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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서해랑길 47코스(격포항 – 변산해수욕장)
여 행 일 : ‘24. 3. 9(토)
소 재 지 : 전북 부안군 변산면 일원
여행코스 : 격포항(금정모텔 앞)→채석강→격포해수욕장→수성당→적벽강→하섬전망대→성천항→고사포해수욕장→송포항→변산해수욕장 ‘사랑의 낙조공원’(거리/시간 : 13.9km, 실제는 15.64km를 4시간 2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서해랑길’은 서쪽 바닷길을 말한다. 땅끝마을(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화(인천)에 이르는 서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1,800km(109개 코스)의 걷기 여행길이다. 코리아둘레길(해파랑·남파랑·서해랑·평화누리) 4면 중 가장 길며, 거치는 지자체만도 5개 광역에 기초가 26곳이나 되는 긴 여정이다. 오늘은 47코스를 걷는다. 10개로 이루어진 고창·부안 구간의 일곱 번째 코스이기도 한데, 변산반도의 서쪽 해안선을 따라가는 여정이다. 부안이 자랑하는 지질명소인 적벽강과 채석강이 주요 볼거리로 꼽히는데, 변산마실길(2·3코스)과 겹친다고 해서 ‘마실길 위의 세계지질공원’으로도 불린다.
▼ 들머리는 격포항(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서해안고속도로 부안 IC에서 내려와 국도 30호선을 따라 부안·곰소 방면으로 내려오다 종암교차로(변산면 마포리)에서 빠져나와 오른쪽 ‘격포로’로 들어오면 잠시 후 격포항에 이르게 된다. 서해랑길(부안47코스) 안내도는 닭이봉전망대의 입구 근처에 세워져 있다.
▼ 6개 코스로 이루어진 부안(44~50코스) 구간의 네 번째 여정. 서해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간 변산반도의 서쪽 해안선을 따라간다. 길이는 13.9km, 비교적 짧은 거리지만 산길을 연상시키는 작은 오르내림이 계속되기 때문에 결코 쉽다고 볼 수는 없다. 난이도가 별이 3개(5개 중)로 분류된 이유일 것이다.
▼ 10 : 41. 탐방로는 2차선 도로인 ‘방파제길’을 따라 북쪽으로 간다. 전망대가 있는 ‘닭이봉(鷄峰. 85m)’을 오른쪽으로 에돌아간다고 보면 되겠다. 하지만 나는 반대 방향인 격포항 쪽을 선택했다. 물 때(썰물)가 맞은 덕분에 세계적 지질명소인 채석강을 둘러볼 수 있다는데 어찌 그냥 지나칠 수가 있겠는가.
▼ 10 : 44. 채석강으로 가는 길. 왼쪽은 ‘격포항’이다. 격포(格浦)는 일찍이 수군(水軍)의 요새지로서 별장이나 첨사가 주둔했다. 조선시대는 전라우수영 관할 격포진이 있었다. 지금은 서해안권의 대표 국가어항으로 개발되어 있어 다양한 수산물을 맛볼 수 있다. 청정해역을 품고 있어 봄 주꾸미, 가을 전어를 비롯해 갑오징어, 꽃게, 백합, 바지락 등 사시사철 다양한 수산물들을 만날 수 있는 풍요로운 항구다.
▼ 채석강(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13호)으로 향한다. 다리를 건너면 방파제 위에서 자그마한 공원을 만난다. ‘채석강 갤러리’라는데, 부안군에서 석재로 만든 각종 조형물들로 예쁘게 꾸며놓았다. 다양한 대리석 작품들에 채석강과 변산반도의 아름다운 풍광이 담겨 있다고 보면 되겠다.
▼ ‘격포항 종합안내’와 ‘변산팔경’ 등의 관광홍보판과 함께 ‘어항이용안전수칙‘ 등의 안전에 대한 안내판도 눈에 띈다. 채석강을 구경할 때 안전에 주의를 기울이라는 의미인 모양이다.
▼ 10 : 47. 방파제 옆으로 난 계단을 내려가면 채석강(彩石江)이 모습을 드러낸다. 20여m 높이의 해안절벽은 중생대 백악기(약 7천만 년 전)에 형성된 퇴적암이 오랜 세월 파도에 깎이고 부서져, 책 수십만 권을 차곡차곡 쌓아놓은 것 같은 독특한 지형이 되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수북하게 쌓아 놓은 시루떡 같다고도 한다니 보는 이의 생각에 따라서 그 형상도 달리 나타나는가 보다. 참고로 원래의 채석강은 강물에 배를 띄우고 놀던 중국 시인 이태백이 강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다 물에 빠져 죽었다는 전설의 강이다. 이태백이 놀던 채석강에 견줄 만큼 아름답다고 해서 그 이름을 차용했다고 한다. 아무튼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하며 이태백처럼 술 한 잔 기울여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 침식에 의해 층을 이룬 절벽 아래로 편마암층이 닳고 닳아 벼루처럼 반들반들하고 닭이봉 아래의 층암절벽은 수만 권의 책을 쌓아놓은 듯하다. 바위절벽을 움푹 파고 들어간 해식동굴에서 만나는 해넘이도 장관이란다. 하지만 이는 시간을 잘 맞추어야만 볼 수 있으니 참조한다.
