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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어린시절에는 고무줄 놀이와 숨바꼭질이 있었다. 비석치기는 우리 같은 여자애들
에게는 별로 인기가 없었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는 고소한 김 냄새가 나기 전까지 놀
수 있다는 허락을 받은 아이들만의 것이었다. 알이 굵은 설탕가루를 잔뜩 입힌 눈깔사탕을
입 안 가득 물고, 항상은 아까워서 녹여먹다가 용돈을 잘 받은 날에는 눈이 저절로 감기도록
세게 깨물어서 다른 맛을 느꼈다.
아이들은 학교가 일찍 파하는 수요일에 부모님께 허락을 받아서 마을 뒷동산에 모였다. 오
후 일찍부터 하나 둘씩 드러난 아이들은 드문드문 노을이 끼는 초저녁까지 놀이를 정해서
뛰어 놀았다. 가끔은 마을 어른들이 그 곳을 지나가면서 <집에 돌아가야지.>라고 야단 비슷
한 것을 말했지만, 나는 그것이 우리들의 재미있어하는 뚜렷한 웃음소리들이 마을 위를 떠
다니는 것에 흐믓해하고 있는 말투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떤, 수요일에 나는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달려갔다. 노란 벽지가 차례
없이 붙여진 안방 안에는 엄마도 아빠도 없었다. 나는 매고 있던 책가방을 방바닥에 던져 놓
고 뒷동산으로 뛰어 올라갔다. 건강한 초록 잎을 수북히 가진 나이 많은 느티나무 아래에는
어쩐 일인지 아이들이 별로 없었다.
순동이, 혜언이, 나리. 이렇게 세 명이 다 였다. 그 애들은 풀이 죽어서 느늘 아래에 조그맣
게 모여 앉아 있었다. 아직 하늘은 맑고 파랬다.
-무슨 일이야?
나는 모두에게 물었다. 예쁘게 생긴 노란 옷의 나리가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보았다.
-길주네 집 가는 길에 무슨 놀이기구가 생겼대. 다른 애들은 다 그거 구경하러 가버렸어.
길주가 이제 여기에서 안 놀거랬어.
나는 울먹이는 나리 때문에 고민하는 척을 했다. 하지만 머릿속은 새로운 놀이기구 생각으
로 가득했다. 나는 근사한 해결방법이 생각난 것처럼 찡그렸던 인상을 풀고 <아!>하는 소리
를 냈다. 아이들의 동그란 눈 여섯 개가 나를 반질반질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너희들 그 놀이기구 어떻게 생겼는지 봤어?
-아니.
-그럼 여기 있어봐.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구 와서 가르쳐 줄께.
그러자, 세 명의 아이들은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너도 그거 타고 싶어서 그러는거지?
눈치가 빠른 나리가 나를 노려보며 톡 쏘아 물었다.
-아냐, 아냐. 다른 애들 데리러 가는거야.
-거짓말!
어떤 규칙이 있고, 규칙에 따른 적당한 벌칙이 있고, 뒤집어지게 웃을 수 있는 반전이 있어
서 우리들의 놀이는 매일매일이 즐거웠다. 하지만, 나는 새로운 것에 호기심이 생길만한 아
홉살의 나이였다. 항상 고무줄을 뛰어놀고, 엄지 손톱만한 돌멩이를 가지고 땅을 따먹을 수
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눈물이 몽글몽글 움직이는 나리의 두 눈을 무시하고 동산을 걸어
내려갔다. 5분 동안 언덕을 내려와서 뒤를 돌아보면,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 다음부터는 두 볼 안에 바람이 빵빵하게 담기도록 언덕을 마저 뛰어 내려왔다. 차가운 강
물에 담긴 돌덩이들과 물장구를 치는 소금쟁이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나무 냄새가 묻은 정
자에 할머니들이 모여 앉아서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나를 지켜본다. 나는 미쳐 인사할 생각
도 하지 못하고 길주네 집을 향해 여전히 뛰고 있었다. 점점 낮고 파란 지붕이 보였다. 이가
조금씩 빠진 시멘트 벽돌 담이 그 지붕을 지키고 있고, 나팔꽃의 얇은 줄기 여러 개가 딱딱
한 돌담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다. 마당이 작은 그 곳은 길주의 집이었다. 나는 살금살금 모
퉁이로 다가갔다. 아이들의 익숙한 웃음소리가 마술처럼 작아졌다 커졌다 하고 있었다. 나
는 잔뜩 기대를 하고서 모퉁이 안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가슴에서는 북소리가 났다.
