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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신퇴(功遂身退)
공을 이루고 나면 이내 물러나야 한다는 말이다.
功 : 공 공(力/3)
遂 : 이룰 수(辶/9)
身 : 몸 신(身/0)
退 : 물러날 퇴(辶/6)
(유의어)
공성신퇴(功成身退)
급류용퇴(急流勇退)
지난이퇴(知難而退)
출전 : 도덕경(道德經) 第9章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 유래하는 말로, 제9장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金玉满堂, 莫之能守, 富贵而骄, 自遗其咎. 功遂身退, 天之道.
금은보화가 집에 넘쳐나 그것을 지키는 것만도 어려운 일인데, 부귀해지려는 마음에 교만하여 욕심을 부리는 것은 스스로에게 화를 부르는 것이다. 공을 이루면 몸소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이다.
이말은 '현재에 가지고 있는 것을 제대로 지키지도 못하면서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 하다가는 오히려 갖고 있던 것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지위나 재화 등 어떤 것을 자신이 수용할 수 있는 이상으로 갖게 되더라도 거기서 멈추고 더 이상 욕심내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비슷한 말로 형세가 곤란할 것을 알면 물러나야 한다는 뜻의 지난이퇴(知難而退), 빠른 물살을 용감하게 건너듯이 벼슬자리에서 서슴없이 물러난다는 뜻의 급류용퇴(急流勇退)가 있다. 노자는 사람이 조금 가지면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탐욕의 습성을 날카롭게 경고하고 있다.
공을 세우면 물러난다는 말 자체는 쉽다. 세상의 모든 것은 때가 되면 저절로 이루어지고, 그 이룸을 마치면 물러나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를 행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예로부터 많은 뛰어난 인물들이 이렇게 하지 못해 화를 입었다. 사람은 소유와 권력을 더 많이, 더 오래 유지하려고 한다. 욕망을 통제하지 못해 교만을 부리다가 결국 추락하게 된다.
임실치즈의 아버지로 불렸던 지정환 신부(벨기에 명 디디에 세스테벤스)가 지난 13일 향년 88세로 별세했다. 고인은 한국에 와 농민들의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할까 고민했다. 마침내 1967년 전북 임실에 우리나라 최초의 치즈공장을 세워 김치의 나라에서 치즈의 기적을 일궈냈다.
고인이 생전 좋아했던 말이 공수신퇴(功遂身退)다. 고인은 목표했던 치즈 생산을 이루자, 아무런 대가 없이 임실 치즈공장을 주민협동조합으로 변경한 뒤 운영권과 소유권을 조합에 전부 넘겼다. 공수신퇴(功遂身退)를 몸으로 실행한 것이다. 한국 사람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던 지 신부는 한국 땅에 묻혔다. 박수칠 때 스스로 물러나는 깊고 넓은 마음으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 노자 - 삶의 기술
통행본(通行本) 제9장
持而盈之, 不若其已.
굳게 잡아서 가득 채우는 것은 채우기를 그만두는 것보다 못하다.
揣而銳之, 不可長葆之.
다듬어서 날카롭게 하면 길이 보전할 수 없다.
金玉盈室, 莫之守也.
금은보옥이 방에 가득하면 지킬 수가 없고
貴富而驕, 自遺咎也.
부귀하면서도 교만하면 스스로 허물을 남기는 것이니
功遂身退, 天之道也.
공을 이룬 뒤에는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다
○ 持而盈之, 不若其已.
굳게 잡아서 가득 채우는 것은 채우기를 그만두는 것보다 못하다.
지(持)는 갑·을본 모두 식(㨁)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이 글자가 식(殖)의 가차자(假借字)라는 견해도 적지 않다. 진경원(송)에 따르면 엄준본(嚴遵本)도 식(殖)으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 이 문장은 "재물을 모아서 가득 쌓아두는 것은…"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보면 문장의 뜻이 너무 좁다. 집운(集韻)에 따르면 식(㨁)은 지(持)와 통하는 글자고(왕성), 식(殖)도 지(持)와 통하므로(장송여) 모든 통행본처럼 지(持)로 보는 것이 좋겠다.
왕필은 "굳게 잡는 것이란 덕을 잃지 않는 것이다. 이미 그 덕을 잃지 않았고 게다가 그것을 가득 채웠기 때문에 추세가 반드시 위태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만두는 것보다 못하다고 한 것이니 무덕, 무공(無功)한 것이 낫다는 의미다"라고 해설했다.
관자(管子) 백심(白心)에도 이 문장을 염두에 둔 글이 있다. '굳게 잡아서 가득 채우는 것은 위태롭다. 이름이 천하에 가득 차는 것은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는 것보다 못하다. 이름이 나면 몸을 물리는 것이 하늘의 도다. 한껏 발전한 나라에서는 벼슬할 수 없고, 한껏 잘 사는 집안에는 자식을 주어서는 안 되며, 오만하고 포악한 사람과는 사귈 수 없다.' 백심(白心)이 노자(老子)를 보지 못했다면 이런 글은 나올 수 없다. 백심(白心)은 이른바 관자(管子) 4편 중의 하나다.
장석창에 따르면 첫 구절은 원래 가득 찬 것을 유지한다(持盈)는 숙어인데, 뒤의 구절과 호응하기 위해서 네 글자로 늘렸다고 한다. 그는 고전의 여러 곳에서 이런 숙어가 쓰인 사례를 제시했다. 지만(持滿)이라는 말도 가득 찬 것을 유지한다는 말이다. '지영'과 같다. 장석창은 놓쳤지만 이 말과 관련해서는 가득 찬 것을 유지하는 도리(持滿之道)를 설파하는 공자의 고사도 거론해야 한다.
공자(孔子)가 한숨을 쉬며 탄식하고 말했다. "아, 어찌 가득 차고서도 엎어지지 않는 것이 있겠는가!"
자로가 말했다. "감히 묻건대 가득 찬 것을 유지하는 데(持滿) 도가 있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총명하고 지혜로우면서도 어리석음으로 지키고, 공이 천하를 뒤덮는데도 퇴양으로 지키며, 용맹과 힘이 세상을 어루만지는데도 비겁함으로 지키고, 부유함은 사해를 가질 만한데도 겸손으로 지키는 것, 이것이 이른바 물을 뜨면서 조금을 덜어내는 도다."
이 고사는 공자가 노 환공의 묘당에서 유좌기(宥坐器)를 봤을 때의 일이다. 고대의 제왕이 자리 오른쪽(宥; 右)에 놔두고 경계로 삼았다는 이 그릇은 무게 중심을 교묘하게 계산해 텅 비면 기울어지고, 적절히 채우면 똑바르고, 가득 채우면 엎어지는 그릇이었다. 공자는 정말로 그런지 실험해보고 나서 위에서처럼 탄식했다.
