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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지구에 종말이 오더라도
5월 17일.
불국사에 다녀왔습니다.
원래 계획했던 삼일 간의
취재 여행이 취소되는 바람에
하루만에 다녀올 수 있는
경주를 들러보기로 했습니다.
나로서는 목이 빠져라
고대하던 기회였습니다.
벌써 부산에 내려온 지
이십여 일이 지났건만
양 선생님과 마주앉아 말씀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좀체
가지기 어려웠던 까 닭입니다.
또 누가 예고없이 밀어닥쳐
발목을 붙들지 몰라
이른 아침인데도 출발하기
직전까지 나는 마음이 바빴습니다.
다행히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부산을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오랜만에 마주한 산과 들은
보름 전쯤보다
훨씬 더 푸르렀습니다.
양 선생님은 차 안에서도
얼려온 생수통을
늘 손에 쥐고 계셨습니다.
아직 5월 중순. 무덥지 않는
쾌청한 봄날인데도
한여름 뙤약볕 아래를 거니는
사람 같은 표정이었습니다.
'강 기자! 이해하세요.
나는 맨발이 좋아요.''
신고 온 양말을 벗으며
양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쌀쌀한 겨울 날씨에도 맨발로
다니길 좋아한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추운 날씨에도 맨발로
다니는 걸 보고 어떤 보살님이,
그림을 보면 관세음보살님도
연꽃 위에 맨발로 서 계시던데
관세음보살님의 현신이라
그런가 봐요' 하시는 거예요.
저는 몰라요 그냥
맨발이 시원하고 편해요."
불국사는 어수선했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하여
경내에서 열린 음악회가
있을 모양이었습니다.
석가탄신일을
일주일쯤 앞둔 그 날은
무대를 설치하고 여기저기
조명을 장치하느라
경내는 사찰이 아니라
야외음악당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행사 준비 관계로 군데군데
통로가 봉쇄되기도 했습니다.
흔히
구경하는 대웅전은 피하고,
왼쪽으로 난 길을 택해
천천히 걸었습니다.
입으로 시원한 지하수를
내뿜는 돌거북이를 지나자,
멋스럽게 가지를 늘어뜨린
소나무가 양쪽으로 정렬해 있고
그 사이사이 대나무가 죽죽
뻗어 있는 오솔길이 나타났습니다.
불국사의 스님들이 애써
가꾼 길임을 알 수 있였습니다.
그 길의 끝을 사람이 통과하기
좋을 만한 사립문이 턱 막고 있었습니다.
하얀 색 페인트칠을 한 나무판자에
'관광객 출입 금지' 라고
큼직하게 써붙여 놓은 글씨가
발걸음을 우뚝 멈춰서게 했습니다.
"저 문 안쪽에 스님들이
공부하는 참선 도량이 있어요."
그러잡아도 그 너머가 무엇하는
곳일까 궁금하던 차였는데
양 선생님의 그 말씀이
호기심을 더 자극했습니다.
우리는 의기 투합하여 문을
살짝 밀치고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그 순간,
나는 저으기 놀랐습니다.
그 작은 사립문 너머에
그토록 넓은 세계가,
관광객들로 시끌벅적한
이쪽과는 전혀 딴판으로
그토록 평온한 세계가 펼쳐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입니다.
나는 내 눈앞에 아주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암자를 그린
거대한 그림을 대하고 있
는 듯한 착각을 했습니다.
저 멀리로 스님들이 좌선에 들어
정진하는 선방으로 생각되는
한옥 건물이 몇 채 보였고,
잘 닦인 산책로와
일군 이의 성실한 품이 엿보이는
밭들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아욱, 상치, 배추들이 덜 자란 잎을
부끄러운 듯 내보이고 있는 모습이
어느 넉넉해 보이는
농촌 풍경 못지 않았습니다.
그런 풍경들 사이로
스님들 몇 분이 담소를 나누며
잰 걸음으로
오가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길가 풀숲에 자란 엉컴퀴,
붓꽃 들을 감상하며 걷다가
우리는 동시에 멈취섰습니다.
오십 미터쯤 앞에서 한 스님이
왼손에 주장자를 떡 하니 짚고
나무 그늘에 앉아 우리쪽을
바라보고 있었 기 때문입니다.
순간적으로 '관광객 출입 금지' 라고
써붙였던 푯말이 눈앞을 획지나갔습니다.
몸을 모로 틀고
어정쩡하게 서 있는 데
김 회장님이 갑자기
성큼성큼 앞으로 나섰습니다.
''스님! 저희들 그리로 가면 들고
계신 주장자로 내치실 건가요?"
김 회장님이 소리치자 스님은
오히려 가까이
오라고 손짓하셨습니다.
