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바보 아니야
김은희 작
선생님은 요즘 며칠 내내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누구보다도 착하고 예쁜 송희를 이웃 학교로 떠나 보내야했기 때문입니다.
“샌니임, 난 가기 싫다.”
“그래, 알아……”
선생님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송희네 학교 아이들이 바보라고 놀려대어도 늘 웃는 아이였습니다.
선생님이 아침에 바쁘게 교문을 들어서면, 송희는 하루도 빠짐없이 교문 안쪽에서 기다리고 있다 뛰어 나옵니다.
“샌님, 잘 잤어? 밥 마이 먹었어?”
“그러엄, 우리 송희 보고 싶어서 선생님이 빨리 왔지.”
“흐응 그래, 조아! 조아!”
선생님은 3월에 새 학년을 맡고는 다른 아이들보다 말썽도 많이 피우고, 4학년인데도 한자리 덧셈도 할 줄 모르는 송희 때문에 속이 무척 상했습니다. 그렇지만, 늘 웃고 마음씨 착한 송희를 누구보다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공부할 때에도 송희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합니다.
“송희가 안 보이는구나?”
“쉬는 시간까지 복도에 있었어요.”
공부가 시작되어도 송희가 보이지 않아 찾으러 다닐 때도 많았습니다. 하루는 여기저기 찾아보다가 화장실에 가 보았습니다. 송희는 그 곳에 있었습니다.
“샌님! 문이 지 맘대로야.”
화장실 문이 고장 나서 닫아도 저절로 열리자, 송희는 계속 열리는 문을 다시 닫느라 화장실에 있었습니다.
“그냥 가자.”
“샌님! 문 열어져, 문도 힘드단 말이야.”
송희의 손을 잡아끌며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이따가 학교 아저씨한테 고쳐 달라고 하자.”
“그래도 닫고 가야 되지? 샌님 먼저 가.”
송희가 또 없어졌습니다.
처음엔 송희를 ‘바보’, ‘정박아’라고 놀려대던 친구들이었지만, 송희네반 아이들도 송희가 없어지면 비상이 걸립니다. 선생님은 남자 아이들 몇 명한테 송희가 없어졌을 때 빠르게 찾아 올 수 있도록 구역을 정해 주었습니다.
이번엔 공부시간에 책까지 들고 슬며시 없어졌습니다. 한참 후, 운동장 수색을 맡은 상원이가 송희를 찾아 왔습니다. 한 손엔 책을 들고 한 손은 상원이의 손에 이끌려 들어옵니다. 교문 앞 떡볶이 파는 집에서 송희를 찾았다합니다.
“송희! 어디 갔었니?”
“떡뽀이 집에.”
“왜 공부하다 말고 나갔어?”
“공부 끝나고 집에 가다 떡뽀이 사 먹으려고.”
“그럼 집에 갈 때 가 봐야지, 지금은 공부시간이잖아.”
“학교 올 때 문 안 열었어. 그래서 지금 문 열었나 가봤지.”
교실에 있던 아이들이 아주 큰 소리로 웃었습니다. 선생님도 뒤 돌아 칠판 쪽을 보고서서 웃었습니다.
송희가 자주 가는 곳은 유치원 교실입니다. 반 친구들보다 유치원 아이들하고 더 친합니다. 학교병설유치원 아이들도 송이를 보면 참 좋아합니다.
책도 잘 못 읽고, 덧․ 뺄셈도 못하고 제멋대로이지만, 반 아이들은 이제 송희를 이해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가끔 엉뚱한 짓을 하여 친구들을 웃게 해 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송희한테 더 많은 보살핌을 주자, 송희네 반 아이들도 따라 했습니다.
청소 당번도 매일 하겠다고 합니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걸레로 칠판 밑과 선생님 책상, 아이들 책상을 마구 닦고 다닙니다.
“송희야, 그렇게 하면 안 돼! 선생님께 혼난다.”
“진숙이 너 바보! 이케 하는 거야.”
“니가 바보다.”
“나 바보 아니다. 청소도 나 잘해.”
“그 걸레 이리 줘봐, 물 짜내고 줄게.”
“시어, 내 거레다.”
“바보! 거레가 뭐야, 걸레라고 해야지.”
진숙이가 말하자 송이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난 바보 아냐!”
송희는 무척 힘이 셉니다. 제 손으로 걸레를 놓기 전에는, 그 누구도 물이 질질 흐르는 걸레를 빼앗을 수도 없습니다.
송희는 인정도 많습니다. 아이들이 잘못하여 다치거나, 피가 나는 아이가 있으면 금방 달려갑니다.
“아프?, 마니 마니 아프어?”
얼굴을 찡그리며 자기 손바닥에 침을 퉤퉤! 뱉아 친구의 상처 난 곳에 발라 주려 합니다.
“싫어! 저리 가. 더럽단 말이야.”
“이케 하면 안 아프어.”
“저리 가란 말이야.”
“바보, 이케 침 바르면 금세 안 아프대……”
친구들이 싫어해도 송희는 자기가 꼭 해야 되는 일인 줄 압니다.
선생님은 송희 아버지와 여러 번 상담한 끝에 근처에 있는 ‘사랑 학교’에 송희를 전학시키기로 하였습니다. 그곳에는 지금 송희가 다니고 있는 학교보다 더 편하고, 마음에 맞게 공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 제 자식이 뭐 바보입니까? 발육이 좀 늦어져서 그런 것이니 이 아이들과 공부하다보면 나아지겠지요.”
“송희 아버님 말씀도 옳습니다. 그렇지만, 송희는 송희한테 알맞은 과정에서 공부를 하게 해야지요. 그것이 송희를 위하는 일입니다.”