같은 이야기가 회남자(淮南子) 도응훈(道應訓)과 한시외전(韓詩外傳)에도 있는데(권3) 골격은 같지만 공자의 나중 말이 약간 다르다. 순자(荀子)가 소개하는 공자의 말은 도응훈(道應訓)과 유사하고, 너무 노자(老子)와 가까이 있기 때문에 혹시 후대 사람의 손을 댄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중 말은 차치하고라도 "가득 차고서도 엎어지지 않는 것이 있겠는가"라는 말만 보아도 지금 노자(老子) 문장과 다를 것이 없다.
차이가 있다면 공자는 아예 아무것도 안 채우는 것 역시 가득 채우는 것처럼 좋지 않다고 보았다는 점이다. 공자에 따르면 가득 찬 것도 텅 빈 것도 중정(中正)의 도리에서 어긋나므로 적절히 채우는 것이 좋다. 반면 노자(老子)는 허(虛)를 강조했다. 앞의 해설에서 왕필도 무덕과 무공이 낫다고 하였다. 공자의 '지만'과 노자(老子)의 '지영'은 그만큼의 차이가 있다.
도응훈(道應訓)은 초나라의 백공 승(勝)의 고사와 연결하여 이 문장을 소개한다. 그가 반란을 일으켜 일시적인 성공을 거두었을 때 창고의 재물을 아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민심이 돌아서서 나중에 진압당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면 사람의 도량이 크다는 것은 엄청나게 많은 것을 품에 안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유사시 많은 것이 그에게로 와서 안길 수 있는 빈 공간이 있느냐에 의해 결정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그 공간은 또 자신이 도망갈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도응훈(道應訓)은 이 고사를 여씨춘추(呂氏春秋) 사순론 분직(似順論 分職)에서 그대로 가져와서 마지막에 노자(老子)의 말만 덧붙였다. 문자(文子) 미명(微明)은 도응훈(道應訓)의 기사를 대충 소개하면서 모두 노자(老子)의 말로 만들어 버렸다.
○ 揣而銳之, 不可長葆之.
다듬어서 날카롭게 하면 길이 보전할 수 없다.
이 문장은 백서 및 초간문, 통행본이 어지럽게 얽혀 있어서 고증이 쉽지 않다. 본문은 결국 대부분의 통행본처럼 해석한 것인데, 이렇게 해석한 것에는 고명의 견해를 가장 많이 반영했다. 특히 그는 '예(銳)'를 '연(鉛)'으로 보는 정리조의 견해를 비판하면서 통행본처럼 '예'가 맞다고 하였고, 두 글자가 잘못 끼어들어가 있다는 해설에도 반론을 제기했다. 누가 옳은지 선뜻 판단하기 어렵지만 일단 고명의 견해를 따르도록 한다. 초간문의 경우 '예'가 '군(群)'으로 되어 있는데, 무슨 뜻인지 불분명하다. '보(葆)'는 '보(保)'와 통하는 글자다.
췌(揣)는 다듬는다(治) 또는 두드린다(捶)는 뜻이다. 다른 뜻으로 보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이 이런 뜻을 취하므로 여기에서도 따른다. 문장의 뜻은 앞문장과 다를 것이 없다. "이미 끝을 다듬어서 뾰족하게 했는데 또 그것을 예리하게 하면 추세가 반드시 부러지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길이 보전할 수 없다(왕필)."
○ 金玉盈室, 莫之守也. 貴富而驕, 自遺咎也.
금은보옥이 방에 가득하면 지킬 수가 없고, 부귀하면서도 교만하면 스스로 허물을 남기는 것이니
노자(老子)의 유명한 말 중의 하나가 금옥만당(金玉滿堂)인데, 백서에 따르면 금옥영실(金玉盈室)이다. 초간문도 백서와 같으므로 원래는 이렇게 되어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 '영'이 '만'으로 바뀐 것은 한 혜제의 이름을 휘해서였다는 주장이 있다. 또 범응원은 고본에는 원래 '당'이 아니라 '실'을 썼다고 하였다. 교(驕)는 원래 '교(䮦)'이다. 후자는 말이 우뚝 서 있는 것이고, 전자는 말의 키가 육척이나 되어 뽐내고 서 있는 모습을 의미하므로(설문) 서로 통한다.
노자(老子)는 금옥만당이라도 결국은 지킬 수 없다고 하였지만 그 교훈과는 달리 중국에서는 금옥만당이라는 말이 축복이다. 그런데 중국은 또 노자(老子)를 좋아한다. 금옥만당을 지킬 수 없다는 노자(老子)의 말은 참으로 옳다. 그렇지만 그것이 부귀영화가 좋다는 느낌과 양립할 수 없는가?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성립하는 게 중국의 정서인 듯하다. 부귀영화는 좋기도 하고, 덧없기도 하다. 좋은 게 아니라면 덧없음은 또 어떻게 느끼겠는가.
○ 功遂身退, 天之道也.
공을 이룬 뒤에는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다.
백서 갑·을본 및 초간문이 모두 이렇다. 통행본 중에서는 왕필본이 이에 부합한다. 하상공본 등 다른 주요 판본은 글자에 약간의 출입이 있다. 판본마다 글자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어떤 것이 더 고본에 가까운가를 두고 고증학적인 논란이 많았다. 이 구절과 관련해서는 왕필본이 고본을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이미 이런 뜻에 대해서는 해설이 있었기 때문에 길게 설명할 것은 없다. 공을 이룬 뒤에 몸을 물려야 하는 것은 "사시(四時)는 운이 바뀌니 한번 공을 이루면 그 운이 다른 데로 옮겨가기 때문(왕필)"이다.
이와 관련하여 중국 역사에서는 장량(張良)의 처세와 한신(韓信)의 처세가 곧잘 비교된다. 장량은 노자(老子)의 이 도리를 알았기 때문에 때를 알고 물러나서 일신의 안위를 영구히 보존할 수 있었고, 항우를 무너뜨리는 데 공이 장량보다 덜하지 않았던 한신은 멈출 줄 모르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기 때문에 결국 기름 가마에서 횡사하고 말았다.
한신은 죽으면서 "날랜 토끼가 죽으니 사냥개도 삶아지고, 높이 날던 새가 다 없어지니 좋은 활이 감추어진다"면서 한탄했다고 하는데, 문자(文子) 상덕(上德)이 바로 그 글을 인용하여 노자(老子)의 지금 문장을 해설한다. 범려(范蠡)와 문종(文種)도 이런 식으로 대비될 수 있을 것이다.
도응훈(道應訓)은 또 여기에 싸울 때마다 승리했지만 결국에는 자만과 권태로 망해버리고 만 오왕 부차(夫差)의 경우도 추가한다. 대부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도응훈(道應訓)은 이 고사를 여씨춘추(呂氏春秋)에서 가져와(이속람·적위) 마지막에 노자(老子)를 덧붙이고 있다.