다행이었습니다.
스님은 이 무단침입자들을
혼내실 생각이 전혀 없어보였습니다.
양 선생님께서 스님 앞을
지나치려 하자
스님이 말을 건네셨습니다.
''보살님은 어디서 왔수?"
"서울에서 왔습니다."
"잘 내려왔어요."
연세가 많으셔서인지 스님의
발음은 다소 어눌했습니다.
"네?" "잘 왔다구.
좀 더 두고 보면 알게 될 게야"
무언가 예사로운
말씀이 아니라고 생각한
우리 모두는 스님 옆에 자리를
잡고 돌부리에 걸터앉았습니다.
''스님! 무슨 뜻입니까?"
김 회장님이 여쭈었습니다.
''이제 두고 보면 알아. 잘 내려왔어.
서울은 곧 큰 변이 생겨."
스님의 말씀은 이러했습니다.
가까운 음력 모월 모일,
서울에 강도 칠도의 지진이 닥쳐
대 참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건물은 모래성처럼
무너져내릴 것이고,
그 와중에 엄청난 인명 피해도
피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잘 내려왔다는 것입니다.
스님은 대 참사의 그 날까지 아랫지방에
있으리는 당부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아마도 노스님은 일명
'정감록파' 라고 불리는
신비주의 경향의 승려들 중
한 분인 모양이었습니다.
"서울에 강도 칠 도의 지진이
오면 여기라고 무사하지를 않죠
강도 칠 도의 지진이면
어머어마한 건데요."
김 회장님이 전혀 믿을 수
없다는 듯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스님은 강도 칠 도가 어느 정도의 위력을
보이는지 감이나 잡고 말씀하시는 것인지
''여긴 괜찮아.
부산쯤이면 더 안전하겠지.
두고 보면 알지."
스님은 자신있게 말씀하셨습니다.
점심 공양 시간이 다 되어
우리는 천천히 갔던 길을
되돌아 나왔습니다.
나란히 걸으며 양 선생님께서
농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강 기자!
서울 올라가지 말아야 되겠어요.
큰 변이 생긴다는 그 날까지 말이에요.''
''저는 죽는 것 겁나지 않아요.''
''강 기자도
선근 공덕이 있는 모양이에요.
그런 말은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양 선생님은 죽음에 대해서
말씀하시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의 몸뚱아리는
흙 기운 물 기운, 불 기운,
바람 기운으로 만들어졌다고 그래요.
그렇게 만들어진
몸은 사실 껍데기일 뿐이고
그것이 살아 움직이도록 하는
생명력은 정신 마음이에요
육신은 죽고 나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끝이 나지만
정신의 세계는 영원합니다.
반드시 내세가 있고
그래서 전생도 있는 겁니다.
사람들은 전생을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에 믿지 못해요.
불교도들도
윤회의 법칙을 이해할 뿐이지,
절실하게 느껴 보지 못했기 때문에
확신하는 사람은 드물 겁니다.
정신의 세계가 영원함을 믿는 사람은
죽음이라는게 전혀두럽지 않아요.
육신이라는 눈은 옷을 벗고 새 옷을
갈아입는 것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나이가 들면 모두
병들고 죽게 되어 있 습니다.
무릇 생명 있는 모든 것은 그렇지요.
수천 년을 사는 것은 세상에 없어요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시고
인도 전역을 돌며
가르침을 펴실 때였지요.
삼대 독자를 둔 여인이 있었는데,
어느 날 아들이 죽어버렸어요.
여인은 부처님이라면 죽은 아들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부처님을 찾아가 말했지요.
부처님! 제 아들을 살려주십시오.
부처님이라면 할 수
있을 것 이라고 믿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여인아! 내가
네 아들을 살려줄 테니
지금부터 내가 이르는
대로 할 수 있겠느냐?'
'제 아들만 살려주신다면
무슨 일인들 못 하겠습니까'
집집마다 돌면서
겨자씨를 한 줌 얻어오되.
물어보아서 한 번도 사람이
죽은 적이 없는
집에서 얻어와야 하느니라'
여인은 그 까짓 것 하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쉬울 것 같았거든요.
그 날부터 여인은 마을을 돌며
겨자씨를 얻으러 다녔습니다
여인의 안타까운 사정을 듣고
겨자씨을 주겠다는 집은 많았습니다.
그러나 몇 날 몇 일을 헤매어도
사람이 한 번도
죽지 않았다는 집은 없었어요.
어느 날 겨자씨를 얻지 못하고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오다가
여인은 문득 깨달았습니다.
생명 있는 것은
언젠가는 모두 죽게 되는구나.
죽음이란 나 혼자만이
겪는 고통이 아니구나.
살아가는 과정의 하나로
자연스럽게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구나.