“싫습니다. 바보들만 모인 곳에 우리 아이를 데려다 놓아 송희가 정말 바보가 되면 어쩝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내년에 5학년이 되면, 이제 겨우 우리글을 깨우친 송희는 더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보통 아이들 속에서 키우고 싶습니다.”
“그러는 일이 어른은 좋을지 몰라도, 송희한테는 힘이 많이 들고 더 실망을 느끼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까요.”
“네에, 송이가 바보라는 게 아니라 송희 아버님 말씀대로 조금 늦 게 자라는 것뿐이니, 그 곳에 전학하여 아이에게 맞는 프로그램으 로 공부하다 보면 제대로 자기 자리에 설 수 있게 될 겁니다.”
송희 아버지는 선생님의 많은 이야기를 듣고 나서, 사람들이 특수학교라 부르는 ‘사랑학교’로 송희를 데려 가기로 하였습니다.
선생님은 1교시 후 아이를 데리러 오기로 한 송희 아버지를 기다리면서, 첫째시간 내내 송희를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샌님, 나 어디 가?”
“으응, 더 좋은 선생님과 새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간단다.”
“난, 그래도 가기 싫다.”
“……”
선생님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송희의 눈에 눈물이 맺혔습니다.
운동장가에는 노오란 은행잎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송희가 노란 치마를 팔랑거리며 아버지의 손을 잡고 교문을 나서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창밖을 내다보며 한참을 그냥 서 있었습니다.
늦가을 찬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반 아이들 글짓기 작품을 읽어 보아야 하는 일로 다른 선생님들보다 늦게 교무실을 나섰습니다.
흐린 날씨로 빨리 어두워진 초저녁, 학교 아래 송희네가 살고 있는 동네의 불빛이 빗속에 어른거렸습니다. 며칠 전 작은 손을 흔들며 떠나간 송희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갑자기 송희가 보고 싶었습니다.
‘그 학교에 잘 다니고 있을까?’
선생님은 그런 생각을 하며 교문을 나서고 있었습니다.
“샌님! 나 송희 왔어.”
“아니! 비가 많이 오는데, 우리 송희가 웬 일이야?”
송희가 교문 앞에서 비를 맞고 서 있었습니다.
“오래 기다렸어?”
“응, 정기 불 켜기 전에 왔었다.”
“그랬어? 선생님이 미안해, 송희가 와 있는 줄 몰랐구나.”
“샌님! 이 거 주려고 왔어.”
송희가 하얀 종이를 내 밀었습니다.
“사랑학교 샌님이 똥시 써라고 해 이거 썼지. 나 머리 쓰담어 줬 어.”
“그랬어, 새 선생님한테 우리 송희 칭찬 받았구나.”
“샌님께 보내 주랬어.”
선생님은 송희를 꼬옥 끌어안았습니다. 송희도 선생님 가슴에 얼굴을 묻었습니다.
‘너를 괜히 보냈구나.’
선생님은 가늘게 떨고 있는 송희의 작은 등을 토닥거려 주었습니다. 선생님과 송희는 한 참을 서로 안아 주었습니다. 그러더니 송희가 불쑥 선생님 품을 빠져 나오더니 동네 쪽으로 뛰어가며 소리쳤습니다.
“샌님! 잘 있어.”
재빠르게 달려 내려가는 송희를 선생님은 잡을 수 없었습니다.
“나, 샌님 보고 싶으면 또 올 거다.”
“그래, 송희도 학교 잘 다니고……”
양쪽으로 땋은 머리를 나풀거리며 빗속에 멀어져 가는 송희의 뒷모습을 보자, 선생님은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선생님은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자마자, 송희가 준 하얀 종이를 펴 보았습니다.
송희의 눈물 같은 빗물이 얼룩진 공책 종이에 송희의 마음이 써 있습니다. 동시라며 쓴 서툰 송희 글씨를 보자 세상에서 제일 좋은 보물을 만지는 것 같았습니다.
나 박송희 새 학교 간다
이쁜 선샌님은 놋고 간다
우리 아빠 차 타고 간다
책가팡도 아빠 차 탓다
여필도 아빠 차 탓다
나 신팔도 차 타고 갓다
모두 모두 간다
그치만 선샌님 놋고 가서 미안하다.
정말 송희는 바보가 아닙니다.
선생님은, 송희가 써 준 동시를 선생님 방 책상 앞에 붙여 놓았습니다. 다른 학교로 보냈어도 선생님 마음속에는 착하고 예쁜 송희가 늘 함께 있습니다.
작가의 말
동화는 어린이만 읽는 것이 아니라 봅니다. 나이 든 어른들도 될 수 있으면 동화나 동시를 많이 읽어서 깨끗
하고 밝은 마음과 소박한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가며, 어린이들처럼 순수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다시 엮는 이
이야기들이 한 번 읽고 던져 버리는 이야기가 아닌, 가끔씩 꺼내 보고 그때마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이야기였
으면 좋겠습니다. --김은희 작가
지은이_김은희
김은희 선생님은 강원도 원주에서 출생하였으며, 전주교대와 한국방송통신대를 졸업했습니다. 『아동문예』
에 동화가 추천되어 등단했으며, 40여 년 동안 초등교사, 교감, 장학사를 거쳐 지금은 풍천초등학교 교장으
로 아이들의 꿈을 키워 주고 있습니다.
1993년 창작 단편동화 「난 바보 아냐」가 대교출판 선정 ‘우수창작동화20’에 뽑혔고, 같은 이름의 창작동
화집이 1995년 지식산업사에서 초판 발행되었습니다. 『난 바보 아냐』는 1996년에 한국아동문학인협회
선정 ‘10대 우수창작동화집’, 한국 출판협회선정 초등학교 중학년 필독도서와 경기도립도서관 문화학교 독서
치료교재로 선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