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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의 신학은 무엇인가?
도올은 신학자인가?
그렇다면 도올은 신학자일까? 분명 유사 신학 도서나 성경 강해서를 쏟아냈으니 신학자라 할 수 있지 않은가? 신학의 맛(한신대 중퇴)을 보았으며 이미 청년 시절 설교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신학의 정통 과정을 끝까지 이수한 적은 없으며 교회 교역자로 봉사한 경험은 없다. 그런데 왜 계속 교회는 그의 신앙과 신학에 일정한 관심을 갖고 우려를 표명하는 것일까? 신학자가 아님에도 이미 그는 신학의 딜레탕트를 넘어선 사람이다.
기독교와 관련된 다양한 책을 집필했다. 하지만 정통 신학자는 아니기에 신학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부분도 존재한다. 문제는 기독교 교리와 역사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그가 기독교 사상적 선지자를 자처하기 때문에 늘 논란은 증폭되어 왔다는 점이다. 신학을 잠시 배운 학자로서 더 늦기 전 신학계에도 돌 하나라도 얹어 놓고 싶은 심정이었을까? 유년의 신앙에 대한 막연한 회귀 본능일까? 그는 분명 신앙과 성경에 관심이 지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박식함과 레토릭을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을까? 누구도 함부로 그의 신학에 직설적으로 이의를 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필자는 비록 도올이 다방면에 탁월한 학자임은 잘 아나 정통 신학자가 아닌 사람에 대한 신학적 평가가 유효한가라는 질문과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보스턴 대학의 생화학 교수를 지낸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도 진화론적 관점에서 창세기 전반부(1-11장)를 강해한 전례가 있다(In the Beginning, Crown Publishers, INC., 1981). 성경 강해에 있어 도올의 선배인 셈이다. 생화학자임에도 그는 J 문서, P 문서와 같은 구약학자들의 새로운 견해를 활용하고 있다. 도올이 다양한 신학자들의 견해를 현학적으로 구사하는 것도 아시모프와 유사하다. 두 사람은 모두 다작의 작가이기도 하다.
조직신학자 스탠리 그랜츠(S. Grenz)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신학자다(Grenz & Olson, Who Needs Theology?, IVP, 12). 신학적 행위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바른 신학, 나쁜 신학, 미숙한 신학, 가짜 신학 등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도올은 정통신학자는 아닐 뿐이다. 따라서 필자는 신학이라는 거창한 학문적 틀보다 그의 세계관 들여다보기를 통해 왜 철학과 사상이 아닌 기독교 신앙과 신학에까지 21세기 선지자가 되려 하는 지 살펴보고자 한다.
도올은 이미 EBS 강좌를 책으로 내면서 자신이 인과율로 엮어진 물리적 환경 속에 살면서 “예수” 사건은 끊임없이 불화와 마찰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고 자신의 <과학적 세계관>을 고백하고 있다(『기독교 성서의 이해』, 2007. 11). 그랜츠의 관점에서 본다면 결국 그는 과학적 세계관을 수용하는 신학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과학적 세계관이 신앙과 신학에서 발휘되기 시작하면 그것은 버트란트 러셀이나 리처드 도킨스와 같은 과학주의자가 되어 버린다.
여기서 착각하지 말아야할 분명한 사실이 있다. 과학은 과학주의가 아니다. 과학주의도 과학이 아니다. 과학주의란 모든 사상을 과학적 지식과 무의미한 생각(nonsense)이라는 두 가지 범주로 나눌 뿐이다. 즉 그들은 발견해야 할 궁극적 실재는 물질이며, 과학적 지식 외에는 유효한 지식이란 없다고 본다. 그렇게 볼 때 도올은 이미 자신은 창조-타락-구속으로 이어지는 기독교 세계관은 안중에 없음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즉 그는 분명 다른 신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도올의 과학적 세계관
과학적 해석을 자신의 세계관으로 수용하고 있는 그의 “상식적 전제”는 그의 철학사상과 더불어 도올의 신앙과 신학을 늘 자신의 고향 천안 삼거리처럼 초월의 신앙과 내재의 과학적·철학적 사고 체계 사이를 서성이게 만들어 버린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릴 수 있는 삼거리는 분명 즐거우나 삼거리 신학은 다른 문제다.
이 같은 삼거리 신앙과 신학은 그의 『요한복음강해』(통나무, 2007)에 그대로 드러난다. 요한복음은 기독론이 중심이 되는 책이다. 그 기독론은 “창조”와 “믿음”을 전제한다. 요한복음에서 ‘믿는다’는 단어는 98번이나 언급된다. 이것은 공관복음이 34번(마태복음 14회, 마가복음 11회, 누가복음 9회) 언급하는 것과 비교할 때 압도적이다. 도올이 좋아하는 불교의 언어로 표현한다면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문제는 요한복음을 접근하는 화두인 것이다.
그런데 그 믿음의 중심에는 바로 기독론이 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성육신하신 분이요 창조주다(요 1:3). 즉 “로고스”는 세상의 창조자다(요 1:1-8). 물을 포도주로 바꾼 가나에서의 최초 이적 사건도 실은 내재의 세상에 임한 창조 사건이다(요 2장 참조). 필자는 식품제조가공기사와 Q.C. 자격증을 가진 대학원에서 환경화학공학을 전공한 신학자지만 물을 포도주로 바꿀 수 있는 식품과학자가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고 당연히 생화학을 배운 사람으로서 믿을 수 없다. 가나의 혼인 잔치 사건은 과학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사건이 아닌 것이다. 즉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일어난 이 이적 사건은 예수 자신이 누구인지를 미리 드러내면서 공생애를 시작하기 위한 소박해 보이지만 예수 자신이 누구인지를 스스로 밝힌 실은 위대한 “창조주 선포”였다.
과학적 세계관을 가지고 선지자로?
