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논리는 사고의 ‘내용’이 아니라 ‘구조’의 타당성을 따지는 학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체계화한 이 논리는 개념의 명확한 구분과 사고의 규칙을 통해 참과 거짓을 판단하며, 과학과 합리적 사고의 기초가 된다. 예를 들면, “A는 A이다. 그리고 B는 B이다.”라는 주장은 2개의 항진명제(Tautology)이다.
그런데 여기서 얻는 지식은 “A는 B가 아니다.”일 뿐이다. “사각형은 사각형이다. 그리고 원은 원이다. 그러므로 사각형은 원이 아니다”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사각형과 원은 개념적으로 완전히 다른 ‘결시이물(決是二物)’이지만 원기둥에서 두 개념은 현실적으로 ‘불상리(不相離)’의 관계를 유지한다.
이는 불교에서 사물을 나누고 개념화하는 분별지의 영역과 궤를 같이한다. 이러한 분별은 때로는 실재를 왜곡하고 집착을 낳을 수 있기에, ‘무분별지(無分別知)’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는 구분과 개념을 넘어서는 직관적 인식과 더 근원적인 진리에 접근하려는 태도이다.
물론 형식논리와 분별지는 가는 길이 다르다. 형식논리는 개념 구분을 통해 진리에 접근하려 하고, 불교의 분별지는 구분을 넘어 진리를 보려고 한다. 무분별지의 차원에서 서로 다른 개념들이 ‘불상리불상잡(不相離不相雜)’의 조화를 이루는 현실을 보고 말할 수 있는 통찰력과 예지력이 성숙한 사회의 집단 지성이 되길 소망하며, 이를 오늘의 성숙 불씨로 삼는다.
“그는 세상 물정 모르는 백면서생(白面書生)이다.”라는 말이 있다. “얼굴이 희고 수염이 없는 젊은 선비”로서 세상 경험이 부족한 사람, 책만 읽고 현실 감각이 부족한 지식인, 실무 능력이나 실전 경험이 부족한 인물을 지칭한다. 이 표현은 중국 고전에서 유래한 말로, 특히 전쟁이나 정치의 현장에서 경험 없는 학자를 비판할 때 사용되었다. 오늘날에도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현실을 모르는 탁상공론가”, “이론만 있고 실전이 부족한 사람” 등이 있다.
백면서생(白面書生)을 ‘배운 무식꾼(the learned ignorant)’이란 용어를 사용하여 표현할 수도 있다. 직역하면 그는 “많이 배웠지만 참으로 알아야 할 것을 모르는 사람”이다. 학식은 풍부하지만, 지혜가 부족한 사람, 지식은 많지만, 자신의 한계를 모르는 사람, 책은 많이 읽었지만, 삶의 통찰이 부족한 사람 등을 가리키는 비판적 표현이기도 하다.
지금 한국의 정가와 언론에서 제기되는 불편한 진실게임의 하나가 ‘선거 부정’의 문제이다. 이 문제는 ‘당위’와 ‘현실’을 혼동한 형식논리와 분별지 차원의 뜨거운 감자다. 2018년 6월 13일 실시한 공직자 보궐선거 이래로 줄곧 제기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 부실 관리’ 문제가 시비의 핵심이다. 정치인이야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견해가 다를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분위기는 ‘선거 부정’을 언급하며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을 ‘극우 음모론자’로 몰아가는 일방적 게임이었다.
“공명선거는 당위이다. 그러므로 선거 결과는 당위의 현실화이므로, 선거 부정은 없다”라는 결론인 셈이다. 그렇다면 “살인을 해서는 아니 된다”는 당위에서 “이 세상엔 살인 사건이 전혀 없다”라는 결론이 도출되어야 한다. “교통법규를 지켜야 한다”라는 당위에서 “뺑소니 교통사고는 없다”가 현실이 되어야 한다. 이는 모두 성숙한 사회가 지향하는 우리의 바람일 뿐이다.
지난 8년간 제기된 ‘선거 부정 시비’ 문제를 일방적으로 묵살하고 반대의견을 ‘음모론’으로 몰고 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선거 부정의 정치적 이익을 공유한 사람이거나, 당위와 현실을 동일시하는 백면서생이거나, 배운 무식꾼이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컴퓨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컴퓨터를 다루는 사람은 거짓말을 한다.” “투표는 국민이 하지만, 선거 결과는 개표하는 사람의 손에 달려 있다”라는 스탈린의 어록을 무시해서는 아니 된다.
- 필자: 이택호(육사 명예교수, 계간 『철학과 현실』 집필 자문위원)
- 출처: <성숙사회가꾸기모임> '성숙의 불씨' 993호(2026. 8.4)
첫댓글 지난 8년간 제기된 ‘선거 부정 시비’ 문제를 일방적으로 묵살하고 반대의견을 ‘음모론’으로 몰고 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선거 부정의 정치적 이익을 공유한 사람이거나, 당위와 현실을 동일시하는 백면서생이거나, 배운 무식꾼이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