나는 별안간 <우와!>하는 감탄어를 힘차게 내뱉은 후, 두 눈동자를 사로잡혔다. 지저분하
지만 단단해 보이는 동그란 고무 원판 위에서 낯익은 아이들이 하늘에 닿았다 고무에 닿았
다 하고 있었다. 그런 동화책 같은 모습을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뛰어노는 아
이들과 더불어 신이 나서 그 곳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서둘러 고무 원판 위로 올라가려는데
녹슨 철망이 내 앞을 가로막는다. 그 위에 걸린 나무판자에는 <소요시간 5분. 소인 5원, 대
인 10원>이라는 글자가 성의없게 쓰여져 있었다. 나는 우물쭈물 서서 아이들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주머니에는 1원이 전부였으니까.
갑자기 기분 좋은 바람이 동쪽에서 불어왔고, 주머니를 뒤지려고 내려온 내 시선에 걸리는
그 무엇이 있었다. 발 밑에 떨어져 있는 그 것은 누군가의 낡은 회색 모자였다. 나는 그것을
주워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아이들이 뛰어 노는 것을 감상하듯 조용히 지켜보던
한 남자가 이 쪽으로 걸어오는 게 보인다. 올이 얇은 금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비단같이 흐르
고 있어서 나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도 조금은 만져보고 싶었다.
-타고 싶냐?
나는 놀라서 허둥거리다가 고개를 급하게 끄덕였다.
-내 모자를 구해 준 착한 아이니까 공짜로 태워주마.
-고, 고맙습니다!
나는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다. 그는 웃지도 않고, 심술 궂은 인상을 쓰며 자신의 모자를 내
려다봤다. 나는 무서웠지만 침착하게 웃으면서 내 손에 들린 모자를 남자에게 건네주었다.
남자는 예의 그 표정을 유지하며, 멋지게 모자를 썼다. 그런 다음, 아직도 신이 난 아이들을
향해 그는 <시간 다 됐다!>라고 소리를 질렀다. 인상을 쓴 체 말이다.
아이들은 <조금만 더 요!>라고 외치려다가 그의 무서운 눈매를 발견하고는 뛰는 것을 멈추
기 시작했다. 아쉬운 표정의 아이들이 벗어 놓았던 신발을 꺽어신고 하나 둘 고무 원판을 내
려왔다. 나는 티를 내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아주 뿌듯했다.
-콩콩이 아저씨! 저 한 번 더 탈께요!
그 중에는 수중에 잔 돈이 조금 남아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보풀이 없는 옷을 단정하게 잘
입은 아이 두 명이 동전을 꺼내기 위해 주머니를 뒤지고 있었다.
-안 돼. 콩콩이는 하루에 한 번씩만 타야 되는 거란다.
부드러운 말투였지만 단호했다. 아이들도 그런 것을 느꼈는지 더는 조르지 않고 돌아갔다.
아이들은 동그란 고무판을 <콩콩이>라고 불렀고, 그것을 지키는 사람을 <콩콩이 아저씨>
라고 불렀다. 두 녀석이 돌아가자, 아저씨는 나를 손짓으로 불렀다.
-올라가서 하고 싶은대로 해도 좋지만, 5분 동안만이야.
나는 신중하게 고개를 끄덕인 후, 아저씨가 안심하는 것을 확인하고 신발을 벗었다. 땅 위
에 펼쳐져 있는 것이 아니라서 처음에는 균형잡기가 힘들었다. 무릎을 굽혔다 펴자, 조금
뛰어졌다. 곧, 요령이 생겨서 고무에 발이 닿을 때 마음껏 힘을 주자 좀 더 높이 뛸 수가 있
었다. 세번째는 좀 더 높게, 네번째는 그 보다 더 높게.
나는 신선한 하늘에 머리를 닿을 만큼 높이 뛰고 있었다. 짜릿하고 기뻤다. 눈깔사탕을 깨
물어 먹는 것 보다 훨씬 더. 나는 저절로 웃음이 났다. <이런식으로 계속 하늘로 올라가면
언젠간 구름도 만질 수 있을거야.>라고 생각했지만 약속한 5분은 너무도 짧았다.
아저씨는 아까처럼 <시간 다 됐다!>라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고무
원판 위에 엎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눈을 질끈 감았지만 느껴지는 건
부드러운 고무 느낌뿐이었다. 나는 꿈에서 막 깨어난 것처럼 눈을 떴다. 그리고 소리를 내서
웃었다.