총명하고 지혜로우면서도 어리석음으로 지키고
공이 천하를 뒤덮는데도 퇴양으로 지키며
용맹과 힘은 세상을 어루만지는데도 비겁함으로 지키고
부유함은 사해를 가질 만한데도 겸손으로 지키는 것
이것이 이른바 물을 뜨면서 조금을 덜어내는 도다
- 순자 유좌(荀子 宥坐)
▣ 功遂身退 天之道(공수신퇴 천지도)
공을 이루었으면 물러나야 함이 하늘의 이치다.
상앙의 개혁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는 '날카로우면 오래 보전할 수 없고, 재위(在位)가 높으면서 교만하면 재앙을 자초하게 되며, 공(功)을 이루었으면 물러나야 함이 하늘의 도(道)'라 했다. 옛사람들은 물러날 때를 아는 자가 하늘의 道를 아는 자라 했다. 욕심이 지나쳐 이런 이치를 간과했던 사례는 역사상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다.
전국시대 진(秦)나라 때, 법가(法家)를 대표하는 상앙(商鞅)이란 인물이 있었다. 진(秦)의 왕이었던 효공(孝公)은 상앙의 건의를 받아들이고 그를 중용하여 강력한 법치주의를 통한 부국강병을 표방한다.
다섯 집이나 열 집마다 연대책임을 지는 십오연좌제(什伍連坐制)를 시행했으며, 법을 범한 자를 고발하지 않거나 범인을 숨겨 준 사람은 적에게 항복한 자와 똑같은 형벌을 내리고, 범죄를 고발한 자에겐 적의 목을 벤 자와 똑같은 상을 내린다는 법령을 만들었다.
전공(戰功)을 올린 자에게는 그 정도에 따라 작위를 부여하고, 개인적인 다툼에는 그 정도에 따라 형(刑)을 과하였다. 귀족과 같은 명문집안일지라도 전공이 없는 자는 그 신분을 박탈하는 신상필벌(信賞必罰)제도였다.
그러나 법령을 즉시 공포하지 못했다. 너무 엄격하고 급진적인 개혁이라 백성들이 과연 지킬지 의문이었고, 백성들은 지키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유명무실한 법이라며 반신반의했기 때문이다.
상앙은 백성들이 불신하자 한 가지 꾀를 내서 방(榜)을 붙였다. '남문의 이 나무를 북문으로 옮겨 놓는 사람에게는 金(금) 10냥을 주겠노라.' 그런데 아무도 옮기려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金 50냥을 주겠다고 써 붙였더니 한 사람이 믿져야 본전이라며 나무를 옮겼다. 상앙은 즉시 약속대로 金 50냥을 하사했다. 일시에 백성들 사이에서 그 소문이 퍼졌고 조정에서 공포한 법을 믿게 되었다.
한번은 태자가 사형판결을 받은 귀족의 한 사람을 숨겨 주는 일이 발생했다. '범인을 숨긴 자는 범인과 같은 죄'라는 법에 의해 태자가 사형을 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에 상앙은 태자를 법에 따라 처리하려고 하였으나 차마 왕위를 계승할 태자를 죽일 수 없었다. 결국 상앙은 효공(孝公)과 상의하여 태자 대신 태자의 교육을 맡은 관리의 코를 자르고 태자의 스승을 형벌에 처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백성들은 감히 법에 어긋나는 일을 생각하지 못했다.
상앙이 조정에 나선 지 5년 만에 나라 안에는 도둑이 사라졌고, 길에 물건이 떨어져도 주워 가는 이가 없었으며, 길가의 과실나무에 과일이 주렁주렁 열려도 감히 따 가는 사람이 없었다. 길가에 물건이 떨어져도 줍지 않는다는 도불습유(道不拾遺)란 말이 여기에서 유래했다. 진(秦)나라는 질서가 잡히고 백성들 살림은 윤택해졌다.
물러날 때를 알아야
나라가 안정되자 상앙은 국력을 외부로 돌려 위(魏)나라를 정벌하고자 한다. 이 정벌에서 큰 공을 세운 상앙은 높은 지위와 상금으로 15개 읍을 봉토로 받게 된다. 상앙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욱 강도 높은 개혁을 강행했다.
그런데 왕인 효공이 죽을병에 걸리게 되었다. 효공은 죽으면서 상앙을 불러 마지막 충고를 했다. "상군(商君)은 내 말을 잘 들으라. 그동안 엄격한 법 집행으로 부국강병을 이룩했다. 그러나 감히 내색하지는 않고 있을 뿐이지 그로 말미암아 수많은 원성이 그대를 향하고 있음을 분명히 알라. 이제라도 관직에서 물러나서 조용히 후환을 피하라. 내가 없으면 누가 그대를 보호하겠는가."
하지만 상앙은 법치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효공의 충고를 묵살하고 자리를 지키며 엄격한 법령 개혁을 계속해 나갔다. 효공이 병으로 세상을 뜨자 마침내 태자가 혜왕(惠王)으로 즉위했다. 혜왕은 과거에 상앙으로부터 자기 대신에 스승이 코를 잘리는 형벌을 지켜봐야 했던 바로 그 인물이었다.
혜왕이 들어서자 그동안 법으로 피해를 보았으면서도 말을 못 했던 신료들은 일제히 상앙을 역적으로 모함했다. 상앙은 낌새를 채고 재빨리 국외로 줄행랑을 쳤다.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국경 근처의 한 여인숙에 피신해 들어갔다. 그러나 여인숙 주인은 숨어든 상앙을 매몰차게 거절했다. "국법에 따라 증명서가 없는 사람을 재울 수 없소이다. 저까지 죄책을 면할 수 없습니다."
그제야 상앙은 자신이 제정한 법률이 가혹했음을 알게 되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결국 상앙은 군대에 잡혀 그가 정한 역적의 형벌대로 거리에서 처참하게 사지를 찢기는 거열(車裂)이라는 극형을 당하고 9족(九族)이 멸(滅)하게 되었다.
개혁의 반대급부로 그 피해자가 나오는 것은 막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정을 무시한 원리원칙의 주역들은 결국 개혁에 스스로 발목을 잡혀 조금 더 위세를 연장하려다 때를 놓쳐 상앙 같은 길을 걷고 만다.
달은 차면 기울고 꽃은 피면 떨어진다. 공을 세웠더라도 물러날 때를 아는 것이 바로 하늘의 도다(功遂身退 天地道). 물러남을 부끄러워하는 자는 도리를 모르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왜 자신이 물러날 때를 알지 못할까. 인간이 자신의 절정을 알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그릇 크기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리다. 결국 하늘의 도(道)란 자신의 됨됨이를 아는 것이다.
▣ 功遂身退 天之道也
떠날 때를 아는 자의 아름다운 뒷모습
그런데 인생의 은퇴기를 맞은 노년에 이르러 허명에 사로잡혀 낄데 안낄데 구별 못하고 여기 저기 기웃거리며 얼굴을 더럽히는 노구의 인사들이 있다. 자기 직책도 아닌데 무리하게 나선다든지 하찮은 대접 좀 받겠다고 떳떳지 못한 일에 앞장 서기도 한다. 참으로 안타깝다. 떠날 때를 알고 떠나는 것은 영웅이라도 쉽지가 않은데 하물며 범인들이야 오죽하겠는가?
