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우리가 날마다 마주하는 밥상에는 그 맛만큼이나 구수한 우리말이 널려 있습니다다.
예쁘고, 정겹고, 맛깔스런 우리 토박이말의 행진은 먹거리를 장만하는 때부터 시작하여
밥 짓고, 국 끓이고, 김치 담그고, 나물을 무치는 등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드는 과정 내내 이어집니다.
끓이고, 삶고, 지지고, 볶아 만든 음식이 가득 차려진 우리의 밥상은,
입맛 당기는 우리말의 진수성찬이나 다름없지요.
어느 나라 사람들을 막론하고 먹거리의 대줄거리는 곡식과 채소, 그리고 가끔씩 먹던 고기입니다.
우리 겨레가 주로 먹어온 곡식은
흔히 오곡(五穀)이라 일컫는 쌀, 보리, 콩, 조, 기장 따위입니다.
그중에서 으뜸인 쌀로 밥을 지어먹었습니다.
한편, 우리 겨레는 갖가지 채소와 풀로 김치나 나물처럼,
굉장히 가짓수가 많은 밑반찬을 만들어 먹어왔습니다.
여기에 갯벌이나 바다에서 난 조개와 생선, 해조류 따위가 곁들였지요.
물론 가끔씩 소, 돼지, 닭, 오리 고기 따위도 먹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처럼 먹을거리 가짓수가 많은 겨레도 없을 터입니다.
따라서 거기에 붙여진 우리말의 가짓수가 많은 것은 당연지사겠지요.
벼논에서 부엌을 거쳐 밥상에 이르기까지, 입맛 당기는 우리말이 풍성할 수 밖에요. ^^*
우리는 하루에도 두세 번쯤은 쌀로 지은 밥을 먹고 삽니다.
특별한 날에는 쌀로 떡을 빚어 먹기도 라구요.
그럼 쌀은 어디에서 나는 걸까요?
이 물음에 ‘쌀나무’라고 답하는 사람은 가히 ‘도시촌놈’이라는 말을 들어도 싸지요.
쌀나무는 없습니다. ‘벼’라는 식물이 있을 뿐이지요.
모판에 뿌려진 볍씨가 어느 정도 자라면 모내기를 합니다.
여름 내내 물과 햇볕과 바람을 흠뻑 먹고 빳빳하게 자란 벼에서는 황금빛 열매가 알알이 달립니다.
그게 ‘나락’입니다. 가끔 나락을 쌀의 사투리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그렇지 않아요.
벼의 열매는 나락이고, 그 나락 껍질을 벗긴 게 쌀이거든요.
쌀의 품종은 많습니다. 하지만, 그 가짓수는 크게 ‘찹쌀’과 ‘멥쌀’로 나눌 수 있고요.
밥을 짓거나 떡을 빚었을 때 끈적끈적한 찰기가 많은 것은 찹쌀이며, 그렇지 않은 쌀은 멥쌀입니다.
멥쌀로 만든 떡은 포슬포슬하고 찹쌀로 만든 찰떡은 쫄깃쫄깃합니다.
또 같은 쌀이라도, 오래된 ‘묵은쌀’보다는 갓 추수한 ‘햅쌀’이 맛이 좋습니다.
쌀을 솥에 안쳐 지은 게 밥입니다.
밥에도 여러 가지 이름이 있습니다.
가마솥에 지은 밥은 ‘가맛밥’입니다.
그런데 쌀을 물에 불려서 시루에 찐 밥은 ‘시루밥’이 아니라 ‘지에밥’이라 합니다.
지에밥은 그냥 먹기 위한 밥이 아니라 다른 먹을거리를 만드는 데 밑이 되는 밥이지요.
예컨대 찹쌀로 만든 지에밥을 떡메로 쳐서 늘인 다음에 썬 것이 바로 인절미인 것이지요.
지어진 상태에 따라 밥을 부르는 말도 다릅니다.
물기가 많아서 질게 된 밥은 ‘진밥’이고, 고들고들한 밥은 ‘된밥’입니다.
된밥 중에서도 아주 꼬들꼬들한 밥은 ‘고두밥’이고요.
옛적에 나이 많은 시부모에게 고두밥을 지어 올려 소박맞았다는 며느리의 눈물겨운 사연...
한 번쯤은 들어봤음 직합니다.
한편, 솥바닥에 눌어붙은 밥을 그대로 긁어낸 것은 ‘누룽지’입니다.
그런데 가마솥에 물을 부어 불린 다음에 긁은 것은 ‘눌은밥’이지요.
이처럼 누룽지와 눌은밥은 엄연히 다릅니다.
그릇에 밥이 담긴 모양에 따른 이름도 있습니다.
먼저 그릇 위로 소복하게 올라오도록 담은 밥은 ‘감투밥’인데,
감투밥을 다 먹지 못하고 남기는 때도 있습니다. 그렇듯 먹다가 남긴 밥을 ‘대궁밥’이라 합니다.
쌀이 모자라던 옛적에, 남의 집에 가서 쌀밥을 대접받은 손님은,
그 집안의 배고픈 누군가를 위해서 일부러 대궁밥을 남기는 게 예의였다고 합니다.
밥을 어디에서, 또 어떤 상황에서 먹느냐에 따라서도 그 이름이 다릅니다.
감옥에서 먹는 밥은 ‘구메밥’입니다.
‘구메’는 옛말로 구멍이지요. 감옥의 좁은 구멍으로 넣어준 밥이라는 뜻입니다.
또 농부들이 들에서 모를 내거나 김을 맬 때 먹는 밥은 ‘기승밥’입니다.
집안이 기울어, 남의 집에 곁들어 드난살이하면서 먹는 밥은 ‘드난밥’이고요.
눈칫밥과 같은 드난밥은 한마디로 눈물에 젖은 밥인 셈입니다.
지금은 남아도는 게 쌀이어서 대궁밥 놓고 다툴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고 안심할 일은 아니지요.
기후변화가 무쌍한 시대에 단 한 번의 흉작으로 쌀 생산에 큰 차질이 생길지도 모르니까요.
다행히도 아직 우리는 날마다 쌀로 지은 밥을 먹고 또 먹습니다.
그래도 물리지는 않는 이유는
‘살림’이란 ‘쌀’이 우리 몸의 ‘살’로 바뀌는 과정이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고맙습니다.
-우리말123^*^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