과학적 세계관을 가진 도올이 이 “포도주 창조 사건”을 믿을 리가 없다. 따라서 도올의 요한복음 강해는 전통적 교회의 성령 역사의 교리를 필연적으로 이탈하면서 세상 속 자유를 만끽하게 된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지 못한 영혼은 과학과 더불어 신나는 유희를 즐긴다. 이적으로 가득 찬 요한복음은 사상적 유희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리고 대중들은 “호산나” 외치던 손으로 신나게 박수를 친다. 눈물의 예레미야는 사라지고 하나냐(Hananiah) 같은 축복과 번영의 거짓선지자들이 그 자리를 대체한다.
그런데 도올은 요한복음의 예수를 창조의 주요, 믿음의 주요,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어야 할지 늘 서성인다. 이걸 정면으로 거부하여 기독교를 모독하고 최대 이단이 되는 길을 떳떳하게(?) 갈 것인지 아니면 삼거리를 서성이는 모호한 전략으로 나아가 범 기독교의 곁에 밀착하여 방어벽을 치고 선지자적 명성(?)도 유지할 것인지 주춤거린다.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그의 마지노선은 이렇게 늘 안개 속에 덮여 있다.
하지만 이미 그는 자신의 성경관을 다룬 책 『기독교 성서의 이해』의 제 1장에서부터 예수의 이적을 다루면서 자신은 과학적 해석을 자신의 세계관으로 수용하고 있다(『기독교 성서의 이해』, 11쪽)고 했으니 삼위일체 창조주로서의 예수(요 1:3; 고전 8:6)든 예수의 이적이든 그에게 있어서는 온통 “과학적·합리적 세계관을 지니지 못한 세계관 발생 이전의, 비이성적 세계관의 사람들의 특수한 인식체계일 뿐”이라고 신앙과 기독교 교리의 역사(Norma Normata)를 무참히 짓밟아버린다(『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 1장 예수의 이적, 14쪽).
그러고도 자신은 그러한 "인식체계의 특수한 문학 장르의 표현기법으로서 합리적인 해석을 얼마든지 멋있게 해낼 수 있다"(『기독교 성서의 이해』, 14쪽)고 했다. 과학주의 사상가, 철학자답게 그는 철학의 출발 본질이었던 자연철학(Physica)으로 성경을 아주 멋지게 요리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게 믿음에 대한 자신만의 만용을 자랑한다. 그가 온 천하에 선포하는 자신의 성경관이요 신앙관이다. 그러면서 그는 또 다시 삼거리로 나아가 모호 전략을 구사한다. 그래야 끝까지 정통 교회와 신앙과 신학을 농락하는데 유리하기 때문일까? 모호함이든 스파이 전략이든 그는 이미 자신의 신앙관만큼은 적나라하게 고백했다고 보면 틀림없다. 여기서 그의 참 선지자관이 나오게 된다. 모든 교회와 신학은 철저히 무시되고 자신은 미래 한민족의 유일한 참 된 선지자로 우뚝 선다.
도올의 요한복음강해<“자가 복음”을 만들어내는 도올의 급진적 시도들>
도올의 요한복음
그의 내면에 흐르는 제천인(堤川人)의 기질은 이때 발휘된다. 창조와 믿음을 배제한 채 과학적 사고를 따르는 도올은 아예 스스로 신학 창조의 radical한 시도를 밀어붙인다. "자가 복음"이요 "자기 복음"이다. 역사 속 정통 신학이란 그에게 있어 적폐 신학일 뿐이다. 그러면서 요한복음이 아니라 도올의 요한복음을 만들어버린다. 그 뿐 아니다. 그는 자신의 기독교 관련 책들에서 정통 밖의 유사 서적들을 적절히 부활시킨다. 앵벌이에 나서는 유사 시민 단체들이 독버섯처럼 피어나듯 이들 유사서적들은 뜸팡이가 아닌 유해한 곰팡이를 피워댄다. 그리고 독자들은 그 위해성을 평가할 신앙의 DNA나 FDA가 부족하기에 유해한 포자를 그대로 흡입해버린다.
그렇게 내재(內在)의 눈으로 볼 때 초월의 창조나 창조주는 사라지고 삼위일체로서의 성령의 역사란 유치한 시대의 낡은 개념으로 추락해버린다. 그 같은 세상을 보며 도올은 빌라도나 유대 지식인 뺨치는 자신의 저력이 성령의 역사로 이어져온 성경 속 “예수의 모형”(Norma Normans) 저격에 성공했다고 분명 자기의 골방에 은밀히 들어가 그 특유의 “개콘” 스타일로 박장대소할 것이다.
도올의 성령론
성령론에 있어서도 그 전략은 유효하다. 예수는 요한복음에서 성령을 보혜사(保惠師)로 설명한다(요 14:16, 26; 15:26; 16:7). 성령에 대해 가장 명백하게 가르치는 요한복음을 폄훼해야 도올은 자신의 모호한 전략이 성공할 수 있다. 도올은 예수는 “예수의 재림을 보혜사라 하는 성령의 인격체로 대치하여 재림의 물리적 성격을 완화시켰다”고 했다(『요한복음 강해』, 389). 아주 독특한 해석법이다. 이게 그의 요한복음 성령론의 전부다. 참으로 허망하다. 말이 요한복음 강해서이지 그는 요한복음 서(序)와 1장 강해에 집중할 뿐이다.