▼ 해식동굴은 인생샷을 건져보려는 이들로 항상 붐빈다. 해식동굴 안에 들어가 바다 쪽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명암 대비가 확실한 작품이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해식지형의 변화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라서 눈길을 끈다. 해식절벽이 저런 해식동굴을 거쳐 ‘씨 아치(sea arch, 독립문처럼 암석 기저부가 뚫린 다리모양의 파식지형)’로 변하고, ‘씨 아치’가 세월이 흐르면 ‘시스텍(sea stack, 암석이 파도의 침식을 차별적으로 받아 만들어진 굴뚝 형태의 지형)’이 되기 때문이다.
▼ 이곳 채석강은 '연인과 함께 가면 사랑이 깨진다'는 오래된 속설이 있다고 한다. ‘돌 깨는 작업장인 채석장(採石場)’과 소리(音)가 같아서였을 것이다. ‘채석장 돌이 깨지듯 사랑이 깨진다.’고 여긴 게 틀림없다. 하지만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70~80년대 만 해도 이곳은 사랑이 무르익는 곳이었다. 이곳에 놀러왔던 연인들이 아름다운 경관에 빠져 시간가는 줄 모르다가 집으로 돌아갈 차편을 놓쳐버리기 일수였기 때문이다. 귀가를 못한 젊은 남녀들이 따로 할 일이 무엇이었겠는가. 상상에 맡기기로 하겠다. 하여간 그로 인해 결혼까지 간 커플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니 믿거나 말거나이다.
▼ 11 : 02. 파도가 일렁이는 절벽 앞에 서면 켜켜이 쌓인 세월과 자연의 신비감이 더해진다. 해안가 바닥은 끝없는 바위멍석을 깔아놓은 듯하다. 바위가 거북 등껍질처럼 갈라진 데다 높낮이 차가 있어 발 디딜 곳을 확인하고 천천히 걸어야 한다. 그렇게 1.5km쯤 되는 암반지대를 진행하면 격포해수욕장이다. 하지만 난 오른편 나무계단으로 오른다. ‘서해랑길’과 만나기 위해서이다.
▼ 11 : 06. 호텔과 음식점들이 들어서있는 골목을 지나 ‘격포해수욕장’으로 내려선다. 해수욕보다는 오히려 채석강과 서해안의 일몰을 보기 위해 찾는 이들이 많은 곳인데, 500m 길이의 백사장이 간만의 차가 심하지 않고 물이 맑으며, 경사가 완만해 가족단위 피서객들에게 딱 좋은 여건을 갖고 있다.
▼ 해수욕장 뒤편으로 호텔, 리조트, 펜션, 캠핑장, 음식점, 카페, 수산시장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불편함 없이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그늘이 편치 않은 빈약한 배후 숲은 단점이라 하겠다.
▼ 11 : 09. 백사장을 지나 반대편 갯바위에 오르면 인어 조형물을 만날 수 있다. ‘노을공주’로 불리는 인어인데 걸쭉한 얼굴이 공주보다는 왕비에 가깝다. 이 인어상은 31년 전, 격포 앞바다의 대 참사(292명이 사망한 ‘서해페리호’ 침몰사고)를 겪은 후 이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함께 담았다나? 하나 더. 이 인어상은 격포 앞바다의 석양이 진홍빛으로 물들면 은빛 비늘을 자랑하며 바다 속으로 사라진다는, 근원을 알 수 없는 이야기도 갖고 있단다.
▼ 그 위에는 ‘해넘이 채화대’가 있다. 1999년 12월 31일, 새천년을 맞이하는 국가행사를 하면서 마지막 햇빛으로 해넘이 성화에 불을 붙였다는 곳이다. 이 성화는 다음 날 일출 행사에서 얻은 성화와 합쳐진 뒤 ‘새천년 영원의 불 보관함’에 간직되어오고 있으며, 각종 대회의 성화에 불씨로 제공되고 있단다. 참고로 ‘영원의 불 보관함’은 포항 호미곶의 ‘상생의 손’ 옆에 있다.
▼ 바다 건너에는 고슴도치를 닮았다는 ‘위도(蝟島)’가 있다. 고운 모래와 울창한 숲, 기암괴석과 빼어난 해안풍경 등 천혜의 경관을 갖고 있는 섬으로, 허균(許筠)이 ‘홍길동전’에서 꿈꾼 ‘율도국’의 실제 모델로도 알려진다. 그 앞에 떠있는 꼬맹이 섬 ‘임수도’는 심청이가 아버지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하려고 공양미 삼백 석에 팔려 몸을 던진 ‘임당수’로 구전되는 곳이다.
▼ 11 : 16. 채화대에서 빠져나와 ‘SONO Belle Hotel & Resort’ 옆으로 난 소로를 따르면 2차선 도로인 ‘변산해변로(이하 ‘변산 해안도로’)’에 이른다. 서해랑길은 이 도로를 따라 한참을 간다. 하지만 보도가 따로 나있어 오가는 차량을 무서워 할 필요는 없다.
