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침침한, 썩은 곰팡내가 잔뜩 풍기는 이 지하실에는 6명의 그림자가 모여 앉아 있었다.
그 6명의 그림자는 바쁘게 키보드를 두둘기며, 단지 따따딱 소리만 일정하게 지킬뿐, 더 이상의 소음은 내지 않고 침묵을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정한 타자소리와 침묵을 깬건 바로, 이렌시였다.
"아웃모집방 전송완료"
"나도."
"예! 나도 끝냈어!"
"나도 다 했어."
이들의 리더, 성도는 조용히 그들의 말을 가로 막으며, '다했다'라는 말을 일일이 듣기가 귀찮은 듯 한마디 던졌다.
"모두 다 했냐"
그들의 성도의 말에 모두 일제히 입을 모아 다했다라는 말을 했고, 성도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 탁한 지하실에서 밖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겨갔다. 이렌시, 와쯔키, 여현, 몽구르덴, 리디션, 모두가 성도를 지켜보고 있었다. 성도는 그런 눈들을 의식했는지 문을 열다가 그들을 바라봤다.
"각자 나갔다와서 12시에 모이자."
그들은 마치 어린 아이처럼 소풍가는듯한 기쁨을 안고 우르르 밖으로 나갔다. 여현만 나가지 않고 계속 컴퓨터를 붙잡고 있었다. 여현에게는 요새 재미가 붙은 게임이 있기 때문이다. 출출했던 여현은 열심히 키보드를 두들겨 사이버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시켰다. 3분쯤 지났을까, 딩동소리와 함께 짜장면과 단무지와 젓가락이 배달되었다.
모두가 각자 오랜만에 신나게 놀다오고 나서 지하실엔, 리디션만 제시각에 미쳐 맞추지 못하고 12시를 조금 넘겨버렸다. 리디션이 온걸 모르는지, 모두 각자의 컴퓨터에 앉아 일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미안. 좀 늦었어."
"성도, 내 쪽에서 165명의 아웃이 들어왔어."
"그래? 나도 181명이 들어왔군."
"뭐야, 벌써 반응이 온거야? 겨우, 6시간만에."
리디션은 놀란 듯 자신의 모니터를 봤다.
역시 리디션에도 반응이 좋았다. 리디션의 아웃은 169명이였다.
"그 문제를 푸는데, 적지 않는 시간이 투자될텐데 단 6시간만의 이만한 인물들이 모였다는건 아무래도 뭔가 잘풀릴 것 같은 예감이군."
몽구르덴의 말의 모두가 맞는말인 듯 미소를 지었다. 2시간쯤 지나자, 그들에게 들어온 아웃은 모두 1200명에 달하는 숫자가 됬다. 성도는 예상했다는 듯이 여유롭게 웃기 시작했다.
성도는 그들에게 지시해서, 아직은 차근히 더 모일때까지 그들에게 소식통만 전하라고 하였다. 성도의 아웃 목표는 바로, 44444438명이였기 때문. 성도도 어마어마한 숫자인걸 알고 있지만, 세계로 각각 흩어져, 각자의 구역에서 아웃들을 모으면, 절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그 일을 실행하기 위해선 44444438명도 모자른 숫자일지도 모른다.
사이트에는 쉴새 없이 프로필이 날아오는데 그것들을 모조리 처리하느라고 밤을 지샌 그들은 지하실 구석에 있는 이불더미 위로 몸을 던졌다. 아무리 지하실이라고 해도 손바닥만한 창문은 있었다. 그 창문 틈새로 작은 빛들이 비집어 들어올 때, 그들은 이불더미위에 꼬여 끼리끼리 부둥켜 안고 언제 깨어있었냐는 듯이 정신없이 잠을 청했다.
하지만 잠이 없는 이렌시는 해드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인터넷 서핑을 하고, 라면을 먹고 있었다.
쿵....
"성도, 일어나봐..! 누가 왔나봐.."
