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친의 융통성
우리가 육친(六親)이라고 하는 것을 어디까지 확장해서 생각할 수 있느냐? 육친의 변용 범위를 봅시다. '변용'이라고 제목을 붙인 이유는 육친의 의미를 바꿔 쓰는 것이 아닙니다. 기존 텍스트 대부분이 가계(家系) 중심의 요소와 육친의 일반적인 뜻, 확장 정도로 그치고 있는 점과 구별하고자 하는 뜻에서 사용한 것입니다. 실제로 육친은 인간 행위의 전부에 적용할 수 있는 운동이라고 보면 됩니다. 일종의 관계가 발생한다는 것은 기운의 기울어짐이 있다는 것입니다. 기운의 기울어짐을 명칭한 것이 바로 육친이거든요.“내가 니(너)를 두드려 패니까, 니(너)는 재(財)로 살아라!” 이렇게 해 놓은 것이잖아요. 그리고 내가 계속 제어해야 되는 동작이나 행위가 발생하는 거잖아요. 그렇죠? 육친이라는 것이 단순히 어떤 사물을 지칭하는 추상 명사가 아니라 일종의 '동사(動詞)의 명사(名詞)'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동사의 명사형을 동명사라고 하죠? 그런데 보통 책에서는 육친을 마치 명사처럼 다루고 있습니다. 비견은 동업자, 친구라는 식으로 표현해 놓았는데 그게 아니라 동사예요! 물론 명사적인 형태로 인간관계나 사물로서 확장을 하지만 실제로는 동사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명사 형태로 써 놓은 것일 뿐입니다.
비견·겁재를 만난다는 것은 목(木)이 무엇을 만난다고요? 마치 봄을 만나는 것입니다. 봄을 만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은 자기 뜻을 지상에서 가장 활발하게 실현시키는 '성장'이라는 동작을 하는 것입니다. 이 동작이 있다면 결국 많은 부분에 확장을 할 수 있고, 거기에 해당하는 동작을 하는 사물 또한 육친 관계로 설정해도 좋다는 것입니다.
육친의 변용법이라는 제목 옆에 '무한대로 변용될 수 있다.'고 적어두세요. 육친은 동작의 개념으로 해석하는 것이라면 무한대로 변용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풍수지리를 공부하다 보면 ‘산자산, 서자서(山自山, 書自書)'라는 말이 나와요. 산은 산대로 놀고 책은 책대로 놀고, 역학 공부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는 오류가 이 공부를 할 때만 '비견, 겁재, 식신, 상관이 있다. 느그는(너희는) 모르제?(모르지)' 하는 식이에요. 그게 아니에요. 우리 생활 속에 있는 모든 동작과 행위가 다 육친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제가 이 강의를 하는 행위는 육친상 무엇이죠? 어떤 동작입니까? 식상이죠. 식신·상관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밖으로 내어놓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창작이나 표현에 관련된 행위나 동작이 바로 식상에 해당합니다. 단순하게 보아 목과 화, 둘은 무슨 관계일까요? 목이 화를 식상으로 삼으니, 화를 통하여 식상으로 행위를 가하고 있죠? 화를 중심으로 보면 목은 인성이 됩니다. 화는 목의 통제에 따라 제어되겠지요. 화에서 보면 목이 인성이고, 목에서 보면 화가 식상이고, 바로 이런 관계라는 거죠․ 결국, 동작이 가해지고 있는 것이 다 육친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한대로 변용될 수 있습니다. 동작이나 움직임이 있다는 자체가 생명의 증거거든요.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육친은 무한대로 확장해서 쓸 수 있습니다.
