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닥 불
안도현 시집- 창작과 비평사 刊
**약력
1961년 경북 예천 출생,원광대 국문학과 졸업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으로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 있으며 [시힘] 동인
차 례
제 1 부
청진 여자, 웅포, 금강 하구에서, 만경강 노을, 군산선, 성묘, 1960년대
白石선생의 마을에 가서, 벽시 3, 4, 5, 6
청진여자
내가 사는 남쪽나라
쓸쓸한 눈 내리면,
미군 없는 청진항에서
헌 자전거 한 대 빌어 타고
퍼붓는 눈발을 따라가서
어둠을 털어내는 전등을 밝힌 집
백설기 같은 김이 하얗게 서린
유리문 열고 들어서면
갈탄 난로가 뜨거운 집
이름도 버리고 돈도 없이 왔노라고
내가 등 푸른 한 마리 정어리로
당신과 헤엄치고 싶다 말하면
동해 같은 자궁을 열어주는
사랑이라는 말보다 더 아름다운
청진여자, 그녀와 하룻밤 자고 싶다
봄에 눈이 온다는
묽맑은 청진항 부근에서
꿈에 벌레 같은 눈송이들이
이부자리를 따뜻하게 적시는 밤
아내를 남쪽에 두고
나는 죄짓는 마음도 모르고
헝클어진 머리카락 미역냄새를 맡으면
부끄럼없이 굵어지는 어깨와 팔뚝
한반도의 허리를 꼭 껴안 듯이
더 깊은 신천지 속으로
힘차게 나를 밀어 넣으면
온 바다로 파도 치는
청진 여자, 그녀와 하룻밤 자고 싶다
내가 사는 남쪽 나라
쓸쓸한 눈 내리면,
모든 것을 다 주어야
비로소 하나 되는 날
그 셀레이는 첫 새벽에
동해 붉은 해 같은 아이를 낳아
넘치는 젖을 물리게 될 청진 여자여.
우리는 간섭받지 않는 부부가 되고 싶다.
웅 포
갈대들이 웅웅 우는 웅포
산맥도 낮게낮게 물결치며 흐르는 곳
옛날 되놈들 배 갖대 대고 떼로 진을 쳤다는 강기슭으로
불빛이 하나 둘 새끼를 치는 저물녘
빈 그물 찬 발목으로 강에서 돌아오는 사내하고
황복어탕에 소주 한 잔 먹고 싶다
금강하구에서
시도 사랑도 안 되는 날에는
친구야 금강 하구에 가보아라
강물이 어떻게 모여 꿈틀대며 흘러왔는지를
푸른 멍이 들도록
제 몸에다 채찍 휘둘러
얼마나 힘겨운 노동과 학습 끝에
스스로 깊어졌는지를
내 쓸쓸한 친구야
금강 하구둑 저녁에 알게 되리
이쪽도 저쪽도 없이
와와 하나로 부둥켜 안고
마침내 유장한 사내로 다시 태어나
서해 속으로 발목을 밀어넣는 강물은
반역이 사랑이 되고
힘이 되는 것을
한꺼번에 보여줄 테니까
장항제련소 굴뚝 아래까지 따라온 산줄기를
물결로 어루만져 돌려보내고
허리에 옷자락을 당겨 감으며
성큼 강물은 떠나가리라
시도 사랑도 안 되는 날에는
친구야 금강 하구에 가보아라
해는 저물어가도 끝없이
영차영차 뒤이어 와 기쁜 바다가 되는 강물을
하루내 갈대로 서서 바라보아도 좋으리
만경강 노을
노을아
피멍진 사랑아
어릴 적 고향집 뒷방 같은 어둠이
들을 건너오는구나
그대 온 몸의 출렁거림
껴안아줄 가슴도 없이 나는 왔다만
배고픈 나라
하늘이라도 쥐어뜯으며 살자는구나
내 쓸쓸함 내 머뭇거림 앞에서
그대는 허리띠를 푸는데
서른 살이 보이는 강둑에서
나는 얼마나 더 깊어져야 하는 것이냐
서해가 밀려들면
소금기 배인 몸이 쓰려
강물이 우는 저녁에서
노을아
내 연인아
군 산 선
힘찬 산맥은 없다
끝이다 싶은 지평선 아래
빨래같이 널려 있는
깨끗한 들판
미루나무 한 그루에 마을이 있다
거기 사람이 산다
적산가옥과 바다를 등지고
군산에서 떠나오며 생각했다
나는 반도의 내륙으로 가고 있는가고
차창에 어리는 서해 물결이여
힘겹게 고무함지를 이고
기차에 오르는 아낙들이 있다
젖은 손 번들거리는 검은 얼굴로
마른 빵을 나누어 먹는
이 거칠은 조선의 어머니들이다
가난의 넉넉함이여
망둥어 피조개 꽃게가 퍼뜨리는
비린내가 왈칵 슬프지만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내 어머니가
옆에 앉아 있다 아버지는 없다
아버지의 븕은 무덤이 있을 뿐
그렇다 군산선 올라앉아 알 것 같다
우리는 모두 후레자식으로 기차를 타고 가는 것이다
대야역에 멈추었다가 오산 쪽으로 달리면
언뜻 비치는 산줄기
옛날에 이 들판이 바다였을 적에
자 산골짜기는 포구였을까
멸치배가 들 때마다 마음 철썩이며
흥청대곤 했을까 부질없다 과거는
기차는 지치지도 않고 앞으로 달린다
우리는 우리 식대로 사는 거다
저 출렁이는 푸른 배들과 함께라면
쓰러지면 등 두드려 일으켜 세워주마
들국화 피는 가을까지 가는 거다
보라 가진 것 없어도
누구에게나 평등한 햇빛과 바람이 있다
그것들 여기 노래로 흘러 넘치는 한
이 비좁은 완행열차 덜컹이는 창문 안에서
성냥알처럼 어깨를 맞대고 가도 좋다
큰 희망이 없어도
찐 계란 한쪽 소금 찍어 주고 받으며
지금 우리에게는 절망도 없다
성 묘
햇볕도 대추나무 끝에 좋은 날
어린 유경이를 데리고
아버지 산소 성묘 갔지요
억새꽃 삼천리로 피어 있고요
방아깨비는 슬픔처럼 툭툭 튀어오르고요
할아버지 만나러 간다는
내 어릴 적 가을 한때 생각하면
아버지 발자국 되밟으며 가만히 듣던
그 벅찬 숨소리 생각하면
오늘 유경이도 따라오며 듣겠구나
생각하면 어느덧 나는
시냇물 데리고 바다로 가는 강물이지요
모든 길이 무덤에 이르러 깊어지지요
1960 년대
무슨 전칫날이었다, 아버지는
