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김성우 한중창업경영협회 회장
(주)한국국제상사 (주)한국국제여행사 (주)한국국제상무중심 (주)한국의학연구원 법인대표
“부자가 되어 보려고 온갖 일을 했죠”
한중교류시대가 활짝 열리면서 3, 40대 중국동포 3세들의 활약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가운데, 한중창업경영협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김성우 대표는 1998년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들어와 코리안드림을 이룬 대표적인 중국동포 청년기업인으로 관심을 끈다. 지난 1월 15일 오전 김성우 회장을 만나 그의 '코리안드림' 성공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인터뷰=김용필 편집국장
강서구 염창동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김성우 한중창언경영협회 회장
김성우 회장은 현재 서울시 강서구 염창동 우림불루 9 비즈니스센터 B동 6층 611호실에 (주)한국국제상사 (주)한국국제여행사 (주)한국국제상무중심 (주)한국의학연구원 등 회사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기자가 회사를 방문했을 때, 김 회장은 반갑게 맞이해주며 고급 차(茶)를 직접 끓여주기도 하였다.
“이 차는 일반인이 접하기 힘든 고급 차(茶)입니다. 중국의 지인이 다른 사람 주지 말고 혼자만 마시라며 줄 정도로 귀한 차(茶)인데 국장님이 오셨으니 대접합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중국의 차(茶) 이야기부터 시작되었다.
김 대표는 중국 흑룡강성 동녕에서 태어나 어린시절 목릉시로 이사를 하여 이곳에서 조선족중학교 한족고중을 마치고 할빈시로 홀로 단신 건너가 “부자가 되어 보겠다”는 생각으로 손에 잡히는대로 장사길에 나섰다고 한다. 당구장도 운영해보고, 양꼬치 식당도 운영했다.
지극히 가난한 가정살림에 벗어나고자 한 그의 어릴 적 꿈은 다른 게 없다고 한다. 돈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말한다.
“저의 어릴 적 꿈은 부자가 되는 것이었어요, 중학교때부터 장사를 하였는데 구정 때는 폭죽 장사를 하였고 전문 돼지 장사를 하는 상인들을 대상으로 연결시켜주는 일을 했지요, 주말에는 러시아변경 수분하라는 곳에도 가서 러시아 옷을 들여와 팔기도 했어요, 고중을 졸업하고나서는 일본에 가려고 일본어 공부도 했었는데, 98년도에 한국의 산업연수생 비자가 나와 한국행을 하게 되었어요.”
김성우 대표의 코리안드림은 1998년도부터 시작되었다. 어릴 적부터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어린 학생 나이때에도 갖가지 장사를 했다는 김 대표, 25세 나이에 한국에 와서 그의 ‘부자 되기’ 도전은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궁금하기만 하다.
“한국에 올 때 300명 정도 같이 왔는데, 그 때 한국에 가면 좋은 회사 소개시켜줄 테니 저보고 안내자 역할을 맡으라 해서 300명을 인솔해 한국에 들어왔죠, 그런데 경기도 전곡의 모 염색공장에 취직이 된 거예요, 그때 얼마나 고생했는지 자고 일어나면 허리가 아프고 병원에 가려고 하니까 의료보험도 가입 안해주고, 악독업주를 만나게 된 거예요.”
김 대표는 몇 달을 못버티고 결국 서울 명동성당 천주교외국인노동자 지원센터의 도움을 받아 다른 회사로 취직을 하게 된다. 한국에 온 그 당시 김 대표는 틈나는대로 동대문시장을 돌며 시장조사를 하곤 했다고 한다.
“당시 IMF경제위기로 부도난 의류회사들이 내놓은 땡처리 의류를 대량 구입해 중국에 내다파는 장사도 해보았지요. 그런데 중국인의 허리사이즈가 한국인의 허리사이즈보다 컸기 때문에 땡처리 의류 장사도 생각만큼 성공하지 못했어요.”
1999년 김 대표는 인천 남동공단에서 회사를 경영하는 모 회장님을 만나게 된다. 평소 인맥관리를 중요시 여겨온 김 대표는 중국을 자주 다니던 회장님 눈에 들어 회사에 취직을 하게 되어 뭔가 풀리는 듯 싶었다.
“회사는 자동차 스틱 벤쳐 제품을 생산하는 곳인데 회장님은 회사가 잘 되면 저를 중국 총 관리자로 내보낼 계획이었죠. 그런데 회사 운영이 잘 안되어 저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후 김 대표는 오토바이로 야식배달 일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죽다살아난 경험도 하게 되고, 호텔에서 고객 차량 주차관리, 대리운전 일을 하기도 했다.
“아마 중국동포 중에서 제가 제일 먼저 자동차면허증 따는데 눈을 뜨고 면허증을 취득했을 걸요.”
운전으로 번 돈으로 마티즈를 샀다. 잠은 사우나실에서 자면서 마티즈로 배달일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모 회사 회장님 차량 운전수로 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만 싸움에 휘말려 억울하게 강제출국을 당하는 쓰라린 경험도 하게 되었다.
결국 김 대표는 2002년도에 다른 이름으로 한국에 들어온다. 소위 위명여권을 만들어 들어온 것이다. 다시 한국에 들어와 중국인을 대상으로 관광가이드도 해보고 동업으로 경마장을 운영하다 쫄딱 망하기도 하고, 중국에서 투자해 인테리어회사와 가구전문매장도 해보았다. 온갖 곡절을 겪으면서도 그의 부자 되기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회사를 차리고 성공할 수 있었습니까?”
그에게 기회가 온 때는 2009년이다. 여행사에서 일을 하면서 기회를 찾고, 2010년에는 한국국제여행사를 설립하고 2011년에는 한국국제상무중심을 설립해 의료관광사업으로 돈을 벌면서 차츰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연간 5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 걸출한 회사로 성장한 것이다.
이런 김성우 대표에게 2014년 3월경 한중창업경영협회 회장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게 된다.
“이때 저는 가방끈도 짧고 나서서 단체를 이끌어 본 경험도 없고 해서 머뭇거렸습니다. 거절했지만 서로 도우면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부자가 될수 있도록 하자 생각하고 순수한 마음로 회장직을 맡게 되었지요. ”
아래 사진은 지나 1월 11일 서남권글로벌센터에서 실시한 한중창업경영협회 2015년 제1기 특별교육을 받은 회원들 단체사진이다.
지난해 3월 23일 서울글로벌센터에서 한중창업경영협회 설립대회를 갖고 김성우 회장 취임식도 겸했다. 이 때 김성우 대표는 협회 회장으로 “'코리안 드림'을 꾸며 한국에 온 조선족 젊은이들이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창업에 성공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어떻게 보면 김성우 대표는 창업과 성공을 꿈꾸는 조선족청년들의 좋은 성공모델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김 대표는 “한국에서 창업에 성공하려면 한국의 법을 먼저 정확히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최근 서남권글로벌센터에서 가진 노무, 세무, 법무 등 강의를 개최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참여한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좋았어요, 이런 법을 모르고 사업을 하다간 언젠가는 어려움을 겪게 되죠.”
따라서 김성우 회장은 한중창업경영협회가 협회 설립취지대로 “창업을 도와서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겠다” 말하고, 새해에는 한 두 명이라도 꼭 도와주어서 성공케이스를 만들겠다는 의지도 보여주었다.
@동포세계신문(友好网報) 제331호 2015년 1월 23일 발행 동포세계신문 제331호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