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음악회에서 한 가수가 무대 앞으로 나왔다. 그가 부를 노래는 흘러간 팝송<대니 보이>였는데, 워낙 고음이라서 가수라도 쉽게 부를 수 있는 노래는 아이었다.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고 노래의 전반부가 잔잔하게 이어졌다. 사람들은 푸르렀던 시절을 회상하며 노래속으로 점점 빠져들어갔다. 그런데 바로 그때 뜻밖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노래를 부르던 가수가 노래의 절정 무렵에서 마이크를 그만 내려놓은 것이다. 계속되는 반주에도 그는 잠자코 있었다. 잠시 후 반주가 멈췄다. 실내는 쥐죽은듯 조용했다.
몇몇 사람들이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얼굴을 붉히며 당황하는 가수에게 위로의 눈빛을 보내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가수는 무대 한쪽 계단 아래로 느릿느릿 내려갔다.
그리고 관객석의 맨 앞줄에 이르렀다. 가수는 꾸부정하게 몸을 낮추고는 한 소년의 손을 잡았다. 휠체어에 앉은 소년은 어리둥절해 했다.
"꼬마야, 아저씨가 계속 노래를 불러야 하거든. 그런데 이 노래에서 가장 음이 높은 부분이 남아있어. 네가 아저씨 손을 꼭 잡아준다면 무사히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 줄 수 있지? 자, 아저씨 손을 꼭 잡아줄래? 힘껏!"
아이는 그 순간 진지한 눈빛으로 작은 손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가수는 혼신의 힘을 쏟아 절정 부분을 멋지게 노래했다. 관객들은 그 광경에 끝없는 박수를 보냈다. 어린 소년은 치자꽃처럼 하얀 얼굴로 웃고 있었다.
가수의 이마 위에도 땀방울이 송글송글 보석처럼 맺혀 있었다. 두 사람은 말없이 한참 동안 서로의 손을 잡고 있었다. 말 보다 더 아름다운 말을 주고받으면서.....
(이철환의 "반딧불이" 중에서)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입김은 추울 때 가장 뜨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