냄새좋은 머릿기름을 바르고 어머니는
술파는 갈매기옥 색시같이 분칠하고 한복도 차려입고
나는 단 과자를 먹으며
외가집을 쫄랑쫄랑 따라간 날이 있었다
생각난다, 미루나무가 지키고 섰던 비포장길
힘겹다는 듯 주저앉아 맥 못추곤 하던 빨간 합승버스
그때마다 바퀴 밑으로 등짝을 밀어넣던
하루 종일 차를 모는 운전수가, 나는 되고 싶었는데,
그날 외갓집 마당가에 뒤집어 놓은 솥두껑에는
장터같이 지글거리며 돼지기름이 끓고
맛잇는 배추전 내를 은근히 맡고 있으면 요놈
불알 얼마나 컸나 보자
하며 웃깃을 잡아당기며 까르락대던 아주머니들,
화끈 달아오른 이마를 식히러 올라간 뒷산은
참꽃이 먼저와서 온 산을 적시는
봄이었다, 생각이 난다, 그 무진장한 꽃사태를
해마다 볼 수 있겠거니 여긴 것은
내 고추가 아직 덜 여문 탓이었을 것이다
올챙이 배가 되도록 무얼 먹다가
사진 박으러 온다는 턱수염이 긴 사진사를
기다리다가 초저녁에 잠이 들었던 나는
북소리 장고소리가 꿈속을 울리는 통에 깨어났는데,
어느새 잔치는 달무리처럼 사위어가고 소년은
겨드랑이가 가뭇가뭇한 슬픈 청년이 되어 있었다
밤새도록 내가 들고 갈 등불이 하나 빛났다
白石 선생의 마을에 가서
백석 선생을 만나러 간다
흰 붕대 같은 산길을 밤새 걸어
나는 무슨 서러운 상처를 지끈지끈 밟는 듯이,
한미연합군과 인민군과 세월 모르고 내리는
눈발 그치기 십분 전에
나는 북방의 새벽 마을어귀에 도착하였다
그 시절만 해도 거칠 것이 없었다, 40년대에
설혹 내가 사람이 아니었다면
한 마리 노루가 되어 훌쩍 산맥을 넘었을 것이다
등잔불 흐린 빛이 새는 장독대 뒤에서, 놋요강 놓인 툇마루 아래에서
느릅나무 잎을 잘게 씹으며
그이의 사람냄새를 그리워하기도 했을 것이다
살아 있다면, 일흔아홉의 노인
시간이 빨리 썩어 흐르는 남쪽에서는 다들
선생은 죽었거나 폐인이 되었을 거라고,
이 마을에 아름드리 생나무가 자라는 숲이며,
아낙네의 찰랑이는 물동이 속에서 해가 떠오르는 광경이며
학교에서는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삽을 들고 나와 눈길을 열어주는
굴뚝새 같은 까만 소년을 따라갔는데
목이 길고, 머리를 뒤로 넘겨빗은, 콧수염의 한 사내가
거기 살고 있었다
단풍숲처럼 얼굴이, 귀도 붉은 아내와
공장으로 가려고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만지는 아이들과
손떼로 윤이 나는 나무책상 하나와
늙지 않은 그사내는 있었다, 백석선생이었다
서울서 나온 [백석전집]을 먼저 보였더니
먼 옛날이 신천지였다고
처마끝 고드름이 평안도 사투리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선생은 광화문이며 종로 골목을 함께 걷고 싶다 했지만
나의 80년대는 꿈이 아니었다, 죽도록 갚을 빚이었다
그래서 날은 금새 어두워지고 무진장 폭설이 쏟아져
하산길을 막는가 보다
모밀국수나 한 사발 말아먹고 천천히 떠나라기에
나는 팔펄 끓는 아랫목으로
이불 속으로 못 이긴 척 엉덩이를 디밀었는데
여기서 한 백년 잠들었다 일어나면
맑고 뜨거운 사랑을 노래하는 시인으로 태어날 것 같았다
벽 시 3
총이여
대포여
미사일이여
분단 40년 겁없이 커졌구나
갈보 구망들이야 헛것이구나
네 구멍 속으로 다시는
눈 맑은 조선 사내 불러들이지 말라
이하늘 이 산하 빨아들이지 말라
압록강 두만 강 건너 태평양 너머
물러가라 물러가라
처녀들이 운다 들창에 귀를 달고
의주에서 마산에서 새 신랑 기다리며
밤새껏 운다 우리나라
안된다고, 총밥은
안된다고, 대포밥은
안된다고, 흑흑, 미사일밥은
벽 시 4
벽에다 슬픔을 쓰지 말아요
어두운 벽에 막힌 벽에 기대어
하늘 보이지 않는다고 울지 말아요
벗들이여
동네 썩은 벽에
학교 낡은 벽에
공장 마른 벽에
우리 하나씩 깃발을 그려봐요
깃발이 살아 펄럭여
바람을 흔들고
우리를 흔들어줄 때까지
슬픈 벽이 하늘이 될 때까지
벽들이여
벽 시 5
우리나라 모닥불 근처에는
사람이 있다
살아서
모여 있다
등짝은 외롭고 캄캄해도
그 가슴이 화끈거리는
벽 시 6
여기서부터
내 무덤까지
길이 나 있습니다
코피 터지지 않고는
내 못 갈 갈입니다
제 2 부
똥 차, 하수도는 흐른다, 농민과 군인, 수박, 기차 소리, 똥 개,
비 그친 뒤, 신당화, 지평선 너머, 노 을, 가을 햇볕, 여름 방학,
연탄 냄새, 모닥불, 논
똥 차
두어 달에 한번씩 학교에
똥차가 온다
햇볕이 변소 지붕에 골고루 널린 날을 택해
부릉부릉 운동장을 힘차게 질러온다
개도 안 먹는다는 선생 똥을
교과서나 공책 찢어 쓰윽 닦은 아이들 똥을
빨대로 콜라 빨듯 시원히 바닥낸다
수업시간에도 냄새가 교실을 적시지만
우리 어디 제 코만 싸잡을 일이더냐
비우면서 그리하여 가득 채우는 일
대명천지에 똥차는 와서
진정 참다운 일
가르쳐 주고 간다
하수도는 흐른다
그대들이 퍼먹고 놀다 잠든 한밤에도 하수도는 흐른다
꼬르륵거리는 배를 잡고 하수도는 흐른다
씨벌씨벌하며 기어이 하수도는 흐른다
이 악물고 눈물 머금고 닦지도 않고 하수도는 흐른다
똥오줌물 데리고 하수도는 흐른다
고관의 저택에도 하수도는 흐른다
아파트 층과 층 사이로도 하수도는 흐른다
손에 손을 잡고 하수도는 흐른다
땅 밑에도 길이 있다고 하수도는 흐른다
이 썩은 세상을 뒤집어쓰고 하수도는 흐른다