-재밌어요!
내가 그제서야 해맑게 외쳤다.
-좋다면, 매일 와도 돼. 돈은 없어도 된단다.
-네? 매일 공짜루요?
나는 엄청나게 놀라웠다. 이렇게 재미있는 것을 매일, 것두 공짜로.
-그래. 내 모자를 구해줬으니까.
-바람에 날아가다가 제 발 밑에 떨어진 것 뿐이예요.
-주워 주었잖아.
콩콩이 아저씨는 상냥하게 말했다. 나는 그의 배려가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기분은 좋았다.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를 외치고, 도망치듯 뛰어서 그 곳을 빠져나왔다. 미치 현실이 아닌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어두워지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냥 집으로 향했다. <엄마가 걱정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놀기만 한다고 아빠한테 매를 맞을지도 모르니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걸어오는 중
간중간 힐끔 넘어본 동산 위에는 이제 아무도 없다는 것을, 다음부터는 아무도 찾지 않을 것
을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다들 집으로 갔을 것이다. 따뜻한 저녁 밥을 먹으러.
나는 갑자기 우울해져서 발길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목적지가 집이라서 더 그런거다. <다
녀왔습니다>라는 적막하게 메마른 인사를 말 하면서 집 안으로 들어가봤자, 아무도 없을 것
이 뻔했다. 엄마가 걱정하고, 아빠가 혼을 낼 것이라는 상상은 꾸며낸 상상 속의 일부분일
뿐이었다. 나는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당당하고, 조용하게.
이대로 집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나는 즐겁게 웃으면서 방향을 틀어 아까 전 그 곳으로 뛰
기 시작했다. 서늘한 바람에 사납게 인상을 쓰며 내 시야를 가리려고 했지만, 아무렴 상관
없었다. 나는 결국 콩콩이를 보면 되는 것이었으니깐.
그 곳에서는 고무를 고정한 녹슨 철봉이 삐그덕 삐그덕, 격렬하게 소리를 내고 있었다. 건
너편에 지어진 봉제 공장의 까만 굴뚝에서 연기가 연약하게 흘러나오고 있다. 아마 공장에
서도 저녁 밥을 하고 있을 것이다. 공장 굴뚝 위로 향했던 시선이 돌아간 곳은 가끔씩 보이
는 <콩콩이 아저씨>의 웃는 얼굴이었다. 아이들이 다 가버리고 없어서 무뚝뚝해 보이는 침
묵의 배경 속에서 다 큰 어른인 아저씨가 아까와는 다른 화창한 얼굴로 콩콩이 위를 뛰어놀
고 있었다. 나는 용기가 없어서 몇 분 동안 잠잠히 숨어 있었지만, 기척을 눈치챘는지 아저
씨는 재미있는 놀이를 잠시 멈추고 내 쪽을 쳐다보았다. 드문드문 난 턱수염이 씰룩거렸다.
내가 가만히 서 있자, 아저씨는 뜀 질을 완전히 멈추고 아래에 놓인 신발을 신으며 나에게
오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그 반응이 반가워서 미소를 지으며 뛰어갔다. 아저씨의 표정은 다
시 고독해져 있었다. 그 바람에, 나는 별안간 짓고 있던 미소를 손바닥으로 가리고 말았다.
-저녁은 먹고 온거냐?
무뚝뚝한 아저씨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정신없이 휘저었다. 그러자, 아저씨는 옆에 놓인 작
은 박스 안으로 손을 넣더니 제법 큰 옥수수 두 개를 꺼냈다. 아저씨는 구분하는 척 하지 않
았지만, 훨씬 큰 것을 나에게 건냈다.
-먹어.
-자, 잘 먹겠습니다.
생소한 배려에 익숙하지 않은 말 더듬이가 되어버렸다. 나는 허기져서 손에 들린 옥수수를
허겁지겁 뜯어먹었다. 아저씨는 차분하게 알갱이를 씹다가 느긋하고 의연한 시선을 가지고
간간히 봉제공장을 넘어다보았다. 나는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강 건너편에 있는 공장에 울 엄마가 있어요. 밤 10시에는 집에 돌아와요.
나는 어른스러운 척을 했다. 그런데도 아저씨는 아무런 동요가 없다.
-울 아빠는 자동차를 운전해요. 공장에 물품을 실어 나르는 자동차요.
-지금 집에는 아무도 없겠구나.
-네! 1년 전에는 아빠 자동차를 하루종일 탔어요. 요즘은 일이 바빠서 그럴 수가 없지만요.
