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택림 - 문화와 역사 연구를 위한 질적연구 방법론
문화와 역사 연구를 위한 질적연구 방법론
윤택림 지음 / 아르케 / 2004년 10월
대학에서 대학원에서 졸업을 앞두고 혹은 학위를 목적으로 논문을 준비 중인 사람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는 무엇보다 논문이라는 낯선 형태의 글쓰기이다.
오랫동안 남들의 논문을 읽고, 교정을 보고,
교열을 하는 동안 익숙해질 만큼 익숙해진 것이 논문이지만,
막상 제 손으로 그것을 써야 하는 입장에 처해있는 나 역시도
논문쓰기라는 것을 눈앞에 두고는 어느 정도 중압감에 시달리고 있다.
논문을 과학적 글쓰기라고 한다면 그 까닭은 논거를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논거를 제시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는 글쓰기를 해야 한다는 것인데,
일단 충분한 자료를 모으는 것이 쉽지 않다.
또 해당 분야에 충분한 연구성과들이 축적되어 있는 경우라도
여기에서 자신만의 논리를 펼쳐나가야 하기 때문에 이번엔 신선미가 결여된 논문이 되기 십상이다.
자료라는 것은 많으면 많은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대학(원) 교육이 고등학교 교육과 구분되는 것이 더이상 누가 시켜서 하는 공부가 아니라
스스로 하는 공부라고는 하지만 움베르토 에코 같은 이가 논문 쓰는 법으로 책까지 쓴 것을 보면
논문 쓰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것이 우리만의 문제는 아닌 듯 싶다.
하지만 대학에서 이와 같은 것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것 같지는 않다.
대개는 논문쓰는 막바지까지 지도교수와 일대일 면담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혹은 충분히 헤맬 만큼 헤맨 뒤에야 비로소 얻게된 깨달음으로 악전고투하며 전진하데 된다.
그것이 공부라면 공부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는 입장에서는
뭔가 명확한 연구방법론을 제시받길 원하기 마련이다.
윤택림의 "문화와 역사연구를 위한 질적연구 방법론"은
최근 학계에서 크게 각광받고 있는 문화기술지(etnography)의 연구방법론이다.
대개 과학적인 논거로 제시되는 것들은 백분률로 표시되는 통계이다.
자연과학에서 실험이 중시되는 것처럼 사회과학 분야에서 언제나 중시되는 것이
무슨무슨 지수와 같이 수치화된 것들인데, 그러다보니 사회학 입문자들은
무수한 통계와 서베이 결과물들에 어리둥절해 하거나 이것을 신봉하도록 훈련받는다.
기존의 연구방법론들은 이와 같은 양적조사방법론만으로 이른바 과학적인 조사방법론으로 받아들이며
현재에도 학자에 따라서는 여전히 질적방법론을 학문적이지 않다거나
비과학적인 연구방법론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 윤택림은 양적인 방법만으로는
사회를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없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질적방법론의 출현은 기존의 연구방법론, 실증적 방법론이 지닌 한계로 인해 출현했다.
가장 대표적인 분야가 페미니즘이다.
페미니스트들은 기존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형성된 사회과학이
여성의 경험을 제대로 다룰 수 없다고 보았다.
공식적인 역사, 공식적인 기록에서 여성이란 범주가 등장한 것 자체가 오래지 않았던데다가
외견상 가치중립적인 듯 보이는 이와 같은 연구방법이
실제로는 당파적이고 중립적이기 어렵다는 것이 그것이다.
문화가 그러하듯 지식 역시 역사의 전개과정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역사가 보여준다.
"과학 역시 역사적 담론의 한 형태"라는 것이다.
연구자와 연구대상 사이의 객관이란 하나의 허구이며, 실제 연구의 현실이 될 수 없다.
다시 말해 우리의 일상이 매순간 정치적인 선택의 연속인 것처럼
학문이나 과학도 정치적인 선택의 연속선상에 놓인다는 사실을 이제 겸허하게 인정하자는 말이다.
질적연구방법론은 문화인류학자들의 현지조사 과정에서 연원한 것으로
최근 우리 학계에서 유행하고 있는 인터뷰를 이용한 구술사 방법론,
참여연구 등이 모두 이런 연구방법론에 해당한다.
저자 역시 인류학자이고, 그 자신이 이와 같은 방법론을 이용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렇다고 저자가 질적연구방법론만을 예찬하고, 기존의 양적방법론을 폄하하는 입장은 아니다.
양적방법론의 한계와 마찬가지로 질적방법론의 문제점도 고르게 지적하고 있다.
예를 들면 질적방법론은 연구자가 연구대상자를 착취하는 연구로 전락할 수 있으며
연구자 스스로 성찰하는 자세를 취하지 않을 경우엔 객관성을 상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질적연구가 특수한 문화적 양식에 대한 연구라 할 지라도 일반화는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몇 권의 논문을 읽었는데, 연구자들이 밝히고 있는 참고문헌에
이 책이 수록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내 선택이 그릇되지 않았음을 새삼스레 확인하며
혹시라도 질적연구 방법을 이용하여 자신의 연구를 진행하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 이외에도 꽤 여러 종의 책이 있지만,
녹음기 사용법 같은 소소한 부분부터 질적연구와 양적연구의 비교,
역사연구와 생애사 등등 다양한 부분에 대한 접근방식까지
난이도가 있는 주제까지 차근차근 알기 쉽게 잘 설명해주고 있다.
첨언:
다른 사이트에 올려진 글을 허락없이 전제했습니다.
관심있는 분들에겐 도움이 될 것 같아서지요.
아무튼 이 글을 올린 분에게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