흐르다가 숨이 막히면 거꾸로 하수도는 흐른다
그대들의 주방으로 침실로 하수도는 흐른다
농민과 군인
군인도 원래 농민의 아들이었다
학교 갈 때 넣어 가던 도시락 열어보면
꽁보리밥
고추장
멸치 한 마리, 대가리도 굵었다
그의 아버지 지게 지고 들일 나갈 때
허리춤에 책보 묶어 열심히 뛰어가던
가난한 집 즐거운 소년이었다
공부를 마치면 군인이 되겠다, 나는
조국을 지키는 자랑스러운 육군 장교
그의 아버지 봄이 와서 볍씨 뿌릴 때
아들은 연병장에서 규율 복종 엄격
각개전투와 총검슬 배웠다
어깨 위엔 빛나는 계급장, 가슴에는 국가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의 아버지 논에서 모를 심을 때
아들을 사병에게 푸른 군인정신을 심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농민으로 사는데
아들은 어느새 애국자가 되었다
좋은 때가 오면 옷을 벗겠습니다, 아버지
애야, 군인은 단정하게 군복을 입어야지
이 세상 농사쉬운 일 아니란다
그 얼마 후
아버지의 마을에 신작로가 생기고
아버지는 논둑에 앉아 담배를 태우며
아들을 생각한다, 저 벼좀 보아라
저 흐트러짐 하나 없는 깨끗한 질서를
아버지는 가을이 오면 추수를 하겠지만
아들은 넥타이를 매고 불편하다
농민이 낫으로 풀을 베는 동안
군인은 총으로 전쟁과 학살에 참가하였으므로
그게 진정 죽음을 무릅쓴 일이었다지만
수 박
낡은 슬레트 지붕 너머
해는 뒤뚱 기울고
일 나갔던 개똥이네 검은 아버지는
휘영청 수박 한 덩이를 사들고 돌어오시었다
막노동으로 뜨거워진 아버지 같은 수박을
개똥이가 자지 달랑거리며 목욕하던 고무다라이에
둥둥 띄워놓고
찬물에 뚝딱 식은 저녁밥 말아먹고
돌아서서 질탕스레 트림 한번 하고 나서
어머니는 내일 먹자 하시지만 개똥이는 수박을
입에 넣으면 시원하고 달콤한 것을
씨앗을 골라뱉지 않아도 똥을 누면 그냥 쏙 빠져나오는 것을
자꾸 먹고 싶어 통통거리는 것이었다
먹고 없으면 또 사먹지 하시는 아버지는
선풍기 틀어둔 채 어느새 잠이 들고
귀가 찌그러진 쟁반 위에 부억칼 옆에 식구들 사이에
그놈은 떡개구리같이 와서
개똥이네 둘글디 둥근 목숨들도 은근히 둘러앉아
기다리는데
마침내 수박은 쩍
벌겋게 부끄러움도 없이 갈라져 속살을 내보이는데
반달로 반달을 그믐달로 그믐달을
까만 씨앗 같은 어둠으로
할머니는 우물우물 어머니는 가만가만 누나는 조금조금
개똥이는 와그작와그작 먹기 시작하였다
턱에 붉은 물이 흐르도록 배꼽이 없어지도록 먹고
마지막 머뭇거리는 한 조각까지 먹고
꿈같이 잠자리에 누은 개똥이는
어느 때인가 사타구니 휘감는 오줌발소리를 들으며
누군가 흔들어 깨우는데 두 눈을 꽉 감고 있었다
기차 소리
기차는 흐린 눈발
속에서 운다
달려가야 할 길이 벅차다는 듯이
기차 소리여 하루에도 수없이 선생질 때려치우고 싶은
나는 자꾸 뒤로 간다 기차소리여
그애는 먼데서 무슨 슬픈 말을 걸어오는데
내가 가르친 코밑이 거무거뭇한 아이들이 옥상에서
뿌리는 전단처럼
눈은 내리는데
기차소리여 이 겨울 끝없이 덜커덩, 덜커덩거리고
해를 더해 가르칠수록 나는 점점
1.4후퇴 하는 기차 소리가 되는구나
그 언젠가 잔등에 눈송이를 받으며
가락국수 국물을 서서 훌훌 마시고 있을 때 기차 소리여
어서 가자고,
역사는 발전한다고,
뜨거운 입김으로 나를 부르던 기차 소리여
그대가 힘차게 레일을 타고 가듯
내 지금 발 딛고 선 교단에 세계의 중심임을
또 못된 놈의 얼어붙은 세상을 꾸짖으며 가는구나
이 겨울 가고 봄이 와서
길도 묶인 허리를 풀면
그대는 고철이 되어 내려앉을 때까지
소리가 난다
머나먼 대륙을 쿵쿵 울린다
똥 개
똥개가 되고 싶어 봄날에는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따뜻한 똥을 찾아
동네방네 쏘다니다가
복숭아같이 엉덩이 굵은 암캐 만나면
그녀와 함께 킁킁대며
오랭캐꽃 들길 따라 걷고 싶어
모락모락 김이 나는 혀끝에 침이 도는
똥을 찾아 어슬렁거리다가
물어뜯고 싶어 손이 하얀
가슴에 똥이 가득 찬 어느 놈이
냄새난다고 똥 치운다고 법석떤다면
그놈 손목부터 물어뜯고 싶어
부르르 치떨며 팽개치며
우리들 귀한 밤을 지키고 나면
그녀가 아지랑이처럼 꼬리 흔드는 것을
보고 싶어 봄날에는
똥개가 되고 싶어
비 그친 뒤
담장 밑 텃밭 상추 푸른 냄새가
3층 교실까지 올라온다
딱정벌레같이 엎드려 사는 슬라브지붕집 빨랫줄에
누군가 눈부시게 기저귀를 내다 넌다
저 아기도 자라면 가방 들고 딸랑딸랑 이리로 걸어올 것이다
산 당 화
산당화야
산당화야
교장선생님한테 불려가 혼나고, 너도
숙직실 처마 밑에 나와 섰구나
할 일이 많아서
그리 많은 꽃송이를 달고
몸살난 듯 꽃잎들이
뜨겁도록 붉구나
지평선 너머
힘겨워도 기여이 기여이 굴뚝이 저녁연기를 밀어올리는
지평선 너머
먼 개 짖는 소리
컹컹 들판을 건너오는 것은
아침에는 어김없이 일어나 개밥 말아줄 사람이
지평선 너머 있다는 말이구나
그 마을로 별똥별이 여럿 뛰어내리다 숨는 밤
노 을
내 자전거 퇴근길 돌맹이 길
김제 만경 들판 끝에
노을이 모여 있네
서햇가 사람들도 분명히 쳐다볼 노을이
뜨겁게 끓으며, 그 사상이 세상에 넘칠 듯
왼쪽 오른쪽도 없이 온통
노을은 아,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네
