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나라가 황하 하류에서 번성하고 있을 무렵, 주나라는 황하 상류인 황투고원에서 성장하고 있었다. 주나라의 시조이자, 곡식의 신으로 추앙받는 후직의 어머니, 강원(姜嫄)은, 어느 날 들에 나갔다가 거인의 발자국을 보았다. 강원은 그 발자국을 보고 마음이 들떠 그것을 밟았는데, 그 후 아이를 잉태했다. 1년 후 아들이 태어나자 강원은 불길하다고 여겨 아이를 골목길에 버렸다. 하지만 소나 말이 아이를 밟지않고 모두 피해서 지나갔다. 숲속에도 버렸지만 산속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개천의 얼음 위에도 버렸지만 새가 날아와 날개로 아이를 감쌌다. 놀란 강원은 아이가 신동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데려다 키우기로 결심하고 '기(棄)'라는 이름을 붙였다. 세차례나 버렸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로의 건국자 로물루스의 전설과 유사하다... 후직의 어머니인 강원의 강족은 전차를 보유하고 있어 군사력이 막강했다. 말의 원산지는 중앙아시아이고 전차 또한 이 곳에서 처음 만들어졌다는 설이 있다... 이 후 후직의 후예인 고공단보가 나라이름을 주(周 기원전 1046 - 256)라 정하면서 비로서 나라의 기틀을 갖추게 되었다. 주나라는 손자인 문왕 때 크게 번성했다. 문왕의 어머니는 이름이 태임이었다.(오류?...성이 임(任) ,부인의 성이 사(姒)) 훗날 조선의 율곡 이이의 어머니인 신씨는 임씨를 자신의 스승으로 섬기겠다는 뜻으로 호를 '사임당'이라 정한 바 있다. 문왕은 현명한 사람들을 대우해 그의 수하에 수많은 인재가 모이기 시작했다. 태공망 여상(呂尙)도 그런 인물 중 하나였다... 문왕은 군대의 작전을 총괄하는 군사(軍師)로 모셨다. 여상은 태공이라 불린 고공단보가 꿈에도 그리던 사람이라 하여 태공망(太公望)이라 불렸다. 태공망 여상은 강태공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고대의 중국에서는 성(姓)과 씨(氏)를 구분해 썼는데, 태공망의 성은 강(姜)이며, 씨는 여(呂)이다. 그의 선조가 하나라 시조 우왕의 황하 치수를 도운 공로로 '여(呂)'라는 땅을 받아 이를 씨로 삼은 것이다. 그런데 강이라는 성을 쓰는 종족은 주 왕족과 예로부터 혼인관계를 맺어 왔던 유력한 일족이었다. (고공단보의 처 태강(太姜)) 앞서 등장한 강원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강성 일족은 주왕실의 외척가문이었던 것이다. 문왕이 죽은 후 아들인 무왕은 동생 주공 단과 태공망 여상의 도움으로 상나라를 정벌했다. 나라를 잃은 상나라 사람들은 이후 정치활동에 제약이 생겨 물건을 사고파는 일에 전념하게 되었다. 이 때부터 물건을 사고파는 일을 하는 사람을 상인(商人)이라 하고 , 물건을 사고파는 일을 상업(商業)이라고 하게 되었다. 상나라를 정벌한 무왕은 주나라의 본거지로 돌아와 새로운 도읍 호경(鎬京)을 건설했다... 주나라는 왕족이나 태공망 여상같은 공신, 그 밖의 유력한 신하들을 제후로 임명해 왕을 중심으로 전국을 통치하게 했다. 제후를 임명할 때는 자치권과 함께 활과 화살같은 무기도 줬는데, 이는 주나라의 통치가 미치지 않는 지역을 식민지로 개척하라는 의미가 내포된 것이었다. 즉, 주나라의 제후들은 개간이 완료된 땅을 받은 것이 아니라 아직 사람의 손이 닿지않거나 이민족이 자리잡은 땅을 받아 그 곳을 정복해야 했던 것이다. 이에 제후들은 독자적인 힘으로 토착민과 싸워 그들을 제압하거나 무성한 초목을 벌채하는 식으로 영토를 개척해 나갔고, 이는 훗날 주나라 왕실의 힘이 약해졌을 때 제후들이 각자의 길로 독립하는 결과를 낳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