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코이(こい)’라는 물고기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시각장애인인 국회의원 K의 대정부 질문이 크게 클로즈업(close up) 되면서 비롯된 현상이다*. 여기저기 자료를 뒤져 보니 일본어로서 크게는 ‘잉어’라는 어종을 통틀어서 표기할 때 한자 ‘리(鯉)’로 나타내는데 이 발음이 ‘코이’라는 얘기였다. 그런데 대부분은 ‘잉어’의 여러 종류 중에서 관상용으로 개량 보급된 ‘비단잉어’를 의미하는 개념으로 통용되고 있단다. 한편 가장 좁은 뜻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여러 지역에서 생산되는 비단잉어 중에서고 최고의 산지로 꼽히는 니가타(にいがた : 新潟) 현(縣)에서 부화시켜 길러낸 비단잉어를 특정 하는 개념’이기도 한 모양이다.
여태까지 잉어는 성장하면 등치가 매우 큰 물고기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같은 치어(稚魚)라도 성장하는 환경에 따라 성어(成魚)의 크기가 완전히 다르단다. 이를 지칭하는 개념이 ‘코이의 법칙’이다. 다시 말하면 코이가 사는 물이 어떤 환경이냐에 따라 몸체의 크기가 달라짐을 뜻하는 게 ‘코이의 법칙’이란다. 오래 전부터 그런 의미로 통용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태생이 칠칠치 못해 까마득하게 몰랐었다. 비단잉어는 똑같은 종류라도 서식환경에 따라 그 크기가 확연히 달라짐은 어디에 연유할까. 실제로 작은 어항 속에서는 기껏해야 5~8cm 안팎 정도로 자라는데, 수족관에서는 15cm 남짓까지, 연못에서는 25cm 가까이 성장한단다. 한편 이들을 강에 풀어놓으면 자그마치 1m를 훌쩍 넘게 쑥쑥 큰다니 놀라운 현상이 분명하다.
시각장애인으로서 대학입시에서 일반전형을 통해 S 여자대학교 피아노과에 진학했다가 미국의 W 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피아노 연주 교습법’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는 감동적인 스토리의 주인공이었다. 학위 취득 이후 국내외를 거침없이 넘나들며 활발하게 연주활동을 해왔다. 그러던 중에 비례대표로 발탁되어 국회에 진출해 대정부 질문 과정을 매스컴이 취재해 보도했던 사연이 공감을 얻으며 전국으로 순식간에 들불같이 퍼져나가면서 뭇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화두로 등장한 ‘코이의 법칙’이다.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물고기인 비단잉어도 환경에 따라 상상할 수 없는 다른 모습을 띈다는 사실이 무척 신기하다. 이런 현상은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로서 주어지는 환경과 마음에 품은 뜻에 따라 얼마든지 변하고 성장할 수 있음을 일깨워주는 외침이 ‘코이의 법칙’을 입에 올리는 본질이다. 자기의 의지나 선택과 무관하게 장애인이나 소수자가 된 그들은 서럽고 애통하다. 그런 그들에겐 눈에 보이지 않거나 의도적인 차별로 물고기의 성장을 가로막는 어항과 수족관 같은 사회적 제약이나 독소 조항이 도처에 즐비하게 널려있을 게다. 그런 불합리를 통째로 도려내고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길을 터달라는 호소가 K 의원이 절규하는 대정부 질문의 핵심 요지였다. 그런 왜곡된 편견과 부조리 요인을 과감하게 척결하고 정상인과 어깨를 나란히 한 상태에서 정정당당하게 경쟁할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 달라고 호소할 뿐 특혜나 특권을 터무니없이 주장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무관심한 채 거들떠보지 않은 부분에는 기득권자들을 위한 불공정한 제도나 폐습들이 숱하게 많으리라. 이들을 당연한 것으로 누려온 우리는 무감각해져 대수롭지 않게 여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소외계층이나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이 겪는 어려움과 고통을 그들의 편에 서서 살피는 시각과 가치관의 변화가 절실한 작금이 아닐까. 요즘 정치인들은 자기들에게 득이 된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법으로 얽어매려고 으르렁 왈왈 껄떡댄다. 그렇지만 자신들이 가진 상당 부분을 내려놓아야 하거나 피해가 예상되는 일에는 여야 모두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며 방치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이런 그들에게서 자기 몫을 선뜻 떼어내서 약자나 소수자 혹은 장애인들에게 나눠줄 참된 봉사자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당장 내년에 다가올 총선에서 표를 그러모을 포퓰리즘에는 진영 관계없이 벌떼같이 모여들어 입에 거품을 물고 나팔을 불어댈 것이다. 비록 소외계층에 긴요할지라도 대중적인 관심을 끌지 못해 선거에서 표심을 움직이지 못할 경우 과연 이해득실을 초탈해 팔을 걷어붙이고 자기 일처럼 최선을 다하리라는 장담을 할 수 있을까.
남을 헐뜯거나 상대방을 할퀴고 생채기를 내는 못된 짓을 시작으로 날이 새고 저무는 황량하고 저속한 풍토가 만연되어 시궁창 같은 연못에서 고결한 연꽃 한 송이가 곱게 핀 기적일까. 조용하지만 단아하고 고매한 자태와 단호한 어조로 조곤조곤 포효하는 질문은 심산유곡을 오르다가 목이 말라 쩔쩔 맬 때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정갈한 석간수를 만나 한 모금을 들이키는 그 이상의 청량한 충격이었다.
염불에는 뜻이 없고 오로지 잿밥 즉 당리당략이나 표에만 눈이 시뻘건 함량 미달의 정상배들이 태반인 정치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처럼 고고한 드높은 주문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 공염불이 되지 않을지 파수꾼의 심정으로 지켜볼 참이다. 하지만 공허한 메아리가 허공을 맴도는 맹랑한 상황이 자꾸 떠오름은 어이없이 삐딱해진 시각의 지레짐작일까?
(한판암 님의 수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