나에게 그동안 무얼 했느냐고
나는 20년 후의 조국을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그러나 어찌 이 더러운 입을 열 수가 있나
추억을 물으면 철새 같은 이사
출생지는 낙동강
그 몇 해 남한강, 금호강 물밑에 길들여지는가 했더니
오늘은 전라도라 만경가가에서
갈가리 찢어져 저녁밥 먹으로 가는
죄 많은 교사가 되어
남편이 되어
노을이여
나도 한때는 생각했었네
내 어릴 적 우리 집
가난했지만, 더없이 따뜻한 밥상 같은 노을이여
우리 형제들이 밟고 다닌 여러갈래 길
아버지가 하나하나 불러 모아
귓등에 물소리 매달리는 들길로 돌어올 때
아버지 등 뒤에서 새떼와 들꽃을 잠재워주고
역사의 시간표를 내일로
거뜬히 넘겨주던 아름다운 노을도 보았었네
가진 것 없어도 모여 살 수 있다면
같이 살 부비며 잠들 지붕이 있다면
우리는 노을이 되겠거니 생각했었네
그 나라와는 너무나 멀리 떨어진 길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면
노을은, 우리의 가장 처참한 싸움터
나는 핸들을 바로 잡아야 하네
이 고장 어머니들이 피흘리며 낳은 아이들에게는
내가 저 끝없는 노을로 모여 넘치며
들녘에서 이름을 불러줘야 하네
가을 햇볕
가을 햇볕 한마당 고추 말리는 마을 지나가면
가슴이 뛴다
아가야
저렇듯 맵게 살아야 한다
호호 눈물 빠지며 밥 비벼먹는
고추장도 되고
그럴 때 속을 달래는 찬물의 빛나는
사랑도 되고
여름 방학
오이밭 지나 옥수수밭 사이
두 노인네 사는 외갓집이 있습니다
어릴 적 아버지 따라 짐 자전거 타고 온 날은
끓는 물에 어김없이 닭을 삶던 집
감꽃이 떨어지면 감꽃을 주어 먹던 집
오늘은 마당가에 풀 뽑던 외할머나보다 먼저
외할머니 눈물이 그러그렁 마중 나옵니다
아이구 내 새끼 오네
남조선 천지에서 시 제일 잘 짓는 새끼
그러나 얼마나 떨리는 일인지, 끝없이 쓸쓸한 줄을
외손자가 쓴다는 시가 무엇 하나 적시지 못하는
가엾은 냇물이라는 걸 모르시고
내 솔담배 한 개비 외할머니 드리고
외할머니 청자 한 개비 내가 받아
불붙여 맞담배 피우는 것이 우리 첫인사입니다
뢰할아버진 못둑 밑 논에 피사리하러 가시고
닭없는 닭장 옆에서 늙으신 외할머니
어제는 재너머 고추밭 매러 갔더니
소짝새가 소짝소짝 그렇게 울어대더라
우리 안서방 일찍도 북망산 가서
남겨둔 처자식 보고 싶어서
저리 소짝새 되어 우는갑다 생각하니
외할머니 맑던 하늘이 또 눈물입니다
외할머니는 우리 어머니 낳아 시집 보내고
어머니는 나를 낳아 장가보냈지만
그 모든 세월이 그렇습니다 눈물이었습니다
해방 전 일본땅에서 황국군 옷 짓던 일도
해방이라고 돌아온 나라에서의 농사도
삶도 여지껏 눈물이었습니다
변한 세상은 아무것도 변한게 없습니다.
국민학교 때 와서 묻어두었던 포도나무가
내 딸아이 같은 열매를 가득 달고 저리 푸른데
저는 청포를 입지 않았습니다 외할머니
소매 없는 흰 남방이 부끄러운 선생이 되었습니다
20년 전과 마찬가지로 등에 풀 짐을
한짐 가득 지고 대문을 들어서는 외할아버지
그 산봉우리 같은 지게 나는 받아 지지 못하고
누구를 키우며 또 무엇을 가르친다 할 수 없습니다
그림책에 원두막과 수박을 그리던 아이가
애비 잃고 애비 되어 돌아 왔다고
하늘에 밭갈이 하듯 연기를 뿜어 올리는 외가집 굴뚝은
알고 보면 한평생 방학도 없이 살았습니다
연탄 냄새
싸락눈 흩뿌리는 날
퇴근길
언 코끝으로, 살속으로
파고드는 가족이여
최저생계비여
모 닥 불
모닥불은 피어오른다
어두운 청과시장 귀퉁이에서
지하도 공사장 입구에서
잡것들이 몸 푼 세상 쓰레기 장에서
철야농성한 여공들 가슴 속에서
첫차를 기다리는 면사무소 앞에서
가난한 양말에 구멍난 아이 앞에서
비탈진 역사의 텃밭 가에서
사람들이 착하게 살아 있는 곳에서
모여 있는 곳에서
모닥불은 피어 오른다
얼음장이 강물 위에 눕는 섣달에
낮도 밤도 아닌 푸른 새벽에
동트기 십분 전에
쌀밥에 더운 국 말아 먹기 전에
무장 독립군 출정가 부르기 전에
압록강 건너기 전에
배 부른 그들 잠들어 있는 시간에
쓸데없는 책들이 다 쌓인 시간에
모닥불은 피어오른다
언 땅바닥에 신선한 충격을 주는
훅훅 입감을 하늘에 불어넣는
죽음도 그리하여 삶으로 돌이키는
삶을 희망으로 전진시키는
그날까지 끝까지 울음을 참아내는
모닥불은 피어오른다
한 그루 향나무 같다
논
모 심고 와서 발 씼고
저녁밥 기다리는 동안
오래오래 바라보는 가슴 가득
깨끗한 논
멸구떼가 덮을 논
가뭄이 말라붙을 논
누가 뭐라 해도
혁명 가을의 그날까지
넘치지 않을 넘치지 않을
논
제 3 부
봄 편지, 2 월, 그 곳, 이리 중학교, 월급 날, 평교사, 보충수업
급 훈, 청 소, 어린 조국, 교실에서, 빈 교실에서,
봄 편지
점심 시간 후 5교시는 선생 하기 싫을 때가 있습니
다 숙직실이나 양호실에 누워 끝도 없이 잠들고 싶은
마음일 때, 아이들이 누굽니까, 어린 조국입니다 참꽃
같이 맑은 잇몸으로 기다리는 우리 아이들이 철 덜 든
나를 꽃피웁니다
2 월
진눈깨비 속에서 졸업식이다
붉고 큰 꽃다발 가슴으로 슬프고 기쁜 기념사진을
찍는다
식구들과 한판 벗들과도 한판 그리고 독사진도 한판
발등에서 머리끝까지 밀가루 하얗게 뒤집어쓰고
눈발처럼 키득거리는 놈도 있다 평소에 잡먹듯이 매
맞던 녀석이다