▼ 11 : 21. 400m쯤 걸었을까 이정표(종점 12.1km/ 시점 1.8km)가 수성당까지 0.6km가 남았다며 왼쪽으로 난 소로(죽막길)로 들어가란다. ‘변산반도 생태탐방원’의 정문 앞 삼거리이다.
▼ 11 : 25. 조금 더 걸으면 서해생명자원센터(한국수산자원공단)에 이어 ‘죽막마을’이 나온다. 서해랑길은 마을 앞 개천가를 따라 맞은편 언덕으로 올라간다.
▼ 언덕에서 만난 ‘격포리 후박나무 군락(해안가 200m의 지정구역 안에 132그루가 자란다)’. 안내판은 이 숲이 천연기념물(제123호)로 지정되어 있음을 알려준다. 이 지역이 후박나무의 북방한계선이라서 식물분포학적 가치를 인정받았다나? 그나저나 ‘후박(厚朴)하다’는 인정이 두텁고 거짓이 없다는 뜻이다. 이름대로 후박나무는 후박한 나무이다. 약재, 목재, 염색재로 아낌없이 자신의 몸을 다 내준다.
▼ 후박나무군락지 옆 너른 공터는 텅 비어 있었다. 아니 뭔가를 심으려는 듯 밭갈이를 해놓았다. 봄에는 유채, 가을에는 코스모스를 식재한다고 했으니 유채 씨라도 뿌리려나 보다.
▼ 11 : 29. 공터를 가로지르면 전북 유형문화재 제58호인 ‘수성당’이다. ‘죽막동 유적’이라는 이름의 사적(541호)으로도 보호받고 있는데, 이 일대에서 선사시대 이래로 바다에 제사를 지낸 유물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란다.
▼ 수성당(水聖堂)은 서해를 다스리는 개양할미와 그의 딸 여덟 자매를 모신 제당으로 조선 순조 1년(1801)에 처음 세웠다. 지금 건물은 1996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참고로 개양할미는 수성당 옆의 여울굴에서 나와 딸 여덟 명을 낳은 뒤 일곱 딸은 각 도에 한 명씩 시집보내고, 막내딸만 데리고 살면서 서해의 깊이를 재어 어부들의 생명을 보호해 준다고 한다.
▼ 수성당은 아홉 여신이 좌정해 있다 하여 ‘구낭사’라고도 한다. 개양할미는 서해바다를 걸어 다니며 깊은 곳은 메우고 위험한 곳은 표시하여 어부를 보호하고, 풍랑을 다스려 고기가 잘 잡히게 한다는 바다의 신이다. 때문에 이 지역 어민들은 개양할미를 정성껏 모셔왔다. 요즘도 정월 열나흘 날에 계양할미에게 치성을 드리는 수성당제를 지낸다고 한다. 풍어와 마을의 평안을 비는 마을 공동제사이다.
▼ 수성당 앞에서의 조망. 아까 채화대에서 바라보던 풍경과 달라진 게 없다. 그러니 이곳에서의 일몰도 변산팔경의 으뜸인 ‘격포낙조’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육당 최남선이 ‘심춘순례’에서 조선의 빼어난 풍광 10경으로 뽑은 그 ‘변산 낙조’말이다.
▼ 수성당을 나오면 산책로는 시누대 숲길로 이어진다. 어른의 키를 훌쩍 넘길 정도로 웃자란 시누대가 울창한 숲을 이루는데, 그 숲속으로 터널형의 산책로가 굽이굽이 휘돌아가며 나있다.
▼ 전망 좋은 곳에는 포토죤까지 만들어놓았다. 온 서해가 다 보일 정도로 막힘이 없는데, 이를 배경삼아 사진이라도 찍으라는 듯 액자 조형물을 세워두었다.
▼ 11 : 39. 시누대 숲을 빠져나오면 길은 ‘적벽강(赤壁江)’으로 이어진다. 채석강과 더불어 ‘국가 명승(13호)’으로 지정된 곳이다. 용두산(龍頭山)을 에도는 2km의 해안선을 따라 펼치는 붉은 절벽은 채석강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아름다움에 경이로움을 더했다고나 할까? 참고로 적벽강은 중국 송나라 때의 시인이자 정치가였던 소동파가 황주로 유배를 가서 빈한한 삶을 살며 적벽부(赤壁賦)를 지었다는 적벽강과 흡사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검붉은 색을 띤 암반으로 이루어진 적벽강은 한 폭의 그림 같다. 아니 적벽강의 백미는 석양 무렵이라고 했다. 바위 단애가 진홍색으로 물들며 장관을 이룬단다. 바닷가로 내려서자 파도가 칠 때마다 몽돌 해안의 자갈 구르는 소리가 청아하게 귓가를 때린다. 달빛에 술상을 마주한 소동파가 읊조리는 싯구라도 되는 양...
