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terror)’ 어원의 탄생 배경과 유래
프랑스 혁명 과정엔 ‘테러’가 있었다?
테러의 어원인 프랑스어 ‘terreur’의 뜻은 ‘거대한
공포’
프랑스 혁명 시기 성직자·귀족 수천 명 숙청된 공포정치
뜻해
오늘날 ‘개인적 암살·사적 단체에 의한 파괴’ 개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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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사진과 설명

미국 워싱턴 6·25전쟁 기념비에
새겨진 문구. 필자제공 |
1789년 6월, 프랑스 베르사유 궁의 테니스 코트에서는 “우리는 헌법이 제정되기 전에는 총칼의 위험에도 결코 해산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이런 외침과 환호성의 주인공들은 당시 제3신분이었던 ‘국민’이었다. 이날 이들은 국민의 대표 기관을 자처하며
‘국민 의회’를 스스로 선언했다.
그 당시 프랑스 사회는 세 개의 신분층으로 이뤄져 있었다. 제1신분은 성직자, 제2신분은 귀족으로 토지·관직의 독점과 면세 혜택이
있었다. 이에 비해 시민·농민·수공업자·소상인 등 프랑스 국민 대부분을 차지하는 제3신분은 무거운 과세의 대상으로 국가 재정 대부분을
부담했음에도 참정권이 없었고 지위도 보장되지 않았다. 이러한 신분제도의 모순이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 역할을
했다.
자유와 평등의 상징, 프랑스 혁명
특히 ‘왕이 곧 국가’라고
생각하는 루이 16세의 절대왕정 아래에서는 소수의 귀족·성직자만이 별도의 특권을 보유했고, 평민층의 근로와 납세에 기생하면서 생활했다. 이런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던 국민들이 분노해 혁명이 시작됐다.
당시 파리 시민들은 밤사이 무기고를 습격하고 무장을 갖춰 국왕과
귀족층을 상대로 대항했으며, 결국 구(舊)체제의 상징이었던 바스티유 감옥을 총격전 끝에 점령했다. 이때 시민군이 파리로 입성하면서 부르던 행진곡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는 혁명 이후 프랑스의 국가로 채택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또 당시 혁명세력이
선언했던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와 평등의 권리를 가진다”는 ‘인권선언’은 오늘날 국제인권법의 토대로서 국제조약과 국제선언의 기준이 되고
있으며, 그 이념과 내용은 지금까지도 수많은 국가의 헌법과 법률에 반영돼 있다. 프랑스 혁명은 사상적 측면보다는 오히려 자유와 평등 그리고
인권보장의 정신을 세계 전역에 퍼뜨리는 데 큰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혁명 과정에서 혁명 지도자였던 ‘로베스피에르’는
혁명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적(敵)’으로 간주한 성직자와 귀족들을 너무나도 과격하고 무자비하게 숙청했다.
혁명 이후 프랑스 왕
‘루이 16세’는 분노한 시민들에 의해 파리 한복판에서 ‘단두대’라고 불리는 사형장치 ‘기요틴(guillotine)’에 의해 처형됐으며, 혁명
재판을 통해 수천 명이 희생되는 등 1년 만에 3만5000여 명이 단두대의 이슬이 되었다. 이 시기를 ‘공포정치 시기’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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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를 상징하는
단두대 참수형. 필자제공 |
거대한 공포, 테러
단두대는 높은 틀의 꼭대기에 경사진 삼각 날을 매달았다가 떨어뜨려 사람의
목을 베는 장치다. 단두대를 사용한 참수형은 사람들을 공포의 도가니 속으로 끌어넣으면서 피비린내 나는 혁명적 극단주의의 상징이 됐다.
테러(terror)라는 용어도 바로 이 시기에 등장하게 된다.
프랑스어 ‘terreur’가 어원이며, 이 단어는
명사(terror)로 ‘거대한 공포, 떠는 상태’ 및 동사(terrere)로 ‘겁주다’에 기원을 두고 있다. 즉 ‘테러’라는 단어는 공포정치와
동의어로 사용됐다.
다른 한편으로 테러의 기원을 역사적 배경 속에서 살펴보면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아벨을 죽인 카인을 최초의
테러리스트로 말하기도 하고, 로마 시대 ‘줄리어스 시저’ 암살사건을 가장 오래된 테러사건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학자들은 테러를 정의하려면
테러의 정치적 성격, 대상, 공포의 조성 등 세 가지 주요 특징을 포함해야 한다고 한다.
따라서 프랑스 혁명기 테러는 강력한
권력행사 혹은 대규모 반(反)혁명세력에 대한 탄압 등을 일컫는 말로 제한해 사용됐지만, 오늘날은 단순히 개인적인 암살이나 사적 단체에 의한 파괴
등의 개념으로 확대돼 ‘공포를 조성하는 주의 또는 정책’을 지칭하는 포괄적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미국의 언어학자인 노암 촘스키는
테러를 ‘우리’ 또는 ‘우리의 동지’에게 행해지는 적들의 난폭한 행동으로 요약하기도 했다.
이처럼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테러는
혁명·반혁명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치현상과 관련해 발전된 개념임을 알 수 있다. 즉 어떻게 보면 테러는 정치적 현상이다. 그러나 정치적
현상만으로 파악하려 한다면 테러의 정의에 대해 명확히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테러는 정치적 목적을 위한 폭력의 사용뿐만 아니라 거리의 무고한
행인을 겨냥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폭력으로 퇴색된 자유와 평등의
이상
돌이켜 보면 프랑스혁명을 주도한 ‘로베스피에르’는 반대파를 숙청하기 위해 너무 많은 사람을 단두대에서
처형했는데, 어쩌면 ‘폭력만이 혁명에 필요하다’고 믿는 어리석은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비록 혁명은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이로 인해 혁명의
명분이었던 자유와 평등의 이상은 퇴색된 것이다. 자유와 평등은 현대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지지하는 두 개의 근본 가치이며, 어떤 경우든지 인간의
자유와 평등 추구는 피에 의한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다.
미국 워싱턴 6·25전쟁 기념비에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이것은 ‘자유는 그것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의 고귀한 희생을 딛고
자란다’는 의미다. 오늘도 지구촌에는 인간의 존엄성이 파괴되고 인간다운 삶을 해치는 전쟁과 테러가 멈추지 않고 있다. 이제 지구촌에 자유와
평화의 시대가 오길 기대한다.
감수=국군기무사령부
첫댓글 terror 테러의 어원은 우리말 무서워서 -->떨어(어원) fear 두려움 역시 우리말 벌벌(떨다) 과거는 펄펄 fear의 어원이죠.
세계의 역사는 왜곡에 왜곡을 거듭하고 있습니다.서양애들이 역사를 더더욱 왜곡하지요.짱께도 역사왜곡 하고 왜도 역시 당연히 역사왜곡을 공기마시듯 하죠. 진실의 역사를 안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