그래도 장차 시대구분할 임자는
이 흥청대는 아이들 중에 있다
내 눈에는 이 튼튼한 장정들의 아침의 나라가 보인
다
그 곳
나는 그곳으로 갑니다
출석부와 국정교과서 겨드랑이에 끼고
4년째 갑니다
이린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곳입니다 그곳은
제복의 군인들과 경찰들은 들어갈 수 없고
그래서 내가 어깨를 움추리고 있어도
오직 당당하게 보입니다
해방 후 많은 이들이 앉아 있다가
떠나가곤 하였습니다 하나씩의 책상과
하나씩의 의자에서 도시락을 먹다가
법관도 공장노동자도 상인도 의사도 됩니다
김치 쉰내가 왁자그르 찰랑거리는 오후에
나는 그곳으로 갑니다
내가 가면 아이들은 먼지처럼
무릎을 굽히면서 가라앉습니다
순종에 아주 길들여졌다는 뜻이겠지요
해서 언젠가 들려줄 고백이 있습니다
나는 지식을 판매하는 점원이
아니야 포장지도 없이 장사하는
사람이 아니야 그렇다면 사람도 아니지
그곳에서 차락차락 매맞는 소리 들으며
눈두덩에 더러 포도물을 믈이면서
아이들은 쑥쑥 키가 자란답니다
내 발자국 소리 하나하나
그곳에서는 가르침이 된다 생각하니
여간 즐겁고 두려운 게 아닙니다
시글버글 조국의 아침이 그곳에 있다기에
오늘도 나는 그곳으로 갑니다
이리중학교
어느 때묻지 않은 손이 닦아놓았나
유리창을 열면
군산선 화물열차가
바다에서 돌아오는 곳
운동장 앞으로는 목포 여수 서울로
호남선과 전라선이 달리는 곳
짓궂은 아이들이 그래서 기차길 옆 오막살이라 부르기도 하는
이리중학교, 꼭두새벽 도시락 싸서
나는 낡은 외투를 입고 출근하고
아이들은 무거운 가방을 데리고 등교한다
우리나라 모든 학교가 그러하듯이
월요일 아침이면 애국조회가 열리고
펄럭이는 태극기 아래
아무것도 모르는 가슴에 손을 대는
일제 치하 어린 학동 교장선생님이 그러하였듯이
분단 나라 젊은 국군 담임선생님이 그러하엿듯이
측백나무처럼 오와 열을 맞추고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코끝이 맵고 발이 시린 겨울
이리중학교에서
누가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나
일주일에 스물네 시간 국정교과서를 가르치는
한 달에 스무 시간 보충수업을 하는
조회 종례 때마다 지시사항을 전달하는
수업료 보훈성금 방위성금 불우이웃돕기성금
국가훈련비 수학여행비 졸업앨범비
날이면 날마다 독촉을 하는
명찰 배지 실내화 두발검사를 하는
성적이 떨어지면 매를 들고 때리는
나를 아이들은 선생님, 하고 부른다
나는 분필밥 겨우 2년 먹었는데
나는 봉급날을 기다리는 월급쟁이인데
나는 넥타이도 제대로 맬 줄 모르는데
나는 배고픈 아이 라면 한번 못 사주었는데
이 유리창을 닦으며
모르는 사이에 하늘을 닦던 아이들 아이들 중에
먼 바다에 배 타고 고기 잡으러 간 아이는,
소작 얻은 황토밭에서 배추 뽑고 있는 아이는,
이리역 화약폭발 사고 때 하늘로 떠난 아이는,
그대 살아남아 교문 앞을 손수레 끌고 바삐 지나가는
아이는,
대학생이 되었다가 감옥에 간 아이는,
귀금속 공장에서 하얗게 밤새는 재작년의 아이는,
추억의 동창회가 열려도 돌아올 줄 모르고
그 옛날 총각선생님 머리 위에는
눈이 내렸다
그 옛날에 졸업한 아이가 출세하는 동안
해진 출석부 끼고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버드나무들이 톡톡 손가락 썩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러면 봄은 또 멀지 않으리라 믿으면서
그날 평교사를 위한 시를 쓰고 싶었다
겉보리라 불리던 김경희 수학선생님이
세상 속을 정리하고
40여년 교직생활을 그 서랍을 닫고
홀로 뒷모습을 보여주며 떠나시던 날
나는 숙직실 수돗가에서 얼굴을 씻고
까닭없이 새어나오려는 울음을 참았다
이리중학교야
나도 저 무명의 찬란한 길을 가리라
점심시간이면 김치 냄새가 우리를 적시는 교실에서,
손목과 발목이 굵어지는 운동장에서,
추운 아침에 서로 뿜어주는 입김 속에서,
이 뜨거운 조국의 한 복판에서,
이리중학교에서
월급 날
서무실 가서 도장 찍고 봉투 받는 날
다달이 내 죄는 깊어진다
나는 어디까지 왔나
나는 어디까지 왔나
평교사
평교사는
2세교육의 최일선에 서서
사명감과 보람으로 사는
말 한 마디 몸짓으로 하나하나
아동의 귀감이 되어야 하는
자질을 갖춘 전문인
문화의 전달자
평교사는
쾌활하고 명랑한 성격으로
옳은 인생관으로
바른 세계관으로
고상한 품성으로
돈도 명예도 모르는
존경받는 권위자
만인의 거울
국민의 사표
평교사는
성스러운 직업
오직 제자를 키우는 꿈
인간을 만드는
사랑의 매를 든
아이들의 하느님 같은
나는 짜장면을 시켜먹고
양파 단무지도 먹고
우우우 분노처럼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보충수업
교실에 열무김치 같은 아이들이 많다
소금에 잘 절여졌다
오후부터 내리는 비 그치지 않고 오늘은
국기강하식도 허벅지 탄탄한 농구부 학생들도
운동장에 없다 어둠이 오고 있을 뿐
나는 45분 더 서 있으면
오천원 더 벌고 한달에 스무시간 십만원이면
아무렴 적은 돈이 아니다 아우들은 야근해도 그만큼
안 준다는데
교사의 일은 미래의 것이라지만 나는 당장
책을 덮고 아내와 어린 딸에게 가고 싶다
