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초는 바로 자동변속기다. 잘못된 방향은 아니었다. 클러치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 운전을 즐기게 만들어 준 존재였으니까. 특히 국내 시장에서 자동변속기의 채택 비율은 순식간에 유럽 시장을 앞지를 정도로 ‘트렌드’가 되었다. 수동 변속 기능을 갖춰 수동 변속기를 운전하던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차들도 등장했다. 물론 진정한 수동 변속의 즐거움을 구현했는지는 다른 문제다. 아무튼 왼발에게는 기나긴 휴식 시간이 찾아왔다. 오른손 역시 무거운 짐을 덜었다.
앞으로는 오토매틱이 대세가 될 것이라 이야기하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왼발은 생각보다 똑똑해서 일단 클러치 페달 감각을 익히면 그 다음부터 클러치 조작은 아무 일도 아니다. 오히려 원하는 순간 즉각 기어가 내려가지 않는 자동기어 차를 몰고 있으면 불안감을 느낄 수도 있다. 다른 어떤 존재에게 기어 변속을 맡기는 일이 마음에 걸릴 수 있다. 이건 아마도 모르는 사람에게 덜컥 운전을 맡기지 못하는 기분과 같다.
또 다른 존재는 바로 ABS. 단순히 급제동시 타이어가 잠겨 미끄러지지 않도록 하려던 애초의 탄생 배경은 잊혀진 지 오래다. 이제 ABS는 각종 차체 제어 로직과 연동되어 언더스티어나 오버스티어 등 모든 미끄러짐에서 운전자를 구원한다. 이젠 스포츠카에도 이런 제어 로직이 적용되고 있고, 스포츠카 오너들마저 대부분이 이 기능에 의존하고 있다. 물론 잘못된 방향은 아니다. 급제동에 대한 공포를 안전으로 바꿔준 존재였으니까.
어느덧 ABS는 능동적 안전장치의 대명사가 되었다. ABS가 달린 차는 보험료도 할인 받을 수 있다. 펌핑 브레이크라 불리는, 운전을 좀 했다는 얼간이들의 테크닉은 아련한 추억이 됐다. 다만 원하는 순간이 아닐 때에도 멋대로 브레이크를 걸어버리는 전자제어 장비와는 영 친해질 수가 없다. 솔직히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운전자에게는 타이어를 미끄러뜨릴 자유도 있지 않을까? 원할 때는 타이어를 미끄러뜨리며 하얀 연기를 내뿜고 싶다. 날 차버린 그녀가 길 건너편에 나타나서, 하얀 연기 속으로 나를 숨기고 싶을 때 유용하다. 몸에 좋지 않은 유독성 물질이 가득한 타이어 연기를 그녀가 마시고 콜록거리는 건 순전히 덤이다.
근래에 스멀스멀 우리의 주차 습관을 파고 들었던 존재 중 하나는 후방 주차 보조 센서다. 반사되어 돌아오는 주파수를 탐지하는 아주 기본적 기능의 센서 몇 개 덕분에 사람들은 더 이상 후진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보다 여유가 있는 드라이버는 아예 후진할 때 후방 상황을 생중계로 본다. 뒤 범퍼의 생채기는 줄어들고, 생활의 달인처럼 예술적인 밀리미터 간극의 주차 묘기도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니게 되었다. 리모컨 조작으로 자동 주차가 되는 시스템도 머지 않았다. 당연히 잘못된 방향은 아니다. 남의 차를 긁어놓고 황망히 자리를 떠야 하는 상황도 줄었고, 주차 라인 깊숙이 집어넣는 모범적인 주차 문화 덕분에 모두가 웃는 사회가 됐다.
문제는 오래된 연인처럼 이런 장비에 익숙해졌다가 덜컥 혼자가 되는 경우다. 순식간에 바보가 된다. 기상 문제로 센서가 오작동하거나 센서가 없는 다른 차로 바꿔 운전할 경우, 그 동안 주차를 어떻게 했는지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봐도 감각이 돌아오지를 않는다. 결국 이때다 하며 덴트 가게에 갈 일을 만들고 만다. 솔직히 약간은 부끄럽다고 느꼈던 “오라이~ 오라이~”보다 반복적으로 울려대는 건조한 전자음에 정이 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정말 예상치 못한 강적은 현대인의 필수품으로 급부상한 네비게이션이다. 가장 현명한 운행 코스를 일러주는 하늘의 천사(GPS 위성이라고도 불린다)들의 도움으로 읽지도 못하는 지도를 펴놓을 일도 없어지고 여자친구 앞에서 길눈이 어둡다는 소리를 들을 일도 적어졌다. 네비게이션이 없던 시절보다 더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었는지는 확인된 바 없으나 다들 그렇게 믿고 있는가 보다. “요즘 누구나 네비게이션 한 대씩은 차에 있잖아요~” 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대시보드 위에 큼지막한 모니터 하나씩은 달고 다닌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낭랑한 목소리로 길 안내를 도와주는 언니 목소리 앞에서 사람들은 생각을 멈추었다. 지금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얼마나 빨리 달리고 있는지에 대한 감각은 희미해진 채, 주문처럼 울려 퍼지는 음성에 따라 운전대를 돌리고 브레이크를 밟는다. 마치 운전이란 행위에서 혼을 빼앗아 간 듯 하다. 여러 번 달려본 길임에도, 네비게이션이 없으면 찾아갈 수 없다는 중증 환자들도 많이 목격된다. 어느 나라에서는 네비게이션이 오작동으로 우회전하라는 안내에 뻔히 길이 없는 줄 알면서도 바다로 뛰어든 사람도 있었다 하니 이쯤 되면 뭔가 잘못된 방향은 아닐까 하는 불안함이 뇌리를 스친다.
똑똑해진 자동차와 뇌 속에서 드라이빙 뉴런을 잃어가고 있는 운전자. 다시 아무 옵션도 없던 그 시절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꼭 수동기어 차를 타란 뜻이 아니다. 주차 센서를 뽑아버리거나, 네비게이션을 당장 꺼버리라는 이야기도 아니다. 단지 우리 몸의 감각 센서를 희미하게 만들어선 안 된다는 이야기다. 감각 없이는 인간 역시 한 발자국도 이동하기 힘들다. 하물며 자동차를 이동시키는 일은 매우 정교한 감각들의 연합 작용이다. 자동차는 결국 운전자의 드라이빙에 따라 움직여야 할 도구다. 그것이 다른 대중 교통과 구분되는, 개인 이동 수단인 자동차라는 탈 것의 고유한 가치이자 즐거움이고 또한 드라이버의 책임이다.
여러분은 어떤가? 진짜 당신이 운전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