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학림사 오등선원 지대방 원문보기 글쓴이: 원도(圓道)
(주장자 삼타 후 들어보이시고)
을사년 1월 6일 입춘법회에 참석하신 대중은 아시겠습니까?
즉하계합돈오출(卽下契合頓悟出)하면
흉중냉풍무흔적(胸中冷風無痕跡)이라
석인일성훈풍래(石人一聲熏風來)하니
고목청청만홍화(古木靑靑滿紅花)로다.
즉하에 계합하여 몰록 깨달아 뛰어나면
가슴 가운데 냉풍이 흔적조차 없어지네
돌사람이 한 소리 하니 훈훈한 바람이 불어오고
고목이 청청하여 붉은 꽃이 가득하네
항상 말씀드리지만 즉하(卽下)에 계합(契合)하면 돈오출(頓悟出)이라.
목전(目前)이라는 건 눈앞이라는 말인데, 여러분이 마음을 가지고 일상생활의 모든 걸 주제를 하고 움직이고 하는 그 일을 목전사(目前事)라고 합니다. 나는 주관인데 모든 바깥 경계인 객관의 모든 일을 낱낱이 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밖으로 대하는 모든 일체가 마음의 일이라서 그걸 목전사(目前事)라고 합니다.
서로 마주 보는 데에서 "내가 오늘 당신하고 해야 할 얘기가 있는데 몇 시에 시간이 됩니까?" 이런 말을 안 해도 마음속으로 메시지를 전해주는 걸 알아차린다는 겁니다. 또, 말로 설명을 안 해도 '몇 시까지 나와서 만나자'는 메시지를 알아듣고 그 시간에 나온다는 겁니다. 서로 눈을 마주 보는 데서 알아차리는 걸 계합(契合)이라고 합니다. 서로 통했다는 것입니다.
서로 통하는 인생을 살아야 되는데, 서로 통하지
못하는 인생을 살기 때문에 불행한 겁니다.
눈 마주치는 데서 안 통하니까 그다음에 행동으로 보여주면 되는가 싶어서 행동으로 보여줘도 또 몰라요. 내가 오늘 몇 시에 만나서 할 얘기가 있다는 걸 행동으로 보여주는데, '이 사람이 왜 나를 보고 이러는가?' 하고 못 알아듣는 겁니다.
그래서 결국 말로 "오늘 만나서 할 중요한 얘기가 있는데 시간이 있어? 몇 시에 어느 다방으로 나와." 이런 얘기를 구구하게 해야 됩니다.
그러면 오늘 만날 시간이 있다 없다 하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오고, 거기서 또 오늘 내가 이 사람을 만나서 얘기하는 게 이익이 있나 없나 여러 가지 생각이 많습니다. 이래서 그때부터는 서로가 소통하기가 어려워지는 거라요. 또 소극적인 생각으로 사량분별해가지고 만난다고 해도, 중요한 문제를 놓고 얘기할 때 타결이 안 되는 거라요.
그걸 오늘날 여러분이 눈앞에 다 보고 있지 않습니까? 왜 그렇게 안 될까요?
우리가 서로가 소통이 되고 척척 계합이 되면 모든 것에 걸림이 없고 근심걱정할 일이 없이 다 잘 되게 돼 있습니다. 근데 그게 안 되지 않습니까? 안 되는 원인이 왜 그럴까요?
우리 중생들이 번뇌망상, 잡된 생각이 꽉 차 있어 가지고 안 됩니다. 방 안이 지저분한 게 꽉 차 있고 곰팡이가 피어서 썩어지는 것처럼 우리들의 의식이 더러운 이물질이 꽉 차 있어 가지고 소통이 하나도 안 됩니다. 그 이물질이 꽉 차 있는 여러분의 마음 자체가 깨끗하고 밝지가 않고 더러워요.
그 생각 가지고는 서로가 소통이 되고 원만한 화합이 될 수가 없어요. 왜냐? 자기부터 먼저 이익을 따지니까요. 자기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데 되겠습니까? 상대방은 손해 보더라도 나부터 먼저 이익을 본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소통이 안 되는 겁니다. 상대방이나 나나 다 그 생각을 가지니까 소통이 안 되고 화합이 안 되는 거지요.