마치 도둑이라도 된 것 처럼 겁많은 이렌시는 쥐죽은듯한 목소리로 급하게 성도를 깨워 누가 왔다는걸 전해주었다. 성도는 부시시 일어나서 지하실 전체에 연결된 보안장치를 통해 모니터로 지하실 밖에 누가 왔는지 확인했다. 성도는 누군지 확인하고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 이렌시에게 안심의 미소를 심어주고 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넌, 누구니?"
지하실 문밖에는 작은 친구가 서있었다. 동글 동글하게 생긴 그 작은 친구는 성도의 마음을 낚아버렸다. 성도는 그 작은 친구를 안고 문을 꼼꼼하게 잠궜다. 꼬리를 살랑살랑치며 성도를 보고 혀를 내밀었다. 성도는 의자에 앉으며, 작은 웃음을 얼굴에 한가득 품고 계속 작은 친구를 쳐다봤다.
"이 친구 이름을 오늘부터 음....오늘부터.....음....."
"청사..어때?"
안심이 된듯한 이렌시는 성도에게 '청사'라는 이름을 선사했다. 성도는 곧 그 작은 친구를 청사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 작은 친구..아니, 청사는 이렇게 말했다.
왈-
손바닥만한 창문에도 어느새 빛이 가고 없었고, 컴퓨터의 모니터와 스탠드불만이 지하실을 감싸고 있을때ㅡ 와쯔키는 어느새 일어나서 청사에게 냉장고에서 끄낸 차가운 햄을 먹였다. 먹을게 넉넉히 없는 이 지하실엔 식구가 하나 더 늘어 성도는 내심 걱정하는 듯한 말을 했지만, 성도가 청사를 가장 사랑하는 듯 했다.
"내 구역에서만 벌써 253656명이 모였어."
"그러게. 내 구역에서도 장난아닌걸. 이대로 가다가 우리 아웃은 일주일이면 끝나겠어"
"다행이군.."
성도는 잠시 그 작업을 멈추라고 지시했다. 그들은 아웃모집방이라는 공지를 더 이상 퍼트리지 않았고, 그 공지를 모두 삭제했다. 그리고 성도의 말에 좀더 귀를 기울였다.
"모인 각자 아웃들에게?"
"그래. 그러면 우리 1인당 163866명만 모으면 돼지.."
"하지만 비밀리에 하다보면 겹치는 아웃들도 있을꺼야. 대강의 오차가 난다그러면 적지 않은 숫자일텐데."
"나중에 각자의 프로필을 제출하도록 하고, 겹치는 사람들은 빼도록 하면 되잖아. 그리고 나머지 모자라는 아웃은 우리가 다시 모집하자고"
모두 리디션의 의견에 동의했고, 그들은 곧바로 행동에 임했다. 그리고 어제처럼 고요한 침묵과 타자소리만이 지하실을 맴돌을뿐이였다. 아니, 단지 달라진게 있다면 청사에 의해 소리나는 부시럭거리는 소리와 외롭다는 듯이 낑대는 작은 울림뿐이다.
"멜이 왔습니다"
나레이터의 멜이 왔다는 소리에 잠에서 깬 현수는 컴퓨터를 주시했다. 들떠진 눈에는 귀찮은듯한 원망만이 가득했지만, 멜을 보는 순간 그런 눈빛은 가시고, 금새 눈이 번쩍 트였다.
[아웃, 각자 22명을 모집할 것]
"22명이나..? 이런..내 또래에도 이런 아웃은 많이 있을텐데..겹치는게 당연하다구."
[단, 비밀리에 모집을 해야만하고, 그 모집한 아웃들은 사이트명을 가르쳐 줄 것.
그리고 아직 프로필을 제출하지 않았다면 당장 사이트에 가서 프로필을 제출할것.
22명이 미달이 된다면 즉시 연락을 취할 것.
모집하기 싫다면 아웃에서 탈락된다는 것을 잊지 말것.
