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 구일의 기도 2
날마다 사람을
올려보내 졸라대니
조용해야 할 참선도량이
시끌벅적했습니다.
나보다도 주지 스님께서
곤혹스러움을 당하는 통에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즈음에
종정 스님이 열반하여
매스컴이 그리로
주목하는 바람에
소동은 별 탈없이
가라앉았습니다.
그러니 삶빛 연구소는
처음 문을 열게 된 방향대로
제대로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탁한 색깔만 덧칠하게
되고 말 것 같은 우려 속에
결국에는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그 후에도 삶빛 연구소를
시작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이
내게 어떤 형태든지 옷을
입혀주려고 갖은 애를 썼습니다.
종교적인 형태,
명상 모임의 형태 등
다양한 시도를 해보았으나
그때마다 마치 누군가 일부러
방해나 놓는듯이
일이 꼬이곤 했습니다.
인위적인 옷을 덧입게
되는 것을 극구 반대했던
내 의견을 무시한 채로
일을 진행해 나가던 사람들도
그제서야 그 일이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일임을
이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고,
흐르는 강물을 억지로 흐르지
못하게 방죽을 쌓아 막으면
그 방죽은 언젠가는
터지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이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연스럽게 흘러가서
시절 인연을 따라
구르기도 하고
고여 있기도 하는 것이지,
하나의 울타리 안에
가두어두려고 하면
그냥 썩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나는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맑고 선하고
순수하다는 것만으로는
내 이웃들에게 현실적인
도움을 주는 것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병들어 고통받는 사람을 보면
그 크기만큼의 고통이
내게로 전이되어
함께 슬픔을
나눌 수는 있지만
그것으로는 결국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아픈 사람은 여전히 병마와
싸워야 하는 숙제가 남았고,
그것을 지켜보는 나 역시
안타까움에 가슴이
저릴 뿐이었습니다.
또 하나의 내 모습을 위해
기여할 수 있으려면
뭔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힘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발휘될 때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자명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물만 먹고 산다는 것만으로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신기한 이야깃거리 하나를
제공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나에게 어떤 힘이 잠재해 있다면
그 힘을 끌어내어
쓸 수 있기를 바랬습니다.
그런 고민 끝에 나는
사십 구일 기도를 결심했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반대할수록
기도에 대한
의지는 더욱 굳어졌습니다.
기도처는 지리산 기슭의
구례로 정했습니다.
아무리 깊은 산중의
암자에 들어간다 해도
끈질기게 따라붙는 매스컴을
피할 수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1995년 2월, 나는 비어 있는
어느 농가를 빌렸습니다.
오히려 사람들 속에
섞임으로써 묻힐 수 있었습니다.
보일러 시설만
작동할 수 있도록 손을 본 후,
걱정이 되어
나를 혼자 두고 갈 수 없다는
사람들을 전부 쫓아보냈습니다
그 곳에서
혼자 사십 구일을 나면서
벽만 쳐다보고 앉아 있었습니다.
내가 이런 모습으로
살아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또 하나의 나를 위해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가.
또 내게 주어진 일은
어떤 것인가.
이런 물음들만 끊임없이
내 자신에게로 던져넣었습니다.
삼일쯤 지났을 때였습니다.
입고 있던 바지가
아픔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맨 바닥에 운동복
바지를 입고 앉아 있었는데,
앙상한 엉덩이와 딱딱한 시멘트
바닥 사이에 눌린 채
삼일을 견딘 바지는
더는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러됐습니다.
미안하구나.
내가 살집이 좀 있었더라면
네가 덜 아팠을 텐데.
나는 바지에게
진심으로 미안했습니다.
그 후로 바지는
아예 벗어버리고 대신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지냈습니다.
내 삶에 있어서 그 때처럼
간절한 순간은 없었습니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물조차
거의 마시지 않았습니다.
다리가 썩어들어 가고
혀가 빠져나오던 때,
이 목숨이
살아 있게만 해달라고
애원하던 기도도
그에 비길 수는 없었습니다.
앞으로 남은
내 삶의 빛깔이
온전히 그 기도에
달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가슴이 흐물흐물
녹아내릴 것 같은 간절함으로
하루하루를 채워나갔습니다.
마치 피고름이 흐르는
내 열 손가락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스스럼없이 녹아내리던
촛불처럼 말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눈을 감고 앉아 있던 내 앞에
찬란한 빛에 싸인
관세음보살님이 현시하셨습니다.
자애로운 미소를 띄고
한 손에는 감로수 병을 든
관세음보살님은 내 앞으로
물 흐르듯 걸어오셨습니다.
