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병대의 돌격
원제 : The Charge of the Light Brigade
1936년 미국영화
감독 : 마이클 커티즈
음악 : 맥스 스타이너
출연 : 에롤 플린,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패트릭 놀스
헨리 스티븐슨, 나이젤 브루스, 도날드 크리스프
데이비드 니븐, C 헨리 고든
크림 반도를 둘러싼 영국-프랑스 등의 연합군과 러시아군이 전쟁을 벌인 이른바 '크림전쟁', 그 크림전쟁 초기에 영국의 기마병 부대 600명이 강력한 대포를 갖추고 U자 형태로 포진한 러시아군에게 돌격을 하여 거의 몰살당할 뻔한 전투가 있었는데 이게 이른바 '발라클라바 전투' 입니다. 그야말로 적군의 진지 복판으로 뛰어들어가서 자살공격과 다름없는 손실이 큰 이 돌격은 명령 전달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서 이루어진 무모한 공격이었고, 영국의 전투 역사에서 손꼽힐 실패한 공격이라고 합니다. 물론 크림 전쟁에서 영국군이 승리를 거두었지만 이 발라클라바의 기병대 돌진은 수많은 희생자를 단시간에 낳은 것입니다.
이 발라클라바 돌격을 다룬 내용이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1936년 흑백영화로 할리우드에서 만들었고, 1968년 영국에서 다시 만들어졌습니다. 두 편 모두 제목이 The Charge of the Lgiht Brigade 로 같지만 내용은 전혀 다릅니다. 30년대 흑백영화는 일종의 용기있게 돌진해서 전사한 병사들에 대한 헌정영화이고 1968년 영화는 영국 기병대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비판적 영화였습니다. 역사적 사실로 보면 60년대 영화가 더 맞는 셈입니다. 하지만 영화적 재미나 완성도를 보면 30년대 영화가 더 평가를 받습니다. 완전 허구로 만든 가상의 이야기였지만.
헝가리 태생 유태인 감독이면서 미국 이민자로 살았던 마이클 커티즈의 작품입니다. 1936년에 만들어졌는데 마이클 커티즈는 대략 이 시기 즈음 할리우드에서 전성기를 누리기 시작했고, 에롤 플린과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의 전성기도 시작되었습니다. 유명했던 세 거물 영화인들에게 중요했던 시기에 탄생한 작품입니다.
수리스탄 왕의 목숨을 구한 제프리 소령(에롤 플린)
제프리는 아름다운 약혼녀 엘사(올리비아 드 하빌랜드)와
반가운 재회를 하지만....
엘사는 제프리의 동생 페리를 사랑하고 있었다
거의 2시간 가까운 작품인데 후반부의 매우 치열한 이판사판 돌격에 대한 명분을 만들기 위한 내용을 가상으로 꾸미고 있습니다. 대체 왜 영국 경기병대는 이런 무모한 돌격을 감행할 것일까? 후반 10분을 위한 1시간 30분 이상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다행히도 이야기는 꽤 재미있고, 촬영도 멋집니다.
가상의 국가 수리스탄 에서 시작합니다. (아프가니스탄을 모델로 했다죠) 이곳의 왕 수라 칸 이라는 인물은 영국 주둔군과 우호적 관계를 지내고 있습니다. 특히 영국 장교 제프리(에롤 플린)가 표범에게 당할 뻔한 수라 칸을 구해준 것 때문에 더욱 관계가 돈독해 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수라 칸은 러시아와 내통하여 영국군을 공격하려고 계획을 세우고 있었지요.
영국군과 수라 칸 간의 이러한 대치와 머리싸움이 벌어지는 와중에 한 여자를 두고 두 형제가 벌이는 삼각관계도 펼쳐집니다. 제프리는 추코티 라는 요새의 책임자 캠벨 대령(도날드 크리스프)의 딸 엘사(올리비아 드 하빌랜드)와 약혼한 사이인데 엘사는 제프리의 동생인 통역장교 페리와 만난 이후로 서로 사랑하게 됩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캠벨 대령과 제프리는 페리를 질책하지요. 엘사는 그 사실을 알리지도 못하고 전전하게 되고... 이러 삼각관계가 펼쳐지는데 결국 엘사가 제프리에게 모든 사실을 제대로 고백하려고 했지만 그 때 수라 칸의 습격이 벌어져서 타이밍을 놓칩니다. 수라 칸은 거짓 화해를 신청하면서 기습을 했고, 아녀자와 아이까지 몰살시키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제프리와 엘사는 겨우 빠져나가고 캠벨 대령은 전사합니다. 이로 인하여 제프리는 수라 칸에게 복수를 불태우게 되죠.
