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간의 황 박사 파문을 보면 여러 가지 문제점이 발견되었는데 이러한 문제점은 바로 현대교회의 문제점과 매우 유사합니다.
1. 제보자 : 황 박사 파문의 단초를 제공하였던 제보자의 신원은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제보자 본인이 받게 될 불이익을 우려하여야 할 환경인 것입니다. 이는 그 만큼 과학계가 좁기도 하지만 선배나 동료의 잘못을 잘못이라고 지적하기조차 어려운 풍토임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어떻습니까? 지도자인 목회자의 잘못을 아는 사람은 교인 중에서도 중직이기 쉬운데 자유스럽게 잘못을 지적할 수 있는 토양을 갖추고 있습니까? “목회자의 잘못은 하나님께서 친히 치리하실 것이니 기도나 해라”, 이것이 대부분의 교회에서 목회자들이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다보니 목회자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은혜스럽지 못한 일이요, 시험에 든 사람으로 치부되는 지름길이며 자칫 따돌림을 당할 수 있음을 대부분 알고 있지 않습니까? 혹이나 익명으로 잘못을 지적하려다 보면 이름도 못 밝히고 당당하지 못하고 비겁하다(물론 그럴 경우도 상당히 있겠습니다만), 익명이니 대처할 필요조차 없다, 이렇게 넘어가는 일이 비일비재 한 것이 현실입니다. 잘못을 잘못이라고 지적하는 사람을 귀하게 볼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합니다.
2. 상명하복 : 이번에도 문제가 된 것이 바로 상명하복입니다. 이는 우리의 오랜 군사정권과 남자들의 군복무중에 각인된 우리의 문제이라고 생각합니다. 윗사람의 명령이라면 부당하더라도 복종하여야 하며 복종할 수밖에 없는 현실체제가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평등함을 외치는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종인 목회자가 한마디 하면 이에 불복하는 것은 마치 하나님께 불복종하는 것으로 오래 동안 교육시키고 배워왔습니다. 잘못이라고 뻔히 알면서도 나 하나 반대해서 무엇하랴 하다보니 골은 점점 더 깊어져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복종할 것은 오직 진리 그 자체이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3. 정치화 : 황 박사의 연구의 열매에 대하여는 아직 정확한 발표가 없어 섣불리 언급할 수가 없습니다만, 문외한이 추론하기로는 약간의 성과가 분명 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약간의 결과에 정치바람이 가세한 것이겠죠. 현정권이 내세울만한 하나의 업적이 필요하였고 이에 편승하여 짧은 시간에 꿈도 꾸기 힘들었던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황 박사로서는 스스로 그 자리에서 내려올 용기도 겸손도 갖추고 있지 못하였기 때문에 바람에 편승해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너무 올라가지 않았나 생각했을 때에는 이미 내려올 수 있는 때를 놓쳤으며, 이런 그에게는 오직 무리해서라도 더 높이 앞으로 나아가는 길 이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에도 이렇게 목회자도 모르는 사이에 급성장한 교회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대교회에 대한 준비도 미흡한 채로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고 교회들 말입니다. 성장이란 거품에 파묻힌 목사님들은 내려올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부산물중의 하나가 바로 세습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교회가 안정이 되면 목회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 무엇입니까? 감투 아니겠습니까? 바로 명예욕과 정치권력입니다. 처음 목회를 시작했을 때 가졌던 영혼구원의 구령열하고는 거의 관계없는 일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새포도주는 새부대에 담아야 하듯이 이제는 진정한 과학자로만 영원히 남을 수 있는 과학자가, 진정한 목회자로만 남을 수 있는 목회자가 요청되는 새로운 시대입니다.
4. 가시적 성과주의 : 황 박사의 가시적인 성과에 대한 기대는 본인에게는 엄청난 압박이었을 것입니다. 목회자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인이 몇이냐, 장로는 몇이냐, 예배당이 얼마나 크냐, 이런 문제가 목회자에게는 부수적인 문제가 되어야 합니다. 다른 교회 다니는 교인 끌어온 것이 무엇 자랑입니까? 믿지 않았던 영혼 하나 구원하면 하나님 기뻐하시마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장로가 많으면 어떻고 적으면 또 어떻습니까? 예배당 왜 그리 크게 지으려 하십니까? 자리가 모자라면 2부 3부 4부 이렇게 예배드리면 되고 그도 모자라면 지교회(독립교회) 지어서 교인도 나누어주면 되지 않겠습니까? 유럽의 크고 호화스럽게 지어놓았지만 지금은 관광객이나 들르는 텅빈 교회들 보고 듣고 하시지 않습니까? 성도들도 이제 목회자에게 이렇게 과도한 압박감을 주지 않았으면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눈으로 보고 있는 그런 차원이 다가 결코 아니지 않습니까?
교회도 개혁을 위해선... 그릇된 것을 그르다 할 수 있는 양심의 자유가 있어야 하며, 옳지 않는 것은 따르지 말아야 하는 선.악간의 분별력이 있어야하고 , 목자는 양을 기르고 양육하는 일에만 전념하고,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도록 하는 겸손한 자세가.. 참 지도자가 만드는 참교회 상 이라는 생각듭니다.
황씨 파문으로 교회까지 비하 된다는 것에 대해 어찌 좀 그렇습니다만 그러나 공감도 합니다.부를 쌓기보다 쌓인 부를 나눠주는 교회와,교인이였으면 합니다.어렵고 힘든교회 ,어렵고 힘든 성도들에게,어렵고 힘든 이웃에게..행함이 있는 믿음이야 말로 주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상의 일이 왜 이 모양이 되었나 하는 원인을 생각하다보니 교회도 똑 같은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자성에서 우리가 개혁의 공감대가 형성되는데 일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몸인 교회를 비하하다니요, 결코 아닙니다. 다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아야 처방을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첫댓글 참으로 고질적인 병폐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아마도 주님 재림하실 때에라야 고쳐지지 않겠습니까?
유다 아사왕때 선지자 하나니, 유다 여호사밧과 북이스라엘 아합왕때 미가야,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는 엄청난 반대 세력에도 불구하고 진리를 대변했던 선지자들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모습이 이들과 같아야 합니다.
예리한 지적입니다
교회도 개혁을 위해선... 그릇된 것을 그르다 할 수 있는 양심의 자유가 있어야 하며, 옳지 않는 것은 따르지 말아야 하는 선.악간의 분별력이 있어야하고 , 목자는 양을 기르고 양육하는 일에만 전념하고,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도록 하는 겸손한 자세가.. 참 지도자가 만드는 참교회 상 이라는 생각듭니다.
황씨 파문으로 교회까지 비하 된다는 것에 대해 어찌 좀 그렇습니다만 그러나 공감도 합니다.부를 쌓기보다 쌓인 부를 나눠주는 교회와,교인이였으면 합니다.어렵고 힘든교회 ,어렵고 힘든 성도들에게,어렵고 힘든 이웃에게..행함이 있는 믿음이야 말로 주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상의 일이 왜 이 모양이 되었나 하는 원인을 생각하다보니 교회도 똑 같은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자성에서 우리가 개혁의 공감대가 형성되는데 일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몸인 교회를 비하하다니요, 결코 아닙니다. 다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아야 처방을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주적절한 지적이시네요 하지만 성도나 목회자나 하나님 앞에서는 같은 존재이지요 진정한 하나님에뜻을 새겨볼때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