▼백악기 후기, 거대한 호수 아래 퇴적된 격포리층이 지질운동으로 솟아올랐다 침식되면서 적벽강이 만들어졌단다. 퇴적암인 셰일과 화산암인 유문암의 경계 부분에 성질이 다른 두 암석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페퍼라이트는 적벽강을 대표하는 지질구조이다.
▼ 글자 조형물은 우리가 ‘변산 마실길’의 3코스를 걷고 있음을 알려준다. ‘적벽강 노을길’로 포장된 3코스는 성천항에서 격포항까지의 구간으로 변산마실길의 백미다. 길은 줄곧 바다를 옆구리에 끼고 가는데 변산반도의 명소인 적벽강과 채석강, 그리고 바닷길이 드러나는 하섬과 격포리 후박나무 군락지를 품고 있다. 특히 이 구간을 걷다가 만나는 노을은 아름다움의 극치로 알려진다.
▼ 11 : 42. 서해랑길은 적벽강의 해식 단애 위를 따라간다.
▼ 덕분에 적벽강의 빼어난 풍광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변산의 해안은 모래와 바다만 있는 게 아니다. 멋들어진 기암들이 수문장처럼 바다와 뭍의 경계를 지킨다. 이는 호남정맥에서 갈라져 나온 산줄기가 서쪽으로 향하다 순식간에 서해 바다로 몸을 숨긴 덕분이다.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산줄기가 물속으로 잠수하는 중이라고나 할까? 하나 더. 사람들은 내륙의 산줄기를 ‘내변산’, 해안을 ‘외변산’이라 부른다는 것도 알아두자.
▼ 11 : 46. 조금 더 걸어 도착한 또 다른 적벽강 생태탐방로 입구. 아름다운 변산 앞바다와 함께 커다란 안내판 하나가 눈에 띈다. 안내판은 적벽강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그 특징은 무엇인가에 대해 자세히 적고 있었다.
▼ 안내판은 페퍼라이트, 주상절리, 단층, 돌개구멍 등 다양한 지질구조를 살펴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내려가 보는 것까지는 사양하기로 했다. 4km 전방에서 출발한 집사람을 따라잡으려면 발길을 재촉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 11 : 49. 적벽강을 빠져나오면 또 다시 ‘변산 해안도로’를 만난다. 그리고는 꽤 오래 이 도로를 따라간다.
▼ ‘변산해안로’라는 이름대로 도로는 바닷가를 따라간다. 덕분에 곳곳에서 시야가 확 트인다. 이 무렵 나그네들은 ‘하섬’을 눈에 담을 수 있다.
▼ 12 : 09. 도로변에 있는 마실길의 ‘반월안내소’에 도착하면 회화나무 고목이 나그네를 반긴다. 안내판은 ‘500여 년 전 부안 현청 동헌에 심어졌던 것으로 수령이 다하여 그 몸통을 수거·보관해오다 변산마실길 반월안내소를 개소하면서 수명을 다한 고목이지만 향토의 애환을 지켜온 수혼을 변산 마실길의 수호신으로 삼아 탐방객의 안녕을 빌고자 세워 두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 하나 더. 안내소 옆에 ‘변산 아으리랑 노래비’와 하섬 부근에서 해양자원을 조사하다 숨진 국립공원관리공단 소속 연구원들의 추모비도 세워져 있으니 한번쯤 살펴보도록 하자.
▼ 12 : 15. 도로에서 내려와 오솔길(마실길 이정표 : 성천항까지 3.5km)을 따른다. 이후부터 길은 ‘변산 해안도로’와 해안 숲길, 바닷길이 만나고 헤어지면서 ‘하섬 전망대’까지 이어진다.
▼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驚蟄)도 벌써 나흘이나 지났다. TV만 켜면 방송은 온통 남녘의 꽃소식을 전하느라 바쁘다. 꽃봉오리를 활짝 열어젖힌 저 매화꽃이 그 증거가 아닐까 싶다.
▼ 탐방로는 바닷가 비탈진 산자락을 따라 나있다. 덕분에 시야가 툭 트이면서 바다를 향해 뻗어나간 곶부리의 아름다운 풍광을 눈에 담는다.
▼ 12 : 20. ‘변산 해안도로’와 만나는 지점(마실길 이정표 : 성천항까지 3.2km)에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었다. 식탁용 벤치 두어 개를 놓아 쉼터까지 겸하도록 했다. 드라이브 스루로 여행을 즐기는 이들을 위한 배려이지 싶다.
▼ 전망대에 서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진다. 맞다. 이곳 부안에는 풍요로움을 의미하는 수식어들이 참 많다. ‘변산삼락(邊山三樂)’도 그중 하나인데, 맛·풍경·이야기 등 세 가지 즐거움이 있다는 뜻이다. 저런 풍광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수식어가 아닐까 싶다.
▼ 바닷가 오솔길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이어진다. 산책로라기보다 등산로에 가깝다고 보면 되겠다. 47코스의 난이도가 별이 3개로 평가되는 이유일 것이다.
▼ 길은 ‘시누대’라고 하는 해장죽(海藏竹) 숲속을 헤집기도 한다. 터널이 만들어내는 빛의 조화로 인생 사진 하나쯤은 너끈히 건질 수 있는 구간이다.