도올의 요한복음 1장 강해
요한복음은 총 21장으로 되어있다. 도올은 자신의 책 요한복음 강해에서 장황한 서론(1-67쪽)을 뺀 21장 강해 414쪽(68-481쪽) 가운데 오직 1장에만 무려 109쪽(68-176쪽)을 할애하고 있다. 전체 강해의 25%가 넘는 분량이다. 나머지 20장 강해 분량은 평균 15쪽이다. 사실 삽입된 요한복음(영어 성경 RSV와 한글 신 개역) 본문을 빼면 나머지 강해는 그 분량에 있어 아주 소박하다. 예를 들어 설교자들이 중시하는 예수의 마지막 고별 기도(The Farewell Prayer)가 담긴 요한복음 17장 강해는 성경 본문(RSV, 신 개역)만 7쪽이요 도올의 본문강해는 렘브란트 삽화 포함 겨우 두 쪽 분량에 불과하다. 부실함을 넘어 충격적이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다면 전혀 있을 수 없는 본문 해석이다. “인간을 진리로써, 진리 안에서 거룩하게 하라!”는 이 한 메시지(17장 17절)가 요한복음의 전체 테마인 동시에 모든 인간의 종교·철학·문학·예술의 보편 테마라고 도올이 주장하기에 더욱 그렇다. 즉 그는 요한복음 1장에서 실은 자신의 세계관과 주요 사상을 몽땅 말해버렸다고 보면 된다. 도대체 도올은 요한복음 1장에서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
놀랍게도 그는 요한복음 1장의 중요한 기독론인 그리스도의 창조주 되심(요 1:3; 10)을 완전히 배제해버린다. 그의 과학적 세계관 속 신앙관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그것을 숨기기 위한 삼거리 두리번거림의 전략은 여기서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는 "말씀"(logos)을 믿고 해석하기보다 이 “로고스”를 자신의 현란한 현학적 철학 지식을 자랑하는 데 집중한다. 마치 철학 물 좀 먹었다는 형이 동네 후배들 모아 놓고 고향 삼거리 능수버들 아래서 막걸리 한잔하고 철학적 지식을 동원하여 세상을 논하듯 그는 자신의 철학적 지식을 동원하여 요한의 “말씀”을 철학의 “로고스”로 치환한다.
초대 철학자들이 질료의 운동성 문제를 다루며 만유의 실체가 변화하는 지 아니면 영원히 불변의 존재로 항존하는 지를 고민할 때 두 철학자가 등장한다. 에베소의 헤라클레이토스가 영원한 실체는 우주적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불”을 근원으로 부단히 <변화 한다>고 본 반면 형이상학적 엘리아학파의 한 사람이었던 파르메니데스는 우주를 단일한 <항존적 존재>로 그렸다. 도올은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는 명제는 파르메니데스적 세계관을 나타낸다고 보았고, 제2절과 제3절의 “로고스”는 헤라클레이토스적 세계관을 나타낸다“(『요한복음강해』, 제 1장, 100쪽)고 보았다. 이 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의 분열과 융합이 요한복음의 끊임없는 주제를 형성하니, 우리는 분열의 측면만을 강조해서도 안 되고 융합의 측면만을 강조해서도 안 된다”(같은 책, 100쪽)는 것이 요한복음을 읽어나가는 묘미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도올은 아무도 헤라클레이토스와 요한복음의 저자를 연결시키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면서 헤라클레이토스를 이해하면 요한의 로고스기독론(Logos-Christology)을 본질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수많은 실마리들을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요한복음강해서』, 78-80). 신학자가 강단에서 신학도들에게 헬라적 세계관을 비판적으로 소개하기 위해 이 같은 배경 강의는 충분히 할 수 있다. 하지만 목사나 신학자가 이 같은 강해서를 냈다면 그것은 자유주의 신학을 넘어 즉시 해괴하고 유치한 담론으로 매장될 것이다. 이것이 도올의 신학이다. 그 당돌함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로고스기독론은 가볍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사실 로고스기독론은 교리사에서 그리 간단하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알렉산드리아신학이 말하는 로고스 사상(기독론)은 창조주 하나님이 어떻게 인간이 될 수 있을까? 또한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 분은 창조주 하나님인가? 아니면 피조물인가? 둘 다 정확한 진술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떻게 하나님과 피조물의 속성을 동시에 가진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설명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를 다룬 교리사 초기의 중요한 논쟁점이었다.
피조물인 인간은 창조주가 아니기에 이 같은 오묘한 섭리를 완벽하게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그 참 된 본질과 속성을 사실 제대로 이해하거나 체험할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았기 때문일까? 온전한 예수의 상(像)을 그리지 못할지라도 인간은 그 속성상 자신 앞에 놓인 과제를 그대로 방치하고 넘어가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와 그 분의 인격과 본성들에 대한 교리를 기독교는 그동안 기독론이라는 이름으로 중요하게 여겨왔다.. 기독론은 기독교의 중심 교리인 셈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었다면 기독교의 교리는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구약에 예언되고 신약에 묘사된 예수는 과연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로고스 기독론은 바로 그 해석의 역사 속에서 나온 견해였다.
헬라어의 로고스(logos)는 본래 “말씀”, “생각”, “이성”, “강론”, “논리”, “생각의 표현”, “인간 정신”, “사물의 근거”, 수학에서는 “비례”, “척도” 등 다양하게 사용되던 단어다. 기록 속의 이 단어는 호머의 <일리어드>에 나타난 비전문적 용어였다. 그런데 철학적 의미로 이 로고스를 처음 사용한 철학자는 도올의 설명대로 불(火)을 만물의 기원이라고 생각한 에베소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 주전 500년 경)였다. 그는 로고스를 사물의 배후에 있는 세계의 신적 정신이요 유동(변)하는 우주에서 오직 단 하나의 안정적인 요소로 보았던 것이다.
플라톤(주전 427-347)은 로고스를 마음과 더 밀접한 것으로 본 소피스트들과 유사하게 로고스를 사상과 말과 사물을 결합한 보다 큰 실재로 보았다. 다만 그 로고스는 사물로부터 획득할 수 있는 것으로 또한 사물을 해석한다고 보아 이데아와 구분하고 있다.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주전 384-322)는 로고스를 말과 이해력으로서의 로고스와 말과 이해력의 결과로서의 이해력으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그 로고스는 행동으로 옮겨지기에 인간 특유의 덕(德)이 나오는 원천으로 간주했다. 스토아학파는 헤라클리투스와 유사하게 로고스를 ”우주 만물을 합목적적으로 지배하는 법칙“으로 이해한다.
헬라적 유대교인이었던 필로(Philo, 주전 20-주후 50)는 이 용어를 세상이 창조될 때 사용된 도구요, 초월적인 창조주 하나님과 물질세계를 잇는 다리로 이해했다.
성경에 “말씀”으로 번역된 이 "로고스(Logos)"는 본래 라틴어, 독일어, 영어에는 동일한 어의(語義)가 없는 헬라어만의 아주 독특한 단어다. 이 용어를 사도 요한은 “예수”가 곧 헬라어의 “로고스(말씀)”이라는 놀라운 계시를 요한복음(1:1-3)에 기록한다. 이렇게 “로고스”는 성경 칠십인 역(譯)과 신약 성경에 자주 나타나는 단어가 되었다.