철판 가득 뚝뚝 잘 부러지는 분필로 모국어를 채워 두고
3층 창가에 일찍 시든 한 송이 꽃으로 서서
도대체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비 젖은 학교 마을을 내려다 보았다 그때 보았다
온몸에 빗물을 뒤집어쓰고 웅크리고 있는 저 정든 지붕들이
아 우리 아이들 같구나 어쩌면 저렇게 우리 아이들 같구나
투정도 없이 흐린 나라 하늘을 다 떠받치고 있구나
그리운 꿈틀거림 몇몇은 허리를 뒤틀고
소리지르지 않으면 저 지붕이 된다 내일 해 안 뜬다
가방이 허리를 감는 아이들 곁을 지나며 나는
졸음에 겨운 창문이 달그락대는 소리 엿듣는다
교장선생님이다 막대기로 벽을 탁탁 치며 순시중이다
누가 내머리를 치는가 지나갔다
내 시계는 아이들 시계와 마찬가지로 아직도
이십 분 이상 남았는데 교문 쪽에 우산 두어 개 어른거리고
우리들 중에 누가 저 어머니의 아들일까
애들아 나도 내 따뜻한 둥지로 날아가고 싶어야
급 훈
내일은 학급 환경미화 심사하는 날
벽 먼지를 털어내고 커튼도 빨아 달고
곰보기가 된 책상 위에는 장판도 깔아놓고
태극기 모신 액자도 깨끗이 닦고
그 옆에 걸린 급훈도 새로 바꿔야겠는데
좋은 문구 가슴에 오래 새겨둘 말 없을까
망설이다 붓글씨 잘 쓰는 선생님께
민주주의
이렇게 넉자만 써 주시라고 부탁했더니
그거 참 교무실이 목련꽃 벙글듯 다 4월인데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 반 까블이들은
백성 민자 주인 주자 배웠다면서
우리가 이 교실의 주인이다 소란을 떠는구나
그렇구나 선생도 학생도 좋아하는 말
말만 들어도 절로 신명나는 민주주의
공부하다가 더러 싫증이 나면
교과서도 헌법도 깡그리 잊어버리고
저기 흐르는 강을 보아 저 스스로 솟는 산을 보아
팔팔년엔 바다 건너 사람들도 꽤 온다는데
우리 민주주의 유리창 닦아놓지 못하면
개판이다 그들이 먼저 욕하겠구나
세상 잡놈 손가락질 다 받겠구나
청 소
플라타너스 잎이 지면
플라타너스 아래 청소구역 아이들 이마 땀나네
새 길 여는 빗질이야
콧등도 빛나네
어느 날은 주먹싸움 끝에 코피 흘린 곳
그리하여 팔뚝은 굵어졌다네
쏟아논 저 보름달 같은 마당 지나가기엔
내 몸에 때가 너무 올랐네
어린 조국
닳은 나무 교단 위에 서서
너는 흰 종아리 걷어붙이고 매를 맞고
나는 대나무 회초리로 너를 때린다
친구들에게 돈 벌어 가랑잎같이 날리고
집에도 안 들어간 놈
사흘이나 죽 퍼먹듯이 결석한 놈
붉은 피멍이 박히도록 너를 때린다
창밖에 가을은 와서
우리 반 유리창을 다 들여다 보고 있는데
급기야 울음을 터뜨리는 못난 놈
알고나 있을까, 갓난아이부터 이 빠진 할머니까지
등에 진 100만원씩 빚이 있다는
대한민국
나는 아, 대한민국이었다
나는 어린 조국을 때리고 있었다
피멍이 새 살로 살아날 때까지
나의 매는 멈출 수 없구나
교실에서
아버지에 대해 말해보라 했는데 아이들이 운다
중학교 1학년 국어 말하기 시험 시간
약도 한 첩 못 써보고 돌아가신 아버지
내가 똥을 퍼도 공부시킨다 너는 큰물 가서 놀아야지
늦가을 미루나무 같은 뒷모습
보고 있을까 혼자 남은 어머니가 싸준 도시락이여
나는 왜 선생이 되어 이 착한 아이들을
울리고 있을까 용서받지 못할 일이여 내가 울고 있을까
가난은 부끄러움도 죄도 아니다 말도 못하고
농사꾼 아버지 막노동 아버지 다리 다친 아버지
먼 사우디 떠난 아버지
또 있다
이 세상에서 아예 한번도 보지 못한 아버지
아버지는 왜 아들에게 눈물로 올까
나라와 역사의 색칠할 수 없는 일들이
한국의 노오란 교실에 가득하다 축소된 사진처럼
나도 딱딱한 농민의 아들 나도 스포츠령 머리로 엎드려 운다
국어시간이여 마침내 눈물바다여 열세 살들이여
설움없이 건너는 세상이 있다면 우리나라 아니다
빈 교실에서
저놈의 검은 폭격기
기러기도 아닌 것이, 슬픔도 모르는 것이
감히 그림자를 운동장에 떨어뜨리고 가는구나
공습경보가 울리면
미처 대피하지 못한 학생들이 있나 없나
나는 빈 교실을 둘러보아야 한다
세상들은 이빨처럼 가지런히 놓여 있는데
전쟁이 나면
향토예비군 나는 총을 받고
방공호 속으로 기어들고
엊그제 제대한 아우는 다시 전방으로 가고
아내가 식량 구하러 간 사이
딸아이 혼자 악을 쓰며 울 것이다
전쟁이 나면 민방위대 아버지들은
마을회관 앞에 모여 웅성거리고
어머니들은 피의 옛 우물을 떠올릴 것이다
수업하다가 전쟁이 나면
학도호국단 편성되지 않은 중학생들
저렇듯 담벼락에 다닥다닥 붙어
벌떼가 되어 윙윙거릴 텐데
어느덧 장터같은 확성기 소리 뚝 끊어지고
하늘보다 깃발이 먼저 땅으로 내려오면
아아, 전쟁이 끝나면
나는 여기서 떠나야 한다
빈 교실로 밀믈 되어 해방이다, 해방이다
우리 아이들 발자국 소리가 밀려오는 것이다
쓰다만 공책을 채우기 위하여
어린 주인들이 찾아오는 것이다
아무도 저 물결 막지 못하겠구나
제 4 부
참꽃, 놀이터, 배고픈 날, 첫사랑, 소시민, 군산행 1, 군산행 2,
평탄 작업, 그대 4월이여, 폭풍우를 기다리며, 평교사를 위한 시,
벗이여, 북소리여, 이리역 굴다리
참 꽃
저기
오는 봄
역적같이 오는 우리 봄을 보아라
얼음 겹겹 근심 쌓인 어깨를 벗고
기를 쓰고 능선을 넘어오는
참꽃 보아라
긴 싸움 끝에
그 쓰린 상처 위에
그리하여 눈물짓듯 덥썩 가슴에 와 안길 듯