자랑을 하고 싶었다.
-항상 혼자 놀아야겠구나.
아저씨는 비슷한 의미의 말을 반복했다. 내가 신나게 자랑을 한 것에 대한 반응이 없어서 조
금 서운해 할 참이었다. 아저씨는 낡은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나서 주머니를 뒤적거리기 시
작했다. 나는 조금 전의 서운했던 감정은 잊어버리고 호기심 있게 아저씨의 주머니를 쳐다
보았다. 아저씨는 주머니 안에서 손가락을 꼼지락 꼼지락 움직이다가 주먹을 쥔 체로 어떤
것을 꺼내는 시늉을 했다.
-두 손을 모아서 그릇을 만들어 봐.
나는 아저씨가 시키는 대로 했다. 여전히 아저씨의 표정은 능숙하리만치 무서운 인상을 짓
고 있다. 아저씨의 커다란 주먹이 조그만 내 두 손그릇 안에 담겼다. 아저씨는 손을 천천히
펼쳤고, 남은 것은 황량한 공기뿐이었다. 나는 아저씨를 멀뚱히 쳐다보았다.
-이 아저씨가 너한테 줄 수 있는 전부야. 이 곳의 공기.
이해할 수 없었다. 쉽지 않았다.
-네 손에 담긴 공기가 닿은 이 곳의 모든 것을 가지렴. 그럼 심심하지 않을거야.
무슨 말인지 잘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아저씨가 시키는 대로 내 손에 담긴 공기를 잘 감싸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낡아서 색이 변한 엄마의 신발이 문 앞에 놓여져 있었다. 나는 집 안
으로 더 들어왔다. 그리고 그제서야 모았던 두 손을 풀고 자유롭게 움직였다. 안방에는 엄마
가 피곤한 자세로 누워있었다. 나는 방해를 하지 않으려고 거실 옆에 붙은 방 안으로 들어갔
다. 그리고 베개도 없이 누워서 눈을 감았다.
다음 날이 밝았고, 학교가 파했지만 동산으로 가려는 녀석은 한 명도 없었다. 나는 이번에
는 집에 들르지도 않고 곧장 콩콩이를 구경하러 갔다. 벌써 열 명 정도의 아이들이 줄을 서
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떨어져서 그 모습을 구경했다. 아저씨는 어제처럼 아이들이 뛰어
노는 것을 음악감상 하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두 손바닥을 동그랗게 포개서 아저씨에
게 쪼르르 뛰어갔다.
-오늘은 조금 기다려야 겠구나.
아저씨는 나를 보지 않고 말했다. 나는 포개어진 두 손을 아저씨의 눈 앞에 들어올렸다.
-선물이요.
아저씨는 그제서야 나를 내려다봤다.
-어제 저한테 주신거요. 너무 많으니까 나눠가져요.
나는 두 손바닥 안에 든 무엇을 펼치는 시늉을 했다. 아저씨는 살짝, 아주 살짝 이가 보이지
않을 만큼의 미소를 지었다. 나는 바보같이 매우 크게 웃어버리고는 의자에 앉은 아저씨의
옆에 서서 내 차례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다섯명씩 짝을 지어서 5분 동안을 뛰어놀고, 5분이
지나면 신발을 신고 땅에 내려와서는 아쉬운 듯 콩콩이를 한번 더 여운있게 쳐다봐 준 후 서
둘러 그 곳을 빠져 나간다. 나는 그 똑같은 모습들을 차례차례 지켜보다가 조금 지루해져서
쪼그려 앉아 알갱이가 크고, 마른 흙을 가지고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어? 너 여기서 뭐해?
나는 말을 걸어온 분홍색 구두를 신은 아이를 올려다본다. 나리가 콩콩이에서 방금 내려온
것 같은 숨쉬기를 하고 있었다. 예쁜 색의 옷도 군데군데 검은 때가 묻어 버렸다. 이 애도 하
던 놀이 보다는 콩콩이에 더 재미를 붙였나보다.
-너도 콩콩이 타러왔어? 그럼 줄 안 서구 뭐해.
-아, 아니. 난 그냥.... 구경만....
<있다가 공짜로 탈거야>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면 아저씨의 입장이 난처해질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매일 공짜루 타.> 라고 자랑을 하고 싶었지만, 나는 다
시 고개를 숙였다. <흐응..>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나리가 나를 비켜갔다.
