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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들어 묻지마 살인, 성폭행 등이 하루를 멀다하고 연일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땅에 마귀가 들끓어 젊은 세대를 삼키고 있습니다. 경찰을 동원하여 막아보고자 하지만 막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이런 시대가운데서도 70명의 제자들을 전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추수할 것은 많다’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볼 때는 전도할 대상자가 없어 보입니다. 저 사람은 저래서 이 사람은 이래서 교회에 못나올 것 같습니다. 우리들의 인간적인 마음 때문에 전도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 세상에 구원이 필요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함께 생각해보고 예수님의 이 명령을 따라 추수하는 비결을 잘 배우심으로 영혼의 추수가 풍성해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첫째. 가라는 명령에 순종하여 가야 합니다.(1-3)
1절을 보면 “그 후에 주께서 따로 칠십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예수님은 12제자외에 전도를 위하여 특별히 70명을 세우셨습니다. 이들은 이 본문에만 나오는데 특별히 전도를 위해 세움받았습니다.
예수님은 현재 십자가에 못박히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십니다. 대개 사람들은 어려움이 생기면 자기중심적이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질 여유를 잃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심각한 문제를 앞에 두시고도 슬픔에 빠지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70인을 보내심으로 온 세상을 복음화 하고자 하시는 열망으로 가득 차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셨습니다. 이는 동역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혼자가면 반대에 부딪히면 금새 지칩니다. 그러나 둘씩 가게 되면 서로 힘을 주고 붙들어 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동역의 역사입니다. 한 사람은 연약하지만 두 사람이 마음과 뜻을 합하면 놀라운 능력의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8:19절에서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이 전도여행을 할 때 그들에게 한 가지 기도제목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2a절을 보면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당시 세상은 어두웠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로마 초강대국의 지배 아래 분봉 왕들에 의해 분할 통치를 받고 있었으며, 경제적으로는 하루 두 끼도 먹기 힘들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형식과 권위주의와 독선에 빠져 양들을 외면하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너무 힘들었고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귀신 들린 자와 병마에 시달리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그 시대는 어느 모로 보나 절망적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시대를 추수할 것이 많은 밭으로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시대가 절망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영적으로 갈급한 시대임을 아셨습니다. 그 시대가 육신적이고 물질적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가 많음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전도하기만 하면 구원받을 자들이 수없이 많음을 보셨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이 시대를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라 합니다. 성경의 절대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순종이나 질서를 거부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다보니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시대입니다. OPEC 국가중에 낙태율1위, 하루평균 42명이 자살하고 있는 자살율1위의 국가입니다. 예수님의 눈으로 볼 때는 이 시대야 말로 추수할 시대입니다. 겉보기만으로는 다르게 만나서 대화해보면 영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을 영적으로 도와줄 일군은 적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보실 때 그 시대에 정말 필요한 사람은 정치인도 아니요 경제학자도 아니였습니다. 그보다도 영혼을 구원하는 추숫군이 필요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많았으나 추수할 일꾼이 너무 부족하였습니다. 그러면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님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추수할 일꾼을 보내주소서 하고 기도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이 기도는 우리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기도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명령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기도를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추수할 일꾼은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잠시라도 눈을 들어 세상을 바라보면 예수님을 몰라 방황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2가지 뜻이 있습니다. 1) 제자들 자신이 부족하지만 추수할 일군으로 보내어 달라는 뜻입니다. 2) 추수할 일군을 더 많이 보내어 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추수할 수 있는 일군들을 보내어주셔서 제자훈련을 잘 받고 난 뒤 일군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온 세계를 복음화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추수할 일군들이 잘 전도되어 세워지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인간의 힘과 지혜로 할 수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추수할 일군들을 세워주시고 보내주셔야 가능합니다.
인천주안장로교회 박희용같은 분이 하나 전도되어 양육되니 사천명을 주께로 이끌고 왔습니다. 먼저는 부족하지만 우리가 나를 추수할 일군으로 써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함께 추수할 수 있도록 일군들을 많이 보내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전도의 은사가 있는 분들이 전도되고 훈련받아 그런 일군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주 부르는 복음성가에 ‘그리스도의 계절’의 가사는 이런 점에서 감동적입니다. ‘민족의 가슴마다 피 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이 땅의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소서 오게 하소서 이 땅의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지게 하옵소서 모든 사람의 마음과 교회와 가정에도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여주소서 주의 청년들이 예수의 꿈을 꾸고 인류 구원의 환상을 보게 하소서 한손엔 복음 들고 한손에 사랑을 들고 온땅 구석 구석 누비는 나라 되게 하소서. ’ 우리는 그냥 성도로 있을 사람만 아니라 추수할 일군이 될 사람들이 많이 전도될 수 있도록 계속 기도해야겠습니다. 우리가 눈을 들어 문제 많은 세상, 또 그 안에서 고통 받는 영혼들, 구원을 기다리는 영혼들을 추수할 일군이 적다는 것을 알고 주여, 추수할 일꾼을 보내주소서 하고 기도하시길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이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3절을 보면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 같도다” 예수님은 이렇게 제자들을 사명인으로 세워 전도자로 각지에 파송하시지만 그들이 얼마나 위험한 곳으로 가는지를 알고 계십니다. 세상에는 예수님을 미워하는 사람들, 원수들이 많습니다. 인본주의자들 그리고 유달리 예수님이나 기독교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사단이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복음을 증거하는 자들을 이리와 같이 기회 나는 대로 공격하고 전도자들을 해를 가합니다. 이에 비해 제자들은 가진 무기 없이 이 구원의 복음을 전하고자 하니 이는 마치 이리앞에 주눅 들린 양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잘 아십니다. 이런 상황에 부딪치게 되면 제자들이 금방 위축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담대하게 보내십니다. “갈찌어다.” Go ! 이는 그들을 전쟁터로 내 보내시는 예수님의 진격명령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린 제자들을 전도 내보내신 데는 뜻이 있습니다. 이는 세상을 향한 예수님의 목자의 심정 때문입니다. 이리가 있다고 나가지 않으면 저 죽어가는 영혼들은 누가 구합니까? 예수님은 그들이 어린 양과 같다고 해서 품에 품고만 있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이리떼와 싸우는 용사들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들이 가면 예수님께서는 반드시 함께 해 주십니다.