가장 중요한건, 모집할 인원들에게 아웃자격을 반드시 알려줄뿐만 아니라,
아웃자격이 되기 위해 문제를 반드시 낼 것]
"이런..이런.. 하기 귀찮은데.. 젠장-"
현수는 바로, 자신의 홈페이지에 아웃방을 만들었다.
아웃이 되고 싶다면, 이 문제를 전부 풀고 아웃방에 들어가시오라는 공지를 걸고, 해킹차단 프로그램으로 그 아웃방만에 걸어놓고, 인원이 모이기를 기다렸다. 현수 자신도 그 문제를 풀고 아웃이 되었기 때문에, 시간이 얼마나 많이 걸리는지 짐작하고 있었다.
그렇게 22명이 모이자, 현수는 공지를 삭제하고 암호를 걸어서 그 아웃들만이 들어올수 있도록 해놨다. 그리고 그 아웃들에게 사이트명을 가르쳐주고.. 할 일을 마친 현수는 스웨터를 걸치고 쌀쌀한 새벽공기를 마시며, 밖을 싸돌아 다녔다.
굴러 다니는 깡통.. 로봇들과 잔뜩쌓인 쓰레기들만이 이리저리 부서져서 바람에 휩슬려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높다란 빌딩들이 현수의 시야를 가릴뿐이였다. 도저히 살아있는건 인간말고 찾아볼수 없었다.
현수는 근처에 눈에 띄는 공중전화로 걸어갔다. 그리고 지문입력기에 손가락을 살짝 올려놓고, 오랜 친구, 태준이에게 전화했다. 다행이도 태준은 현수의 전화를 받았다. 현수는 태준한테 여러 가지로 할말이 많았던 모양인지, 뿌연 안개사이로 희미하게 동이 터오는 모습을 보면서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현수는 태준과 저녁에 인공공원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접었다.
왈-왈-!
"나, 청사 산책 좀 시키고 올게."
작업의 대부분을 마친 여현은 바쁜 성도를 대신하여 청사와 함께 거리고 나갔다. 지하실이나, 바깥의 거리나, 별반 다를 것 없이 공기도 탁하며, 더럽고, 숨쉬기도 어렵지만, 넓은 거리를 쏘다니며 운동하는것도 청사의 건강에 좋을 것 같아 나온 것이다. 청사도 오랜만에 밖에 나오니 기분이 좋은 듯했다.
"하..한푼만....."
길가에 너부러져 망가진 로봇사이로 쓰러져있는 늙은 거지 하나가 청사를 보고 말했다. 청사는 거지가 불쌍한 듯 동그란 눈으로 거지를 계속 보고 있었다. 여현은 귀찮은 듯 청사에게 그만 가자고 말했다. 하지만 청사는 여현을 보고 뭔가를 말하려고 했다.
청사는 여현과 그 늙은 거지를 동그랗고 슬픈눈으로 번갈아가며 봤다. 청사는 거지에게 다가가 거지의 손을 핥았다. 그리고 여현에게 다시 다가가 말했다.
왈..
여현은 그런 청사를 보고 한참 동안이나 멍하니 서 있었다. 곧 정신을 차리고 거지에게 다가섰다. 여현은 지폐한장을 거지에게 주면서 꼭 밥을 사먹으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여현은 청사를 데리고 한참을 걸었다. 청사는 다행이라는 듯이 가벼운 걸음 꼬리를 살랑 살랑 흔들며 여현을 따라갔다.
안개가 뿌옇게 진, 과연 스모그일지도 모르는 그런 뿌연 공기를 헤집고 여현은 계속 걸었다. 아무 생각이 없는 듯 하면서도 여현은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듯도 했다.
"청사. 넌 작지만 슬픔이라는것도 아는구나. 넌..인간보다 더 나은 동물이구나..
청사야.. 넌 꼭 살아남아야 한다..."
청사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한번 꺄우뚱했다. 그런 청사를 보고 여현은 됬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여현은 다시 일어나 쓸쓸하지만 기쁜 마음으로 천천히 걸으며 지하실로 되돌아 갔다. 청사도 꼬리를 흔들면서.
