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나는 주요, 아무도 다른 이가 없나니 나 외에는 다른 하나님이 없느니라. 네가 나를 모를지라도 내가 너를 띠로 동였노라. 5)
I am the LORD, and there is none else, there is no God beside me:
I girded thee, though thou hast not known me: 5)
gird 뜻① 자세를 취하다 ② 긴장하다 ③ (문어) 띠로 졸라매다 ④ (문어) 두르다
사람들이 해가 뜨는 곳과 서쪽에서부터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는 것을 알게 되리라.
나는 주요, 아무도 다른 이가 없느니라. 6)
That they know from the rising of the sun, and from the west,
that there is none beside me. I am the LORD, and there is none else. 6)
나는 빛도 조성하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만들고 악도 창조하나니 나 주는 이 모든 일을 행하느니라. 7)
I form the light, and create darkness: I make peace, and create evil:
I the LORD do all these things. 7)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때가 1770년입니다. 삼백년도 되지 않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만큼 보이는 자연현상도 이해하지 못하고 오랜 기간을 살아온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수천년전에 이미 하나님께서는 그가 빛을 창조하셨고, 어두움도 창조하셨음을 말씀하셨고, 그리고 평안과 악을 창조하셨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진리를 말씀해주신 것으로 사람들에게 진리가 받아들여지지 못하더라도 그대로 알려주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속임수인 종교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도록 주장되어진 것과 대비됩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들어진 목적보다는 자신들의 결핍과 고통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습니다.
마치 출애굽한 사람들이 결핍된 것을 소리질러 요구하는 것을 수용하는 모습이 종교들이 가진 모습입니다.
종교들은 그들의 결핍과 욕구에 동의만할 뿐 그것을 해결해줄 수 없습니다.
불교의 중들은 고통을 외면한 자이거나 고통을 회피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외면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이고, 회피하는 자는 종교사기꾼입니다.
빛에 반대가 어둠으로 쓰여졌는데 악의 반대는 평안 [peace]으로 쓰였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선이란 평안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선이란 하나님의 기준이시고 우리에게 선이란 하나님의 뜻에 일치한 평안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든 분란이 악이라고 생각하면 오해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같은 방향으로의 평안은 악과 충돌하고, 분란이 일어나는 것이 평안의 본질입니다.
왕자의 자리를 박차고나온 싯달타가 그가 마음속으로 고민한 모든 것의 해답은 위 말씀의 things 라는 한 단어에 녹아있습니다. 누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악을 만들었는가와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겠는가라는 것이 그의 화두였을 것입니다. 싯달타와 같은 인간에게는 누가 만들었는지보다는 어떻게 극복을 하는 것이 당면한 문제였을 것입니다. 그가 고통속에서 깊은 고민을 해도 답은 없었기에 싯달타는 답이 없음을 선언한 것이 깨달음이라고 정각[正覺]이라고 잘못알려져 내려오는 것입니다.
싯달타를 따르던 제자중에 하나가 그에게 사람이 죽은 후에 어떻게 되는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로 그는 내가 사는 것도 모르는 데 죽음 이후를 어떻게 알겠는가라고 되물었다고 합니다.
이것을 불가에서는 정언[正言]이라고 팔정도의 하나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지만 모른다는 대답일 뿐인 것입니다.
불교의 모호함과 난해함으로 선악을 정의하고 구별하는 것을 보류함은 끝없는 혼돈의 그 자체로 지옥의 특성인 것입니다.
몸으로 느껴지는 중력을 이해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창조에 관한 진실을 말씀을 해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평안과 더불어 악도 창조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악을 추구하시지 않지만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시기에 지금 우리곁에 존재하는 악을 창조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악을 창조하신 이유는 빛과 어둠이 나뉘는 것처럼 구별되기 위함과 같습니다. 우리도 빛과 어둠의 속성처럼 믿음과 죄사이에 구분되고 속해질 수 있습니다.
이처럼 악을 창조하시고 그가 그 악을 사용하신다는 것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라는 개념보다 훨씬 더 넘어서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악은 제거되어야하고 무시되어야 할 대상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악이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도 정의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결국 답없는 길로 걸어가다 어둠과 같은 혼란속에서 하나님을 거부한 죄로 정의 될 것입니다. 악은 악을 보지 못할때 그것에 삼켜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율법은 그러한 악을 우리가 정의할 수 있게 해주신 은혜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그들에게 유익한 일이 일어나면 그것을 기적이라고 부르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곤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악한 일이 일어나는 것에도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는 것입니다.
O 그때에 그의 아내가 욥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아직도 당신의 완전함을 간직하려 하느뇨?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 하더라.
그러나 욥은 그녀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어리석은 여자들 가운데 하나가 말하듯이 말하는도다. 무슨 말을 그리하느뇨? 우리가 하나님의 손에서 좋은 것을 받았을진대 나쁜 것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하며 이 모든 일에도 욥은 자기 입술로 죄를 짓지 아니하더라.
욥기 2장 9절 10절
세상사람들의 태도는 마치 욥의 아내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에게 좋은 것은 곧 이 세상에서 좋은 것으로 불완전한 것입니다. 로또복권에 당첨되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그 당첨자들의 말로가 비참함은 그것이 불완전하게 좋은 것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완전하시어 우리에게 완전하게 좋은 것을 주시려는 분이십니다. 그 완전한 것은 구원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욥의 아내와 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합니다. 욥의 아내로 안되어 욥의 친구들이 모여 자기에게 좋은 것을 하나님의 좋은 것으로 생각하고 설득하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이 세상에서의 불완전함에 있지 않고 그분이 악을 만드신 분으로 악을 통하여 완전한 것에 이르도록 악을 사용하시는 분임을 꺠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모든 일을 행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우연이란 없는 것입니다.
매일의 삶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메세지인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악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도 하나님의 뜻에 실현입니다.
이렇게 모든 것의 창조자이신 하나님께서 저와 당신을 구원하시겠다는 뜻을 가지시고 실행하시고 있으신 것입니다.
이러한 위대한 값없는 선물을 거절하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