내 두 손 가득히
감로수를 따라주시고는
마시라는 눈짓을 해보이셨습니다.
기도를 시작하고부터
물조차도 거의 마시지 않았는데
감로수가 목줄기를
타고 넘어가던 순간의
환희로움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이 현시하신 이후
나는 더욱더 기도에
온 마음을 쏟아부었습니다.
관세음보살님! 이 세상에는
고통받는 중생이 너무 많습니다.
마음을 바꾸어라,
욕심을 줄여라
하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중생들 모두가 지나친 욕심만을
부리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작으나마 꼭 필요해서 간절히
바라는 일들이 더 많습니다.
그처럼 간절하게
소망하는 바를 풀어주면서
옳게 살아가도록
제도해야 되지 않을련지요.
그런 기도를 드린 지 며칠 만에
관세음보살님은 다시 현시하셨습니다.
"나의 상을 조성하여
만중생에게 보내도록 하라.
그리하면 그 인연 중생에게
가피를 내릴 것이다."
그 후로도 사십 구일 간의 기도중
관세음보살님은
한 번 더 현시하셨습니다.
사십 구일 간의 기도가 끝난 후,
내가 뵈었던 관세음보살님을
서툰 솜씨로나마
그림으로 그려두었습니다.
그리고 관세음보살님의
자료 사진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수백 장의 관세음보살상
사진을 보았으나
내가 직접 뵈었던 모습과
닮은 형상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거의 포기 직전에 이르러
다행히 흡사한 자료를 찾았습니다.
관세음보살님 조성 준비를 끝내고
나는 오대산 적멸보궁에 가서
다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때 관세음보살님과
문수동자가 다시 현시하셔서
각자의 발원문을 복장
:(불상을 만들 때 그 가슴속에
금. 은. 칠보 등을 넣는 일)해서
보내라고 이르셨습니다.
'관세음보살님 모셔 보내드리기회'
는 그렇게 시작된 일입니다.
관세음보살님은
액세서리나 인테리어 개념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조그맣게 조성했습니다.
일부 무속적 신앙 의지가
강한 불자들 간에는
불상은 절에서 모시는 것이지
집에 모시면 안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를 지나친
기복 신앙이 아니냐고
오해하는 이가 있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것은 종교조차도 과학적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시대의 분위기에 걸맞게
종교를 너무 메마르게만
보기 때문입니다.
중생들의 소원은
어차피 잘 사는 것,
잘 살게 되면 더 나아가
바르게 사는 것입니다.
그러한 추구에 대해
용기를 복돋아주고
성취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무한대의 힘이
바로 종교의 모습입니다.
종교를 추구하는 방법이야
각기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불교적 신앙 의지를
가진 사람인만큼
불교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에 익숙합니다.
불교에서는 불보살님께서
천백억 화신으로
나투신다고 했습니다.
그 엄청난 숫자는
곧 부처 아닌 것이 없고
보살 아닌 것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굳이 내 종교
네 종교를 따질 이유도 없습니다.
살아가는 일이 절박혜질 때
인간은 신앙에 의지합니다.
불자라면 부처님,
관세음보살님을 외칠 것이고,
기독교인이라면 하느님,
예수님을 외칠 것입니다.
그 간절한 외침에는
심오한 철학이나 합리성을
자랑하는 과학이
끼어들 자리가 없습니다.
복을 받 고 소원을 성취하기를
지극 정성으로 기원하는 이에게
천백억 화신으로 나투신
부처님의 가피와 마찬가지로
천백억 화신으로 나투신
하느님의 은총이 내리는 것입니다.
그 순간에조차 철학이나
과학을 운운하는 이에게는
가피와 은총이
내려앉을 자리가 없습니다.
넉넉한 베품이 있는
자비 그대로의 불교,
사랑 그대로의
기독교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러면서
겸허해지면 되는 것입니다.
지극 정성으로 기원하며
겸허하게 살아가는 이들을
부처님은, 하느님은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기도가 끝난 후에도 나는
관세음보살님의 현시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해의 여름부터
내게는
다른 사람의 전생)을 읽거나
병을 치유하고
아픔을 어루만지는 힘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해야 할일도
점점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늘이 내게 삼 십년이 넘도록
처절한 고통을 통해서
최고의 환회도
함께 맛보게 하고
모든 자연물과
대화할 수 있게 한 것은,
고통과 환희가 둘이 아니요,
너와 나도 둘이 아니라는 것을
내 삶을 통해서 생생하게
증명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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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 구일의 기도 2----양 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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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4.04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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