엘사와의 삼각관계로 인하여
크게 다투는 형제
당시 20세의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형제간의 앙금은 여전히 풀어지지 않고...
이렇게 수라 칸과 제프리 간의 밑밥을 깔아 놓는데 이런 가상의 이야기가 펼쳐진 이유는 결국 그 발라클라바 공격의 명분을 위해서입니다. 추코티 요새를 함락시킨 수라 칸이 발라클라바에 진을 치고 있는 러시아군과 손잡고 그쪽에 피신해 있었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제프리는 명령을 어기고 병사들을 이끌고 추코티 요새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복수를 위해서 발라클라바를 공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에롤 플린이 주인공 제프리로 출연하는데 확실히 젊은 시절에 주인공을 맡으니 멋진 상남자로 보입니다. 할리우드의 스튜디오 전성시대인 30-50년대는 나이든 남자 배우들에게 매우 관대한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40-50대 주인공들이 많았고, 게리 쿠퍼, 클라크 게이블, 캐리 그랜트, 제임스 스튜어트 같은 배우들은 50대에 접어들면서도 다소 무리하게 젊은 주인공이 맡아야 할 역할을 대신했고, 20대 여배우와 로맨스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관객들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그 시대 고전영화들을 보면 남자 주인공의 나이가 너무 많은게 확실히 보기 불편하지요. 30년대 유성영화 시대가 시작되고 그 때 주인공으로 등장한 배우들이 50년대에도 여전히 활개를 쳤던 것입니다.
그런데 에롤 플린이 이 영화에 등장할 당시 나이는 불과 27세, 최소 30대 중반 이후의 배우들이 출연했음직한 역할을 그 나이에 무리없이 소화했고, 에롤 플린의 동생 페리로 등장한 패트릭 놀스도 25세에 불과했습니다. 이 두 배우가 20세의 꽃다운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와 삼각관계를 벌입니다. 올리비아 드 해벌런드는 너무 젊어서 얼굴을 알아보기도 낯설 정도입니다. '로빈 훗의 모험'이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보다도 훨씬 젊어요. 아무튼 20대 초중반 배우들이 전면에 나서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보기 드문 영화지요. 남자 배우 둘은 장교 역할이고, 더구나 에롤 플린은 부대를 이끄는 지휘관입니다. 거기다 당시 26세의 데이비드 니븐도 장교 역할로 비중있게 등장합니다. 1960년 존 웨인 주연 '알라모'에서의 세 주역배우들(존 웨인, 리처드 위드마크, 로렌스 하비)와 비교해보면 정말 파릇하고 신선한 세명의 배우지요.
기마병의 모습을 가장 멋지게 표현한 영화
엘사는 제프리에게 진실을 고백하려 했지만....
대규모 전투장면이 볼만하다.
중견배우들의 역할도 비중있습니다. 이 세 젊은 청년배우를 뒷받침하는 비중있는 조연으로 '아버지' '장인어른' '시아버지' 이미지로 많이 낯익은 도날드 크리스프가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의 아버지이자 요새의 책임장교로 등장하고 바실 라스본의 셜록 홈즈 영화들에서 왓슨박사로 등장하여 다소 코믹한 연기를 보여준 나이젤 브루스도 직급이 높은 장교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친근한 할아버지 이미지의 배우 헨리 스티븐슨이 고위급 장성 역할이지요. 이렇게 신구 배우들이 역할 분담을 하며 조화를 잘 이루는데 전면에 등장한 에롤 플린과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의 신선한 매력이 보기 좋습니다.
30년대 중반 영화지만 상당히 재미있고 촬영도 무척 잘했습니다. 왜 이 영화가 아카데미 촬영상을 못 받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동물학대 사건' 때문인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기마병의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한 대표적인 영화로 꼽을 수 있는데 기마병의 행군이나 서열 장면도 뛰어났고 후반부에 벌어지는 돌격 장면은 정말 CG가 없는 30년대에 저런 장면이 가능했나 싶은 실감나는 리얼한 장면들이 대거 등장합니다. 후반부 돌격장면의 촬영은 아주 일품이었습니다. 돌격하는 600여명의 기수들, 그리고 마구 쏟아지는 포탄, 그 포탄속을 뚫고 계속 전진하는 병사와 쓰러지는 말들..... 이 장면 촬영을 위해서 트립 와이어(Trip wird) 라고 불리우는 철사 덫을 설치했고, 말이 거기에 걸려서 넘어지게 만들었지요. 말이 총에 맞고 쓰러지는 연기를 할 수 없으니 그런 방법으로 달리는 말이 앞으로 고꾸라지는 장면을 연출한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수많은 말들이 부상을 당했고, 25마리나 죽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하여 승마광인 에롤 플린과 마이클 커티즈가 크게 다투었고, 뭐 소송까지 간 모양입니다. 이 영화 때문에 영화 촬영시 동물을 보호하는 법도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영화를 직접 보시면 말들이 어떻게 리얼한 움직임을 보여주는지 실감할 수 있습니다. 보는 관객은 리얼한 재미를 느끼고, 촬영도 기가 막혔지만 동물 학대 문제로 아마 아카데미 후보조차 배제된 느낌입니다.