차랑차랑 돋아나는 우리 사랑 보아라
설움도 눈이 부셔
나는 노래로도 이 봄을 다 채울 수 없는데
저 맵디매운 조선처녀 보아라
돌이킬 수 없는 꽃
지쳐 돌아온 오늘밤 그대에게
찬란히 몸 열어 넋까지
끝내 바치고야 말 꽃
참꽃을 보아라
놀 이 터
놀이터에 가면
조국이여
하늘에서 미끄럼틀 타고 오는
그네로 산하를 오르내리는
어린 내일이여
여자 동무여
남자 동무여
너희가 새 나라다
놀이터는
너희 교실이다
모래판에 넘어진
쓰린 생채기여
맑은 피의
조국이여
배고픈 날
책을 읽다가 배고픈 날은
방문열고 나가
나라가 보이는 봄볕 아래
맑고 슬픈 친구를 불러 모아
무더기로 민들레꽃이 되어 서볼거나
신작로 가에도 구린 쇠똥더미 둘레에
다닥다닥 붙어 피어나볼거나
땅 밑에 찬물 흐르는 소리로
온몸을 채우는 꽃 되어
먼저 가신 이들 크나큰 발자국 따라
서로서로 어깨 대고 걸어갈거나
천리길이 너무 멀어
행여 우리가 이 봄에 다 못 간다면
퍼질러 앉아 무성하게 새끼들이라도 낳아
바람아 민들레 꽃씨로
후후 날려 보낼거나
소 시 민
나는 딸아이를 안고
아내는 건조기며 대파며 오이가 든 장바구니를 들고
가는데
6월, 상인동 성당 앞에서는
어느덧 가투가 시작되고 있었다
골목어귀마다 병정들은 흙비처럼 무장 쏟아져내리고
정든 건물들 군화소리에 놀라 벌떡벌떡 일어설 때
어린 딸은 자꾸 무섭다고
빨리 집에 가자고 내 가슴을 파고 들었다
퇴근 전 임시직원회의 때
몸조심 당부하던 교장선생님 얼굴도 떠올랐다
나는 여차하면 몸을 피할 길 두리번 거리며
죄지은 사람처럼 병정들을 힐끗 쳐다보기도 했는데
어깨와 어깨를 맞대고
먹바위 속이라도 출렁일 것 같은
도로 한 복판의 해방춤을 바로 그때 보았던 것이다
그렇구나 춤이란 혼자서는 출 수 없는 것이로구나
하늘로 오르고 싶은 싱싱한 몸짓 어쩌자고
내 시인이랍시고 짐짓 생각해 보았지만
진정 해방의 날이 있어
모두가 축배드는 그날이 왔을 때
오늘의 역사의 구경꾼 나는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
인가
한 그루 쓸쓸한 은행나무로 서 있을 것인가
어두워지면서 저녁바람은 선선해지는데
내 얼굴은 숮불처럼 몰래 달아오르는 것이었다
그러다 가슴 치는 총소리가 나고
아내는 반찬거리를 땅에 떨어뜨리고 아인 울고
쥐구멍을 찾아 냅다 뛰는 사람의 시람의 뒤섞임 속
에서
나는 안경 쓴 눈물의 쥐가 되었다
군산행 1
군산으로 가는 길 눈이 내린다
눈내리는 바닷가에서 소주나 한잔 어떠냐고
그거 좋겠다 했더니 어느새
이거봐 머리에 엉겨붙고 가슴으로 달려드는
이 깨끗한 동무들
눈발이 먼저 쓰디쓴 소주를 먹고 온다
다 알고 있다는 듯 이제는 더 참을 수 없다는 듯
녹슨 적산가옥 양철지붕 위에
지워버리려고, 아메리카 군인의 검은 목덜미에
뿌득뿌득 이를 갈며
떼지어 눈발은 내린다
오늘 밤이야말로 식민지의 바다를 뒤집어엎어버리겠
다고
어두워질수록 분노는 하얗게 빛을 튱기는데
그러나 취하면 안돼, 맑은 허벅지로
진남포에서 뜬 배가 뱃고동 소리 새끼쳐 보내며
이 바다에 찬란하게 들어올 때까지는
서해 연안에 깜빡이는 먼 불빛을
눈발로 꼿꼿이 서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고
그래 우리가 스스로 불빛이 되어
여기 눈물겹게 살아 반짝이고 있음을 전해야 한다고
도선장으로 가는 길 선술집에서
피조개 한 점 고추장 찍어 먹고나면
바깥을 겹겹이 둘러싸고 퍼붓는 눈발이
바로 우리 편이다 우리를 지켜주는 노여운 사랑이다
젖가슴까지 올려치는 강대국 전투기
그 비행사들 시커먼 폭격 속에 까무라치고 싶어한다
는
썩을 년, 미국 가고 싶은 내 누이여,
저 폭설의 바다를 보아라
드디어 통일된 우리 조국 아니야
군산행 2
벚꽃이 진다니
바람도 사무치며 떠는 날
이내 빗방울 뚝뚝 마른 가슴 치고 가는 4월
번영로라 전군가도 연분홍 벚나무들
비 젖어 허둥대는 꼴좀 보러 가야겠다
지난 일요일엔 군산 횟집에 앉을 자리도 없더라며
전국에서 가장 긴 벚꽃 타널이 있다고
군산항 깊숙히 일장기 선박을 대고
우리가 잠든 사이 줄지어 당당히 다시 돌아온 그들
이열종대 그들의 군대 행진 보러 가라고
오늘은 아쉬운 듯 벚꽃 다 지겠다니
날씨 때문이 아니다 제국주의 물러갈 때
40년 전 챙기지 못해 남긴 게다짝
게다짝 같은 꽃 벚꽃 구경 가야겠다
내 한때 바다로 가는 색시 어쩌고
저쩌고 애비없는 후레자식 글 다 찢어버리고
그 옛날 수탈의 길 그들을 위하여
그들 자신이 반듯이 터놓은 길
벚꽃이 진다니
붐비지 않는 비 쏟아지는 오후를 잡아
아가 이게 진정 아름다움이란다 어린 딸을 데리고
이 땅에 발 내린 오욕의 뿌리까지 뽑히도록
우리나라 더 큰 바람과 뜻있는 빗줄기 더불어
가야겠다 눈 뜨고는 못볼 처참한 기쁨으로
벚꽃이 진다니 군산에 가야겠다
이 길이 뱃길로 하나로 이어져
어느 항구에 닿아야 할 길인데
이 4월이 도대체 어떤 4월인데
그대 4월이여
4.19혁명 28주년 기념시
4.19 나던 이듬해 나는 세상에 태어났다
한글을 익히자마자 국민교육헌장을 외던,
10월유신 노래 부르며 발맞추어 소풍 가던,
불운한 세대 나는,
그대가 먼 옛날의 전설인 줄 알았었다
광장의 젊은 함성도,
자유의 이름으로 나부끼던 깃발도,
총알 후벼판 두개골도,
[사상계] 화보 속의 낭자한 자국도,
한 권의 낡은 역사책이거나
그냥 쓸쓸한 기념탑인 줄 알았었다
