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상은 좌파와 우파, 보수와 진보라는 2개의 대립으로 세상을 보는 방법을 카르텔화하고 있습니다. 소위 좌우 프레임을 사용하여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고정시키는 것이지요. 이것을 다른 방식으로 무식하게 표현하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대립각도 비슷합니다.
이것을 다른 방법으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조선의 권문세가의 부정적 개념, 외척에 의한 세도정치, 탐관오리로 표현되는 사회현상은 소위 조선 유학의 타락, 우파의 탄생을 의미합니다.
이런 잘못된 정치에 맞서 조선에서 여러 민란이 일어났는데, 이 민란이 성공했다면 활빈당, 임꺽정의 난으로 민초들이 바라는 세상을 꿈꾸며 조정을 접수하겠죠. 그런데 실상은 두령정치가 시작됩니다. 산채의 산도둑의 왕인 두령이 통치하는 두령정치, 현대로 표현하면 수령정치, 김일성 수령. 스탈린, 모택동 수령으로 바뀌는 좌파가 생겨납니다.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이라는 표어뒤의 진실은 수령정치입니다.
공산주의가 이루어지려면 당대의 지식인들, 종교인들, 문화인들의 숙청이 필요합니다. 그들은 공산주의 사상에 경도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반드시 그 세력을 죽여야 합니다. 그게 레닌의 공산주의 시작의 숙청작업이었고, 중국 문화혁명이라 가면 쓴 문화대학살의 실상입니다. 북한에 수십만을 수용하는 정치범수용소의 존재가 있기에 김부자 3대의 수령정치가 가능한 것입니다.
지금 세상은 두 도둑들, 소위 한편에서는 탐관오리와 다른 한편은 민란을 통해 조정을 접수하려는 산채두목들간의 싸움입니다. 이게 지금 좌파와 우파의 본질입니다.
다른 식으로 표현한다면 집안의 승계를 둘러싼 막내아들과 서자의 권력투쟁입니다. 아버지가 물려주는 집안을 일으키고 튼튼히 새워 가정을 다스려야 하는 데, 무책임하고 삥땅만 일삼는 막내아들과 아버지에 적의를 가지고 집안의 가풍을 멸시하고 집안을 말아먹으려는 서자의 싸움입니다.
여기에 장자가 없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유산을 이을 장남/장녀의 막중한 무게를 가진 상속자가 부재하고 집안에 속없고 삥땅이나 노리는 막내아들과 아버지를 멸시하고 집안을 말아먹을 서자와의 대결이 좌파/우파 논쟁의 본질입니다.
천하삼분지계란 좌파/우파/순종파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세가지로 분류하는 것입니다.
좌우논쟁의 끝은 지옥으로 가는 꽃놀이패입니다. 집안이 몰락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아쉬움입니다.
집안의 유산을 훔치는 삥땅파와 아버지의 유훈을 멸시하는 반항파의 싸움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해결책이 바로 좌파/우파에 대항하여 순종파의 등장입니다.
아버지의 유훈을 존중하고 가정의 화목을 위해 자신을 몸바치고 각 가족 구성원의 안녕을 바라는 장자의 등장/진정한상속자의 등장입니다. 순종파란 아버지의 뜻을 지킨다는 의미입니다. 장자의 무게/상속자의 의무를 다 한다는 표현입니다.
지금 좌파라는 이름으로 타고 들어오는 페미니즘 세력/PC(도덕적올바름)라는 이름으로 들어오는 사회교란세력/ 이 세력이 교과서를 접수중이고 헐리우드를 통해 세계적 세뇌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중입니다. 좌파의 흐름의 결론은 아버지의 유훈을 뒤집기입니다. 동아시아 전통의 도/道와 서양 기독교의 하나님으로 내려오는 아버지의 유훈을 깡그리 무시하는 흐름입니다.
이 흐름과 마찬가지로 기독교도 판박이입니다.
대형교회가 보이는 행태들, 한기총으로 대표되는 세력들이 바리세파이며 우파입니다.
하나님을 팔아먹으며 자신의 안위와 영달을 위하는 분들이지요.
여기에 반해 민중신학을 외치며 예수님의 복음을 부자와 가난한 자의 대립으로 바라보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세력이 바로 좌파입니다. 여성신학, 퀘어신학, 포스트모더니즘신학이 그들입니다. 복음을 변질시키는 행위입니다.
이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여 프레임을 바꿔야 합니다.
순종파/ 근본주의파 (道에 순종하겠다.)/ 장자의 역할을 하겠다/선비정신파
이러한 개념의 순종파의 등장이 시급합니다.