봄은 봄의 직분과 사명을 다한 다음에는 여름에 자리를 양보한다. 여름은 여름의 책임과 역할을 마친 다음에는 가을에 자리를 넘겨 준다. 이것이 하늘의 운행이요, 천지의 질서다. 인간도 자기의 직분을 마치고 공명을 다한 다음에는 그 자리에서 조용히 물러나야 한다. 이것이 하늘의 길을 따르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반드시 나설 때가 있고 물러설 때가 있다. 마땅히 물러설 때에 물러서지 않고 그 자리에 연연애착하여 자리를 탐내고 고수하려고 하는 것은 억지요, 무리요, 탐욕이다. 유불도는 공히 '먼저 인간이 되라' 하지 부귀공명(富貴功名)을 찬미하지 않는다.
자연도 만물을 생성하고 이롭게 할뿐 무엇을 지배하거나 간섭하거나 소유하지 않고 때맞춰 물러난다. 유독 인간만이 자연은 물론 사람조차 지배하려 들고 조금만 공을 이루어도 으시대고 자기 소유로 하고 도무지 물러설 줄을 모른다. 무엇이 문제일까.
반면, 큰 공을 이루고도 미련없이 물러난 위인이 수없이 많다. 체 게바라는 목숨건 혁명에 성공하여 세상을 다 얻다시피 하고도 가족조차 챙기지 않고 모든 것을 버리고 또다시 먼 가시밭길의 혁명에로 나섰다 비참하게 희생되었다.
김구선생은 온몸을 던져 독립운동에 앞장섰고 그토록 애태우든 독립을 이룬 후에는 어떤 부귀영화도 거부하고 또다시 일신의 안위마저 위태로운 험난한 통일 여정에 나섰다. 얼마든지 노후를 보장받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건만 모든 것을 물리치고 다른 민족적 과업을 수행하다 희생된 것이다.
무엇보다, 모든 자연만물은 상시적으로 공수신퇴를 실천하고 있다는 명백한 사실이다. 인간세처럼 조야하게 부(富)와 권력(權力)과 명예(名譽)를 세습하는 그 어떤 미물도 없으며 어떠한 경우에도 자기의 공이라고 자리에 연연하거나 특권을 요구하고 지배하거나 소유하려 들지 않는다. 자연에 자유의지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인간에 자유의지가 있다면 더 잘해야 하지 않겠는가.
선비는 다르다. 욕심은 더욱 정진해 진정한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둠을 밝히는 빛, 부패를 막는 소금이 되는 것이다. 스스로 게으름을 자책하며 혹시나 길을 잘못 들지 않았는지 늘 경계하는 이유이다. 결단은 충절과 신의의 상대를 방벌(放伐)할 때이다. 이때 선비의 변심은 무죄다.
품격은 역경에 처했을 때 드러난다. 지위가 높고 가진 것이 많을 때는 자못 품격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비바람이 불고 눈보라 몰아칠 때라야, 즉 세한연후(歲寒然後)라야 송백(松柏)이 늦게 시듦을 안다. 역경은 인품을 담금질하는 풀무요, 몸과 마음의 병을 고치는 양약(良藥)이다. 공자도 '불우하고 고난에 처했을 때 꿋꿋이 부드러운 자세를 잃지 않아야 참된 품격의 소유자'라고 했다.
조선 정조 시대다. 탕평책에도 불구하고 정치는 여전히 어지러웠다. 선비들이 자리를 탐했기 때문이다. 정조는 탄식한다. '난진이퇴(難進易退)가 아쉽다.' 벼슬길에 어렵게 나가고 선선히 물러난다는 뜻인데, 정조는 그것이 조정을 높이고 세교(世交)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헛된 명리를 붙들고 매달리는 풍조에 예의와 염치가 무너진다는 것이다. 맹자가 말한 행장진퇴(行藏進退)도 같은 말이다. 지식인에게는 관직에 나아감과 물러섬을 아는 자연스런 처신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공을 이루면 몸을 물러난다, 성공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는 이런 뜻을 가진 공수신퇴는 사마천의 사기의 여러 곳에서 나오는 명언으로 후세 사람들에게 많은 재미와 큰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사마천의 사기는 월나라 범려와 문종, 진나라 범수와 이사, 한나라 장량과 한신 등 역사적인 여러 인물들을 통해 이 도(道)를 잘 지켜 명철보신하면 몸과 이름을 함께 잘 보전하여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만 이 도(道)를 지키지 못하고 권력에 오래 머물다가는 이름과 몸을 다 해치는 오명(汚名)을 역사에 남긴다는 준엄한 교훈을 들려주고 있다.
공수신퇴(功遂身退)와 장경오훼(長頸烏喙)
한자 뜻 그대로 풀이하면 공수신퇴는 공을 이루면 몸이 물러난다는 뜻이고, 장경오훼는 목이 길고 입이 검게 튀어나왔다는 뜻이다.
좀더 보태어 설명하면 공수신퇴는 공을 이룬 곳에서 오래 머물다가는 화를 입고 패가망신할 수 있으니 빨리 물러나서 보신(保身)을 잘 해야 함을 강조하는 뜻이 담겨 있다. 장경오훼는 목이 길고 까마귀처럼 입이 검게 튀어 나온 사람은 어려움을 같이 하며 도모할 수는 있으나 성공 후에는 시기심이 많아 즐거움을 같이 누릴 수는 없는 인물이니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 들어 있다.
이 고사성어들은 사마천의 사기(史記) 월세가(越世家)에 나오는데 춘추오패(春秋五覇)라 불리우게 된다. 이 춘추오패의 마지막 주인공이 월왕 구천이고 범려와 문종은 여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명신(名臣)들이었다.
오월항쟁에서 월나라가 최종적으로 승리하자 범려는 공수신퇴의 이치에 따라 자신의 식솔들을 모두 데리고 야반도주하는 철저한 명철보신(明哲保身)의 길을 택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절친한 동료였던 문종에게 토사구팽(兎死狗烹)의 이치가 담긴 편지를 남긴다. '하늘의 새가 다하면 양궁(良弓)도 창고에 넣어 두고,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삶겨 죽고, 적국(敵國)이 망하면 모사(謀士)는 죽는 법이오. 게다가 월왕 구천의 상은 목이 길고 입은 까마귀처럼 검게 튀어나와(長頸烏喙) 이런 인물과는 어려움은 함께 할 수 있으나 즐거움은 함께 누릴 수는 없소. 그대는 어째서 떠나지 않는 것이오?'
그러나 문종은 범려의 충고에도 바로 떠날 결심을 못 하는데 결국 문종은 떠나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자살하고 만다. 한낱 시골의 촌부도 체득하고 있는 공수신퇴의 도입니다.
