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과 포천 경계에 있는 강씨봉(830m)은 포천 일동면에서 오르는 산으로 흔히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건 가평의 논남계곡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서울에서 포천 쪽 들머리가 가까워 서쪽에서 오르는 등산로가 잘 알려져 있지만 한 여름 계곡산행으로는 동쪽 논남 방향에서의 원점회귀 산행을 추천할 만하다.
그동안 강씨봉 논남계곡은 명지산 명지계곡이나 연인산 백둔계곡의 명성에 가려져 아는 사람만 찾는 조용한 청정골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산림청에서 강씨봉자연휴양림을 짓고 진입로 공사를 하고 있는 중이다. 조용한 청정골이던 시절은 끝났다는 얘기다.
달리 보면 휴양림이 경관 좋은 곳을 선별해 세워지는 것이니 그만큼 비경을 간직한 골이라 할 수 있다.
▲ (위)논남계곡 곁으로 난 임도는 오뚜기고개로 이어진다. 상류로 갈수록 물은 차가워진다. (아래)능선에 핀 화사한 중나리 뒤로 산경이 펼쳐진다.
강씨봉은 한북정맥 주능선의 산이다. 한북의 최고봉 국망봉(1,168m)에서 민둥산(1,023m)~강씨봉~청계산(849m)으로 이어진다. 높고 험준한 줄기라 포천과 가평의 생활권을 완전히 나누며, 도로로 지나려 해도 먼 길을 돌아가게끔 되어 있다.
강씨봉(830m)은 강씨 성을 가진 이에게서 유래한다. 두 가지 설이 있는데 첫째는 오뚜기고개 부근에 강씨들이 모여 살았다고 해서 유래한다는 것이며, 둘째는 궁예 부인 강씨에게서 유래한다. 궁예의 폭정이 심해지는 와중에 강씨는 직간을 멈추지 않았고 궁예는 부인을 강씨봉 아래 마을로 귀양 보낸다. 이후 왕건에 패한 궁예가 부인을 찾아왔으나 죽고 없었다고 한다. 이에 왕건은 국망봉에 올라 불타는 태봉국의 수도 철원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고 이에 국망봉이 되었다고 한다.
가평군 북면 적목리 논남에서의 원점회귀 산행은 임도를 따른다. 임도와 계곡이 조화롭게 이어져 어린 자녀들과 함께 찾기 좋다. 길은 완만하며 수심도 깊지 않아 소풍 코스로도 좋다. 단점은 완만한 대신 거리가 길다는 것이다. 논남~도성고개~정상~오뚜기고개~논남으로 도는 14km 코스다. 일단 능선에 들어서면 오뚜기고개에 닿기 전에 가평으로 빠지는 길이 없으므로 선택의 여지가 없다. 도성고개 쪽 골보다는 오뚜기고개 쪽 골이 더 깊고 놀기 좋은 소가 많으므로 가족 산행이라면 오뚜기고개까지만 갔다가 되돌아 내려오는 게 좋다.
▲ 논남계곡에서 도성고개로 이어진 임도 숲길. 논남고개를 따르는 임도는 완만해서 숨 찰 데가 거의 없다.
강씨봉은 계곡 산행을 질리도록 실컷 할 수 있는 산이다. 계곡 옆으로 난 길은 잔잔한 바위가 많은 편이지만 능선은 푹신한 흙길이다. 풀과 넝쿨이 높아 여름에도 긴팔과 긴바지를 입어야 하며 원점회귀 산행이라 자가용을 이용하는 게 편하다. 도성고개에서 정상으로 이어진 1.6km를 제외하면 대체로 완만하다. 대신 산행거리가 14km로 길고 능선은 산불방화선을 조성키 위해 나무를 베어 놓아 땡볕에 노출된다. 길찾기는 이정표가 잘되어 있어 어렵지 않으며 총 산행시간은 6시간 정도 걸린다.
태봉국 왕비의 산으로 향하는 길목은 가평군 북면 적목리 ‘논남기’다. 마을 이름이 특이한데 옛날 어느 선비들이 여기서 남쪽을 논했다 해서 얻은 이름이며 요즘은 줄여서 ‘논남’이라 부른다. 반대편 포천시 일동면에서도 강씨봉으로 이어진 산길이 있으나 후텁지근한 날에는 논남에서 오르는 게 더 시원하다.
논남계곡의 장점은 수도권에서 비교적 가까우면서도 한적하고 깨끗한 골짜기라는 건데, 지금은 덤프트럭이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다닌다. 산림청에서 강씨봉자연휴양림을 지으며 진입로 공사를 하고 있다. 포크레인 뒤로 눈치껏 돌아 계곡을 타고 오른다. 물길 곁을 임도가 따르고 그리로 오른다.
길은 계곡을 왼쪽 오른쪽으로 바꿔가며 이어져 있다. 덕택에 물에 손 담그고 징검다리를 조심스레 뛰어넘는 장면이 잦아진다. 계류의 이미지는 너르고 명랑하다. 빛이 잘 들고 넓어 여유롭고 물살이 세거나 깊은 데가 없다. 낯선 곳에 온 긴장감을 자연스레 무너뜨리는 부드러운 계곡이다. 그러나 생각보다 차갑진 않다. 골이 길고 수심이 얕아 햇살에 데워져서 그럴 것이다.
임도 곁으로 흐르는 맑은 계곡
능선을 만나는 도성고개까지 숨 한번 헐떡이지 않고 올랐다. 지루할 정도로 긴 계곡이지만 초등학생 아이와 함께 가도 힘들다고 보채지 않을 정도로 오르막이 완만하다. 허나 도성고개부터는 얘기가 달라진다.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한북정맥 줄기답게 가파른 오르막이 이제부터가 진짜 산행임을 몸으로 알게 한다. 그렇다고 강씨의 산이 왕족의 기품과 너그러움을 잃은 건 아니다. 가파르지만 발의 촉감이 푹신푹신한 흙길을 내주며 정상을 얻으려면 이에 걸맞은 땀을 바치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