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쏟아지는 햇살,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 수종을 알 수 없는 잘생긴 나무들 사이로 나지막한 건물이 보인다. 여기는 미국 서부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스탠퍼드 대학 기숙사다.
2006년 6월 17일 토요일, 졸업식이 열리는 Elliott Field로 마음은 달려가고 있다.
검은 양복 정장 위에 검은색과 붉은색 배색 가운, 등 뒤로 길게 늘어뜨린 후드와 동그란 모자에 금빛 술 장식이 달린 박사모는 내 아들을 세상 최고의 남자로 보이게 했다. 그동안 흘린 땀이 여기에 다 있다.
많은 사람들이 식장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생김새도, 피부색도, 언어도 다른 인종 전시장 같았다.
지구촌 곳곳에서 온 학생들과 학부모 친지들로 식장은 금세 북적이기 시작했다.
높은 단상의 본부석엔 수수한 꽃장식이 되어 있고, 각 단과대학별 휘장이 걸려있다.
9시 30분, 본부석 좌우 대형 스크린에 깃발을 든 졸업생 모습이 보이고 경쾌한 행진곡이 울리며 졸업식이 시작되었다.
각 단과대학을 상징하는 휘장들을 들고 일렬로 입장하는 모습이 특이했다.
석사 박사 졸업생이 입장하고 마지막으로 교수가 입장했다.
America, The Beautiful을 제창하고, 총장의 환영사, 초청 귀빈들의 축사가 있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답답함과 지루함에 더해 간간이 사람들이 웃을 때도 무표정하려니 나는 당혹스러웠다.
총장님의 지시에 모든 학생들이 기립하여 뒤로 돌아서서 학부모석을 향해 손뼉을 쳤다.
'오늘의 영광이 있게 해주신 부모님께 경의를 표합니다.'라는 뜻이란다.
가슴이 뭉클했다. 기도 후 졸업을 허락한다는 메시지, 교가제창으로 식은 끝났다.
학위수여식은 내일 오후에 한다.
땡볕에 검은색 가운을 입고 졸업식 내내 앉아 있는 학생들이 안쓰러웠다.
캘리포니아의 강렬한 햇살은 피부를 태울 듯 뜨겁고 눈부셔 선글라스가 필수품일 정도다.
식이 끝나고 가족들과 축하인사를 주고받으며 사진촬영에 여념이 없다.
자랑스러운 스탠퍼드인의 명예를 지니고 사회에 공헌하는 훌륭한 지식인의 삶을 기원한 총장님의 덕담이 사진 속에 녹아드는 듯하다. 가운을 벗어 부모님께 입혀드리고 촬영하는 흐뭇한 모습들이 우리 옛 상아탑의 모습처럼 고귀해 보였다.
우리도 아들이 입혀주는 가운을 입고 후드와 모자까지 갖추고 환하게 웃으면서 사진을 찍었다.
참으로 자랑스럽고 행복했다.
이 영광의 순간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밤을 낮 삼아 실험실에서 보낸 시간을 생각하며 눈물이 나려는 걸 애써 참았다.
이제 그동안 배운 걸 국가와 사회를 위해 공헌하는 과학자로서 보람을 찾아야겠지.
아들의 앞날에 영광이 함께하기를 기원한다.
2006년 6월 18일 일요일. 오늘은 어제보다 더 밝고 햇살은 더 뜨겁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투명하다. 사막기후에 가까운 이곳에 아름다운 수목과 예쁜 화초들이 싱싱하게 자라고 있는 것은, 먼 곳에서 물을 끌어와 스프링클러로 시간 맞춰 뿌리기 때문이란다.
학교 중앙로 양쪽에 일렬로 서있는 아름드리 야자수는 그루당 10만 불 이상의 가치라고 해서 놀랐다.
자전거나 차가 있어야 할 만큼 캠퍼스가 넓지만, 정갈한 건물과 수목이 조화를 이루어 어느 각도로 봐도 그림같이 아름답다. 제일 높은 곳이 15층 아파트 높이 정도의 타워고, 나머지는 모두 4층 이하의 낮은 건물이다.
오늘은 오후 1시 30분부터 학위수여식이 있다. 12시부터 점심식사가 제공되기에 좀 일찍 기숙사를 나섰다.
졸업식과는 달리 학위수여식은 단과대학별로 하기 때문에 각 대학별 소규모 단위로 장소를 정해 같은 시각에 다른 장소에서 거행된다. 전기전자공학부는 공학부 건물 근처에서 있었다.
교수를 선두로 박사 석사 순으로 입장하였다.
가운데 길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자리한 학부모석에서는 입장하는 아들 딸을 보기 위해 의자 위에 올라 서기도 하고 아예 길 쪽으로 나가서 까치발로 서서 고개를 한껏 높이 들고 서 있기도 했다.
수여식은 별다른 행사 없이 시작되었다.
호명된 졸업생이 후드를 들고 단상에 오르면 주임교수가 직접 후드를 걸어주고 학위증을 수여하는 방식으로 모든 석사 박사학위 취득자마다 이런 절차로 진행되니 시간이 많이 걸렸다.