공자는 무엇을 받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할 것인가에 집중하라며 선난후획(先難後獲)의 길을 제시했다. 즉 공자는 지금의 자리에서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에 주목해야 한다는 본연의 역할을 성찰하라고 제안하고 있다.
공자의 말은 "여러분의 나라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여러분의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물으라"고 말한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연설과도 일맥상통한다.
부귀이교 자유기구(富貴而驕 自遺其咎)를 '돈 많고 지위 높다 교만하면 스스로 그 허물을 남길 뿐이다.'
▣ 금옥만당(金玉滿堂)이면 행복한 것인가?
노자(老子)의 도가(道家)사상에서 말하는 무위(無爲)가 '아무 것도 하는 것이 없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되는 세상만물의 이치를 어기면서까지 억지로 되게 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라 했다.
노자가 살았던 시대는 중국 경제발전사에서 청동기시대를 지나 철기시대에 막 들어서면서, 농업생산량이 증대되고 돈과 권력을 가진 지배계급과 그렇지 못한 피지배계급으로 나뉘던 때였다. 당시 지배계급은 기득권을 지키고 영토를 넓히려는 욕심에, 이웃 나라와 전쟁을 벌여 많은 백성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노자는 무위자연 사상을 통해 세상의 권력과 이익에 탐닉하는 것을 바로잡고자 했다. 결국 노자는 나라가 쇠락하자 왕실 도서관인 장서실(藏書實) 사관(史官)의 벼슬을 버리고 세상을 등져야만 했다.
우리가 종종 쓰는 고사성어 가운데 금옥만당(金玉滿堂)이라는 말이 있다. 금이나 옥이 집안에 가득하다는 뜻인데, 금이나 옥과 같이 귀한 보석으로 만든 단추 모양의 고리를 관에 장식한 높은 벼슬아치가 집안에 가득하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금옥만당이라는 말에는 집안에 금은보화가 가득한 부자가 되거나 높은 벼슬아치에 오른 자식이 집안에 한가득 있으면, 참으로 행복할 것이라는 보통 사람들의 염원을 담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같은 풀이는 다분히 공자의 유가(儒家)적인 이상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유가에서 군자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이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여겼다. 열심히 배우고 익혀 세상에 나아가 높은 벼슬아치가 되고 집안을 잘 건사해,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라 정치를 올바르게 이끄는 게 군자의 도리란 말이다.
그렇지만 금옥만당은 유가의 경전에 나오는 말이 아니라, 그와 상반되는 사상을 내세운 노자의 도덕경(道德經) 제9장에 나오는 글귀의 일부이다.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득 채우려는 것은 그만두는 것만 못하다. 칼을 두드려서 날카롭게 만들면 오래 가지 못한다. 금과 옥이 집안에 가득하다면 그것을 지킬 수 없다. 부귀하여 교만해지면 스스로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공을 이루었으면 그만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이치다."
持而盈之, 不如其已.
揣而銳之, 不可長保.
金玉萬堂, 莫之能守.
富貴而驕, 自遺其咎.
功遂身退, 天之道也.
노자는 재물을 가질 만큼 가지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만족할 줄 모르고 더욱 많이 가지려고 하는 것을 그만두라고 했다. 그릇 안에 무엇인가 가득 차 있다면, 거기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담을 수 없으니 이제는 더 이상 그릇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칼을 벼리기 위해 숫돌에 계속 갈아 더욱 날카롭게만 하려 한다면, 날이 다 닳아 결국에는 그 칼을 쓸 수 없게 된다. 이렇듯 재물도 필요한 것보다 지나치게 많이 가지려고 욕심을 부리면 오히려 탈이 날 수 있다는 것이다.
집안에 금이나 옥 같은 보물을 가득 채워 두고 있으면 집안에 도둑이 들어 훔쳐갈까 염려해 외출도 하지 못할 수 있다. 때로는 누가 집의 재물을 훔쳐갈까 싶어 걱정 끝에 병이 날 수도 있다. 집에 몰래 들어온 도둑에게 몸을 다칠 수도 있으니, 이때 금옥과 같은 보물은 오히려 사람에게 화를 불러오는 근원이란 말이다.
어느 날 거지 아버지와 아들이 길을 가는데, 어느 부잣집에 불이 크게 나 사람들이 아우성을 치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을 보게 됐다. 이때 거지 아버지가 아들에게 미소를 띤 얼굴로 말하기를 "얘야 우리는 집이 없으니, 저 사람들처럼 불이 나서 다칠 일도 없고 손해 볼 재산도 없으니 얼마나 행복하냐? 너는 저렇게 허둥댈 일도 없으니 좋은 아비를 둔 것에 감사해야 할 것"이라 했다고 한다.
누구나 한번쯤 들어 봤을 이 우스갯소리는 노자의 도가사상에 나타난 경제관을 비유한 이야기다. 여기에서 노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아무 재산도 없는 거지가 되라는 게 아니라, 거짓과 무리한 방법을 통해서 부자가 되느니 아예 가난한 채로 사는 게 오히려 행복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날 물질만능의 자본주의시대를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노자의 이러한 경제관은 가난을 희화적으로 말한 것일 뿐인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노자는 도덕경의 마무리 부분인 80장에서 이상적인 사회의 조건이 영토가 작은 나라에 적은 백성들이 사는 소국과민(小國寡民)이라 했다.
이런 나라에서 갑옷이나 무기와 같이 남들을 해치는 물건은 아예 만들지도 않고, 문명사회의 이로운 기구라고 할 수 있는 배와 수레 같은 탈것도 이용하지 않고, 평소에 먹는 음식을 그저 맛나게 먹을 줄 알고, 자신들이 지금 살고 있는 거처를 편안히 여기며 소박한 삶을 즐거워하면서 평생토록 멀리 옮겨 다니지 않고, 한 곳에서 늙어 죽을 수 있으면 그것이 바로 행복한 세상이라 했다.
이쯤 되면 노자의 이상사회는 원시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냐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이제 노자가 말하는 그런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문명화된 사회를 이루고 살고 있으니, 노자가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고 있냐며 귓등으로 흘려버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물질적인 풍요로움이나 경제적인 효율성에 집착하는 오늘날과 같은 물신주의 사회에서 재물이 사람들에게 많은 이로움과 편리함을 주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수준이 일정 정도를 벗어나면 어느 순간 그것이 거꾸로 해로운 독소로 변해 인간이 타고나는 착한 심성을 해치고 사회를 온통 어지럽게 하고 말 것이란 점을, 약 2500년 전에 살았던 노자가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일깨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공수신퇴(功遂身退)의 모범을 보인 범려(范蠡)
세 번 자리를 옮기고도 모두 정점에 오른 춘추시대 범려
세 번 자리를 옮기고 세 번 모두 정점에 오른 사람이 있다. 그는 모시던 임금을 성공시켰고, 옮겨간 나라에서 재상이 되었으며, 상인(商人)으로도 명성을 날렸다. 명재상과 장사의 신(神)이라는 이름을 동시에 가졌던 인물, 바로 춘추전국시대의 정치가 범려(范蠡)의 이야기다.