여인은 그 사실을 깨닫고는
크게 환희심이 일어나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고 해요.
죽는다는 것은 뭐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예요.
여러 해 살이 화초가 겨울이 되면
모든 생명의 힘을 뿌리에 저장해 두었다가
봄이면 다시 싹을 틔워올리는 것처럼,
사람은 죽음을 통해 결국
다시 태어나는 겁니다.
죽음을 완전한 끝이라고
생각하면 두렵기도 하겠지요.
정다운 사람들과 헤어지는 일도,
살아가는 일에 대한 미련도...
정신 세계의 영원함을 알지 못하면
죽음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강 기자가 말한,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말은
쉬운 말이 아니예요.
그거, 대단한 말이에요."
다보탑과 석가탑은 여전히
관광객들의 좋은, 기념 사진의
들러리가 되어주고 있었습니다.
갖가지 나무에
초록물이 한창 오르는 봄날,
바람까지 상쾌한 날이어서인지
큼직한 가방을 매고 카메라 앵글을
들이델 만한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예술가들이 많았습니다.
양 선생님은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강 기자는 아까 그 스님의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해요?'"
"너무... 황당하던데요.''
●●●
''황당하다고
느끼는 정도면 다행이지만
그런 말 한 마디가 사람의 앞날을
좌우하는 경우가 있으니 문제지요.
제가 아는 스님인데
경봉 스님께 이런 말씀을 들였대요
허, 그 놈. 전생에는
공부를 많이 했던 놈인데
현세에는 불사를 많이 하겠구만.
실제로 당신은 공부는 잘 안 됐지만
불사는 기가 막히게 잘 해냈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 분
말씀이 맞아떨어졌대요
그런데 사실은 경봉 스님의
말씀대로 되었다기보다는
자기 스스로 그 말씀에 맞춰 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더 정확해요.
경봉 스님 같은 분은 한 시대의
선지식이었던 분이니까
그 분의 말씀을
듣는 순간 믿었을 겁니다.
그러니 그 말씀을 듣고 난 후에는
공부를 하려고 앉아 있어도
마음에서 분별이 나는 겁니다
내가 현세에는
불사를 많이 한다고 했는데
이러고 앉아만 있어서는 안 되지,
그러면서 자기도 모르게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는 거예요.
다른 사람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애기하는 것은
그래서 엄청난
과보를 짓는 일입니다.
현재 내로라 하는 사람들이
앞으로의
정치, 경제, 사회, 종교가 어떻고,
지구의 미래가
어떻고 하는 이야기를 하는데
참으로 심각하게
고려해야 되는 일입니다.
당장은 웃기는 소리라고
흘려보낸다 하더라도
어느 날, 아주 작게라도
그와 일치되는 현상이 나타나면
혹시나 하는 생각을 한다는 거예요.
최근에 그런 이야기들이 난무하지요.
안다 하는 사람들이
지구의 종말,
인류의 파멸을 말합니다.
그것이 인류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나는 '내일 지구에 종말이 오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라는
스피노자의 말을 사랑합니다.
내일 당장 이 몸이 부서지더라도
오늘 하루를 참되게
사는 일이 중요합니다.
죽음의 시간이 다가오는 것만을
두려워하며 지내는 것은
그에게 남은 단 하루의 시간조차도
헛되이 낭비하는 것이 됩니다
사람을 행복하게,
생명력 넘치게 하는 것은 희망입니다.
살아 있을 날이
한 달밖에 남지 않은 사람에게
당신의 수명은 한 달이
고작이라고 말해줌으로써
그 사람은 진짜
한 달밖에 살지 못하고 맡니다.
자기 스스로 최면을 거는 것이지요.
지구의 종말에 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망 선고를 받은 그 사람은
한 달간을 얼마나 끔찍한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살겠습니까.
하루를 살더라도 꿈을 갖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지는 못할망정
순간순간을 절망 속에서
살도록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수행자라면 더욱 그렇지요.
수행자의 의무가 무엇입니까.
중생들을 고통에서 건지는 것 아닙니까
부처님은 화와 복을
말하지 말라고 이르셨어요.
좋고 나쁘고 곱고 밉고 이런 것들로
분별하게 하지 말라고 가르치셨어요.
그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서 있는 그 자리를 불행하게
느끼도록 하는 원인이거든요.
그런 점에서 저는 죄인입니다.
저의 특이한 삶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분별을 일으립니까.
저에게 머리 조아리고
절하는 분들에게
저는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엎드린 채로 기도를 하지요.
''부처님! 저는 저들에게
분별을 불러일으키는 죄인입니다.
저들에게 절을 받을
아무런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우리는 어느덧
경내를 벗어나고 있었습니다. . .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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