그래서 중생의 때가 묻어 있는 고약한 번뇌망상이 없어야 된다는 겁니다. 이걸 깨끗이 청소를 해서 맑고 밝은 마음으로 되돌아오면 척 마주 보면 알아차리고, 표정만 지어줘도 알아차리고, 또 말로 해도 다 알아차린다는 것입니다. 서로가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화합이 다 잘 됩니다. 의식의 때가 차 있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의식의 때를 벗기는 것이 중요한데 의식의 때를 벗기는 일은 여러분이 잘 안 합니다.
그래서 내 마음 청소하는 공부하는 화두, 나는 무엇인가 돌이켜 보라 이겁니다. 이 찻잔이 재료와 사람의 솜씨와 따뜻한 기운 이런 게 모여져서 이루어졌구나 이렇게 알듯이, 나라는 존재는 어떻게 해서 탄생이 됐으며, 나라는 존재는 본래 부처가 중생인가, 본래 불행한가 불행하지 않는 물건인가, 나는 본래 행복한 건가 행복하지 않는 건가, 자신은 어떤 물건인가 알아야 될 거 아닙니까?
나를 모르고는 천하를 모르는 거고, 나를 알면 천하를 압니다. 나를 모르면 될 수가 없는 겁니다. 모든 하는 일이 전도몽상으로 잘하려고 하면 실수하고 잘 안 되고 어긋납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자기 자신의 살림살이를 못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큰 절 큰스님을 찾아가면 "요새 자네는 살림살이가 어떠한고?" 묻습니다.
공부 했는 거사 같으면 척 한마디를 합니다. 그런데 공부를 안 했는 거사는 뭐라 하냐 하면,
"스님, 말 마세요. 내가 요새 죽을 지경입니다."
"왜요?"
"요새 뭘 좀 했더니 일이 잘 안 돼 가지고 뭐가 어떻고..."
보살님한테, "요새 가정 살림이 어떠세요?" 이러면 "아이고 말 마세요. 요새 영감하고 싸움을 해가지고 고민을 하다 위장병에 걸려서 병원에 갔다 왔어요." 그런 말만 해요.
그 살림살이 물은 게 아니고 마음의 살림살이를 어떻게 잘 살았느냐 묻는 겁니다. 내가 이 찻잔을 들고 놓고 하듯이, 내 마음을 내가 마음대로 들고 놓고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느냐는 건데, 거의가 우리 중생들은 내 마음이 끌려갑니다. 번뇌망상 삿된 생각에 끌려가서 구속을 받습니다. 담배에 구속받지, 술에 구속받지, 고스톱에 구속받지, 친구들 간에 서로 이익 따지는데 구속받지, 이 세상 사람은 모든 곳에 가서 구속을 받습니다. 자기 마음이 살림살이가 안 된 겁니다.
자기 살림살이가 잘 된 사람은 모든 경계에 안 따라가고 안 속는다는 거지요. 마음 먹은 것이 밖으로 표출되니까요.
원대하고 큰 부처의 마음을 밖으로 드러내면 이 세상은 극락세계가 돼서 가정과 사회, 전 인류와 중생이 편안하고 행복합니다.
먼저도 말씀드렸지만 요사이 과학이 아무리 발전이 되고 AI라는 걸 앞으로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건 인간의 때묻은 의식으로 끊임없는 인간의 욕망을 추구하는 걸로 만들어내기 때문에 그게 오히려 우리 인류에게 앞으로 불행을 줍니다. 그걸로 인해서 불행을 당하게 돼요. 결과는 그렇습니다. 우리 인류가 해탈해서 영원히 행복하고 편안한 건 아니라는 겁니다.
과학을 발전시켜서 우리 때묻은 작은 생각의 욕망을 끊임없이 추구해 나가지만, 그것은 우리 인류에게 영원히 해탈하는 깨달음도 아니고 성불하는 것도 아니고 성품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라, 그건 재앙을 결과적으로 만들어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내 마음을 밖으로 드러내서 창조하는 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불심으로 돌아가서 불심을 밖으로 드러내면, 그 사람은 가정도 행복하고 편하고, 사회도 행복하고 편하고, 전 세계 인류가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이렇게 살아가라고 한 게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렇게 중생을 고통에서 벗어나서 영원히 편안하고 복되게 살게 하기 위해서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일상생활의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오늘 하루 마음살림을 어떻게 살았나 이걸 묻는 거지 다른 걸 묻는 게 아닙니다. 집구석에 그릇 씻고 밥하고 남편하고 싸움한 그런 게 다 어디서 나왔나요? 자기 마음 살림을 잘못 살았기 때문에 그런 게 나타난다 이겁니다.
