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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참여형 통일과 민간통일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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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낙청 | 서울대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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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의 미사일 발사 이후 한반도 정세는 또 한번 중대한 국면을 맞았다. 미국의 대북압박이 한층 강력해졌음은 물론, 남북 당국의 관계도 온통 싸늘해졌다. 남측의 쌀과 비료 지원 유보에 맞서 북측은 이산가족 화상상봉계획과 금강산 면회소 건설작업을 중단했다. 그 결과 남쪽 사회에서는 협력관계의 조속한 복원을 염원하는 소리도 들리지만, 저런 사람들을 상대로 아직 남아 있는 민간교류조차 계속할 필요가 있느냐는 비난의 목청이 오히려 드높아진 느낌이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한반도의 통일과정이 과연 어떤 것인지를 차분히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한반도식 통일을 '시민참여형'으로 규정하는 것은 일반시민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역사과정이 어느 경우에나 바람직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리라고 볼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객관적 조건으로서, 베트남·예멘·독일 등 각기 '시민참여형'에서 벗어나거나 그에 미달하는 통일의 선례들이 한반도에서는 되풀이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남북의 느슨한 연합조차 마다한 채 '개량된 분단체제'를 꿈꾸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지금이 어떤 시대인지 모르는 몽상가들이다. 신자유주의와 신군사주의가 판을 치는 오늘의 세계에서 분단된 한반도는 미사일 위기, 핵 위기 등 온갖 위기가 속출하는 위험지대로 남을 수밖에 없으며, 종국에는 그냥 위기가 아닌 엄청난 재앙을 당할 확률이 높다. 이런 파국을 피하기 위한 통합이 점진적·단계적 진행말고는 방도가 없다는 사실에서 생활하는 시민들의 폭넓은 능동적 참여의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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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25 15:56 l ⓒ 백낙청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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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비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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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 | 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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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경 후, 처음 방을 구하러 다니던 날의 날씨를 기억한다. 8월이었고, 숨막히게 무덥던 날이었다. 나는 어머니와 함께 비지땀을 흘려가며 낯선 동네를 헤매고 있었다. 서울 물정이라면 둘 다 무지했고, 가진 돈은 터무니없이 적고, 날은 대책없이 덥기만 했던 어느날. 그럴듯한 방을 얻지 못해 소가지를 부리고 있던 나를 길가에 한참 세워두고, 작열하는 도시 한복판에 서 있던 어머니의 얼굴은, 땀과 파운데이션이 뒤범벅된 탓에 진흙처럼 금방 흘러내릴 듯했다. 우리는 너무 지친 나머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집에 들러 얼렁뚱땅 계약을 했다. 이상하리만치 천장이 높은, 깊고 서늘한 방이었다. 다행히 조건이 맞아 어머니는 내게 몇평의 애잔함을 떼어줄 수 있었다.
그날의 기다랗던 정오, 이 땅의 지난하고 유구한 상경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방을 구한 뒤, 머리를 맞대고 함께 팥빙수를 먹었다. 깊은 피로 사이로 투명하게 부딪치던 얼음 소리, 하얗게 질려 있던 여름 하늘.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할 수도(首都)의 볕은, 누군가를 미워해도 좋을 만큼 충분히 강렬했고, 어머니는 버스에 오르는 순간까지도 연신 땀을 훔쳐댔다. 나는 멀어져가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오래전, 셋방을 스무번도 넘게 옮겼다는 아버지의 일기(日氣)도, 그날의 20세기 태양도, 저렇게 크고 어지러웠을까?’라고 중얼거렸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나는 그날 우리들 머리 위로 떠 있던 크고 둥근 해를, 그 대낮의 따가웠던 서울의 빛을,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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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25 15:52 l ⓒ 김애란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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