범려는 처음 월(越)나라에서 일했다. 숙적 오나라에 의해 멸망의 위기까지 내몰린 월나라에서 그는 임금인 구천(勾踐)을 도와 상황을 반전시킨다. 그는 부국강병을 위한 정책을 주도해 월나라를 강하게 만들었고, 갖은 계책을 써서 오나라의 국력을 소진시켰다. 기원전 473년 월나라가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월왕 구천이 제후의 맹주가 될 수 있었던 데엔 그의 공로가 절대적이었다.
그런데 대업을 이룬 직후 범려는 곧바로 사직했다. "신이 듣건대, 군주가 모욕을 받으면 신하는 죽어야 한다고 합니다. 지난날 대왕께서 치욕을 당하셨는데도 신이 죽지 못했던 것은 참고 기다려 월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제 오나라가 사라졌으니 신은 그때의 죄를 물어주시길 청하옵니다. 책임을 지고 관직에서 물러나겠습니다."
범려의 말을 들은 구천은 놀라서 만류했다. "과인이 오늘을 맞은 것은 오로지 경의 힘 덕분이오. 과인을 버리고 가긴 어딜 간다는 말이오?" 하지만 범려는 듣지 않았고, 그날 밤으로 짐을 꾸려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이 유래한 범려의 편지
범려는 떠나면서 동료 재상이었던 문종(文種)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남겼다. "토끼가 죽고 나면 사냥개는 삶아 먹히고, 적국이 사라지면 모략과 책략을 내던 신하는 설 자리가 없어집니다. 월나라 왕은 함께 고난을 견딜 수는 있어도 함께 즐거움을 누릴 수는 없는 인물입니다. 그대도 지금 떠나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참혹한 화를 겪게 될 것입니다(蜚鳥盡, 良弓藏; 狡兔死, 走狗烹. 越王為人長頸鳥喙, 可與共患難, 不可與共樂. 子何不去)."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고사성어가 여기서 유래한 것으로, 구천은 틀림없이 효용가치가 다한 문종을 제거하려 들 것이니 빨리 피하라는 경고였다.
무릇 신하가 지나치게 뛰어나면 그것이 자신의 목숨을 옥죄는 경우가 있다. 적국을 무너뜨리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신하의 걸출한 능력은 임금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꼭 필요하지만, 일단 목표를 이루고 난 뒤에는 부담이 된다. 그러한 지략과 능력을 갖추고 혹시라도 자신에게 반기를 들지 않을까 두려운 것이다.
더욱이 큰 공을 세운 신하의 명망과 영향력이 왕권에 장애가 되기 때문에 차제에 아예 제거해 버리는 것이다. 범려는 구천 역시 이처럼 행동하리라 예견한 것이고, 그래서 주저 없이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 것이다. 머뭇거리던 문종은 결국 구천으로부터 자결할 것을 명받았다.
그렇다면 월나라를 떠난 범려는 어디로 갔을까? 치이자피(鴟夷子皮)라는 이름으로 개명한 그는 제(齊)나라에 나타났다. 여기서 그는 큰 재산을 모았고 그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해 인심을 얻었다. 범려의 비범함을 알아챈 제나라 왕이 그를 재상으로 임명했지만 '고귀한 자리에 너무 오래 머무는 것은 좋지 않다'며 금방 물러난다. 막대한 재산까지 모두 주위에 나눠줘 버린 후 범려는 또 다시 잠적했다.
무역중개·매점매석으로 부 일궈
이후 범려가 마지막으로 등장한 것은 도(陶)라는 고을이다. 도주공(陶朱公)이라는 새 이름을 내세운 그는 연로한 나이에도 무역중개상을 하며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다. 농업과 축산업에서도 큰 성과를 거두었다. 저장기술을 발전시켜, 물건이 많을 때 사 쌓아두었다가 희소해지면 내다 팔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이윤을 10%만 남긴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켜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이상 범려의 행적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공수신퇴(功遂身退; 공을 세우고 나면 물러나야 한다)의 교훈이다. 흔히 우리는 눈앞의 이해관계에 집착한다. 자신이 이룬 성과에 미련이 남아서, 더 이루고 싶은 일이 있어서, 부귀와 명예를 누리고 싶어서 머뭇거리고 얽매인다.
그러다 보면 상황을 오판하고 잘못된 결정을 내리게 된다. 나아가고 물러나는 것이 깔끔하지 못한 것도 그래서다. 미련을 두지 않고 과감히 버릴 줄 아는 범려의 자세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 功(공 공)은 ❶형성문자로 糿(공)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힘 력(力; 팔의 모양, 힘써 일을 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뜻으로 쓰인 工(공; 도구, 일, 일을 하다)으로 이루어졌다. 전(轉)하여 훌륭하게 일을 하다, 훌륭한 일, 공로(功勞), 공력(功力)으로도 쓰인다. ❷회의문자로 功자는 '공로'나 '업적', '사업'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功자는 工(장인 공)자와 力(힘 력)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工자는 땅을 다지는 도구인 ‘달구’를 그린 것이다. 그러니 功자는 땅을 다지는 도구를 들고 힘을 쓰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달구는 땅을 단단하게 다져 성벽이나 둑을 쌓던 도구였다. 전쟁이나 치수를 중시했던 시대에는 성과 둑을 쌓는 일 모두 나랏일과 관련된 사업이었다. 그래서 功자는 나랏일에 힘써 준다는 의미에서 '공로'나 '업적', '사업'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功(공)은 (1)공로(功勞) (2)공력(功力) (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공, 공로(功勞), 공적(功績) ②일, 사업(事業) ③보람, 업적(業績), 성적(成績) ④상복(尙服: 궁중의 의복에 대한 일을 맡아보던 종오품 벼슬) ⑤경대부(卿大夫)의 옷 ⑥공부(工夫) ⑦공(公), 공의(公義) ⑧공치사(功致辭)하다 ⑨튼튼하다, 정교(精巧)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공 훈(勛), 공 훈(勳),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지날 과(過), 허물 죄(罪)이다. 용례로는 어떤 목적을 이루는 데에 힘쓴 노력이나 수고를 공로(功勞)라 하고, 쌓은 공로를 공적(功績), 사업이나 나라를 위해서 두드러지게 세운 공을 공훈(功勳), 나라에 공로가 있는 신하를 공신(功臣), 공을 세워 이름을 떨침을 공명(功名), 일의 성적을 공과(功課), 뜻한 것이 이루어짐을 성공(成功), 나라를 위하여 드러나게 세운 공로를 훈공(勳功), 전쟁에서 세운 공적을 군공(軍功), 죄 되는 일을 거드는 행위를 가공(加功), 피륙을 짜내기까지의 모든 수공의 일을 여공(女功), 여러 해 동안의 공로를 연공(年功), 세상이 모르는 숨은 공덕을 음공(陰功), 공로가 있음을 유공(有功), 공로와 허물이 반반이라는 뜻으로 공도 있고 잘못도 있음을 이르는 말을 공과상반(功過相半), 공을 이루었으면 몸은 후퇴한다는 뜻으로 성공을 이루고 그 공을 자랑하지 않는다는 말을 공성신퇴(功成身退), 공을 세워 이름을 떨치고 벼슬에서 물러난다는 말을 공명신퇴(功名身退), 훌륭한 공업을 이룩하고 나서 명성을 크게 떨친다는 말을 공성명수(功成名遂), 쌓는 공도 한 삼태기로 이지러진다는 뜻으로 거의 성취한 일을 중지함을 이르는 말을 공휴일궤(功虧一簣), 반딧불과 눈빛으로 이룬 공이라는 뜻으로 가난을 이겨내며 반딧불과 눈빛으로 글을 읽어가며 고생 속에서 공부하여 이룬 공을 일컫는 말을 형설지공(螢雪之功), 엉뚱한 제삼자가 힘들이지 않고 이득 보는 것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전부지공(田夫之功), 공이 있고 없음이나 크고 작음을 따져 거기에 알맞은 상을 준다는 말을 논공행상(論功行賞), 조개와 황새가 서로 싸우는 판에 어부가 두 놈을 쉽게 잡아서 이를 보았다는 뜻으로 두 사람이 다툼질한 결과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 이를 얻게 됨을 빗대어 하는 말을 어인지공(漁人之功), 안에서 돕는 공이란 뜻으로 아내가 집안 일을 잘 다스려 남편을 돕는 일을 말함을 내조지공(內助之功), 헛되이 수고만 하고 공을 들인 보람이 없다는 말을 도로무공(徒勞無功), 성공한 사람은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이르는 말을 성공자퇴(成功者退) 등에 쓰인다.