알렉산드리아의 <로고스-육신 기독론>과 안디옥의 <말씀-인간 기독론>의 충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초대 교회는 알렉산드리아의 로고스 사상(<말씀(로고스)-육신 기독론>)과 안디옥(시리아) 기독론(<말씀-인간> 기독론)이 충돌한다. <말씀(로고스)-육신 기독론>은 그리스도를 완전히 통합된 위격으로 본다. 이 개념을 최초 만든 사람은 수리아지역 라오디게아의 주교였던 아폴리나리스(Apollinaris/(라) 또는 apollinarios(英), 약310-390)였다. 아리우스에 반대하던 그는 그리스도의 참 된 신성을 옹호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 기독론의 견해가 알렉산드리아파의 주장으로 알려진 것은 북아프리카 알렉산드리아의 신학자들이 조심스럽지만 아폴리나리스의 견해를 따랐기 때문이다. 아폴리나리스는 예수가 신적인 로고스와 인간 육신의 결합으로, 예수는 “하나의 본성(one nature)"을 보여준다.
이 주장에는 완전 통합되었다면 인성의 불완전함 또는 신성의 가변성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있다. 반대로 안디옥(시리아) 기독론인 <말씀(로고스)-인간> 기독론은 그리스도는 완전한 신성과 완전한 인성을 가진다고 보았다. 즉 그리스도를 신성과 인성이라는 두 개의 본성을 가진 분으로 본 것이다. 이 주장의 주창자는 몹스에스티아(다소의 동쪽)의 데오도르(Theodore of Mopsuestia, 약 350-428)였다. 이 주장에는 위격의 나뉨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 같은 논쟁의 발생은 인간은 성육신의 존재가 아니기에 인간은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어떻게 상호 관련 되는 지 살펴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논쟁의 심각성은 이 논쟁이 개인적 감정싸움으로 더욱 크게 확대되고 촉발되었다는 점이다. 당시 교회는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안디옥과 알렉산드리아가 경쟁하고 있었다. 그리고 권력은 로마에 있었다.
이 복잡한 구조 속에서 안디옥과 알렉산드리아 사이에 갈등이 일어났는데 좀 더 그리스도 안에서 뜨거운 논쟁과 토의를 거쳐 결론을 도출하기 전에 감정싸움으로 번져 상대를 그만 서로 파문과 추방이라는 정치적 행위로 해결하려한 안타까움이 역사 속에 남아있다.
즉 알렉산드리아의 대주교 시릴(Cyril, 444년 사망)과 안디옥의 견해를 대변한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네스토리우스(훗날 동방의 경교로 발전) 사이의 충돌로 시릴의 강한 성격은 네스토리우스에 대한 적개심을 키워 논쟁 중에 그만 네스토리우스를 정죄하고 말았다(431년 에베소 공의회).
네스토리우스뿐 아니라 아폴리나리스도 아리우스(도올은 물론 이 아리우스도 적절히 두둔하면서 부활시키고 있다)를 반대했던 공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을 부정한 이단으로 정죄(제 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된 것을 볼 때 참 된 진리의 바른 신학의 길로 가는 것이 얼마나 험난한 길인가를 깨닫게 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초대 교회가 좀 더 냉철하고 치열한 논쟁과 토의 속에서 각자의 견해 속에 있는 서로간의 주장 속에 있는 쟁점의 장단점들을 잘 판단하고 기도하면서 서로를 끝까지 설득하고 끝까지 보듬어 안으면서 일치된 결론을 도출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있다. 하나님의 섭리는 그것이 아니었을까요? 아니면 인간의 죄성과 미숙함 때문이라 해야 할까? 이 논쟁의 내막을 살펴보면 인간이 얼마나 감정적인 존재인가를 느끼게 된다. 아무튼 역사는 이 주제에 관한한 알렉산드리아의 편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미세조정의) 논의는 여전히 남아있다고 할 수 있다.
로고스기독론 신학에 대한 도올의 인식
이만큼 로고스기독론 논쟁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올은 마치 로고스기독론을 잘 아는 것처럼 가볍게 지나쳐버린다. 그뿐이 아니다. 한술 더 떠 그는 불트만을 동원하여 세례는 페르시아나 바벨론의 신화적 구조에서 왔다거나, 영지주의 만다이즘(Mandaeanism)과의 직접적 교섭에서 생겨났을 거라고 소개(Jesus and the World 24)하거나 “세례는 동방에서 왔다”며 실상은 “우리나라 무속에서 발견된다는 정화예식이 오히려 기독교세례의 프로토타입(Prototype)일지 모른다”고 예수의 세례 받음을 격하시킨다. “한국 교계의 가장 큰 맹점이 교리적 예수를 역사적 예수로 착각하고 있다”는 점이라면서 “이 오류를 광정하는 데 도마복음서가 한없이 유용한 자료를 제공한다”(『도올의 도마복음 이야기』, 198)는 도올의 주장을 보면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영지주의 위서들까지 동원해 한국 기독교신앙의 환단고기화 작업까지 나아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시카고 드폴대학의 역사적 예수연구가 존 도미닉 크로쌍(J. D. Crossan)을 동원해 “야고보가 예수 가족 중 맏형으로 동생 예수의 천국운동을 뒤에서 후원한 사람”이라기에 하는 말이다(『도올의 도마복음 이야기』, 264). 이렇게 예수의 기독론은 도올의 “아래로부터의 신학”에 의해 일거에 무시당해 버려진 주제가 되어버렸다.
성경의 창조 계시, 그 독특성
다른 모든 종교의 경전과 구별되는 성경의 특별한 점은 성경이 창조와 창조주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되는 유일무이한 계시라는 점이다. 이 창세기 창조 해석은 과학적 세계관으로 바뀌지 않는다. 이 “창조”는 인간이 현대 과학과 기술에 눈뜨기 전부터 인류에게 내려진 창조주의 계시였기 때문이다. 즉 이 계시의 특징은 세상에 태어난 아기들이 언어라는 약속을 배우며 전혀 모르던 세상의 구조를 깨우치는 것처럼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의 믿음의 영역에 주신 초월 계시였다. 창조주는 결코 변덕스러운 하나님이 아니다. 진리는 결코 부정되거나 수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초대 교회의 초월적 창조 계시에 대한 해석도 19세기 나타난 자연과학이라는 내재적 학문으로 수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해석 방식은 현대과학을 기준으로 판단하여 창조주 하나님을 변덕스럽거나 미숙한 분으로 인간을 오도하게 만들 수 있는 치명적 틈새가 있다.
