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약과 노파
원제 : Arsenic and Old Lace
1944년 미국영화
DVD 출시제 : 아세닉 앤 올드 레이스
감독 ; 프랭크 카프라
음악 : 맥스 스타이너
원작 : 조셉 케셀링
출연 : 캐리 그랜트, 프리실라 레인, 레이몬드 마세이
피터 로레, 잭 카슨, 조세핀 헐
진 아데어, 존 알렉산더, 에드워드 에버렛 호튼
캐리 그랜트가 주연하고 프랭크 카프라가 감독한 1944년 스크루볼 코미디 Arsenic and Old Lace 의 제목을 뭘로 하는게 좋을까요? 보통 제가 영화의 제목을 지을 때 고려하는 순위는 아래와 같습니다.
1순위 : 국내 개봉제목
2순위 : 국내에서 책으로 출판되었거나 연극으로 공연되었을 때 사용한 제목
3순위 : 원제 혹은 원제 직역
4순위 : TV방영제
5순위 : DVD나 비디오 출시제목
6순위 : 네이버 영화나 인터넷 사이트에서 통용되는 제목
이 영화는 1949년도 신문기사를 보면 국내에 개봉하기로 예정되어 있다고 했는데 개봉 기록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뭐 개봉예정이었다고 다 개봉되는 것은 아니고 1950년 한국전쟁 시기동안 영화상영도 못한 부분이 있고 해서 취소되었을 수도 있지요. 그리고 TV로 방영된 기록도 없습니다. 제가 확실히 아는 부분은 일본에서 '독약과 노양(老孃)' 이라는 제목으로 상영했고, 우리나라에 1990년대에 '독약과 노파' 라는 제목으로 연극이 공연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의 원작은 조셉 케셀링의 동명의 희곡이고 1944년 영화화 이후에도 TV영화로 많이 등장한 것을 보면 제법 유명한 작품이랄 수 있습니다. 과거 영화평론가 정영일씨도 '독약과 노양' '독약과 노파'라는 제목으로 언급했고, 그 외에 '독약과 올드미스'라는 제목으로 사용되는 것을 본적도 있습니다.
총각 찬양론을 쓴 작가라서 들키지 않고
몰래 결혼 신고를 하는 모티머(캐리 그랜트)
겉보기에는 그냥 선량한 두 할머니
하지만 알고 보면 연쇄 살인마
신혼여행 직전의 행복한 상황이었지만....
두 고모에게 신혼 여행전 인사를 드리는 모티머
즉 위의 순위대로 하면 개봉이 안된 영화라서 1순위는 해당없고 자연스럽게 연극 공연시 사용했던 제목 '독약과 노파'를 쓰는게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과거 고전영화들이 일본제목을 그대로 사용한 경우가 많았는데 '노양'은 우리나라에서 거의 안쓰는 말이었고, 할머니를 표현할 때 '노파'라고 썼으니 '독약과 노파'가 맞겠죠. 물론 노파 라는 단어도 요즘에는 거의 안쓰기 때문에 그리 어감이 좋은 제목은 사실 아닙니다. 그렇다고 어디에선가 쓰여진 '비소와 낡은 레이스'는 틀린 제목입니다. Old Lace 를 '낡은 레이스' 라고 기계적 직역을 하는 것은 완전 오역이니까요. 차라리 '아세닉 앤 올드 레이스'라는 원제를 쓰는 건 좀 낫죠.
아무튼 이 영화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40년대 코미디 걸작입니다. 일단 프랭크 카프라 라는 이름을 보면 무게감이 있고, 실제 영화도 이름값을 합니다. 캐리 그랜트는 가장 주전공이 스크루볼 코미디 라고 할 수 있는데 '히즈 걸 프라이데이' '베이비 기들이기' 에서 보여준 기량만 갖고도 이미 역사에 남을 연기입니다. 즉 가장 캐리 그랜트 표 라고 할 수 있는 연기를 한 작품이고 내용도 꽤 기발해서 매우 재미난 영화입니다.
고모의 집 창문 아래에 왠 시체가.....
고모로부터 살인행각에 대한 사실을
듣고 경악하는 조카
독이 든 술을 마시려는 노인을
지켜보는 두 살인범 할머니들
유니버셜 호러의 대표작 프랑켄슈타인에서의
보리스 칼로프를 흉내낸 레이몬드 마세이
뉴욕 브루클린에서 벌어진 단 하루동안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모티머(캐리 그랜트)는 작가인데 결혼이 필요없음을 주장한 책으로 인기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도 목사의 딸 일레인(프리실라 레인)과 사랑에 빠져 결혼신고를 하게 됩니다. 일레인은 모티머의 두 고모가 사는 집의 이웃이지요. 모티머는 신혼여행을 가기 전에 고모들에게 인사를 드리러 왔다가 창가에 있는 긴 나무의자 속에 시체가 있는 것을 보고 경악합니다. 두 고모는 외롭고 어려운 노인들을 위해서 집을 하숙방으로 제공해 왔는데 몰래 그들을 안락사시켜 왔습니다. 와인에 독약을 타서 죽이고 지하실에 매장해 온 것입니다. 이미 12명이나 살해한 전력이 있었죠. 원래 이 집안이 좀 정신적 문제가 있었습니다. 두 고모는 살인자, 형 테디는 자신이 루즈벨트 대통령이라고 생각하는 정신이상자, 그리고 오래전에 집을 나간 또 다른 형 조나단(레이몬드 마세이)은 살인을 일삼는 흉악범입니다. 고모는 사람들을 독살한 뒤 조카 테디에게 황열병으로 죽었다고 말하고 지하실에 파묻게 한 것인데 테디는 집을 요새라고 생각합니다. 모티머는 가족인 고모를 경찰서에 보내는 대신 테디를 좋은 정신병원에 넣어서 돌보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서류 작업에 착수합니다. 이런 와중에 오래전에 소식이 끊겼던 조나단이 돌팔이 의사 아인슈타인(피터 로레)과 함께 홀연 나타나는데 조나단은 경찰에 쫓기고 있었고, 차에 몰래 감추어둔 시체를 이 집에 유기할 생각입니다. 고모가 살해한 남자의 시체, 그리고 조나단이 살해한 남자의 시체.... 모티머는 이 반갑지 않은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서 머리를 굴리고 그런 모티머의 상황을 모르는 일레인은 신혼여행은 커녕 자신을 방치하는 모티머에게 화를 내는데.....