▼ 바다로 눈을 돌리자 ‘하섬’이 부쩍 가까워졌다. 사당도와 석도, 비안도 등 주변의 섬들도 일목요연하게 눈에 들어온다. 하나 더. 육지에서 1km가량 떨어진 하섬은 매월 음력 초하루와 보름 무렵 썰물 때가 되면 신비의 바닷길이 열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2~3일간 바다 갈라짐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때 백합·꼬막 등 해산물을 줍는 진풍경이 펼쳐진단다.
▼ 12 : 47. 산길 느낌의 탐방로를 따라 시나브로 걷다보면 어느덧 해안초소에 이른다. 변산반도의 해안을 지키던 옛 군사시설을 전망대 겸 쉼터로 바꾸어 놓았다. 쉼터는 꽃을 들고 프러포즈를 하는 남성의 조형물을 세워 가슴 설레는 분위기까지 연출하고 있었다.
▼ 탐방로는 군인들이 사용하던 교통호를 따른다. 그래선지 해안절벽을 따라 철조망이 쳐져있었다. 이 구간은 철조망에 걸린 팻말을 읽어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고이지 않고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는 ‘유수불부(流水不腐)’ 같은 사자성어가 있는가 하면, 청춘이 기생을 안으면 천금이 건불이라는 유머 넘치는 글귀도 눈에 띈다.
▼ 12 : 51. 탐방로는 정비가 잘 되어 있었다. 조금이라도 가파른 곳에는 계단을 설치했고, 작은 개울이라도 만날라치면 어김없이 다리를 놓았다. 이뿐 아니다. 작고 예쁜 해변은 나무계단을 이용해 바닷가로 내려갈 수도 있도록 했다.
▼ 바닷가로 내려서자 ‘하섬’이 성큼 다가온다. 아름다운 전설이 서려 있는 하섬은 새우가 웅크린 모양을 하고 있다 하여 ‘새우 하(鰕)자’를 썼다. 그러다 원불교 시설들이 들어서면서 바다에 떠 있는 연꽃 같다 하여 ‘연꽃 하(荷)’자로 바꿔 사용한다고 했다. 그나저나 눈에 들어오는 ‘하섬’은 여느 섬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썰물 때가 되면 바다가 하섬으로 가는 길을 열어준다고 했다. 전설이 만들어낸 길이다. 옛날 옛적에 육지에서 노부모와 아들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태풍이 불어와 부모님이 탄 고깃배가 하섬까지 떠내려가서 돌아오지 못하자 효성이 지극한 아들이 용왕님께 빌고 빌어 용왕님이 바닷길을 열어주었다는 것이다.
▼ 교통호를 따르다보니 군의 옛 시설들을 심심찮게 만난다. 군인들이 떠난 뒤, 초소와 녹슨 철조망만 남아있던 ‘초병의 길’이 ‘변산 마실길’로 다시 태어났다고 보면 되겠다.
▼ 12 : 58. 그렇게 시나브로 걷다보면 어느덧 ‘하섬 전망대’다. ‘변산 해안도로’의 도로변, 하섬이 한눈에 쏙 들어오는 곳에 데크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그 아래로 지나가는 탐방로에는 커다란 대리석 조형물을 세워 이곳이 ‘변산 마실길’임을 알린다.
▼ 마실길 나그네들을 위한 전망대도 빼먹지 않았다. 또 하나의 전망대를 탐방로에 걸쳐놓았다. 그나저나 산길을 걷다가 바다에 둘러싸인 하섬을 만나니 눈이 절로 시원해진다. 하지만 하섬은 눈으로 즐기는 선에서 만족해야 한다. 원불교 재단에서 사들여 해상수련원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양을 위한 원불교 신도 외에는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단다.
▼ 산자락을 헤집으며 뻗어나가는 오솔길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저 능선을 넘으면 성천항으로 연결되는 산비탈이다. 해안을 따라 조성된 오솔길은 한 명씩 차례로 줄을 서서 가야 할 만큼 비좁다.
▼ 13 : 15. 길을 나선지 2시간 35분. 변산마실길 2코스(적벽강 노을길)의 시점인 ‘성천항’에 도착했다. 포구의 초입, 유유동천(遊儒洞川)의 배수갑문 못미처 갈림길에 변산마실길 안내도와 이정표(송포항 5.0km/ 격포항 9.0km), 그리고 서해랑길 이정표(종점까지 5.6km)가 세워져 있다. 참고로 변산면 운산리에 위치한 ‘성천항(成川港)’은 부안군수가 관리하는 5개 지방어항(곰소항·궁항항·송포항·식도항·성천항) 중 하나다. 연근해 어업을 위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으며, 질산어장에서 주로 전어와 갈치를 잡는다.
▼ 성천항은 바다낚시의 명소인 듯. 동호인들이 버스까지 끌고 와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차창에 그려놓은 물고기가 나그네의 눈길을 붙들어 맨다. 저 낚시꾼들은 물고기를 낚자마자 뼈만 남기고 회를 떠서 먹어버리는 모양이다.