순종파의 등장으로 천하삼분지계가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http://berlinreport.com/bbs/board.php?bo_table=free&wr_id=101504&sfl=wr_name%2C1&stx=%EB%B2%A0%EB%A5%BC%EB%A6%B0%EB%B2%99%EC%BB%A4&sop=and
첫댓글 보수는 인간의 도리를 지키는 것으로 함이며,
진보는 그 도의 목표를 향해 일신우일신으로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을 말한다,
우파는 도에서 점점 벗어나 자신의 욕망에 빠진 관리, 위정자를 칭하며,
좌파는 민란을 도모하는 도적떼를 말한다.
그래서 먼저 우파와 좌파의 구도에서 소위 도학파를 위치시켜
천하를 3분으로 하는 카르텔을 만들고,
다음 단계로 좌파를 금지시키고, 그 다음으로는 우파를 소멸시키며
최종적으로는 도학이 천하에 널리 퍼지리라.
인간은 학습하며 진화하는 존재이며 정지는 시대의 반역입니다.
인류는 언제나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꿈꿔왔고
내일 지구가 멸망할지라도 오늘은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의지로 존속되어 왔읍니다.
우리 모두가 태어나면서 부터 죽어야한다는 것을 아는 존재지만
허무하기 전에 죽음 보다는 삶을 소중하게 여기는 존재들 입니다.
좌우에 대립은 20세기에 충분히 보았고
자유가 빠진 공산체제가 어떻게 소멸했는가 충분히 보았읍니다.
코로나 팬데믹을 유도해 경제를 마비시키고 자본주의에 반하는 재난지원금을 통해
공산주의 실험실에 개구리를 만들겠다는 음모가 진행되고 있지만
지혜롭게 대처한다면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이 분명하다고 확신 합니다.
막스의 공산주의는 인간의 노동이 대우를 받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에서 출발했지만
100여년 지난 지금은 인간이 노동에서 해방 아닌 추방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세상이라는 것이 다릅니다.
기본소득을 공산주의에 결부시키지만 기본소득은
로마시절에 노예 아닌 로마시민에게 주어졌던 기득권이였다는 것과
자유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 태어나면 획득할수 있는 권리로 생각을 바꾸는 것도 필요할듯 합니다.
공화국의 시민들도 세금을 내는 주체로 정치한다고 하는 무리들 못지않게
생존을 위한 최소한에 세금을 나눠쓸 권리가 있읍니다.
인간과 노동의 주제는 사실 헤겔 정신현상학의
자기의식장에 나타난 주인과 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가지고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사적유물론의 이론적 체계를 이룹니다.
주인은 향유하고 노예는 일을 한다는 테마인데요.
여기에 역전이 벌어져서 일을 하는 노예가 주인보다 더
세상에 직접적이고 세상을 만드는 주체가 되며 이로써
주인은 세계에 수동적으로 노예는 세계에 적극적으로 역사한다가 이루어집니다.
이 주제는 사실 영성계의 의미로보면 주인이 하는 노동은 무위입니다.
종이 하는 노동은 유위인데, 그것이 사실 카르마세계에서 선업과 악업을 만드는 주체가 됩니다.
불교에서는 아들과 도적으로 묘사하구요, 기독교는 아들과 죄로 표현이 가능합니다.
현재 A.I 관련주제에서는 인간은 주인, 인공지능은 노예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에어리언 시리즈의 프로메테우스를 보면 인공지능과 인간과의 갈등관계를 보면 흥미롭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것은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소위 주노변증법은
이 영성계의 이야기와 더 적합합니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세상의 인간관계로 해석해서 세상을 인정투쟁의 장으로 해석합니다.
여기서 근본적인 잘못된 해석이 시작되는 것이죠.
이게 프레임화되어 자본가와 프롤레타리아의 분화, 프롤레타리아의 혁명론,
역사적 진보의 마지막은 공산주의라는 괴물을 탄생시킵니다.
영성계의 큰 주제가 인간은 행위자가 아니다가 핵심입니다.
이 비밀을 알면 영성계의 핵심에 다달은 것입니다.
헤겔에서 드러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은 사실 인간본연과 카르마의 관계입니다.
무위와 유위에 대한 이야기가 사실 바른 해석입니다.
인간이 지향해나가야 할 지점이 무위/함이 없은 함이며 그게 바로 주인이 하는 진정한 노동입니다.
유위는 주인이 아닌 노예, 즉 내면의 카르마가 하는 행위가 되며, 이때 인간은 행위자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