따뜻한 봄날이 다가왔다. 뿌연 이 세상에서도 사람들은 각자, 봄날의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가족들은 놀이공원에 가고, 연인들은 인공적인 자연속에서 만들어낸 봄날의 향기를 마음껏 맡는다. 그리고 야생동물들은 전기 우리안에서 식곤증이 온 것 처럼 하품을 해댄다.
지하실의 아웃들은 봄이 와도 달라진게 없었다. 청사는 이불속에서 뒹구르고, 모두 각자가 모니터만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단지 달라진게 있다면 '다다닥'거리는 타자소리가 더욱 더 빨라졌을뿐.
"인원이 다 찬지, 3주가 지났어, 성도. 인원이 너무 많아 관리하기도 힘들다. 빨리 끝내면 안될까?"
"기다려야만 한다."
"성도. 꼭 그날이여만 할까?"
성도는 말없이 리디션을 무섭게 노려봤다. 리디션은 점점 날짜가 다가와, 예민해진 성도를 잘못건드렸다는 생각이 들어 순간 뜨끔하며, 성도의 눈을 피했다. 모두가 험악해진 분위기를 파악하고, 말없이 아까처럼 했던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성도의 눈치를 보고있던 여현이 고요함 속에서 갑자기 한마디를 불쑥 던졌다.
"그렇다면..홈페이지를 폐쇄하고 공지를 올리는게 어때..? 그날이 오기 일주일전..다시 모두에게 연락을 취하고.."
"거, 괜찮은 생각인데!"
와쯔키가 여현의 의견의 동의했다. 성도를 제외한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성도는 곰곰히 생각하더니, 끝내 여현의 의견대로 실행하자고 했다. 무슨말인지도 모르던 청사는 성도가 동의하자, 자기도 '왈'이라고 말했다.
"현수야, 왜 요즘엔 태준이 만나러 안가?"
"어..?"
승언이는 용케도 컴퓨터실에 홀로 남아있던, 현수를 찾아내 말을 붙였다. 놀란 현수는 승언이의 말을 그냥 얼버무렸다.
"니네 맨날 붙어다녔잖아. 근데 개학하니까 왜 갑자기 서로 떨어져서 다녀?"
"어..글세.. 참, 승언아, 너 미국간다며?"
"어. 선물줄꺼지? 기대하마. 하하.."
"그래.."
현수는 승언이의 말에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현수는 5년동안 친구로 지내왔던 태준이에게 모질게 대했던게 너무 후회스러웠지만, 어쩔수 없었다는 생각을 내내 하고 있었다.
- "야, 뭔 할말이 있는데 이 귀하신 몸을 보시자고 하셨냐?"
- "미친놈.. 꺼져버려라...!!!"
- "뭐..뭐라고..? 너 갑자기 왜그래? 연기하냐?"
- "꺼지라고!! 다시 너같은 인간 보기도 싫다! 내가 왜 너랑 친구를 했는지 도대체 모르겠다! 더 이상 우리는 친구가 아니야! 오늘 부로 절교라고!!!"
- "야..야 임마!!"
지난 겨울, 현수는 태준에게 절교를 선언했다. 그래서 현수는 지금까지 태준을 더 이상 볼수 없었다. 그리고 현수도 마치 지하실의 아웃처럼 마음만은 봄이 오지 않았다.
혼자 쓸쓸히 돌아온 현수는 어제와 다를 것 없이, 컴퓨터의 전원을 꾸욱 눌렀다.
부팅이 빠르게 되고 난 뒤, 멜이 왔다는 나레이션의 목소리는 어김없이 들렸다. 아웃홈을 폐지한다는 멜을 본순간, 현수는 허탈감에 싸여 아웃홈에 다시 한번 들렀다. 정말로 공지 폐쇄가 달려있었지만, 그날이 오기 일주일전, 다시 연락을 취하겠다라는 말에 현수는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현수는 가만히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현수는 그날 따라 소리에 신경을 썼다. 컴퓨터 본체가 돌아가는 소리도, 창가에서 굶주린 고양이가 야옹대는 소리도. 가족이 없는 그를 부를 사람도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자꾸만 들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 같아, 현수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이제 마지막이 다가오는군..'