▶️ 遂(드디어 수/따를 수)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책받침(辶=辵; 쉬엄쉬엄 가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수; 더듬어 찾아 간다)로 이루어졌다. 길을 어디까지나 가다의 뜻이 전(轉)하여 이룩하다의 뜻이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遂자는 '드디어'나 '마침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遂자는 辶(쉬엄쉬엄 갈 착)자와 㒸(마침내 수)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㒸자는 豕(돼지 시)자에 八(여덟 팔)자를 더한 것으로 '드디어'나 '마침내'라는 뜻이 있다. 그래서 본래 '드디어'라는 뜻은 㒸자가 먼저 쓰였었다. 갑골문에 나온 㒸자를 보면 돼지머리 위로 八자가 이미지그려져 있었는데, 이것은 돼지가 풀숲을 가르며 달아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금문에서는 여기에 辶자가 더해지면서 돼지가 도망간다는 뜻을 더욱 강조하게 되었다. 遂자는 돼지가 마침내 탈출에 성공했다는 의미에서 '드디어'나 '마침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遂(수)는 한문투로 쓰이어 드디어의 뜻을 나타내는 말로 ①드디어, 마침내 ②두루, 널리 ③도랑(매우 좁고 작은 개울), 수로(水路) ④이루다 ⑤생장(生長)하다 ⑥끝나다 ⑦가다, 떠나가다 ⑧나아가다 ⑨답습(踏襲)하다 ⑩오래되다 ⑪멀다, 아득하다 ⑫망설이다 ⑬따르다, 순응(順應)하다 ⑭전횡(專橫)하다, 마음대로 하다 ⑮오로지하다 ⑯천거(薦擧)하다, 기용(起用)하다 ⑰편안(便安)하다 ⑱떨어지다, 추락(墜落)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계획한 대로 해냄을 수행(遂行), 이미 다 이루어진 일을 수사(遂事), 어떤 일을 성취함을 수성(遂成), 뜻을 이룸을 수의(遂意), 처음의 뜻을 이룸을 수초(遂初), 목적한 바를 이루지 못함을 미수(未遂), 목적을 완전히 달성함을 완수(完遂), 일을 이미 다 마침을 기수(旣遂),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일을 성취함을 곡수(曲遂), 어떤 일을 끝까지 다 이루어 냄을 성수(成遂), 모수가 스스로 천거했다는 뜻으로 자기가 자기를 추천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모수자천(毛遂自薦), 몸의 좌우 어느 한쪽을 마음대로 잘 쓰지 못함 또는 그런 사람을 이르는 말을 반신불수(半身不遂), 허물을 어물어물 숨기며 조금도 뉘우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문과수비(文過遂非), 사람을 죽이기를 꾀하다가 이루지 못한 행위를 이르는 말을 모살미수(謀殺未遂), 훌륭한 공업을 이룩하고 나서 명성을 크게 떨침을 이르는 말을 공성명수(功成名遂), 마음은 간절해도 뜻대로 되지 아니한다는 말을 유의막수(有意莫遂) 등에 쓰인다.
▶️ 身(몸 신, 나라 이름 건)은 ❶상형문자이나 형성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아기를 가진 여자의 모습을 본뜬 글자로 몸을 뜻한다. 형성문자로 보면 人(인)과 申(신)의 합자(合字)인데 人(인)은 뜻을 나타내며 부수가 되고 申(신)이 발음을 담당하는 글자로 본 것이다. 부수(部首)로서는 몸에 관계가 있는 뜻을 나타낸다. ❷상형문자로 身자는 '몸'이나 '신체'를 뜻하는 글자이다. 身자의 갑골문을 보면 배가 볼록한 임신한 여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身자의 본래 의미는 '임신하다'였다. 身자에 아직도 '(아이를)배다'라는 뜻이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렇게 임신으로 배가 부른 여자를 그린 身자는 후에 '몸의 상태'나 '몸'이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아이를 가진 여자는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 신경을 쓰게 된다는 의미가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身자는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관련된 글자는 없다. 그래서 身(신, 건)은 ①몸, 신체 ②줄기,주된 부분 ③나, 1인칭 대명사 ④자기, 자신 ⑤출신, 신분 ⑥몸소, 친히 ⑦나이 ⑧아이를 배다 ⑨체험하다 그리고 ⓐ나라의 이름(건) ⓑ건독(身毒; 인도의 옛이름)(건)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몸 기(己), 물건 물(物), 고기 육(肉),스스로 자(自), 몸 궁(躬), 몸 구(軀),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마음 심(心)이다. 용례로는 개인의 사회적인 지위 또는 계급을 신분(身分), 일신 상에 관한 일을 신상(身上), 일신 상의 처지와 형편을 신세(身世), 몸과 목숨을 신명(身命), 몸에 생긴 병을 신병(身病), 사람의 얼굴에 나타난 건강 상태의 빛을 신수(身手), 몸과 몸의 주위를 신변(身邊), 사람의 키를 신장(身長), 사람의 몸을 신체(身體), 제 몸으로 딴 말에 붙어서 딴 어떤 것도 아니고 그 스스로임을 강조할 때 쓰는 말을 자신(自身), 어떠한 행위나 현상에 상응하는 것이거나 그의 대가임을 나타내는 말을 대신(代身), 무슨 지방이나 학교나 직업 등으로부터 나온 신분을 출신(出身), 죽은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을 시신(屍身), 신명을 바쳐 일에 진력함을 헌신(獻身), 마음과 몸을 심신(心身),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몸가짐이나 행동을 처신(處身), 악을 물리치고 선을 북돋아서 마음과 행실을 바르게 닦아 수양함을 수신(修身), 몸을 움직임을 운신(運身), 몸을 불사르는 것을 분신(焚身), 모양을 바꾼 몸 또는 몸의 모양을 바꿈을 변신(變身), 사회에 나아가서 자기의 기반을 확립하여 출세함을 입신(立身), 온몸으로 열정을 쏟거나 정신을 집중하는 상태 또는 그때의 온몸을 혼신(渾身), 체면이나 명망을 망침을 만신(亡身), 집이 가난하여 종을 두지 못하고 몸소 종의 일까지 함을 신겸노복(身兼奴僕), 홀로 있는 몸이 아니고 세 식구라는 신겸처자(身兼妻子), 몸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신외무물(身外無物),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의 몸 전체를 신체발부(身體髮膚), 남에게 맡기지 아니하고 몸소 맡아함을 신친당지(身親當之), 몸과 태어난 땅은 하나라는 신토불이(身土不二) 등에 쓰인다.