▼ 13 : 20. 포구의 모퉁이(이정표 : 종점까지 5.2km)를 돌아서면 고사포해수욕장이 길손을 맞는다. 변산반도국립공원에서 모래밭이 가장 길다는 해변으로, 그 길이가 무려 2Km에 이른다고 한다. 잠시지만 모래사장을 걸어본다. 누군가 그랬다. 물 빠진 변산의 해수욕장에 들어서면 신발은 벗어두자고. 촉촉하게 젖은 모래 위를 걷는 감촉이 생각보다 부드럽고 따뜻하다면서 말이다. 하지만 갈 길이 바쁜 나그네에게는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저 종착지를 향해 부지런히 걸어가고 있을 뿐...
▼ 고사포해수욕장의 백사장은 모래가 부드럽고 물이 깨끗하고 수온이 적당해서 가족단위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다고 했다. 해변에서 바라보는 조망도 일품이다. 근거리에 있는 하섬은 물론이고, 비안도와 두리도, 거기에 고군산군도의 여러 섬들까지 일목요연하게 펼쳐진다.
▼ 고사포해수욕장의 자랑거리는 방풍림 역할을 하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다. 파도소리에 더해진 솔바람소리가 인상적인데, 그 숲속에 야영장이 조성되어 있다. 솔숲 앞으로는 드넓은 서해바다가 부드럽게 펼쳐진다. ‘아! 좋구나’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멋진 해변이라 하겠다. 그래서일까? 아직은 쌀쌀한 날씨인데도 소나무 숲에는 꽤 많은 텐트가 쳐져 있었다.
▼ 13 : 39. 서해랑길은 해수욕장을 지나 맞은편 산자락(이정표 : 종점까지 3.7km)으로 파고든다. 그리고는 아까처럼 병사들이 사용하던 교통호를 따른다.
▼ 하섬이 바라보이는 갯바위에는 전망대를 만들어놓았다. 다리품을 조금만 더 팔면 내려가 볼 수도 있겠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시야가 넓어지는 법이니 탐방로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더 뛰어나지 않겠는가.
▼ 13 : 44. 모퉁이를 돌아서자 수많은 펜션들이 잠시 쉬었다가란다. 운산교차로를 스치듯 지나면 서해랑길은 마리나, 헤이데이, 그랑메종, 보보스, 바라한 등 서구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는 펜션들로 가득한 저 마을을 관통한다.
▼ 13 : 55. 펜션지구의 뒤 작은 고개를 넘자 양어장으로 여겨지는 시설이 나타났다. 하지만 걷기 여행자들에게는 경관 좋은 곳으로 더 의미를 갖는다. 그래선지 정자까지 지어 갈 길 바쁜 나그네의 발길을 붙들어 매고 있었다.
▼ 주변은 기암괴석으로 가득했다. 바닷물에 깎이고 깎여 아무렇게나 다듬어진, 태고의 신비스러운 흔적을 여기서도 본다. 역광으로 인해 어둑해진 풍광이 신비스러움을 더해준다.
▼ 함께 걷던 80대 도반의 손가락 끝에는 ‘거북바위’가 걸려있었다. 거북이 한 마리가 바다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모양새라는 것이다.
▼ 정자에 올라본다. 시선이 가는 곳마다 빼어난 풍광이 펼쳐진다. 맞다. 한반도가 품은 작은 반도 ‘변산’은 서해 제일의 아름다운 해변으로 꼽힐 만큼 빼어난 미모를 갖췄다. ‘서해의 진주’라고 불리는 이유다.
▼ 인간은 경제적인 동물이라고 했다. 그러니 서해바다가 한눈에 쏙 들어오는 저런 명소를 그냥 내버려둘 리가 없었을 것이다.
▼ ‘모실길 노선안내판’이 우리가 지금 ‘변산 마실길 2코스(노루목 상사화길)’를 걷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 구간은 철책 초소길을 따라가며 자연적으로 조성된 상사화 군락지를 만날 수 있는 길이다. 송포항에서 출발해 솔향기 가득한 숲길과 붉노랑상사화 군락지, 금빛모래의 고사포해수욕장을 거쳐 옥녀가 머리를 감았다는 성천포구에 이르는 길이 4.8km의 코스다.
▼ 탐방로는 계속해서 교통호를 따라간다. 바닷가 산비탈에 쳐놓은 녹슨 철조망도 함께 따라간다.
▼ 그렇게 걷다보면 벌거벗은 구릉지도 만난다. 그곳에는 유채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마실길은 이렇듯 봄의 유채꽃에서 겨울의 눈꽃에 이르기까지 사계절 내내 꽃들이 활발하게 피어난다.
▼ 14 : 14. 나무로 만든 출렁다리를 건넌다. 작지만 탄력이 있어 출렁거림이 남다른 곳이다.