나는 다시 나뭇가지로 흙 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엄마의 얼굴을 그리고 싶었는데 눈,
코, 입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떠오르는 건 단지 작고, 좁고, 언제나 피곤한 뒷모습 들 뿐.
나는 신경질이 나서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세게 집어던졌다. 나는 엄마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울고 싶었다.
-집에 가기가 싫어요.
아저씨가 듣고 있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아이들의 재잘대는 말소리와 참하지 않은 발소리들에 묻혀버려도 결코 상관없는 것이었다.
나는 콩콩이를 바라보았다. 뱀꼬리 같았던 줄을 줄어들고 줄어들어서 어느새 아무도 없이
허전했다.
-집에는 온통 엄마 뒷모습 뿐이잖아요. 아빠는 집에 오지도 않잖아.
내 말소리는 아저씨의 두 다리를 거쳐서 흘렀다. 아저씨의 다리가 작게 움찔거린 것 같았다.
나는 말을 멈추고 콩콩이 위로 힘들지 않게 올라갔다. 도움을 딛고, 두번째 뛰어올랐을 땐,
차가운 안개 속에 감춰진 봉제공장이 언뜻 보였다. 세번째 뛰어올랐을 땐, 커다란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인지 안개인지 모를 하얀 기체를 보았다. 알 수 없이 흐트러진 형상들, 무서워진
다. 그 아래에는 엄마의 뒷모습이 들어있을 것이다. 딱딱하고 건조하게. 다섯번째 뛰어올랐
을 땐, 공장이 불에 활활 타버렸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여섯번째 뛰어오르자, 그 때
문에 항상 집에 있는 엄마가 그려지고, 일곱번째 때는 그 상상이 즐거워진 내가 <재밌어요!
>를 외치고 있었다.
아저씨는 말을 아끼고 있었다. 그 때까지 난 아저씨의 고독해 보이는 쓴 웃음이 무슨 의미
인지 몰랐다.
노을이 하늘의 1/2을 색칠하고 있을 즈음, 나는 외로워보이는 걸음걸이로 집을 향해 걷고
있었다. 적막하고 으슥한 현관 바닥에는 엄마의 낮은 구두가 없었다. 아빠도 당연히 그랬다.
나는 불을 켜지 않고 안방으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가서 쓰러지듯 온 몸을 펼쳐 누웠다.
없다, 없어. 재미없어.
-어?
흙과 고무 냄새 투성이의 옷을 입고 그대로 잠이 들었던 것 같다. 하얗고 지겨운 새벽 햇살
의 지저귐에 귀가 간지러워 눈을 떴다. 그리고 옆을 봤지만 엄마는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
면 항상 있었던 벽을 보고 누운 엄마의 뒷모습 조차 보이지가 않았다. 나는 정신이 번쩍 나
서, 재빠르게 현관 앞으로 달려갔다. 쿵쿵쿵, 동네를 울리는 내 발바닥이 초조해 하고 있었
다.
-엄마~아!!! 엄마~아!!!!!
엄마의 헌 신발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집 안 여기저기를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눈물이
가득 담긴 두 눈이 정신없이 사방을 배회하다가 이내 푹 꺼졌다. 없다, 없어...
나는 맨발로 문을 열고 집을 나갔다. 아직 저녁일까. 어제 콩콩이를 타고 놀다가 집으로 돌
아오고 나서 시간이 멈춘걸까. 하늘은 붉었다. 지금 저건 노을인가? 공기는 분명히 새벽인
데. 나는 쌀쌀한 공기 때문에 삐죽 뛰어나온 콧물이 방해되서 스윽 닦아내 버리고 한 발 한
발 걸어나갔다.
지금 이 것은 새벽의 움직임이었다. 지금 저 것은 노을이 아니고 <꽃>, 정확히 말하자면
<불꽃>의 기류였다. 여기저기에서는 그을음의 냄새가 밥 짓는 냄새 대신 잔뜩 베어 있고,
동쪽 끄트머리에서는 매우 큰 연기들이 뛰어논다. 결코 활기차지 않게.
나는 무작정 그 곳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키가 높은 담벼락들이 일정하게 지나갔다. 나는 더
욱 급해졌다. 저 곳에서는 굴뚝이 큰 봉제 공장이 있는데.
-엄마~아!!!!!!!!
