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속화를 보는 재미 중의 하나는 사람들 냄새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기억에서 조차 사라진 모습들이
있는가 하면 몇 백 년을 흘러 왔지만 여전히 같은 모습을 볼 수 도 있습니다. 또 당시 시대상을 적당히 비웃는
장면들을 통해 여전히 힘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서민들의 정서를 볼 수 있습니다.
영국의 월터 덴디 새들러 (Walter Dendy Dadler / 1854~1923)의 작품에도 웃음이 담겨 있습니다.
확실한 통풍 치료 A Sure Cure for The Gout / 86.4cm x 121.9cm
여인이 왼쪽 다리가 통풍에 걸린 남자를 병문안 왔군요. 통풍에 걸려 본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바람만 불어도
아프다고 하시더군요. 그렇게 아픈데도 남자의 얼굴은 아주 편안하고 입가에는 배시시 웃음까지 걸렸습니다.
벽난로는 조용히 타오르고 있고 창문을 커튼으로 거의 가려 놓았으니 분위기도 아늑합니다. 사랑하는 여인의 손을
잡고 있으니 모든 아픔이 사라진 것이죠. 저렇게 손을 잡고 있을 수만 있다면 평생 통풍이 걸린들 문제일까요?
사랑은 이 세상에서 가장 효과가 좋은 마취제인 것이 분명합니다.
새들러는 지금도 상점 거리로 유명한 영국 서리의 도킹이라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드로잉 부문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는데 열 여섯이 되던 해 화가가 되기로 결심을 하고 런던에 있는 헤덜리 미술 학교에
입학합니다. 2년간의 공부를 끝낸 그는 공부를 더하기 위해 독일의 뒤셀도르프로 건너 갑니다. 빌헬름 짐러를
스승으로 두고 6년간 공부를 계속합니다.
유쾌한 멋진 친구여, 우리 모두는 그렇게 말한다네
For He's A Jolly Good Fellow And So Say All Of Us / 97.1cm x 127cm
모두 자리에서 일어 났습니다. 모두 불콰해진 얼굴로 손에는 술잔을 들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주인공은 의자에 앉아 등을 보이고 있는 사람이겠군요. 제 경험에 의하면 이런 자리는 대개 환송회인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떠나는 사람이 서고 남은 사람은 앉는 경우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서는 사람과 앉는
사람이 구별된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얼굴들을 보니 유쾌하고 흐뭇한 모습들입니다. 보는 저도 기분이 좋군요.
이제 두 병을 마셨는데 테이블 밑에 두 병이 또 있습니다. 아무래도 ‘2차’를 가게 될 것 같습니다.
그림의 제목은 더 좋은 것이 생각나면 다시 고치겠습니다.
뒤셀도르프에서 공부를 하는 동안 새들러는 자주 돈이 떨어졌습니다. 배우는 학생이니까 그럴 수 있겠다 싶은데
그 때마다 어머니에게 돈을 빌려 달라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돈을 갚았다는 기록을 보지 못했으니까 뭐라고
단정지을 수 없지만 외국으로 아이를 유학 보내는 부모님들은 그 때나 지금이나 돈 때문에 마음이 불편한 것은
마찬가지이겠지요. 그러나 새들러는 유학 첫 해부터 작품을 두들리 갤러리에 전시합니다. 그림에 대한 재주는
‘똑소리’ 났던 것 아닐까요?
좋은 포도주의 마지막 잔 The Last of The Vintage / 86.3cm x 119.5cm
고급 포도주 한 병이 다 끝났습니다. 이제 ‘막잔’을 들 차례입니다. 그런데 다들 술이 지나쳤군요.
맨 오른쪽 신사의 폼도 엉거주춤 합니다. 그 옆의 젊은이도 눈이 풀어진 모습입니다. 세 번째 남자는 더 심합니다.
아예 의자 위에 한 다리를 올려 놓았습니다. 제일 안 되어 보이는 사람은 맨 왼쪽 신사입니다.
앉은 자리가 멀다 보니 자신에게는 마지막 잔이 돌아 오지 않은 모양입니다. 빈 잔을 든 눈매에 서운함이
보입니다. 좋은 술이라면 물 불 안 가리는 것은 거기나 여기나,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군요.
그런데 혹시 모여서 100병 드신 적 있으신지요? 저는 마셔본 적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 다시는 그런 ‘나쁜 짓’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1873년, 열 아홉의 새들러 작품이 로얄 아카데미에 전시됩니다. 이 때부터 시작된 로얄 아카데미 전시는 그 후
40년간 계속됩니다. 독일에서의 공부가 끝나기도 전에 그는 몇몇 작품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합니다. 그의 작품
주제는 욕심이 많고 어리석은 사람들의 모습을 우습게 묘사한 것들이었습니다. 특히 수도자들에 대한 묘사가
많았습니다.
런던에서 요크로 가시는 분들, 시간이 되었습니다. London to York, Time's Up Gentleman / 147.5cm x 193cm
여기가 어딜까요? 아무리 궁리를 해 봐도 판단이 서질 않습니다. 일반인들의 가정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어수선해
보이거든요. 혹시 간이 대합실 같은 곳이 아닐까요? 문밖에서 마차가 떠날 시간이 되었다고 외치는 사람이
보이는데 떠나야 할 사람들은 이야기 삼매경에 빠져있습니다. 오른쪽에 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는 이발을 하는
중인가요? 화면의 오른쪽 구석, 아직 길을 떠나지 못한 사람들이 어두운 표정으로 앉아 있습니다.
사람들 각자를 보니 상상으로 소설 한 권씩은 나올 수 있을 것 같군요.
