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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김산해
휴머니스트, 2020. 7. 6. - 464페이지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수메르어 판본과 악카드어 판본으로 구성된 점토서판 원문 모두를 음역하고 한역하여 소개하는 작품이다. 즉 악카드어인 셈어 판본, 약 4,000~3,600년 전의 고(古)바빌로니아 시기에 기록된 고바빌로니아 판본, 바빌로니아 카시트 왕조 때 기록된 씬-리키-운니니의 표준 바빌로니아 판본, 그리고 고바빌로니아 이전의 수메르어 판본을 거의 모두 해독하여 소개하는 첫 번째 시도다. 사어(死語)가 된 언어와 문자를 더듬거리고 풀어쓰며 완성된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는 30여 년간 지속된 저자의 힘겨운 수메르 여행길을 마감하는 역작임과 동시에 새로운 여정으로 나아가는 작품이다. 저자는 모든 판본을 깊이 연구하여 한국의 독자들이 읽기 쉽도록 재구성했으며 흥미진진한 해설도 더했다. 이 책의 2부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에서 모두 만나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는 길가메쉬 서사시가 빛을 발하기까지의 과정(1부)과 ‘죽음의 공포’를 최초로 사유한 수메르인과 길가메쉬의 서사를 써 내려가며 느꼈던 저자의 감상문(3부), 길가메쉬 이전 황금시대의 이야기를 288행으로 압축해놓은 수메르 신화의 귀중한 결정판과 수메르 도시국가 키쉬의 왕부터 우루크의 길가메쉬까지 이어지는 왕명록, 수메르를 뒤이어 등장한 최초의 셈족 국가 악카드의 시조 싸르곤 1세에 이르는 연대기(4부)까지 인류 최초의 문명 수메르에 관해 독자들이 궁금해할 모든 정보를 알차게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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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 김산해 - Google 도서 - https://books.google.com.au/books?id=dLkDEAAAQBAJ&printsec=frontcover&hl=ko&source=gbs_ge_summary_r&cad=0#v=onepage&q&f=false
김산해,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휴머니스트.
웅장하다. 치열하다. 그러나 마침내 숙연하다. 인류 최초 고대인의 인생투쟁이 기나긴 세월을 훌쩍 넘어서 21세기 현대인에게도 고스란히 이입되다니! 그저 감탄스러울 뿐이다.
나는 십 년 전에 길가메쉬 서사시를 처음 읽었다. 그러다가 최근 한 번 더 완독했다. 소성리 아침 평화행동 때 창세기 베레쉬트(태초에, 창조신화를 일컫음)에 대해 이야기하자니 그 원조인 길가메쉬 서사시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내가 길가메쉬 서사시에 대해 처음 들은 건 40여 년 전, 신학대학 구약개론 시간에 창조신화를 들을 때였다. 창세기 신화가 세상 기원의 전부인 줄 알았던 착실한 근본주의 청년으로서는 깜놀할 이야기였지만, 지금으로부터 4600여 년 전 고대문서이므로 감히 읽을 엄두는 내지 못하고 그런 신화가 있구나 하는 정도로 지나갔었다.
그러다가 2005년 저자인 김산해님이 국내 최초로 길가메쉬 서사시를 완역 출판했고, 나는 2013년 8쇄 발행 책을 읽은 것이다. 우리가 인류 최초의 고대 문명세계를 알게 된 것은 전적으로 김산해님의 공이다. 쐐기문자(설형문자)인 수메르어, 악카드어 점토서판을 해독한 김산해님의 엄청난 수고 덕에 우리는 말로만 듣던 길가메쉬 서사시의 전모를 알게 되었으니, 이 어찌 감사한 일이 아니랴. 전생이 있다면 자신은 수메르인이었을 것이라는 김산해님은 안타깝게도 2021년 11월 6일에 세상을 떠나셨다.
우리가 길가메쉬 서사시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 이유는 서사 자체의 웅장함도 있지만 히브리족 베레쉬트의 골자가 길가메쉬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오직 베레쉬트를 유일한 창조이야기로 알고 있는 기독교인들에게는 눈이 휘둥그레할 이야기이지만, 사실이 그렇다. 길가메쉬는 베레쉬트에만 영향을 준 게 아니다. 수메르문명 이후 인류사에 명멸한 제국들, 예컨대 바벨론의 애뉴마 엘리쉬나, 앗시리아의 아트라하시스도 모두 길가메쉬를 따랐다. 최초의 영웅 길가메쉬의 전설이 세상 곳곳에 알려져 있었던 고로 베레쉬트의 작가 역시 길가메쉬의 오랜 전승을 참고했을 것은 자명한 이치다.