가족 관계로서의 변용은 무엇이냐? 나를 낳는 존재가 있다면, 나를 낳는 동작을 한 존재는 누구죠? 엄마라고 하는 존재가 있죠. 그래서 인성이라고 하는 것이 엄마 역할을 하는구나, 하고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엄마와 짝을 지은 사람이 있으니, 재성이 아버지겠구나~ 이렇게 가족 관계로 확장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재성이 아버지라면(내가 극하는 존재가 아버지라면), 나를 극하는 존재(관성)는 자식이겠죠? 여기서 극한다는 표현을 절대로 부정적으로만 보지 마세요. 글자상 이길 극(克)자로, 자연의 기운에 있어서는 결국 이기는 동작입니다. 그러나 완벽하게 자기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제어 행위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아무튼, 자식이 어른을 만들어 주는 작용을 합니다. 자식 때문에 어른이 되잖아요. 자식을 낳지 못한 사람을 뭐라 합니까? 아이라고 하죠. 자식 때문에 못하는 것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자식을 일컬어 도저히 통제가 안 되는 핵폭탄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뒷날에 가보면 나를 야금야금 다 파먹는 것이 자식입니다. 육친이라는 글자를 보세요. 명리학에서는 육친(六親)이라 쓰지만, 가족 관계에서는 육친(肉親)으로 쓰지요. 고기 육(肉)자를 썼잖아요. 피를 같이한 육친이지만 육친이 나누어져서 하는 행위를 보면 굉장히 서글픕니다. 그러니까 내가 새끼를 낳으니 그 새끼가 결국 나를 잡아먹고, 그것도 어찌 잡아먹느냐, '어흥!' 하고 한꺼번에 잡아먹는 것이 아니고 한 개씩 한 개씩 잡아먹어요. 낳아주고 길러 준다는 것이 결국 모든 것을 다 주게 되는 것입니다. 자, 이처럼 육친은 가족 관계로서도 변용 또는 확장해서 쓴다는 의미입니다.
그다음, 사물의 대상으로서의 변용에서 예를 들어 시계가 있다고 합시다. 시계는 육친상 어떤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그렇죠! 관성의 작용을 하겠죠. 우리는 대부분 시간을 보면서 자기의 행동을 제어하게 됩니다. 행동을 제어하게 해 줄 때는 어떤 메시지를 주는 존재로서 시계가 관성으로서 작용하는 것입니다. 숟가락은 무엇에 해당할까요? 두말할 것 없이 식상이 됩니다. 안방은요? 공간적으로 보아 활동을 쉬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사람은 하루에 한 번씩 죽는다, 안 죽는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고 거의 죽은 상태나 다름이 없는 시간이 있지요. 대자연은 삶과 죽음의 경계가 있다, 없다? 산 놈이나 죽은 놈이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단지 그 방향성이 삶의 운동성 속에 많이 들어가 있느냐, 죽음에 가까이 가 있느냐의 차이입니다. 그런데 실제 이것이 삶과 죽음이라면 대자연의 운동성 속에서 사람의 삶은 대체로 이런 것입니다. 극단성을 갖지 않고 이러한 운동성 사이에서 살았다가 죽었다가를 반복하게 됩니다. 낮에 싸돌아다니고 밤에 엎어져 있고, 이것이 삶과 죽음이라니까요. 이 동작 속에서 안방이라고 하는 공간은 활동을 쉬게 하고 동작은 멈추게 하는 곳입니다. 육친상으로는 인수 작용이라는 거죠.
교도소는 어떤 작용이 활발한 것 같습니까? 인수 중에서도 정인이겠다. 편인이겠다? 정인은 무엇입니까? 새로운 운동성을 활발하게 열어 주기 위한 긍정적 의미가 많다면, 편인은 극단적으로 숨이 넘어가도록 세우는 거죠. 아니면 극단적으로 못 움직이게 하는 것이므로 교도소는 마치 편인의 작용을 한다는 것입니다.
자, 그다음에 시간적인 변화에 따른 변용법입니다. 이것은 확장의 대상이 아니라 시간적으로 변화할 때마다 육친 또는 바꿔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 비견·겁재라고 하는 것이 나무가 봄을 만나는 것과 같아서 성장성을 강화시키지만 세월이 흐르면 어떻게 됩니까?
봄에 나무가 자란 뒤, 큰 나무가 무리를 지으면 숲이 되죠. 숲이 되지만 결국 비좁은 땅에서는 뿌리를 더 키울 수 없어요. 비슷한 기운이 많다는 것은 성장성에 도움을 주지만, 세월이 흐르면 결국 여러 가지 분배 때문에 서로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어린나무일 때는 서로에게 성장성을 자극하여 주는 운동을 하다가 커지고 나면 도리어 비좁은 화분에 서로 뿌리를 뒤엉켜서 살아야 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므로 도리어 불리한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첫댓글 공부합니다 감사합니다 ()
육친의 융통성 공부~ 감사합니다.~
비견·겁재는 목(木)이 마치 봄을 만나는 것이다~ ㅎ 정리합니다.~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육친은 무한대로 확장해서 쓸 수 있습니다.~ ㅠㅠ
감사합니다. 꾸우벅~
공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