▼ 14 : 20. 시야가 툭 트이는 널따란 구릉지는 ‘상사화 군락지’로 조성해 놓았다. 매년 늦여름(8월말부터 9월초) 샛노란 붉노랑상사화와 함께 순백의 위도상사화가 곱게 피어난단다. 때를 잘 맞추면 푸른 파도와 함께 펼쳐지는 환상적인 풍경을 실컷 구경할 수 있다나?
▼ 어떤 이는 이곳을 ‘샤스타데이지 꽃밭’으로 적고 있었다. 맞다. 봄에 이곳을 찾으면 상사화 대신 샤스타데이지가 꽃망울을 활짝 열고 길손을 맞이한단다.
▼ 붉노랑상사화는 잎이 있을 때는 꽃이 없고 꽃이 있을 땐 잎이 없어 ‘잎은 꽃을, 꽃은 잎을 그리워한다’는 애절한 사연을 담고 있는 꽃이다. 평소에는 연한 노란색이지만 직사광선이 강한 곳에서는 붉은빛을 띤다고 해서 ‘붉노랑상사화’란 이름이 붙여졌다. 만개 때는 껑충한 연초롱 꽃대 끝에 왕관처럼 얹혀진 노랑 꽃술이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한다.
▼ 조망도 좋다. 비안도와 두리도, 거기에 고군산군도의 수많은 섬들까지 한꺼번에 눈에 담을 수 있다.
▼ 해안은 더 아름다웠다. 아름다움은 보는 이의 마음까지도 아름답게 만든다고 했다. 그래선지 부안의 바닷가는 각박한 세상살이에 할퀴어지고 뜯기고 긁힌 마음의 상처를 보듬어 주고 있었다.
▼ 탐방로는 바다를 향해 돌출된 곶부리를 돌아가는 모양새이다. 한적한 오솔길은 사색하기 딱 좋았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발을 내딛는 순간 머리는 맑아지고 맘속의 모난 돌도 둥글둥글 다듬어진다.
▼ 14 : 25. 모퉁이를 돌아서자 반원형의 전망대가 잠시 들렀다가란다. 다리 모양의 대를 세우고 그 위에다 전망대를 만들었다.
▼ 전망대에 서자 변산해수욕장이 기다랗게 펼쳐진다. 나로서는 옛 추억을 소환시켜주는 장소이기도 하다. 35년쯤 전, 그러니까 내 나이 서른의 중반 무렵, 가족들과 함께 저곳에서 하계휴가를 보냈었다. 당시 아버지가 잡아온 바지락과 백합으로 술국을 끓였고, 그걸 반주삼아 마신 술로 나는 얼큰하게 취했었다. 그날 밤. 판소리랍시고 흥얼대는 내 술주정을 늦게까지 들어주시던 아버지가 그립다.
▼ 바다 건너 저 멀리서는 새만금 방조제와 고군산군도가 자신도 한번 보아달란다.
▼ 1960년대 전후 북한의 간첩 침투를 막기 위해 설치했다는 녹슨 철조망은 이제 ‘소망의 벽’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조개껍데기나 판자에 나름대로의 소원을 적었는데, 남녀의 이름과 함께 하트(♡) 표식을 넣은 게 가장 많이 눈에 띈다.
▼ 안내판은 이 부근을 붉노랑상사화의 자생지라고 했다. 때(9월 무렵)를 잘 맞추면 샛노랗게 핀 상사화를 실컷 구경할 수 있단다. 하지만 3월 초인 지금으로서는 언감생심이다. 대신 복수초가 꽃봉오리를 활짝 열고 있었다. 이른 봄소식은 복수초의 노란 꽃잎에서 온다고 했다. 아직은 바람이 차지만 활짝 핀 복수초에서 봄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낀다.
▼ 14 : 31. 변산해수욕장의 남단과 맞닿아있는 송포항(松浦港), 부안군수가 관리하는 또 다른 지방어항이다. 이곳도 ‘성천항’처럼 칠산어장을 주요 어장으로 삼아 전어와 갈치 등을 잡는다. 참고로 송포(松浦)는 지지포라는 곳에서 살던 어느 선비가 이곳 소나무 아래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학문을 연마했다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라고 한다.
▼ 14 : 36. 변산해수욕장은 송포항을 빠져나오자마자 시작된다. 변산면 대항리에 있는 변산해수욕장은 ‘서해안 3대 해수욕장(대천·변산·만리포)’ 중 하나로, 희고 고운 모래로 이루어진 2km 길이의 사빈과 배후의 소나무 숲이 한데 어우러지며 천혜의 절경을 이룬다. ‘백사청송(白沙靑松)의 해변’으로 불리는 이유이다. 백사장도 경사가 완만하고 수심이 얕아 가족단위의 피서객들에게 안성맞춤이란다.
▼ 탐방로는 해수욕장의 배후 솔숲으로 나있다. 변산해수욕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해수욕장 중 하나로 1933년에 개장했다. 배후 솔숲에 굵직한 소나무들이 가득한 이유일 것이다.
