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종 군수품* / 최분임
총구의 연기가 누군가의 영혼처럼 허공으로 흩어지는 동안
불쑥 나타난 군복 하나가 진흙 물웅덩이에 엉킨
시신의 양말을 벗겨 사라지자
조선인 위안부 학살 후 현장 화면이라는 문구가 뜬다
군수품으로 분류돼 폐기된 목숨 서른 개가
희미해져 닿을 수 없는 진실이
휘발되지 않은 기척으로 돌아오기 위해 지지직거린다
콸콸 새는 몸의 고통과 텅 빈 동공에 든 공포가
창밖 얼룩진 눈물 한 방울로 부푼다
보름달에 박제된 슬픔이
수국의 향기를 분질러 밤이 일그러진다
쏟아지는 총알처럼 갈래가 많은 저 세월 안쪽
어둠을 쓰느라 반짝인 적 없는 알몸들의 기록
시차를 뛰어넘어 내 목울대를 관통하는지
단말마 비명들이 울컥울컥 올라온다
나라 잃은 죽음들이 온몸으로 휘갈겨 쓴 먼 이국의 안부
겹겹 꽃잎들을 끝내 둥둥 듣고 있다
저항과 백기를 갈마들며 심장에 새겨진 푸른 멍
수국의 짓이겨진 메아리가 귓속에 우북하다
*1944년 9월 14일 미·중 연합군이 일본군으로부터 중국 윈난성 텅충을 탈환하기 전날 일본군이 조선인 위안부들을 총살한 장면을 담은 19초 분량의 영상.
-시와 징후 2023겨울호-
최분임 약력
제12회 동서문학상 대상 수상, 『월간문학』 등단
제8회 천강문학상 시부문 대상 수상
시집『실리콘 소녀의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