성령은 교회 역사를 통해 이미 초대 교회부터 바른 성경 해석의 실마리를 인도해왔다고 보아야 참 된 계시인 것이다. 지금도 자연과학은 창조가 단일신(one God)이 아닌 삼위일체 하나님(triune God)의 창조 사역이라는 점을 파악조차 하지 못한다. 자연과학이 무언가를 드러낸다 해도(롬 1:20) ‘참된 하나님’이나 ‘궁극의 하나님’을 말하지 못하는 이유다.
칼빈은 이 같은 난제에 접근을 시도했던 학자였다. 유신론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이끌기 위해 칼빈은 창조주 하나님인 동시에 구속주 하나님이신 하나님을 아는 이중 지식(duplex cognitio Dei)을 말한다. 16C 기독교 신학은 1세기 초대교회로부터 칼빈 때까지 그만큼 점진적 발전을 한 셈이다. 다만 역사 속 계시의 점진적 이해와 과학에 따른 성경 수정은 다른 차원이니 오해를 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신학은 이미 교회 초기부터 이 삼위일체의 창조 사건을 논증하고 있었다. 이 해석 방식은 교회 역사 속에서 수정되어 온 적이 없다. 기독교는 성경을 창조주 하나님의 유일한 특수 계시로 믿는 종교다. 그렇다면 도올은 이 문제를 어떻게 접근하고 칼빈은 어떻게 접근했을까? 이 문제를 살펴보자.
칼빈의 창세기 창조 해석 방법론과 도올의 창조관
1) “모든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주심”을 오해한 도올의 창조관
칼빈은 창조주 하나님이 늘 우리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자화상을 그리신다고 보았다. 즉 하나님은 계시를 주실 때 우리 인간의 지성과 마음의 능력에 적응(accommodation)하신다. 수사학에 능한 좋은 웅변가는 청중의 한계를 잘 알고 거기에 적응한다. 하나님은 우리 수준으로 오시기 위해 몸을 굽히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영(요 4:24)이심에도 불구하고 때로 입, 눈, 손, 발을 소유하신 분으로 자기를 의인화하여 나타내신다.
따라서 칼빈은 어거스틴(Augustine, 354-430)을 늘 존중하면서도 때로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언어를 구사하는 어거스틴 방식의 수사(修辭)까지 좋아하지는 않았다. 칼빈이 신인동형(神人同形)설이라는 언어 자체를 달가워하지 않았음에도 그런 해석의 여지를 남긴 이유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도올은 놀랍게도 어떤 주석가들의 책에서도 접근하지 않던 “아래로부터의 철학”으로 성경과 초월의 창조 신앙을 판단한다. 그 같은 아래로부터의 철학(또는 신학)으로 위로부터의 초월 계시를 이해한다는 것은 도무지 불가능하다. 도올은 “모든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온갖 현학적 수사를 동원하여 자신의 “철학적·사상적 놀이터”로 만들어버린다.
어찌 보면 도올은 칼빈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을 자신의 신앙과 신학의 중심 주제로 삼은 것과 적나라하게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다. “삼위일체론은 비성서적 논쟁”(『기독교 성서의 이해』, 109)이라며 자신의 똑똑함을 현란하게 구사하며 영웅 심리를 표출(도올은 자신의 이 같은 영웅 심리가 이미 어릴 적 큰형과 관련하여 느꼈던 자신의 착각에서 시작된 것 같다고 고백하고 있다. 『사람의 과학』, 김용준 지음, 24-25쪽 참조)한다. 도올과 달리 법학과 성경과 신학에 두루 능통하며 라틴어를 비롯한 언어의 천재 칼빈은 예수의 레토릭처럼 “보통 사람들이 모두 이해하기 쉽게” 자신의 저서를 기술하고 있는 것에 주목하라. 도올은 유년 시절부터 칼빈의 장로교단 출신이 아니던가.
도올도 “부처의 깨달음 속에는 심리학적, 학적인 내용이 있으나 예수의 말씀에는 그런 학적이고 이성적이고 사변적인 내용이 없다”(『기독교 성서의 이해』, 167)고 한 점에서 예수의 선포가 지니는 의미를 일부 알았다고 보여 진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회개와 구원의 복음을 전한 예수의 단순하고 용이한(brevitas et Facilitas) 선포가 도올이 보기에는 헬레니즘의 지적 분위기를 전혀 모르던 갈릴리 촌뜨기의 강론으로 들렸을 것이다(『기독교 성서의 이해』, 167).
2) “초대 교회 해석 방식”을 존중한 칼빈과 교회의 역사성을 무시한 도올
창조 해석에 대해 칼빈은 바실리우스(Basillius, 329경-379)나 암브로스(Ambrose, 339-397)의 이해를 받아들인다. 신앙적으로 본다면 역사 속 존경 받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성경 속 창조 해석을 성령의 역사로 수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들 견해의 기본 특징은 전통적으로 기독교가 수용하는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였다. 칼빈은 물체가 영원 전부터 존재했다고 하는 (플라톤 같은 철학자들의 생각이나) 이방신을 숭배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수용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조화의 하나님이요 완벽한 하나님이었다.
도올은 반대로 신앙과 신학의 역사를 무시해버리며 자기의 주관적인 신앙과 신학과 사상의 지식을 동원하여 기독교와 성서 주석에 용감하게 뛰어들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놀랍게도 도올이 귀하게 참고하는 서적들이란 온통 초대 교회의 해석 방식과 정면 배치되는 영지주의 나그 함마디문서(그 라이브러리 안에 도마복음서도 있음)나 불트만과 같은 현대신학자들의 저작물들이다. 마치 좌파 운동권들이 몇몇 편향된 서적만 편식하여 그 두뇌가 21세기에 화석화되어버린 것과 유사하다. 그의 유년기와 청년기 열정적이었던 신앙이 교회의 역사자체를 무시하며 사상과 독서의 편식을 통해 화석화되어 버린 것이 아닌 가 우려된다.