4월이여
찻사랑 민주주의여
나는 보았다
그대가 저 광주 5월을 키워내는 것을,
그대가 군화발을 딛고 일어서는 것을,
그대가 도청을 향해 전진하는 것을,
그대가 시대의 가장 어두운 골짜기에서 빛나는 것
을,
그리하여
그대가 마침내 6월도 쟁취하는 것을
역사 아닌 4월이여
우리들 핏줄 속에 흐르는 현실이여
진정 4월이면 하나하나 돌아올 것이다
서럽게 죽은 귀신은 사랑으로,
창녀는 숫처녀로,
양심수는 가족 곁으로,
병든 상처는 새 살로,
돌아와 해방의 물결로 출렁일 것이다
평교사를 위한 시
전북교사 협의회 창립대회에 부쳐
평교사여 그대의 외로운 이름을 부른다
갈채도 함성도 없는 교실에서,
공문서 철이 가득 쌓인 담배 연기 교무실에서,
보충수업 심야자율학습 형광등 불빛에서,
비틀거리는 자전거 어두운 퇴근길에서,
울분이 가슴을 적시는 선술집에서,
평교사여
그대 성스러운 이름을 부른다
아이들 맑은 눈망울 속에 담긴 그대,
가난을 두려워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 그대,
옛 제자의 편지를 받으면 마음이 떨리는 그대,
오직 평생의 길 홀로 끗꿋이 걸어가는 그대,
평교사여
이 땅에서 제일 외로우나
제일 성스러운 이름 위에
지금은 당당히 불을 밝힐 때,
참 등대가 되어
아이들의 뱃길 밝혀줄 때,
새벽은 기다리면 오는 것이 아니라
함께 싸워 그 상처 아물기 전에
기여코 당도하리니
싸움 끝에 새날이 와서
누가 이 세상을 온몸으로 이끌어가는 사람을 묻는다면
그이는 바로 다름 아닌
평교사라 대답하리
분명코 대답하리
벗이여 북소리여
최덕수 열사 정읍 노젯날
벗이여
그대 이렇게 빨리 돌아왔구나
먼 서울길 떠날 때
큰 사람 되어 오리라 다짐하더니
해맑은 얼굴 햇볕 속으로 가더니
꿈에도 저 내장산 늠름한 능선 못 잊어 하더니
벗이여
그대 이렇게 누운 채
고향땅 정읍에 돌아왔구나 돌아왔구나
이 넓은 운동장에 공을 차던 최덕수
저 푸른 나뭇잎이던 최덕수
벗이여 동지여 민주열사여
우리는 어떻게 그대 이름을 불러줘야 하나
광주학살 진상 규명하라
5월 청청한 하늘에 새겨놓고
광주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한반도 골짜기마다 울려퍼지게 하고
스스로 그대 청춘 위에 신나를 뿌렸다
그대는 압제의 벽을 난타하는 북소리로
붉은 불기둥으로
우뚝 솟았다
뜨거운 불꽃송이로 8일동안
병원침대에서 아버지 어머니 앞에서
숨 놓지 않고 끝까지
온몸으로 버텨낸 뜻이 무엇이었던가
권력의 핵심에 앉아 있는 학살자를 끌어내려야
그래야만 눈 감겠다는 뜻 아니었는가
민주세상 통일세상 그 실끝이라도 보고
홀연히 가겠다는 뜻 아니었는가
그 누가 덕수가 죽어서 돌아왔다고
함부로 입놀리는가
최덕수 최덕수
한낱 죽음으로 패배로 여기까지 온 것 아니다
그야말로 싱싱한 부활의 꽃잎으로
그대야말로 당찬 승리의 깃발로
오욕의 역사 불사르고
산 자의 부끄러움까지 훌쩍 벗어던지고
영원히 살기 위하여 귀향하였구나
저 내장산이 큰 소리로
무등산을 부르는구나
광주여, 이 고장의 아들 최덕수가 간다
꽃다운 스무살의 열사가 간다
동학의 자랑스런 후예가 간다
그러면 무등산이 크낙한 손짓으로
벗이여, 동지여
가슴 활짝 열고 그대를 맞이하리니
망월동 성지에 어깨 끼고 앉아
밝아오는 역사를 응원하자
영원한 눈빛으로
민족해방의 가열찬 싸움을 독전하자
열사여
모든 고통 훌훌 털고 오시라
부디 편히 오시라
하늘에 팽팽히 걸린 거대한 다리가 아니라
이리역 지하도는 굴다리, 땅속을 흐른다
이곳을 통과하려면 딱정벌레처럼 어깨를 접어야 하리
누군가 보면 물이 되어 스며드는 것처럼,
빈부격차가 없는 흐린 불빛 속으로 가면
지아비가 끌고 지아비가 미는 과일 손수레도
밝은 세상 가자고 부지런히 삐그덕 거린다
징징거리며 앞지르는 오토바이, 막노동꾼과 공무원도
단발머리 여학생 몇몇과 노인도 모두 섞이어
간다, 이렇게들 수십년 지나갔으므로
역사는 기록될 수 있었다 그러나
어제만 해도 얼마나 많은 눈뜬 시체들이
우리 머리 위 호남선을 오르내렸는지 모른다
핏믈처럼 뚝뚝 떨어지는 저 찬물방울,
전쟁과 학살의 시간이 썩지않았다고 하면
저들 중 누가 믿고 옳다고 할 것인가
여기서는 새로 산 시집도 선진조국도 대망의 2000년대도
개좆이다 캄캄히 저 벽에 써두고 가야 한다
이리의 동쪽과 서쪽을 흐르는 굴다리
연결이 아니다 단지 정당한 흐름일 뿐
혹, 저 지하도 끝에 서해가 밀려 출렁이고 있다면,
상상은 아름답지만 현실은 겨울 저녁 여섯시
우리가 살아나온 80년대까지 역사는
춥고 어두운 공터로 엎드려 있다
그 옆에서 붕어빵을 굽는 얼굴 붉은 할아버지,
오백원어치 방금 태어난 싱싱한 붕어들을 안고
내 가슴 왜 이렇게 쏟아지는 벅찬 눈발입니까
後 記
첫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 이후 시편들을
없는 집 울타리 엮듯 한데 모았다. 되살펴보니
군데군데 흠집투성이다. 어디 숨을 곳도 없다.
사소한 것들로부터 떠나지 못한 죄가 무엇
보다도 크다.
구체적인 삶의 감동을 시적 감동으로 이끌어내
는 것! 이 땅에서 숨쉬고 밥먹으며 시 쓰는 자
로서 어찌 그 꿈의 고삐를 늦출 수 있겠는가 ?
가는 데까지 가보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