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공 청산이 한창이던 1988년 8월 월간 중앙에 '청산해야 할 군사문화'라는 글을 쓴 뒤인 8월 6일에
정보사 준장의 지시에 따라 정보사 군인들이 언론인 간부를 회칼로 찔러 테러한 사건.
▲ 기사에 불만을 품은 육군정보사 요원으로부터 피습, 중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 중인 오홍근 중앙경제신문 사회부장.
"국방부는 8월30일 장성급 현역 군인 2명이 개입된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테러였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육군정보사령부 예하부대장 이규홍 준장은 오홍근의 월간중앙 8월호 칼럼에 분개해 7월22일 부하 박철수 소령에게 ‘오 부장을 혼내주라’고 지시했고, 박 소령은 부하인 안선호 대위, 남정성 김웅집 이우일 하사 등 4명의 행동대원을 동원해 사전 답사를 거쳐 구체적인 범행계획을 수립했다.
박 소령은 8월2일 이 준장에게 범행계획을 보고한 뒤 4일 하사 3명에게 소속부대에서 사용하는 길이 25㎝의 칼을 나누어 주고 ‘죽이지는 말고 혼만 내라’고 지시했다. 범행 당일인 8월6일 안 대위는 하사 3명과 함께 오전 6시쯤 서울1라 3406호 포니2 승용차를 타고 현장에 도착했고, 박 소령은 오전 7시쯤 서울1거 6873호 포니엑셀 승용차를 타고 현장에 합류해 오 부장을 테러했다.
이 준장은 범행 이틀 후인 8월8일 사령부 참모장 권기대 준장에게 관련 사실을 통보했고, 권 준장은 목격자들이 진술한 ‘서울1라 3406호 포니2’ 운행일지를 변조하도록 지시하는 등 증거 인멸을 시도했다. 육군정보사령관 이진백 소장은 범행 발생 5일 후인 11일 이 준장과 권 준장으로부터 사건전모를 보고받고도 묵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방부는 이규홍 준장과 박철수 소령, 안선호 대위와 3명의 하사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행위 위반 혐의로, 권대기 준장은 증거인멸 혐의로 각각 구속하고 이 사령관은 직위해제했다. 그러나 사건이 육군 보통군사법원 검찰부로 넘어간 뒤 구속기소돼 재판에 회부된 사람은 범행을 지시한 이 준장과 박 소령, 행동책 안 대위 등 3명뿐이었다. 범행을 직접 저지른 3명의 하사관은 ‘상관의 명령에 따랐다’는 이유로 기소유예로 풀려났으며 이진백 정보사령관과 권대기 준장은 지휘책임을 물어 예편조치됐다."
(한국기자협회 2008.11.26)
이 사건을 지휘한 이진백은 자유선진당 이진삼 동생.
이진삼이 이번에 무소속으로 출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