3) 과학적 해석에 대한 칼빈의 생각과 도올의 생각
칼빈은 창세기를 주석하면서 과학의 문제에 있어서는 매우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한다. 칼빈은 창세기를 주석하면서 성경에서 천문학이나 고도의 기술을 배우려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따라서 마치 성경을 과학 서적처럼 다루는 일에 대해 강력히 경계한다. 왜냐하면 모세는 단지 미개인들조차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방식으로 성경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의 해와 달에 대해 주석하면서도 칼빈은 “창세기는 철학적으로 우리에게 말하지 않으며 단지 어느 정도 밝게 우리들에게 비추는지를 말하고 있다”고 했다.
신비한 세계를 더욱 깊게 탐구하려면 성경이 아니라 그 방면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칼빈이 보기에 창세기를 서술한 모세는 과학의 언어가 아닌 단지 우리 눈에 보이는 현상을 그대로 우리에게 알려줄 뿐이다. 칼빈은 “만일 모세가 일반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상세히 말했다면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은 그러한 문제를 도무지 알 수 없다고 그에게 호소했을 것이다.”고 했다. 즉 창조주 하나님은 21세기 우리들도 잘 이해 못하는 뉴턴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나 슈뢰딩거의 방정식을 동원하지 않으셨다.
이렇게 성경의 창조 이야기는 사람들의 수준과 능력에 적응한다. 이것을 문자적, 과학적 묘사로 보면 안 된는 이유다. 창세기의 기자(아마 모세)는 학식 있는 사람뿐 아니라 배우지 못하고 원시적인 사람들의 교사로도 임명되었다. 그 때문에 창세기 저자는 배우지 못한 조잡한 교육 수준의 입장에 서지 않고는 그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김성봉 박사(전 안양대 신학대학원장)는 칼빈의 이 같은 “적응의 방법”이 오늘날의 목회적 관심까지 염두에 둔 해석 방법임을 상세히 논증한다.
그렇게 볼 때 칼빈에게 있어 창조의 6일은 과학적인 24시간의 여섯 단위가 아니었다. 칼빈은 순간 창조 개념을 반대하였다. 성경은 주전 4천 년 전에 창조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 아니었다. 확장된 시간 개념을 나타내기 위해 인간의 사고방식에 적응한 것이었다. 칼빈은 그에 따라 궁창 위의 물도 물이 아니라 구름으로 해석한다. 이것은 오늘날 창조과학(creation science)과는 조금 다른 해석 방법이다. 즉 칼빈에게 있어 이 모든 것들은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것들이었다. 그 계시들은 모든 인류, 모든 역사, 모든 인류의 남녀노소, 지식고하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적응된 것이다.
성경을 과학도서로 보면 안 된다는 점에서는 칼빈과 도올이 일치하나 그 접근법은 전혀 다르다. 칼빈은 창조주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무지하고 무식하며 죄 많은 인간들이 누구나 현대 과학과 과학의 접근법을 모르더라도 구원의 길로 들어갈 수 있다고 주석한 반면, 도올은 자신이 큰형님 김용준 장로가 유학시절 책으로 접했다는 불트만처럼 성경은 온갖 “무식하고 무지한 고대 사람들의 신화와 허무맹랑한 이야기들로 가득 찬 책”으로 보았다. 따라서 보통사람들이 함부로 접근할 책이 아니라 자신 같은 대석학만이 해석할 자격이 있는 책이다. 그러니 성경도 자신과 같은 과학적 세계관을 가진 학자들이 과학으로 계몽해야 한다. 그럼 과학 이전 사람들의 성경 해석은 어찌할 것인가? 과학의 질서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의 계시가 그렇게 미숙했단 말인가? 과학 시대가 도래 하였으니 성경은 이제 해체하여 다시 해석해야 된단 말인가?
4) 칼빈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오해와 도올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
지동설은 갈릴레이(1564년 ~ 1642)보다 16세기 코페르니쿠스(1473 ~ 1543)로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마르틴 루터와 칼빈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 알고 있었다는 것과 그것을 부정했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칼빈의 시대 루터란주의자들은 지동설의 의미를 알고 책망하고 있었다. 그래서 칼빈도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지 않다는 주장을 창세기 주석에서 비난하고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Andrew Dickson White, A History of the Warfare of Science with Theology (New York: Free Press, 1965), 123: "While Lutheranism was thus condemning the theory of the earth's movement, other branches of the Protestant Church did not remain behind. Calvin took the lead, in his _Commentary on Genesis_, by condemning all who asserted that the earth is not at the centre of the universe. He clinched the matter by the usual reference to the first verse of the ninety-third Psalm, and asked, "Who will venture to place the authority of Copernicus above that of the Holy Spirit?" Turretin, Calvin's famous successor, even after Kepler and Newton had virtually completed the theory of Copernicus and Galileo, put forth his compendium of theology, in which he proved, from a multitude of scriptural texts, that the heavens, sun, and moon move about the earth, which stands still in the centre."). 그러나 이것은 기독교와 과학의 입장을 대결의 관점에서 본 앤드루 딕슨 화이트(Andrew Dickson White)의 일방적 주장일 뿐 칼빈의 창세기 주석 어디에도 그런 구체적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리처드 도킨스나 버트란트 러셀 같은 기독교와 유신론에 비판적인 학자들이 자신들의 책이나 논문에서 칼빈이 지동설을 비판했다는 그릇된 인용을 하는 것은 바로 이 화이트의 논문을 잘못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설령 칼빈이 당시의 과학적 지식에 적응하여 잘못 해석 할 수 있는 여지도 있었다고 본다. 칼빈은 당시 천문학 지식에 적응하여 달이 불명료한 물체라는 것을 인정하나 캄캄한 물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칼빈은 달이 불타고 있는 물체일 것이라 보았다. 즉 달은 발광체라고 말한다. 성경이 달을 광명(창 1:15-16)이라고 부르니 성경에 적응하면 달이 광명이라는 것은 옳다. 그러나 천문학적으로는 논란의 여지가 생긴다. 물론 지구도 광명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달이나 지구가 그 중심에 뜨거운 마그마를 담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또한 그 실체에 대한 해답이 간단하지는 않다. 즉 발광체든 아니든 그것이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칼빈 해석 방법론의 자유함이 여기에 있다.