에롤 플린이 매우 멋지게 등장한 영화
후반부의 기마병 돌격장면은 역대급이다.
에롤 플린은 말을 아주 잘 탔는데 뭐 승마를 좋아하는 배우이다 보니 물을 만난 느낌입니다. 그가 생각보다 서부극을 많이 안 찍은게 이상할 정도입니다. 그는 매우 용감하고 사랑도 정열적으로 할 줄 아는 군인이었지만 약혼녀가 동생을 더 사랑하는 것을 알고 두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중요한 결단을 내리는 남자다운 모습도 보여주지요. 1909년생인 에롤 플린은 나이가 훨씬 많은 게리 쿠퍼, 캐리 그랜트, 클라크 게이블과 같은 시대에 떠오른, 20대에 이미 스타가 된 배우입니다. 1935년에 '캡틴 블러드'로 주목 받기 시작했고, 이후 출연한 작품이 이 '경기병대의 돌격'이었고, 1937년에는 '왕자와 거지'에서 마일즈 헨든 역할, 그리고 1938년에는 일생의 대표작이 되는 '로빈 훗의 모험'에 출연하는 등 1930년대에 이미 전성기를 누립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와의 여러 영화에서의 공연은 유명하죠. 이 작품은 '캡틴 블러드'에 이은 두 번째 공연작 입니다.
영화의 하일라이트는 아무래도 거의 끝나기 10분전쯤 등장하는 경기병대의 돌격장면인데 19세기 전투를 다룬 장면 중에서 이렇게 치열하게 묘사한 장면도 드물 것입니다. 임진왜란의 '조헌과 700의사'가 괜히 연상됩니다. 확실히 마이클 커티즈는 유성영화 초기 할리우드 오락물의 대가 다운데, 아마도 30년대에 묘사할 수 있는 최고의 처절한 전투장면이 아닐까 싶네요. 그는 영어도 서툰 이민자였지만 30-40년대 가장 흥행작을 많이 만든 감독으로 다작을 연출한 것도 큰 장점입니다. 마치 쇼 브라더스의 장철 감독이나 우리나라의 신상옥 감독과 비견할 30-40년대 할리우드 감독이지요. 장르도 참 다양하게 만들었습니다. 해적영화, 전쟁영화, 갱스터 무비, 활극, 서부극, 로맨스, 미스테리, 시대극, 코미디 등등...유성영화 초창기 그의 이름을 빼고 할리우드 흥행을 논할 수 없을 정도로 그는 상업적으로 가장 크게 성공한 외국인 출신 감독이었습니다. 주디 갈랜드가 MGM을 먹여 살렸다면 워너 브라더스를 먹여 살인 건 마이클 커티즈 였습니다.
'경기병대의 돌격'은 다소 작위적으로 꾸민 이야기라서 마치 후반부의 무모한 돌격감행의 명분을 짜맞춘 듯한 내용이었지만 멋진 배우들의 등장과 야외 로케이션을 많이 감행한 멋진 촬영과 대규모 전투장면, 통속적 이야기 등이 결합하여 상당한 재미를 제공한 영화입니다. 제목처럼 이후에 마이클 커티즈의 돌격이 50년대까지 진행되었습니다.
ps1 : 가상의 국가 수리스탄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꾸몄는데 중간에 인도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기도 합니다 인도에서 크림 반도까지는 상당히 먼 거리인데 다소 무리한 설정 같네요.
ps2 : 데이비드 니븐은 비중있게 등장하다가 중간에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려다 사살되는 역할입니다.
ps3 : 이 영화에서 말 학대 문제로 크게 다투었지만 이후에도 마이클 커티즈와 에롤 플린은 몇 편의 영화를 같이 작업했습니다. 감독과 배우로는 잘 맞았나 봅니다.
ps3 : 1937년에 '나아가 용기병' 이라는 제목으로 부산에서 상영한 기록이 있습니다.
[출처] 경기병대의 돌격(The Charge of the Light Brigade, 36년) 실감나는 전투장면 묘사|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