그리고 한달후.
"우린, 오늘부터 선언한다."
"선언한다."
성도의 말을 와쯔키, 이렌시, 리디션, 몽그르덴, 여현이 따라했다.
"그동안 있었던 우리 서로간의 추억을 모두 버리고.. 냉정하게 행동해라. 그리고 앞으로 남은 8일간은...."
"........"
"나머지 작업을 하며 스스로의 마음 가짐을 하길 바란다.."
성도가 먼저 의자를 돌려 모니터를 향했다. 일원 모두도 모니터를 바라봤다. 1분쯤 후, 어느 구석에서부터 타자소리가 들려오더니, 어느새 이 지하실의 아웃들은 키보드위에 손을 올려놓고 있었다. 청사는 우울하게 귀를 살짝 내리고 성도의 다리밑에서 우는 듯 했다.
일주일 뒤.
딩동..
집안에 설치된 자동우편함에서 소포하나가 왔다. 현수는 그 소포를 집어들고 커튼을 모조리 치고, 소파에 풀썩 앉아 천천히 소포를 풀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순간 현수의 가슴은 벅찰 정도로 뛰었다. 그리고 이마에선 식은땀 하나가 흐르고 있었다.
그 긴장감을 깨는건 멜확인의 나레이션 목소리였다.
[앞으로 2시간이 남았다. 2시간후의 날짜는 4월 4일. 그 다음날, 새벽 4시까지 마치기 바란다. 더 이상 걸려도 상관없다.. 소포의 내용물과, 가슴에 달 마크를 잊지 않도록.. 그리고, 경찰서를 먼저 공격해라.. 그러면 소년, 소녀들이여.. 무운을 빈다..!]
이내 차분히 가라앉아졌던 심장이 또다시 작동하고 말았다. 현수는 순식간에 자신에게 쌓였던 많은 추억들이 필름이 감기듯. 하나 하나씩 스쳐지나갔다. 태어나서부터 혼자였던 현수. 아무도 그를 몰라줬던 현수여지만, 태준을 만나고 난후 달라진 현수. 태준과 있었던 많은 일들. 현수는 두 눈을 꼭 감은채, 그 소포의 내용물을 두 손으로 꼭 잡으면서, 식은땀을 흘리고. 그 식은땀과 분간되지 않는 눈물도 흘렸다. 현수는 굳은 결심의 표정을 지었다.
현수는 태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태준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발신자의 번호를 알수 있었기 때문에, 태준은 현수인걸 알고, 일부러 받지 않았다. 한달은 더 흐른 듯 한데, 태준은 아직도 우정이란 단어에 창을 꽂은 현수가 미웠던 모양이다. 자동응답기가 돌아가자, 현수는 태준에게 단 마지막 한마디만을 남겼다. 마지막 한마디만을..
"미안하다..태준아."
순간, 태준은 현수의 전화를 받으려 손을 뻗쳤지만, 이미 끊어지고 뚜뚜..소리만이 태준의 방에서 맴돌고 있었다. 태준은 고개를 푸욱 떨군채,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나가자."
성도의 말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긴장했던 그들은 주섬주섬 총과 단칼을 들고, 성도를 따라 경찰서와 군부대로 나섰다. 그리고, 뿌연 스모그속에서 서로를 헷갈리지 않으려고 가슴에 '아웃사이더'라는 마크를 달았다. 하얀 바탕에, 단순히 검은 글씨로만 쓰여진 마크를.
청사는 그저..무거운 발걸음으로 조용히 그들을 따라나섰다.
탕탕...