도올도 자신이 사람들에게 많은 오해를 받고 있다고 착각할지도 모른다. 이미 도올은 노자 전문가, 불교도들에게도 그 방면의 미숙한 해석에 대해 다양한 지적을 받아왔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에게도 자신이 오해 받고 있다고 여길 수 있다. 이미 그는 그런 뉘앙스를 자신의 글에서 여러 번 밝히고 있다. 늘 자신을 개척자요 선지적 사명을 지닌 인물로 자평하기에 충분히 그러할 수 있다. 하지만 평가는 평가다. 그리고 그 평가는 역사성을 가진다. 칼빈의 주석과 저서들이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평가를 거쳤던 것처럼 도올도 자신이 용감하게 해석한 계시의 책 성경 주석에 대한 평가를 피해갈 수는 없다. 그리고 그 책임은 무겁다. 보통 사람과 달리 선생의 책임은 무거운 법이다.
5) 진리 안에서 자유로운 칼빈의 적응 이론 그리고 현학을 좋아하는 도올
과학자들의 견해도 결국 시대를 반영한다. 따라서 과학자들의 견해도 당연히 오류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지난 과학자들을 모두 오류투성이의 위선자들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칼빈도 당연히 16세기 제한적 지식 아래 잘못 말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은 “적응 이론” 아래에서 칼빈은 자신이 과학적 설명이 필요한 부분에 있어 성경 해석의 오류를 범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부담에 대해 자유 할 수 있었을 거라는 추정이 가능해진다.
이런 것이 과학의 문제에 대한 칼빈의 성경 주석이 미숙했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결코 안 된다. 칼빈은 성경 원문을 철저하게 연구한 사람이었다. 칼빈은 탁월한 성경 원문 연구가였던 것이다. 이런 자세는 당시 유럽의 인문주의 상황을 반영한다. 즉 칼빈이 성경 해석에 있어 과학의 문제에 대해서도 결코 대충 넘어가는 수준의 능력이나 성품을 지닌 인물이라고 판단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칼빈은 성령이 “저속하고 교육받지 못한 무리들로 하여금 배우는 길을 막아버리기보다는 오히려 우리와 함께 말을 더듬거리는 쪽을 선택했다”고 주석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몸을 떠는 방식으로 몸을 떠시는 분이다. 즉 하나님은 우리가 아기들과 대화할 때 눈높이를 아기들 수준에 적응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인류에게 계시를 주시고 적응하신다.
그런 면에서, 칼빈이 보기에 성경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는 사람들의 지동설에 대한 비판에 대항해서 수학적 물리적으로 난해한 점들까지를 알게 하려는 것이 모세나 선지자들의 의도는 아니었을 것임이 분명하였다. 모세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보통 사람들이 쓰는 언어에 자신을 적응시킨 것이다. 이렇게 기독교 신학의 전통은 창조주 하나님의 계시가 보통 사람들의 눈높이에 적응하고 있음을 알고 창세기 1장 해석에 있어서도 과학이나 신학이나 팔레스틴의 어떤 문화적 배경에 집착하지 않고 계시의 사실성을 믿는 가운데 열려 있었다.
반면, 도올은 이 같은 계시의 사실성에 주목하기보다 성경 해석에 있어 오히려 현대 과학이나 철학 사상 그리고 정통 신학보다 현대 신학이나 팔레스틴의 어떤 문화적 배경에 집착한다. 그런데 그는 대단히 현학적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왜 철학사상가가 과학에까지 그렇게 넘보게 되었을까? 그 현학적 사상관은 장형 김용준 장로를 따라 과학적 현학에까지 이르게 된 건 아닐까? 여기서 과학적 세계관을 가졌음을 늘 표방하는 도올의 성경 해석 방법론을 추정할 수 있게 된다. 과학적 세계관으로 무장하고 학문의 칼을 휘두르기를 즐기는 그의 신학 전개 방식이 어떤 길로 가게 될 것인지는 이미 결정 났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진리 안에서의 자유로움보다 아래로부터의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번거롭다. 세상을 쫓아 신나게 보통사람들을 계몽하며 사는 것이 지식의 영웅인 자신의 사명이라 여긴다. 도올이 볼 때 성경을 계시로 믿는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다.
6) 칼빈은 진화론자인가? 도올은?
성경무오론의 선봉에 섰던 철저한 칼빈주의자였던 프린스턴의 벤저민 워필드(B. B. Warfield, 1851-1921)조차 “칼빈이 가졌던 창조의 신조를 올바로 이해한다면 인간의 영혼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진화론적인 창조였다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면서 “칼빈은 의심할 여지없이 우리가 진화론이라고 부르는 이론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어도, 분명하게 진화론의 신조를 가르치고 있다”고 해설한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정말 칼빈이 진화론자였을 것이라는 오해는 하지 말기를 바란다. 16세기 칼빈의 시대는 진화론이 과학과 성경의 전면에 전혀 등장하지 않았던 시대였다. 즉 칼빈이 아니라 워필드가 볼 때 칼빈의 생각이 그랬을 것이라고 해석했을 뿐이다. 이것은 같은 프린스턴 학파요 같은 성경무오론자였던 찰스 핫지(Charles Hodge, 1797-1878)와도 다른 관점이었다.
어찌되었든 창세기 해석에 있어 칼빈에게 중요한 것은 진화론 문제가 전혀 아니었다. 창세기를 기록한 모세의 시대나 종교개혁의 루터와 칼빈의 시대나 진화론의 문제는 전혀 중요한 이슈가 아니었던 것이다. 성경의 초월적 창조 계시는 전혀 그런 내재의 과학적 관점으로 재단될 수 있는 계시로 보면 안 되는 이유다.
