젠가, 그때도 정말 문득 박완서가 살던 동네가 궁금해서 훌쩍 다녀온 아치울이란 마을이 떠오른다.
그 당시 신문에, 구리시가 아치울 마을을 박완서의 문학마을로 만들려고 했으나
그 딸이 평소에 어머니인 박완서 작가가 아치울이란 이름을 사랑하였으므로 사양하겠다고 한 기사를 보았다.
작가의 이름을 따서 역명이나, 동네 이름이나, 하다못해 길거리 이름까지 짓는 것은 영예로운 일이다. 그런데도 작가의 딸은 이를 사양하였다고 한다. 정말 박완서 답다고 생각했다.
이 기사를 본 이후로 나는 아치울 마을이 어떤 곳일지 너무 궁금했다.
딸이 사양했을 정도면 평소 작가는 이 마을을 매우 아끼고 그리운 장소로 마음에 품고 있었을 것이다.
박완서의 소설들을 아이들의 독서 목록에서 빼놓은 적이 없는 나는 작가가 사랑했던 마을을,
비록 작가가 작고하였지만 꼭 보고 와야 할 이상한 충동에 사로잡혔다.
그 마을을 보지 않으면 마치 작가의 작품에 대해서 설명을 하지 못할 것 같은 주술적인 끌림마저 가져서 어느 날 훌쩍 떠났었다.
작가의 집은 마을회관인 곳에서 좌측으로 노란 담장을 하고 있었다.
이것도 우체부 아저씨를 만난 덕분에 알게 된 사실이다.
집 앞으로는 마을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울이 흐르고 있다.
들여다보면 미꾸라지도 보이고 올챙이도 보였다. 가서 돌멩이를 들치면 가재도 한 마리쯤 있을 것 같았다.
어릴 적 내가 살던 집 앞의 공터로 흐르던 개울도 그랬다. 마치 그 개울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듯했다.
물 소리는 끊임없이 들려, 쉬지 않고 작가의 집까지 그 소리는 넘어갔을 것이다.
마을은 그냥 한가했었다. 편의점 하나 없이 가을이 시작되는 햇살만 진했었다.
작가는 이제 고인이 되었고, 작가가 살았던 집의 노란 담장을 보니
마치 이승을 찰박찰박 건너가는 작가의 고요하고 한가로운 뒷모습 같았다.
둘레길로 되어서 마을을 걸어가는 등산객들이 가끔 눈에 띌 뿐, 인적조차 없었다.
마을을 내려오는 길에 어느 산방의 현판이 걸린 집의 빨간 우체통이 붉은 연지처럼 고와서 사진도 찍었다.
작가는 이 길을 걸어서 운전도 못하니 버스를 타거나 광나루나 강변역에 가서 볼 일을 보았다고 어느 글에서 그랬다.
내가 걸은 길을 작가는 똑같이 두리번거리면서 걸었을 것을 생각하니
어디선가 툭 걸어 나올 것만 같은 작가의 글들이 자꾸 날카롭게 걸렸다.
그 글에 나는 자꾸 걸려 넘어질 것처럼 휘뚝거리면서 걸었다.
아파트를 샀더니 획일적인 규모에 질려서 이 아치울을 용기 있게 질렀다는 작가의 글도
어디선가 읽었던 적이 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아직도 아파트 생활을 벗어나지 못한다.
나는 그래서 작가처럼 다양한 눈을 가지지 못하고, 풍부한 느낌을 벼려내지 못하는 것 같다 부끄럽다.
마을 길을 걸을 동안 사람들을 볼 수 없었다.
그저 한가하고 고요했다. 소란스러운 일은 전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번잡한 삶은 이곳에서만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그런 곳이었다.
대문보다 대문 안쪽이 더 이쁜 집이다. 초록색 의자가 하나 파란 풀 위에 놓여 있다.
붉은 꽃이 초록을 돋보이게 한다.
상점도 없는 길의 초입에 청국장을 파는 집도 있었다.
의외로 맛있었다. 청국장 맛이 전혀 나지 않고 담백하고 구수한 맛만 있었다.
한 그릇 사 먹고, 또 청국장까지 사들고 돌아왔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애들에게 청국장을 끓여주니 다들 맛이 기막히다고 좋아했었다.
5호선 광나루역의 3번 출구로 나와 버스를 타고 아치울 마을에 내리면 되지만,
네이버 지도검색에 나오는 버스 번호 112-3번을 탔더니 웬걸 엉터리였다.
아치울 마을로 가는 버스가 아니라 다른 쪽으로 빠지는 버스였다.
버스 기사가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내려서 걸어 들어가야 한다고 해,
가을볕이 좋고, 걷기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하니 별문제는 안되었지만,
가는 길을 물을 사람조차 없는 길들이 이어져서 대략 난감한 편이었던 그 아치울.
아치울 마을을 내려오면서 나는, 굳이 박완서 마을이란 이름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작가의 문학적 정서를, 오가는 사람들이 오래도록 기억해보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닌가.
아치울 마을이란 이름도 이쁘지만, 그냥 작가도 아니고 좋은 작품들을 썼던 작가의 향기가
마을을 감아돌고 있다는 사실을 오가는 많은 사람들이 기억했으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을 했었다.
작가의 향기는 바로 그 마을의 향기가 아닌가.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그 작가가 살았고, 그곳에서 작품을 썼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할 것이 아닌가.
내가 길을 몰라서 딱 한 사람 길에서 만난 그 여인은 박완서 작가의 집을 물었을 때 상기된 얼굴로 가르쳐주었었다.
얼굴을 빛내면서 열심히 길을 가르쳐주던 그 얼굴은 작가와 한마을에 살았던,
그리고 길을 오가면서 만났을지도 모르는 그 즐겁고 행복함을 간직한 얼굴이었다.
지금이 아니라도 어느 때가 되더라도, 많은 작품을 썼던 작가의 문학관이 아치울에 생겼으면 좋겠다.
그곳은 이제 그냥 마을이 아니라 작가 박완서가 살았던 마을이므로,,,
(풍금소리)
첫댓글 싱아가 있던가요?
저는 박완서의 글을 별로 안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