"여러분! 지금, 세계 각국에서 총소리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모두, 집안문을 단단히 잠그시고....!! 으악....................."
치지지직...
"여기는 페루입니다! 가슴에 하얀 마크를 단 정체모를 사람들이 사람들을 이유없이 죽이고 있습니다! 여기는 페루..!"
탕..!!
"죽어..!! 이 미친 인간들아.."
리디션은 침을 삼키며, 눈물로 범벅이된 얼굴로 인간들을 마구 쏴대었다. 여현은 청사를 보호하면서 경계를 늦추지 않고 하나 하나씩 죽여갔다. 성도는 상기된 얼굴로 냉정하게 총을 겨누었다. 그리고 칼로 도망치는 인간들의 등을 내리 꽂기도 했다. 그렇게, '아웃사이더'들은 인간들을 죽여갔다.
현수는 천천히 태준의 집으로 걸어갔다. 방황하며 자신의 주위를 가프게 살펴보고 있는 태준은 현수를 보고 사스라치게 놀랐다. 하얀 '아웃사이더' 마크를 달고, 총과 단칼을 든, 현수를 본, 태준은 주저 앉고 말았다.
"혀..현수야..너도....."
"난..어제 말한 것 밖에 할말이 없구나............."
태준은 단념한 듯 두 눈을 감고 무릎을 꿇었다. 현수는 총을 태준의 머리로 겨냥했다. 현수는 침을 천천히 삼키며..방아쇠를 당길 듯 말 듯..눈물과 식은땀이 같이 현수의 두 볼을 타고 내렸고.... 고민하는 현수였다.
탕..
단 한방에 태준은 소리없이 쓰러졌다. 현수는 주저앉아 태준의 손을 잡고 한없이 눈물과 이말만이 나올뿐이였다..
"미안하다..태준아...!!"
"SBS긴급뉴스입니다. 한국에서 시작된 총살해는 여전히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세계각국에서도 붉은 피는 멈추지 않고, 강을 따라 넘치고 있습니다. 경찰과 군의 힘을 동원해도 소용이 없는 듯 합니다! 모두가 당황하며 죽어가고 있습니다..!"
"저 사람 잡아!! 안으로 들어왔어!"
타타탕..!
"시청자 여러분..! 헉......."
돌아가는 카메라 렌즈는 피에 담궈져 있었다. 화면은 깨지지 않고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피로 범벅이 된 렌즈 사이로 작게 또 한명의 '아웃사이더'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그 방송국에 있던 모든 인간들에게 칼을 한없이 내리 꽂았다. 팔이 잘려나갔다. 눈알이 뒹구르기도 했다. 손가락이 혼자 꿈틀거리기도 했다.
붉은선혈은 끝없이 흐르고 있었다. 높은 빌딩 만큼이나 핏물은 차올랐고, 비린내와 파리들로 지구는 까마득해져 갔다. 멀리 우주에선 지구는 붉은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푸른 지구가 아니였다. 마치 화성처럼.. 바다도. 강도. 산도.. 모두가 핏빛으로 잔혹하게 흐르고 있었다.
여기저기선 비명소리가 들리고, 총소리는 끊임이 없었다. 어떤 인간들은 자기 스스로가 목숨을 끊기도 했으며, 죽기 싫어 여기저기 숨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끝끝내 '아웃사이더'들은 자신들, 44444444명을 제외하고 모두를 살해했다. 가냘픈 여자와 아이들도. 최고급 러브호텔에서 막 일을 다 마친 빌어먹을 정부인들도. 경찰에 둘러싸인 각국의 대통령들도, 지하철에서 노트북을 사용하던 할아버지도. 모두가 피를 뿜어냈다.
자신의 지역의 인간이란 인간은 모두 살해한 여현은 청사를 바라봤다.
"잘있거라..청사야. 너희들이 다시 지구를 푸르게 만들렴.."
청사는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핏빛바다로 서서히 걸어갔다.
그들은 4월 5일 새벽4시를 앞두고, 일제히 이말만을 되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