사회에서 불행하고 화합이 안 되고 양립이 돼 싸움하고 하는 게 왜 그러느냐? 자기 마음을 각자 잘못 살았기 때문에 그게 다 밖으로 그렇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내가 목전에서 계합을 하면 돈오출(卽下契合頓悟出)이라는 한마디를 이렇게 길게 설명해야 됩니다.
그냥 내가 "즉하에 계합하여 몰록 깨달아 뛰어나면" 이러고 지나가면 여러분이 '저 스님이 뭔 소리를 하고 자빠졌나? 당췌 뭔 말인지 모르겠다' 이러거든. 그래서 내가 그 말을 듣기 싫어서 쪼개가지고 얘기를 많이 해준 것입니다.
목전에서 계합해서 척척 알아차려서 뛰어나려면 여러분이 마음 살림살이를 잘 살아야 됩니다. 때 없는 마음, 부처의 마음으로 되돌아가야 된다는 겁니다. 이렇게 자기 본래 부처의 마음으로 돌아가면 삼재가 일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게 없는 불심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법당에 오신 겁니다.
법당에 오셔서 오늘 삼재풀이를 한다는데, 속옷 입은 거 불살라 준다고 해서 그게 다 되느냐? 그것만 생각해선 안 되고 자기 마음의 때를 벗기는 일념이 중요합니다.
이 법당에 들어와서는 다른 생각하지 말고 오직 관세음보살하는 사람은 관세음보살만 생각할 뿐이고, 108배, 3천배를 하든지 절을 하면서 지극히 하는 일념, 그게 여러분의 삼재를 해결해 주는 것입니다.
여기 들어와서 '부처님은 자기가 뭔지를 깨달았는데 나는 왜 나를 못 깨달았나?' 하고 법당에서 절을 하면서 뼛골 깊이 사무치는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참회를 하고, 부처님께 '나도 나를 빨리 깨달아서 부처님처럼 살아가겠습니다.' 이렇게 하는 그런 사람은 삼재가 다 해결이 됩니다.
여기 와서 아무 그런 마음도 없고 그냥 맹하니 와서 속옷만 사르면 되는 줄 알고… 속옷 사르는 그것도 일념으로 지극해야 되지, 그냥 그거 하나 살라주면 된다는 걸 간단히 생각하면 안 되고 거기에도 불심이 들어가야 됩니다. 불심으로 하면 다 됩니다.
휴지를 갖다 놓는 것도 그냥 갖다 놓으면 되는 게 아니고, 이 휴지를 가져다 놓은 한마음이 바로 내 마음의 의식을 다 닦아내는 것이다 생각하고, '부처의 마음으로 살아가겠습니다. 내가 힘들고 고통스러워서 가정이 다 행복하다면 나는 어떤 고통도 감수하겠습니다.' 이런 넉넉한 큰 마음을 내는 게 닦아내는 겁니다. 휴지를 가져오면서 그런 마음을 가진다는 겁니다. 이런 지극한 마음으로 휴지를 가져오면 그만 삼재가 싹 해결이 돼요. 근데 그냥 맹하게 휴지만 갖다 놓으면 되는 줄로 알고 갖다 놓는 건 아니에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휴지 안 가져온 사람도 있지요? 그거 안 되는데. 그러면 아무것도 안 되잖아. 가져와야 되지.
그래서 삼재라는 게 여러분을 꼼짝 못하게 해요. 그거 걸려들면 꼼짝 못하는 거라. 근데 거기에도 안 걸려들고 자유롭게 삼재의 재앙을 안 받는 게 뭐냐?
나는 무엇일까 이걸 알려고 화두를 하는 사람, 안 그러면 일념으로 관세음보살 하는 사람, 새벽에 3시에 일어나서 천수경, 금강경, 보문품 독경하고 108배 하는 사람, 절에 초하루마다 지장재일마다 열심히 와서 천도도 하고 기도하는 사람, 지극히 일념으로 오고 가는 속에서도 항상 놓치지 않고 열심히 하는 사람,은 일체 모든 것에 걸림이 없어요.