▼ 탐방로에는 수많은 시판(詩板)이 늘어서 있었다. 이 지역 출신의 작가들인지 하나같이 부안의 산하를 노래하고 있다. 맞다. 이곳 부안은 시문학의 보고이기도 하다. 시문과 거문고에 뛰어났던 명기 매창(梅窓)이 있었는가 하면, 현대에 와서는 서정시인 신석정(辛夕汀)을 배출하기도 했다. 이들은 변산반도와 채석강 등 부안의 주옥같은 산하를 빼어난 문장으로 풀어냈었다.
▼ 글자조형물은 파도를 담았다.
▼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 지역 예술가가 만든 조형물이란다. 제목은 ‘꿈꾸는 물고기’. 변산과 관련된 주제인 ‘물고기’를 모티브로 삼아 만들었다고 한다. 이밖에도 다채로운 포토존과 조형물들이 해변을 장식하고 있었다.
▼ 해파랑길 안내책자나 kakaomap은 47코스의 종점을 변산해수욕장의 버스정류장으로 표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해보니 47코스와 48코스의 시·종점임을 알리는 그 어떤 시설물도 눈에 띄지 않는다. 헷갈려하는데 두루누비에서 다운받은 앱이 ‘사랑의 낙조공원’까지 조금 더 가라고 알려준다.
▼ 14 : 52. 공원으로 오르는 계단의 초입. 이정표가 당신은 이미 48코스를 400m나 걸어왔다고 알려준다.
▼ 변산해수욕장의 랜드마크로 자리를 굳힌 ‘사랑의 낙조공원’은 꽤나 긴 계단을 올라가야만 만날 수 있다. 첫 만남인 전망대를 겸한 작은 광장에는 ‘사랑의 표현’이라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었다. 이 작품은 남성과 여성을 표현하며, 한 쌍의 하트가 되도록 구성되어 있다. 하트는 반쪽만 만들어 놓았고, 비워진 반쪽은 탐방객들의 사랑 표현을 채워 넣을 수 있도록 했다. 석양 무렵 이 조형물에 대칭으로 신체를 맞출 경우 인생사진 하나쯤 너끈히 건질 수 있단다. 아래(다섯 번째)에 게재되어 있는 해넘이 안내판을 보면 대충 이해가 갈 것이다.
▼ 로마의 명물인 ‘진실의 입(Bocca della Verita, Mouth of Truth)’을 닮은 조형물도 눈에 띈다. 얼굴 앞면을 둥글게 새긴 대리석 가면(플루비우스의 얼굴)이다. ‘진실의 입’이란 이름은 입에다 손을 넣고 거짓말을 하면 강의 신(神) ‘플루비우스(Pluvius)’가 손을 잘라버린다는 전설에서 왔다. 중세시대에는 일부 영주들이 사람들에게 손을 넣게 하고 몰래 잘라버리기도 했다는데,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오면서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되었다.
▼ 난간에 서면 ‘변산해수욕장’이 속살을 드러낸다. 그런데 생경스럽다는 이 느낌은 대체 뭐란 말인가. 맞다. ‘변산해수욕장’이 서해라고 해서 갯벌을 생각하면 곤란하다. 시커먼 갯벌 대신 고운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물이 들락거릴 때도 흙탕물 대신 쪽빛 바닷물이 넘실거린다.
▼ 공원에서 바라본 해수욕장의 배후 풍경. 변산해수욕장은 노을이 머무는 사계절 관광지로 새롭게 변신하고 있었다. 오토캠핑장을 시작으로 전기시설이 가능한 야영장(80면), 스토리센터, 노을바라기(전망대), 비치가든(물놀이장), 노을쉼터 등 다양한 시설을 만들어놓았다.
▼ ‘하트 손’이란다. 사람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신체의 일부가 손인데 사랑의 첫 단계가 손잡기이며 사랑하는 사람과 마지막까지 손을 잡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남자와 여자의 손으로 하트를 조각했단다. 사랑의 약속이 깨지지 않고 영원히 남기를 바라는 의미가 담겨있다니, 사랑하는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조형물을 배경으로 인증사진 하나쯤 남겨보면 어떨까?
▼ 사랑의 낙조공원 해넘이 안내판. 월별 해넘이 위치와 일자별 해넘이 시각을 담았다. 노을에 대해서는 최적의 뷰를 보여주는 곳이니 부안의 멋진 노을을 듬뿍 담아가라고 한다.
▼ 15 : 02. 서해랑길 안내도(부안 48코스)는 ‘사랑의 낙조공원’의 진입광장 남쪽 가장자리에 세워놓았다. 오늘은 4시간 20분을 걸었다. 앱이 15.64km를 찍고 있으니 상당히 더디게 걸은 셈이다.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오솔길이 만만치 않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 오늘도 집사람이 함께 걸어주었다. 여행과 레포츠에 푹 빠져있는 나. 집사람은 그런 내가 좋다며 항상 함께 해준다. 이런 생활 패턴이 우리 부부의 건강 비결이 아닐까 싶다. 미국 대중문화계의 스타이자 코미디의 전설로 불리는 ‘조지 번스’는 100세까지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부인 앨런과 함께 라디오와 텔레비전에서 남을 즐겁게 해주는 일을 천직으로 삼았고, 그것이 행복의 비결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주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장수의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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