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도 슬픔도 실은 육체의 오관을 통해서
차원이 다른 의식에 작용하여
의식의 중심인 마음에 전달되어 가는 것으로,
이 마음이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마음은 무언가의 영향을 받고 있다.
종종 사람들이 말하는 영감(靈感)등도 그런 류의 하나일 것이다.
그것은 의식의 차원에 살고있는 존재들로부터의
통신을 감지할 수 있는 자들인 것이다.
어떤 일이라도 한 가지 목적을 연구하고 추구하는 과정에서
그 노력에 비례하는 영감적인 현상에 의해 해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자연과학과 이과계의 필요한 학문을 습득하기 위하여 다니는 학교는
또 항상 마음의 문제를 중심으로 해서의
영적인 문제의 계기를 잡기 위한 학습장이기도 하였다.
그 때문에 학우들로부터 <철학과에나 갔으면 좋을 걸.>라는 말을 듣거나,
어떤 때는 <괴짜 예언자>등으로 불렸다.
하지만 믿거나 말거나 인간의 고뇌와 고통은
육체적 현상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을 정신(精神)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명칭은 비슷한 것일 것이다.
정신도 각각의 사람에 따라 다른 성격이 있으므로
사람에 따라 특징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일 것이다.
또 사람에 따라서는 혼까지 부모가 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만약 부모가 혼까지 주었다고 하면,
그 개성이 사고하고 있는 것이
왜 부모와 다른 경우가 많은 것일까?
<부모의 마음 자식은 모른다.>
라는 속담이 있듯이, 그런 비근한 예를 보더라도
혼과 육체는 별개의 것이라는 것은 알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현대사회는 부모와 자식간의 단절로 시끄러워지고 있다.
단절이란 무엇인가?
이 사실을 보아도 마음의 세계는
육체차원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것은 분명한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탐구해보아도
“또 한 사람의 자신”
에 관해서는 아직 아무것도 알 수 없었고 그 수수께끼는 여전히 풀 수 없었다.
25세 때, 전기관계의 일을 하기 위하여 작은 공장을 임대하여,
오륙 명의 종업원과 함께 생활을 위한 스타트를 끊었다.
말하자면 독립자영의 첫 걸음이었다.
제조품목은 자동제어장치가 주류였지만
경영이라고 하는 것이 초보자인 내게는 꽤나 어려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 요령을 얻기까지는 그렇게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현대사회에서는 경제력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고 하는 필연성이
다른 지혜를 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학교는 일이 한가할 때 다니고
사회에서의 체험으로부터 여러 가지를 흡수하였는데,
신불을 추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과계열의 사람들과는 좀처럼 대화가 통하지 않았으며
학우들 사이에서는 완전히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했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공부 그 자체가 목적도 아니었고,
취직하여 월급을 받는 것도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만의 방법으로 공부하면 되었고
내게는 그렇게 하는 편이 중요하기도 하였다.
의학도 천문학도 배워 보았지만
그것도 역시 마음이랑 혼의 문제와는 거리가 먼
유물적인 탐구에 불과한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인생을 보내고 있었지만
역시 살아있는 생물체인 청년이라는 점에는 변함없었다.
욕망의 포로가 되어, 이성(異性)에의 동경이 어느새 마음을 점령하고,
그것에 고민하게 된 것이다.
덧없는 것이라고 알고는 있었지만 역시 마음이 게을렀다.
정말로 인간이라는 것은 불가사의한 것이었다.
어떤 때에는 나만이 이와 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하여
학우와 대화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남자는 대부분 같은 고통을 맛보고 있는 듯 하였고,
사랑한다는 것은 괴로운 것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은 독점욕, 질투심, 신뢰의 정도, 자기상실 등이
고통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랑이나 자비라고 하는 것은 주는 것이지만
보답을 받으려고 생각하는 점에,
인간의 욕망으로부터 오는 고통이 생긴다고 말할 수 있다.
자신에게 좋은 것과 목적성취만을 위한 사랑은
역시 위선의 사랑일 것이다.
또 당시는 장사를 위해 고객의 기분을 맞추고 사랑의 강매도 많았다.
하지만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닐뿐더러
이런 사랑은 돈의 종말이 인연의 종말이 될 것이다.
사랑이라는 것은 보다 광대무변한 것이다.
인류애 조국애 등 사랑에는 끝이 없다.
그것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하면
대부분 남녀간의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일 것이다.
최근 사제애(師第愛)라고 하는 것이 특히 엷어지고 있다.
스승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없는 것이다.
사랑은 마음과 마음의 유대로 맺어져 있는 것이겠지만,
스승의 보살핌에서도 최근 교육자 중에는 자기방어만이 뛰어난 사람이 많고
시류에 편승하여 변심하는 기회주의자가 많다.
또 도덕 따위는 불필요하다고 하는 학자도 있다.
인간성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그뿐인가, 사회혼란을 지도하고 있는 교수들도 있는데,
그들은 지성만이 발달하여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는 동물적 본능뿐인 인간으로,
마음을 갖고 있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마침내 스스로의 목을 스스로 조이게 될 것이다.
스승과 제자의 단절, 부모와 자식의 단절,
그들은 마음을 잃고 그냥 물질적 경제적 판단으로 사물을 다스리고
자신의 주의주장을 위해서는 폭력혁명마저 실행하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세상은 그러한 인간을 진보적 인물이라고 하고 있는데,
웃기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인간은 실제로는 소심하고 독선적이며 다수의 행복을 말하면서도
자신의 마음속은 혼란하여 마음의 안식을 갖고 있지 않다.
인간실격자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인간이 많은 것이다.
전후(戰後) 이십 년,
인간은 점점 문명의 노예가 되어,
스스로의 인생에 대한 위대한 가치를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