예를 들면, 신의 모습을 닯은 인간의 창조, 여자의 유혹과 성, 신들만이 가지고 있던 지혜의 습득,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불로초를 강탈한 뱀, 대홍수로 인간을 절멸시키려는 신들의 계획, 인간의 창조주 엔키의 구원, 대홍수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 우트나피쉬팀. 이런 이야기들을 읽어가노라면 잠시 베레쉬트의 행간에 빠져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고 저자는 술회한다.
갈가메쉬는 수메르의 도시국가 우루크 제1왕조의 5번째 왕이었다. 그런데 더 원초적 질문이 있다. 길가메쉬는 역사상 실존인물인가 아니면 신화적 인물인가? 이다. 이게 참 애매하다. 2/3는 신이었고 1/3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석도 시대마다 왔다갔다 한다. 1910년대 학자들은 신 쪽에 비중을 두었다. 하지만 현재는 반대로 실존 인물에 훨씬 비중을 둔다.
길가메쉬는 거인이다. 키는 11완척이며, 가슴은 9완척, 발은 3완척, 다리는 7완척, 보폭만도 6완척이나 된다. 완척은 규빗을 말한다. 팔꿈치에서 가운뎃손가락 끝까지의 길이다. 팔길이가 사람마다 다르므로 대략 43~53센티미터다. 단순하게 키만 측정해보자. 완척의 최소기준인 43센티로만 잡아도 4미터 73센티미터이다. 어마어마하다. 길가메쉬는 키가 5미터 가량 되는, 우리가 그 앞에 서면 메뚜기처럼 보일 만큼이나 거대한 존재이다.
길가메쉬 서사시를 어떻게 소개할까. 무수한 서사 중 길가메쉬에게 가장 핵심인 사건 중심으로 리뷰하겠다.
우루크에는 길가메쉬를 감당할 사람이 없었다. 사람들은 시달렸다. 우루크의 주님 아누에게 호소했다. 신들은 갑론을박을 벌인 뒤, 창조의 여신 아루루를 불렀다. “길가메쉬를 창조하였으니 이제 그의 짝을 만들어내시오.” 아루루는 손을 물에 넣어 씻고서 찰흙을 떼어낸 후 그것을 대초원에 뿌렸다. 거기에서 용감무쌍한 엔키두가 창조되었다. 드디어 둘은 맞붙었다. 젊은 황소처럼 겨루었다. 뭇사람들이 보는 광장에서 대결했다. 두 영웅의 결투에 세상이 진동했다. 용호상박이다. 길가메쉬가 먼저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엔키두는 길가메쉬가 모든 남자 중에 가장 용맹스럽다고 토로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입을 맞추고 친구가 된다.
단짝이 된 두 사람은 삼목산을 호령하는 무시무시한 괴물 훔바바를 제거하기로 한다. 길가메쉬는 욕망에 사로잡혀서 훔바바를 제거함으로 이름을 영원히 남기고 싶어 한다. 그러나 장로들을 비롯하여 모든 이들이 반대한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어머니 닌순은 탄식한다. “오, 샤마쉬(태양의 신)여, 무슨 연고로 제 자식 길가메쉬에게 그런 들뜬 마음을 심어놓으셨나요?” 사람들은 당최 직진을 고집하는 길가메쉬에게 엔키두를 앞세우라고 조언한다.
호기롭게 나섰지만 길가메쉬도 엔키두도 두렵기는 마찬가지. “우리가 따로따로 훔바바를 상대한다면 도저히 이길 수 없습니다.” 이런 말로 서로를 지탱한다. 길가메쉬는 가는 중에 악몽에 시달린다. 엔키두는 그때마다 길몽이라고 감싼다. 드디어 훔바바와 마주쳤다. 그런데 뜻밖에도 결정적 순간에 길가메쉬는 훔바바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하지 못하고 주저한다. 훔바바를 제거하면 그가 가지고 있는 일곱 후광도 사라질 것을 염려하는 것이다. 엔키두는 엄하게 재촉한다. 결국 길가메쉬는 훔바바의 목을 내리쳤다. 싸움은 끝났다. 그가 죽으면서 내뱉은 울부짖음은 삼목산이 벌벌 떨 정도로 대단한 진동이었다. 이리하여 신들의 비밀스러운 성소가 열렸다.