호명되어 단상에 올라간 졸업생의 가족 친지들은 환호성을 올리고 손뼉을 치며 축하 분위기를 한껏 띄웠다.
어떤 가족은 나팔을 또 한 가족은 특유한 소리를 내는 부부젤라를 불었고, 알루미늄 쟁반을 나무 봉으로 마구 두드리면서 이름을 연호하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시끄럽거나 못마땅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고 축제 분위기에 같이 동참하는 즐거운 기분이었다.
드디어 아들의 이름이 호명되고 환하게 웃는 얼굴로 아들이 단상에 올랐다,
우리 가족은 목청껏 이름을 부르며 있는 힘을 다해 축하를 보냈다.
교수님이 직접 후드를 걸어 주시고, 학위증을 수여받은 아들은 악수로 경의를 표하고는 자리로 돌아왔다.
이런 장면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작은아들은 연방 셔터를 눌렀다. 한 시간 반쯤 걸려 끝이 났다.
오늘도 역시 이 영광의 순간을 영원히 남기고자 사진촬영에 여념이 없었다.
사랑하는 가족 친지들과 아끼는 후배와 같은 학교 출신 선후배, 타국의 학생들끼리도 축하 인사를 건네며 사진을 찍었다.
어쩌면 그렇게 다들 잘생기고 늠름하던지. 처음 보는 얼굴인데도 낯설지가 않았다. 부모님끼리도 인사를 나누었다.
스탠퍼드 재학생 출신 고등학교별 분포도를 보면,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학생을 보낸 학교가 대한민국의 서울과학고등학교란다. 100명이 넘는다니 정말 대단하지 않는가?
불타는 우리의 교육열과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좋은 예라고 봐도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마침 월드컵 축구 스위스와 한판 결전이 있던 날이라 두 아들과 남편, 세 남자는 한국 학생들이 모인 세미나실로 향했다.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고 음식을 주문해 먹으면서 같이 응원을 하기 위해서다.
그곳에도 100명이 훨씬 넘는 인원이 모였단다. 방학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최대자원은 인적자원이다. 인재를 길러 적재적소에 잘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머나먼 이국에서 땀 흘린 훌륭한 인재가 이렇게 많다는 것에 나는 목청껏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고 싶었다.
2006.6.29
첫댓글 김옥덕 선배님 대단하십니다.겁고 희망차게 펼쳐 질 것처럼 힘도 납니다.
미서부 여행으로 스텐포드 대학을 몇년 전에 둘러 보면서
이 대학에 애들 보낸 부모는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바로 선배님 이시네요.
2006년의 추억이 항상 생생하게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하루가
좋은 글 감사합니다.
43회면 동생(김옥희)과 동기시군요.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얼마나 좋으셨을까요?
몇년전 남편 출장따라 그곳에 가봤습니다.
공기부터 다른것 같았어요.
훌륭한 아드님을 두셨네요.
87세의 친정어머니께서는 지금도 말씀하십니다.너희들 공부 시킬때 풍족하지않고 어려워도 제일 재미 있었다고...
저역시 그렇게 생각하구요.
선배님! 한번씩 가슴 뭉클한 기억이 살아가는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죠?
아들덕분에 비행기 타고 미국에 두 번 다녀왔어요.
석사, 박사 학위수여식에요.
가진 거 없어도 주눅들지 않는 것은 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과학고에선 1학년 여름방학 때 스탠퍼드 대학으로 수학여행을 온답니다.
아들이 선배 자격으로 학교 소개 일일 가이드를 했다고 하더군요.
오래전에 이글을 읽을때 참부러웠지요..
똑똑하고 훌륭하고 인물이 참좋은 아드님을 두셨다는것과..
스탠포드졸업식에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가셨다해서 얼마나 부럽던지요...
스탠포드 교정의 아름다움은 말할것도
없이 훌륭하지요..
저도 미국있는 이질녀가 스탠포드로우스쿨을 졸업할때 가봤거든요..
고생만하시다 돌아가신 제어머니도 살아
계시면 모시고 갔을텐데..
하는 생각에 언니가 부러웠읍니다..
언니는 참 복이 많으세요..
아직도 아버님도 살아계시고
한달에 한번씩 뵐수도 있구요...
글공부 열심히 하시는 언니
더운 날씨에 건강 조심하세오ㅡ!!!
난 아우님이 부러워요.
삼 남매 다 훌륭하게 키워 좋은 짝 만나 결혼하고 맡은 바 직분에 충실하니까요.
친정 엄마는 석사 박사 학위 수여식마다 함께 가셨어요.
워낙 활동적이시라 친구분들이랑 해외여행도 많이 다니셨죠.
글 공부에 재미가 있어 월요일이 기다려집니다.
진작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요.
10 년 전에 써놓았던 걸 숙제로 제출하고 있어요.
이 것도 숙제로 냈던 건데 첨삭지도를 받은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