둘째. 천국이 가까이 와 있다 해야 합니다.(4-16)
예수님은 70인을 내 보내시면서 전도자로서 가져야 할 자세와 그들이 전해야 할 메시지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1) 하나님만 의지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4a절을 보면 “전대나 베낭이나 신을 가지지 말며” 여행을 위해서는 반드시 돈이 필요합니다. 또 당시는 험한 길을 많이 걸어가야 했으므로 여벌신도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는 그들이 이 문제에 있어서 물질보다도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라 고 하십니다(4b). 이는 전도하러 나가서는 다른데 신경 쓰지 말고 맡은 바 전도에만 충성하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길에서 친척이나 아는 사람을 만나면 끝없는 문안으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우리도 전도하러 갔다가 우리끼리 서로 문안 이야기만 하다가 돌아오기 쉽습니다.
2) 평화를 선포하는 평화의 사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5절을 보면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찌어다 하라.” 왜 제일 먼저 평화를 기원하도록 하셨을까요? 이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펑화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별 이유도 없이 불안하고 두려워합니다. 사단이 심는 불안과 초조함 염려와 근심으로 심령이 늘 편할 날이 없습니다. 밤마다 악몽을 꾸고 악령에 시달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화평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가장 먼저 생기는 것이 심령의 평화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평화의 복음입니다(행10:36,엡2:14-17). 제자들은 평화의 복음을 전하는 평화의 사도입니다. 제자들이 평안을 기원할 때 만일 그 집에 평안을 받을 만한 사람이 있으면 그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제자들에게로 돌아옵니다(6). 그러므로 평안기도는 절대 손해가 아닙니다. 7,8절 말씀은 숙식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말씀해 주십니다.
3)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도록 하셨습니다. 9절을 보면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세상에는 가난하고 병으로 시달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을 돌봐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서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너희에게 왔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토의 개념이 아니라 통치를 의미합니다. 불순종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상실했습니다. 그 결과 사단이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사단이 통치하는 곳에는 두려움과 불안, 절망, 시기, 분열, 싸움들이 있어서 저주스러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하고 순종하게 되면 하나님의 통치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왕이 되셔서 사랑과 평화로 다스려 주십니다. 우리마음에는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와 있다고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순종하여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라고 권해야 합니다. 미국의 밀러 박사는 ‘아스팔트 위의 낚시질(Fishing on the Asphalt) 이란 저서에서 기독교인들은 평균 6천 번의 설교를 듣고, 8천번의 기도를 들으며, 2만 번의 찬송을 부르는데, 자기가 믿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 구세주로 소개하고 전도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신학자 반 하우스는 이렇게 자기가 믿고 확신한다고 하는 구원의 진리를 입을 열어 증거하지 않는 크리스천을 가리켜 ’자폐 그리스챤‘이라는 말까지 했습니다. 실제 우리는 자신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열정적인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주변 사람들에게 잘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두려움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시받을 것 같은 두려움을 이기고 담대하게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고 전해야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전권대사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이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의 복음을 열심히 전할 수 있길 축원합니다.
셋째. 전도는 마귀와 싸움임을 알고 마귀를 내쫓아야 합니다(17-24)
17절을 보면 칠십 인의 전도대원들이 돌아와서 선교보고를 했습니다. 그들은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하고 말했습니다.” 이런 보고를 하는 제자들은 얼마나 기쁘고 신이 나겠습니까? 제자들은 저도 귀신을 내쫓았습니다. 얼마 전에 산 아래에서 귀신들린 아이를 구해주지 못해 망신을 당한 12제자들과는 달리 70명 전도자들은 자기들이 귀신을 쫓아냈으니 얼마나 신나는 일입니까? 18,19절을 보면 이들의 보고를 들으신 예수님은 하늘로서 번개같이 마귀들이 떨어져 박살이 나는 것을 보았다고 인정하셨습니다. 전도는 마귀와 싸움입니다. 마귀를 이겨야 전도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코 없으리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이름 권세에 대한 믿음을 심으셨습니다.
20절을 보면.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이는 승리가운데서도 제자들이 붙들어야할 영적 방향의 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귀신을 항복시켰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놀라운 일이라고 해도 그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 하늘나라 생명책이 기록된 것만큼 기뻐할 일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 세상 어떤 것도 우리의 진정한 기쁨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죄와 사단의 권세에서 벗어나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 지옥의 형벌에서 천국으로 내가 옮겨진 것, 이것보다 더 큰 기쁨이 있을 수 없고 이것과 비교 될 수 있는 기쁨도 세상에는 없습니다.
전도가 안되는 시대라 하지만 예수님의 눈으로 보실 때 희어져 추수할 것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추수할 일군으로 세우셨습니다. 가라하시는 주님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왔다고 증거하시고 또한 추수할 일군이 될 초신자들을 많이 보내어주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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