그러나 운명은 냉혹하다. 신들이 두 영웅의 소행을 그냥 두지 않았다. 아누, 엔릴, 샤마쉬가 두 영웅을 놓고 언쟁이 벌어진다. 아누가 말한다. “둘 중 하나는 반드시, 반드시 죽어야만 하느니라!” 엔릴이 말한다. “엔키두를 죽여야 합니다! 그렇지만 길가메쉬는 죽여서는 안 됩니다.” 태양의 신 샤마쉬가 말한다. “내가 그들에게 하늘의 황소와 훔바바를 죽이라고 명령하지는 않았습니다! 때묻지 않은 엔키두가 지금 죽어야 한단 말입니까!” 하니까, 엔릴이 샤마쉬에게 화를 냈다. “네가 매일같이 친구처럼 그들과 어울렸기 때문에 책임은 네게 있는 거야!” 결국 엔키두는 신들의 모임에서 탄핵된다.
엔키두는 길가메쉬 앞에 몸져 누워 있었다. 엔키두는 죽어야 할 운명에 처해 졌다. 길가메쉬는 친구의 죽음을 속절없이 지켜만 봐야 했다. 자신이 죽은 것 같은 비통을 겪는다. 길가메시는 왕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예를 차려 주지만 친구는 떠났다. 길가메쉬는 끝없는 방황에 들어간다. 엔키두의 죽음을 계기로 길가메쉬는 영생을 찾기 위해 방황하며 악전고투한다.
신들은 인간으로서 안 되는 일을 찾아나선 길가메쉬가 못마땅했다. 샤마쉬는 말한다. “너는 네가 찾는 영생을 얻지 못할 것이다.” 영생을 찾으려는 길가메쉬의 분투는 세상은 물론이고, 신들까지 노심초사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생까지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길가메쉬는 천신만고 끝에 우트나피쉬팀에게까지 이른다. 영생을 얻는 최후의 관문이다. 그러나 우트나피쉬팀은 별 말이 없다. 길가메쉬는 빈손으로 돌아가야 했다. 우트나피쉬팀의 아내가 길가메쉬의 풀죽은 모습을 보니 딱했다. “길가메쉬는 여기까지 오느라고 지쳤어요. 진이 다 빠졌지요. 자기 땅으로 돌아가는 그에게 무엇을 선물하실 거죠?” 아내의 속삭임에 우트나피쉬팀은 비밀을 말해준다. “길가메쉬, 음... 무엇가 하면... 식물이 하나 있는데.... 가시덤불 같은... 그 가시는 장미처럼 네 손을 찌를 것이다. 네 손이 그 식물에 닿으면 너는 다시 젊은이가 될 것이다!” 길가메쉬는 그 말대로 물속 깊은 곳까지 내려가서 식물을 움켜 잡았다. 식물의 이름은 ‘늙은이가 젊은이로 되다’ 이다. 드디어 뜻을 이룬 순간이다.
그런데 길가메쉬가 돌아가는 길에 샘 하나를 발견해서 샘으로 내려가 목욕을 하는 중에 뱀 한 마리가 식물을 몰래 갖고 달아났다. 뱀만 좋게 된 것이다. 이럴 수가! 길가메쉬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울었다. 영생을 향한 최후의 결실이 완전 물거품이 된 것이다.
결국 길가메쉬도 임종을 맞이하는 때가 왔다. 신들도 모여서 그의 죽음을 애석해한다. 신들은 길가메쉬에게 인간은 영생을 허락받지 못한다고 충고한다. 신들의 말이다. “오, 길가메쉬! 엔릴은 왕권을 네 운명으로 주었으나 영생은 주지 않았다. 그렇다 하여 슬퍼해서도, 절망해서도, 의기소침해서도 안 된다.”
이상이 길가메쉬 서사의 전모다. 리뷰를 길게 하지 않으려고 압축에 압축을 했다. 말하자면 이것만 읽고 길가메쉬를 안다고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 책은 길가메쉬 서사 말고도 수메르문명과 악카드문명의 실제를 파악하도록 수많은 점토판, 인물상, 유물, 발굴현장을 사진으로 생생히 보여준다. 사진만 보더라도 그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으로 당장 달려가서 확인해보고 싶게 한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듯이 수천년 전 고대인들도 그들 땅에서 문명을 이루고 살았다는 것을 확연히 느끼게 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놀라움을 금하지 못하는 건, 수메르인과 악카드인들이 점토판에 쐐기문자로 기록한 자기들 이야기를 김산해님을 비롯하여 많은 학자들이 해독하고 전모를 파악하여 우리에게 알려준 일이다. 그렇게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을까. 비교하자면 길가메쉬가 영생을 구하기 위해 고투한 것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쐐기문자를 해독한 이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최종 소회. 인류 최초 고대인의 열망이 지금 우리의 열망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우리 앞에 있지만, 그 운명을 긍정하며, 사람으로 우뚝 서야 한다는 것. 절망해서도, 의기소침해서도 안 된다는 신들의 충고는 비단 죽음 앞에서만이 아니고 인생 전반에서 가슴에 새겨야 할 말이다. 김산해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