칼빈이 하나님은 “자신의 손에 빛을 쥐고 있으며 태양이나 달이 없어도 우리에게 빛을 줄 수 있다”(창세기 주석, Edinburgh, M. DCCC, XLVII, Vol. p.76.)고 주석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여기에 어떻게 진화론이나 자연과학적인 해석의 틈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과학적 세계관을 가진 도올은 당연히 진화론자다. 자신의 영웅이요 자신을 그 영웅보다 더 대단한 영웅으로 만들어준 형 김용준 장로가 유신진화론자인 것과 일치한다. 그런 면에서 개혁주의자 칼빈이 세상과 성경을 접근했던 방식이 21세기 과학기술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얼마나 성경 해석에 지혜를 주는지 모른다. 도올이 개혁주의자 칼빈의 원저가 아니더라도 그 수많은 칼빈 관련 저서를 진지하게 살펴보았더라면 기독교와 성경에 대해 그렇게 용감한 계몽에까지 나서지는 않았을 거라는 아쉬움을 가져본다. 그가 장로교 신학자들이 세운 한신대를 다닌 것을 늘 자랑하기에 하는 말이다. 그는 한신대 석좌교수도 하지 않았는가. 사상과 책을 편식한다는 것이 그렇게 무섭다. 이것은 신앙인들도 마찬가지다.
창조 계시는 모세 시대와 오늘날 21세기 우리들의 시대까지 염두에 둔 모든 역사, 모든 민족, 남녀노소, 빈부귀천, 지식고하를 막론하고 적응하신 계시였다. 그리고 개혁주의자 칼빈이 창조 세상의 지식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의 노력과 학문을 통해서도 진흥된다고 보았던 것도 일반 은총의 관점에서 타당하다. 모든 진리는 창조주 하나님의 진리가 아니던가(요 8:32; 요 14:6). 즉 칼빈은 그렇게 밝혀지는 세상의 진실도 “성령의 도우심”이라고 보았다.
반면 도올에게 창세기 1장은 성경 이전 중동 지방에 떠돌던 온갖 잡다한 설화가 융합된 글이다. 도올에게 창조 사건은 모세가 계시를 기록한 글이 아니요 창조주 하나님의 계시로 분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도 아니다. 과학적 세계관에 부합하는 종교적 진화의 관점에서 성경도 보아야 한다. 이게 도올의 생각이다.
하지만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성경의 말씀은 성령께서 계시하고 조명하셔서 역사 속에 주신 실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다. 하나님은 이 놀라운 초월적 계시를 모든 인류가 알기 쉽게 주셨다. 그리고 그분은 삼위일체 하나님이다. 그런데 이 진리는 도올처럼 세상의 과학적 세계관으로 판단할 수 있는 그런 계시는 아니었다. 이 세상 지혜로는 이 계시를 알 수 없게 숨기신 하나님의 패러독스와 아이러니는 도대체 무엇일까? 도올은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모든 걸 다 안다는 듯 성경을 헤집고 기독교 역사를 뒤집는 것일까?
도올의 신학 분석을 멈추면서
필자의 도올 신학 분석은 여기서 멈춘다. 아니 멈출 수밖에 없다. 지면의 제약도 있겠으나 도올 세계관을 창조 이외 타락과 구속의 눈으로 바라볼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창조부터 어긋나는 세계관에 기독교의 타락과 구속(하나님 나라)까지 들이대는 것은 모독이다. 홍수 이후 세상이 바뀐 것처럼 도올의 성경적 “창조 신앙”이 노년에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난다면 고려해 볼 일이다. 또 다른 석학 이어령 박사가 딸의 고통 이후 “지성에서 영성으로” 바뀐 것 같은 그런 “이후” 말이다. 필자는 1972년 10월 창간된 문학사상 주간(主幹)이 된 이어령 박사가 “문학으로서의 다윗의 시편”을 다루었던 것을 어렴풋이 기억한다. 필자에게 있어서도 당시 다윗의 시편은 문학이었다. 그 문학이 신앙으로 바뀌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마지막 남은 문학사상 창간 1호를 다시 살펴보니 창간호의 글은 분명 아니었다. 그런데 49년 전 그때 이미 지금도 존경하는 정현종, 이근배 시인이 지면에서 활동하고 있었다니. 40여 년 전 한국문학 주간이었던 이근배 시인과 하루 종일 바둑 필담을 나누었던 그 때가 조금 그립기는 하다.
아들·딸·손주 보며 살다보니 인생의 중반전도 훌쩍 지나가 버리고 별거 없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히 9:27).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전 1:2). 이 진리를 벗어날 수 있는 인간이 몇이나 있을까?
장수한 위대한 곤충학자 파브르(1823-1915)도 노년에는 고향을 그리워하며 본향을 그리워했다. 도올은 분명 세상에서는 특별한 사상가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하지만 이제 도올도 그가 늘 그리듯 부모님 신앙과 순수한 열정의 청년 때 모습을 회상하며 삼거리에서 그만 서성거리고 개혁주의자 칼빈의 영생 묵상(Meditatio Futuravitae)을 하며 참 선지자 증후군은 내려놓고 주님 앞에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겸손히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고 싶다. 희망사항일까? 세상 별거 아니다.
조덕영 박사는
환경화학공학과 조직신학을 전공한 신학자다. 강남대, 개신대학원, 건양대, 명지대, 서울신(예장 합동), 서울기독대학원, 백석대와 백석대학원, 피어선총신, 한세대신대원에서 가르쳤고, 안양대 겸임교수, 에일린신학연구원 신대원장을 역임했다. <과학으로 푸는 창조의 비밀>’(전 한동대총장 김영길 박사 공저), <기독교와 과학> 등 30여 권의 역저서를 발행했고, 다양한 창조론 이슈들을 다루는 '창조론 오픈포럼'을 주도한다. 창조론과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을 비축하고 있는 인터넷 신학연구소'(www.kictnet.net)을 운영하며, 현재 참기쁜교회의 담임목사이며 김천대, 평택대의 겸임교수이다
http://www.good-faith.net/news/articleView.html?idxno=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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