▶️ 退(물러날 퇴)는 ❶회의문자로 저무는 해(艮; 日+뒤져올치(夂; 머뭇거림, 뒤져 옴)部)가 천천히(책받침(辶=辵; 쉬엄쉬엄 가다)部) 서쪽으로 물러난다는 뜻이 합(合)하여 물러나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退자는 '물러나다'나 '물리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退자는 辶(쉬엄쉬엄 갈 착)자와 艮(어긋날 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艮자는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사람을 그린 것이다. 그런데 退자의 금문을 보면 辶자와 日(해 일)자, 夂(뒤쳐서 올 치)자가 결합한 형태였다. 여기서 日자는 '시간'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아래로는 발을 서로 엇갈리게 그려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간다는 뜻을 표현했었다. 그래서 금문에서의 退자는 시간이 다 되어 되돌아간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해서에서는 글자가 바뀌면서 본래의 의미를 유추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退(퇴)는 (1)물림간 (2)툇마루 (3)툇간(退間) (4)물리거나 물리침, 등의 뜻으로 ①물러나다 ②물리치다 ③바래다, 변하다 ④겸양(謙讓)하다, 사양(辭讓)하다 ⑤떨어뜨리다 ⑥쇠하다 ⑦움츠리다 ⑧줄어들다 ⑨닿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물리칠 각(却),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갈 왕(往)이다. 용례로는 공공의 지위나 사회적 지위에서 물러남을 퇴진(退陣), 현직에서 물러남을 퇴직(退職), 장내나 무대 등에서 물러남 또는 경기 중 반칙 등으로 인하여 물러남을 퇴장(退場), 물러나서 나감을 퇴출(退出), 직장에서 근무를 마치고 물러 나옴을 퇴근(退勤), 관직에서 물러남을 퇴임(退任), 싸움터에서 군사를 물림을 퇴군(退軍), 뒤로 물러감으로 재지나 힘이 전만 못하게 됨을 퇴보(退步), 물리쳐서 아주 없애버림을 퇴치(退治), 빛이 바람으로 무엇이 낡거나 그 존재가 희미해지거나 볼품없이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퇴색(退色), 진보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 감을 퇴화(退化), 학생이 졸업 전에 다니던 학교를 그만 둠 또는 그만두게 함을 퇴학(退學), 후퇴할 길을 퇴로(退路), 현역으로 부터 물러남을 퇴역(退役), 입원했던 환자가 병원에서 물러 나옴을 퇴원(退院), 패하여 뒤로 물러 나감을 퇴각(退却), 사원이 퇴근함을 퇴사(退社), 물러나서 휴식함을 퇴식(退息), 어떤 일에서 스스로 물러감을 자퇴(自退), 일정한 일을 그만두고 물러섬 또는 작별을 고하고 물러감을 사퇴(辭退), 뒤로 물러남을 후퇴(後退), 나아감과 물러남을 진퇴(進退), 쇠하여 점차로 물러남을 쇠퇴(衰退), 직임에서 물러나거나 세속의 일에서 손을 떼고 한가히 삶을 은퇴(隱退), 관계를 끊고 물러남으로 일단 가입한 정당이나 단체 등에서 이탈함을 탈퇴(脫退), 줄어서 쇠퇴함을 감퇴(減退), 적군을 쳐서 물리침을 격퇴(擊退), 싸움에 패하여 물러남을 패퇴(敗退), 조금도 꺼리지 아니하고 용기 있게 물러 나감을 용퇴(勇退), 학업 따위를 끝내지 못하고 중도에서 그만둠을 중퇴(中退), 정한 시간 이전에 물러감을 조퇴(早退), 앞으로도 뒤로도 나아가거나 물러서지 못하다라는 뜻으로 궁지에 빠진 상태를 이르는 말을 진퇴유곡(進退維谷), 삼국 통일의 원동력이 된 화랑의 세속오계의 하나로 싸움에 임하여 물러섬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임전무퇴(臨戰無退), 공을 이루었으면 몸은 후퇴한다는 뜻으로 성공을 이루고 그 공을 자랑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공성신퇴(功成身退), 성공한 사람은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이르는 말을 성공자퇴(成功者退), 한 번 나아감과 한 번 물러섬 또는 좋아졌다 나빠졌다 함을 이르는 말을 일진일퇴(一進一退), 쾌락이 오래 지속되어 도중에 그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쾌락불퇴(快樂不退),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고 뒤로 물러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유진무퇴(有進無退), 결심이 굳어 흔들리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일념불퇴(一念不退), 앞으로 한 치 나아가고 뒤로 한 자 물러선다는 뜻으로 얻은 것은 적고 잃은 것만 많음을 이르는 말을 촌진척퇴(寸進尺退), 나아간 것은 적고 물러선 것은 많다는 뜻으로 소득은 적고 손실은 많음을 이르는 말을 진촌퇴척(進寸退尺), 청렴과 절개와 의리와 사양함과 물러감은 늘 지켜야 함을 이르는 말을 절의염퇴(節義廉退), 군중에서 북을 치면 앞으로 나아가고 징을 치면 뒤로 물러남이라는 뜻으로 초보적인 군사 훈련을 일컫는 말을 고진금퇴(鼓進金退), 나란히 나아가고 나란히 물러선다는 뜻으로 정견이나 절조가 없이 다만 남의 의견을 추종함을 이르는 말을 여진여퇴(旅進旅退) 등에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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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공수신퇴
잘 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잘 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