오랜만에 찾아온 반갑지 않은 조카
연쇄 살인범 형의 방문이 영 반갑지 않은 동생
한 집안에서 벌어지는 엉뚱한 시체 소동극
신혼여행을 가고 싶은 신부
하지만 신랑은 딴전만 피우는데...
스토리 요약만 보면 완전 흉악한 범죄물 같은데 실제로는 포폭절도 코미디 입니다. 캐리 그랜트의 과장되고 익살스런 연기도 좋고, 프랑켄슈타인 처럼 분장한 조나단 역의 레이몬드 마세이는 30년대 유니버설 호러의 명우 보리스 칼로프를 흉내내고 있습니다. 영화 내내 따발총 처럼 등장하는 쉴틈 없는 대사와 과장된 행동은 전형적인 30-40년대 스크루볼 코미디의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다만 이런 장르 치고는 여주인공의 비중이 좀 적습니다. 원래 스크루볼 코미디의 흐름이 남녀 주인공이 덜컹거리는 상황을 거치다가 결국 사랑의 결실은 맺는 결말로 끝나며 이런 과정에서 여성의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이 부여되는데 이 영화에서 캐리 그랜트의 상대역인 프리실라 레인은 오히려 고모역의 두 할머니보다 심심한 배역입니다.
두 구의 시체를 들키지 않게 하려도 우왕좌왕 하는 일종의 '시체 소동'인데 두 할머니, 흉악 범죄자, 범죄자를 따라온 돌팔이 의사, 정신병자 조카, 그리고 막 결혼하여 신혼여행을 가려고 하다가 시체 소동에 휘말린 남자, 그 남자로 인하여 속을 끓는 새 신부, 그리고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경찰 등 그야말로 각 캐릭터별로 역할이 명확히 부여된 영화로 이런 등장인물을 소품처럼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시종일관 좌충우돌 소동이 벌어지는 코미디죠. 특히 의자에 묶여서 난도질을 당할 위기에 빠진 캐리 그랜트가 어떻게 그 상황을 벗어나는지가 전개되는 후반부 소동은 꽤 재미난 웃음을 줍니다. 악당이 독약을 마실듯 하면서 못 마시는 내용도 아슬아슬하고. 두 노부인과 조카가 사는 집을 무대로 하여 하루동안 그 집을 들락거리는 여러 방문객들이 얽히고 설키고 숨박꼭질하고 그러는 과정을 빠르게 전개시키고 있습니다. 한 집안이 거의 무대의 전부이기 때문에 영화보다 연극에 더 어울리는 내용입니다.
뭐 마지막에 출생의 비밀이 드러나는 부분은 반전이라고 할 수도 없이, 스토리의 구성 보다는 장면과 상황을 기발하고 재치있게 다룬 것이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대사, 타이밍, 상황 등이 그럴싸하게 맞물려서 돌아갑니다.
스크루볼 코미디는 우리나라에서 그리 선호되던 장르는 아닌데 이 장르의 최고 걸작이랄 수 있는 '히즈 걸 프라이데이'나 '베이비 길들이기' 같은 작품이 국내에서 인기있던 고전영화도 아니었고, 캐서린 헵번이나 바바라 스탠윅의 개봉작이 많은 것도 아니지요. 캐리 그랜트도 다른 장르의 영화들이 더 많이 알려졌고. 무엇보다 빠른 배사를 자막으로 따라가기도 힘들고, 그들의 언어나 문화를 완전히 이해할 수도 없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한계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장르는 극장에서 보는 것보다는 소장한 영화로 천천히 음미하고 되새기면서 보는 것이 더 재미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독약과 노파'는 확실히 믿고 보는 캐리 그랜트 표 코미디 입니다. '베이비 길들이기' '히즈 걸 프라이데이' '멋진 휴일(Holidady)' 등과 마찬가지로 상당한 재미를 제공하고, 가장 캐리 그랜트 다운 특징을 많이 보여준 영화입니다. 다른 영화에서는 여배우와 함께 손발을 잘 맞추며 공동 주인공으로 콤비를 이루었지만 이 영화는 캐리 그랜트가 원톱 주연으로 주도하면서 조연으로 출연한 캐릭터들이 골고루 재미를 부여받고 있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40년대 코미디 영화의 수작이지요. 캐리 그랜트와 프랭크 카프라가 이름값을 한 영화입니다.
ps1 : 똑같은 내용을 좀 살짝 각색해서 하우스 스릴러 장르로 만들어도 될 것 같습니다.
ps2 : 프리실라 레인은 '포효하는 20년대'에서 본 여배우인데 그리 두드러진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출처] 독약과 노파(Arsenic and Old Lace, 44년) 독약과 시체소동|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