그렇게 자꾸 하면 마음의 때가 벗어져서 척 보면 압니다. 그렇게까지 여러분 의식이 높아집니다. 그러니까 마음의 살림을 잘 살아야 됩니다. 그걸 자기 마음 다스리는 공부라고 합니다. 삿된 데로 가려고 그러면 가차없이 쳐버리고 바른 길로 바로 간다는 것입니다. 나한테 어떤 불이익이나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도 안 좋은 일이 닥쳐도 그걸 능히 바닷물처럼 다 포용해서 받아들인다는 겁니다.
땅덩어리가 나쁜 풀이라고 버리고 좋은 풀이라고 담는 게 아니잖아요? 여러분이 땅과 같고 허공과 같은 마음을 가지면 이 가정과 사회가 어떻게 되겠어요? 행복하겠지요? 그렇게 자기 마음을 잘 다스리려고 절에 오는 거예요. 그걸 바로 열심히 하면 목전에 척 보는 데서 다 통해집니다.
오늘 대중께서는 도리어 아시겠습니까?
만약 알지 못했을 진대는 또 말씀을 드립니다.
春風蕩蕩 春日熙熙 花開笑面 柳展歡眉 處處呢喃 紫燕聲聲 睍睆黃鸝 麻三斤 乾屎橛 庭前柏樹子 者裹見得 全理全事 無是無非 坐斷集雲峰頂上 大家齊賀太平時 (雪崇欽禪師上堂)
춘풍이 가득 불고 봄볕이 밝게 비추니, 꽃이 피듯이 웃는 얼굴이요, 버들이 드리우듯이 미간이 환함이로다. 곳곳에 새가 노래하고 붉은 제비 지저귀고 꾀꼬리는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냄이라.
‘삼서근’과 ‘마른 똥막대기’와 ‘뜰앞의 잣나무’라는 이 속에서 바로 깨달아 얻는다면, 전체가 이치(理)요 전체가 사(事)라서 옳음도 없고 그름도 없으니, 앉아서 높은 봉우리 위에 모인 구름을 끊어버림이요, 온 세계가 함께 태평시절을 경축함이로다.
오늘 입춘을 당해서 여러분이 나는 무엇인가 이걸 알아야 됩니다.
어떤 스님이 한 거사 집에 탁발 차 찾아가니 거사가 방으로 안내했습니다. 스님이 방에 앉으니 장자가 인사를 하고 앉아서 물었습니다.
“제가 한 가지 묻겠습니다. 대답을 바로 해 주시면 탁발해 가져갈 것이고 대답을 바로 못 하면 탁발을 해 가실 수 없습니다.”
스님이 장자에게 “물어라” 하니 장자가 마음 심자(心)를 써놓고 이게 무슨 자냐고 물었습니다. 그 스님이 대답하기를 “마음 심자가 아니냐.”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장자는 부인을 불러 물었습니다.
“여보, 이게 무슨 글자입니까?”
“마음 심자 아닙니까?”
“당신도 암주가 될 만한 자격이 있소.”
그리고는 장자가 스님에게, “스님과 제 부인의 경지가 같으니 시주를 할 수 없습니다.”
그 스님은 장자로부터 시주를 받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마음 심자를 놓고 "이게 무슨 글자입니까?" 물으면 뭐라 하겠어요?
(대중이 답을 못하자)
이래가지고 여러분이 앞으로 죽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게 죽어서도 문제고 살아서도 문제라.
여러분이 살면서 어째서 그렇게도 자기 자신을 학대하고 멀리 버렸을까? 자신을 버리고 사니 여러분이 걱정 근심이 끝날 날이 없지요. 그렇지요? 가장 중요한 자기 마음자리를 버렸는데 어떻게 잘 되길 바래요? 이건 기가 차는 거예요. 한번 깊이 생각해 봐야 돼요.
오늘 입춘에는 밖의 시절을 따라서 오고 가는 봄날이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자리를 알면 영원한 봄이라는 것입니다.
니우편기진춘경(泥牛鞭起趂春耕)이오
통신총시황금골(通身總是黃金骨)이라
진흙소에게 채찍을 들면 밭을 갈러 달려나감이오.
온몸 전체가 모두 황금골이더라.
바로 여러분이 걱정 근심에서 벗어나서 이 세상을 무한한 불심의 광명의 힘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주장자 삼타 후) 악!
(2025.02.03 입춘법회 대원 대종사 법어)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