새들러의 표현 기법은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었습니다. 그는 평생 공부를 하며 살았다고 하는 평도 있는데 이유는
가구나 복식(복식), 악세서리 같은 분야에서 거의 감정 전문가 수준에 이르렀고 이런 것들이 작품 속에 아주
정교하게 묘사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일을 묘사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이 수도원일지라도
철저하게 조사를 해서 정확하게 그림 속에 담았습니다. 그런 완벽한 가까운 묘사 속에 영국식의 다소 황당한
유머가 섞인 것이 새들러 작품의 특징이 됩니다.
생선프라이 Fish fry / 1863
이 작품의 또 다른 제목은 ‘금요일(Friday)’입니다. 새들러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목요일 (Thursday)’라는
작품인데 화질이 좋은 것이 없어서 여기에 올리지 못했습니다. 두 작품의 공통점은 수도사가 주인공이고
‘목요일’이 ‘생선’을 낚는 장면, ‘금요일’에도 ‘생선’이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금요일은 고기 먹는 것이 금지된
날이죠. 그렇기 때문에 생선이 등장했습니다. 자세히 보면 젊은 수도사들은 음식을 나르기 바쁜데 나이든, 힘이 센
수도사들 앞에는 음식이 가득합니다. 더구나 술도 꽤 마신 듯 얼굴들이 붉습니다. 특히 가운데 양손에 나이프를
쥔 수도사는 커다란 생선을 앞에 놓고 흐뭇한 표정입니다. 그 것을 내려다보는 젊은 수도사의 표정은 차갑습니다.
그림을 보던 아내가 한 마디 하더군요.
뚱뚱한 데는 다 이유가 있어!
테이블에 이미 술병이 여럿인데 다시 두 병을 안고 내려 오는 수도사의 얼굴도 굳어 있군요. 제 느낌에 예수께서
만약 이 자리에 오셨다면 벽에 걸린 그림 속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새들러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마을 사람들을 자주 작품 모델로 세웠습니다. 모델들의 위치와 동작까지 완벽하게
준비를 해 놓고는 작업을 시작했는데 그러다 보니 비슷한 주제의 다른 작품에서도 같은 구성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뉴린파의 작품 속에 그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등장했다는 이야기가 떠 오릅니다.
수도자의 식사 The Monk's Repast / 41cm x 51cm
식사로 게가 한 마리 올라 왔습니다. 빵은 밀어 두고 우선 포도주를 한 잔 따르고 있습니다. 포도주의 붉은 색은
수도자의 얼굴을 거쳐 벽 전체를 물들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수도원은 원래 신께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스스로
속세의 욕망을 끊는 곳이죠. 시간이 흐르면서 거대한 권력이 되었던 적도 있습니다. 그림 속 수도자의 얼굴은
영적인 것 보다는 물적인 것에 더 많이 기운 모습입니다. 왜 그렇게 보느냐고 하신다면, 포도주를 바라보는 눈길,
애주가가 아니면 만들기 어려운 것이거든요.
여러 전시회에 작품이 전시되었지만 정작 새들러의 첫 개인전은 1895년, 마흔 한 살이 되던 해 르페브르
갤러리에서 열렸습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이미 새들러는 영국에서 아주 인기 있는 화가였습니다. 그의 작품은
판화로 제작되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가 되었습니다.
원고와 피고 Plaintiff and Defendant / 131.4cm x 171.4cm
원고와 피고라고 해서 법정을 생각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림 속에는 두 그룹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왼쪽에는 여인들과 남루한 옷차림의 남자가 있고 중앙에는 잘 차려 입은 남자들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 두 그룹 사이에서 일어난 것이겠지요. 음식을 차려 놓은 것을 보니 사태를 중재하는 모임 아닐까 싶습니다.
고개를 받치고 건너편의 남자를 쳐다보는 여인의 눈길을 따라 가보니 몸을 반쯤 기울이고 있는 남자가 보입니다.
혹시 부부? 남자가 뭔가 잘못을 해 놓고 아주 당당하게 친구들을 끌고 와서 떠들고 있는 것 아닐까요?
피고는 남자인 것 같고 원고는 여자인 것 같은데 중재하러 온 남자는 이미 피고 편을 들기로 마음 먹은 것처럼
보입니다. 권력은 부자들과 친하거든요.
새들러의 작품 속 모습은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반의 모습들입니다. 영국이나 미국 화가들 중에는 이렇게
당대의 모습 보다는 그 이전 세대를 묘사한 경우가 있습니다. 대개 풍자적인 내용들이 섞인 것들인데 혹시
‘살아 있는 권력’의 칼 끝을 피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구혼자 The Suitor / 87cm x 67cm
문을 두드리기 전에 다시 한 번 목소리를 가다듬고 있습니다. 선물까지 준비했으니 모든 것이 다 준비되었습니다.
구두를 어찌나 닦았는지 그림이지만 제 얼굴이 비칠 것 같습니다. 청혼을 하기 위해서 이 정도 준비는 해야겠지요.
마음은 집 앞에 피어 있는 꽃밭처럼 화사한데 선뜻 문을 두드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일단 문 안으로 들어서면
오직 앞만 보고 말을 해야겠지요. 자꾸 문 앞에서 서성거리는 남자가 미웠는지 고양이가 사내의 발에 몸을 기대어
왔습니다.
아이 깜작이야!
놀란 사내의 얼굴을 보니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좀 다르군요. 결혼하고 나면 놀랄 일이 얼마나 많은데 ---
그나저나 청혼이 성공해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1897년, 새들러는 그 동안 살던 런던에서 허밍포드 그레이로 이사를 갑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170점이 넘는
작품을 남기고 예순 아홉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머물게 됩니다. 대중들의 인기가 있었다는 것과
개인의 관한 기록이 남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자료가 모자라면 여전히 아쉽습니다.
새들러 선생님, 혹시 그림만큼 선생님의 일생도 유쾌하셨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