어제가 생각이 났다. 콩콩이를 타면서 했던 끔찍한 상상들. 상상에서의 결말은 행복한 것이
었는데. 나는 뜀박질을 뚝 그쳤다. 구겨진 담배를 물고 아저씨가 길주네 집 담벼락에 기대어
앉아있었다. 나는 아저씨에게 달려가서 그의 허리를 안았다. 그리고 아무도 볼 수 없게 아저
씨의 지저분한 외투 안에서 울음소리를 숨겼다. 아저씨는 인자하지 않은 인상을 쓰고 있겠
지,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가만히 내 등을 다독이는 아저씨의 손가락이 느껴졌다. 나는
잠깐 몸을 움츠렸지만 곧 긴장을 풀고 눈물을 실컷 흘렸다.
-연기가 너무 많이 나요.
조금 진정한 후에, 나는 아저씨의 무릎에 앉아서 아저씨의 턱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아저씨
의 편안해 보이는 시선은 봉제 공장의 굴뚝에 닿아있었다.
-불이 났나 보구나.
-어젯밤에 엄마가 안 왔어요, 아저씨.
아저씨는 차분하게 나를 내려다본다. 웃는다, 아니 웃지 않는다.
-네 소원이었잖니.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구역질이 나고 배가 아퍼왔다.
-내 소원이 아니었어!
소리를 질렀다. 몸은 이제 아저씨에게서 떨어져 나왔다.
내 탓이 아니다. 내가 그런 게 아니야.
-지금쯤 구급차가 왔겠구나.
-내가 그런 게 아니예요!
-진심으로 바랐잖아. 그래서 이루어진 것 뿐이야.
-그런 적 없어!! 엄마가 없어지는 건 싫어!
-바라는 대로 될 거니까 걱정마.
나는 아저씨보다 더 무섭게 인상을 쥐어짰다. 건너편에서 불씨와 함께 불어오는 뜨거운 바
람의 손길도 내 인상을 풀지 못했다.
-엄마가 안 왔다구요! 어제도, 그리고 오늘도 오지 않을거예요. 공장에 불이 났으니깐!
-올거야.
-당신이 어떻게 알아! 거렁뱅이면서!
아저씨는 회색 모자 끝을 만지작거렸다. 손가락은 길었다.
-거렁뱅이이자 마법사야. 내 모자를 구해준 너에게 소원을 들어준거야. 바라고 있었잖냐.
-바보.
나는 <미친 아저씨!>라고 큰 소리를 고함을 친 후에, 공장으로 서둘러 뛰어갔다. 탁한 연기
냄새와 사람들의 울음소리가 반복되고 있었다. 넒은 부지 위에 우뚝 섰던 <마왕공장>이 작
렬하고 있었다. 나는 무서웠지만 사람들이 많은 곳까지 서둘러 뛰었다. 온 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넋이 나간 사람들을 헤치고 엄마를 찾았다. 시끄럽고 소란스러운 곳에서 <엄마!>를
소리내어 힘껏 부르고 있었다. 엄마를 잃어버려서는 안 됐다.
-아저씨! 울 엄마는요?
-저리가! 다치니까 가까이 오면 안 돼, 꼬마야.
-울 엄마.... 엄마요.
-이 봐! 이 여자애 좀 데리고 가!
방화복을 입은 사람이 나를 지나치고, 같은 옷을 입은 다른 사람이 나를 그 곳에서 멀리 멀
리 떨어뜨려 놓는다. 나는 동그랗게 모여 선 사람들의 뒤에서 불을 횡포를 지켜보기 시작했
다.
-너네들은 꽃이 아냐. 불꽃이 아냐. 대마왕이야. 무시무시해. 울 엄마를 삼켜버렸지?
내 허락도 없이 먹어버렸지.... 꿀꺽 삼켰지!!
나는 엄마의 얼굴이 아빠의 얼굴을 떠올릴 때처럼 하얗게만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도 생각
나지 않았다. 저 수많은 들 것 위에 누운 수많은 사람들 중에 우리 엄마, 우리 아빠는 누군
지, 하얀 천으로 덮였는지, 숨을 쉬고 있는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하얗게만 보였다. 난 아
무래도 잃어버린 것 같았다. 엄마, 아빠를.
나는 손에 묻은 재 가루를 바지에 슥슥 닦으면서 일어났다. 없다, 없어. 어쩔 수 없어.
왠지 모르게 담담한 기분이 들었다. 콩콩이에 타고 싶어졌다. 나는 빠른 걸음을 걸어서 길주
네 담벼락 앞으로 갔다. 아저씨는 없었다. 몇 번을 덧 피워서 몽당해진 담배꽁초의 흔적조
차 없었다. 나는 서둘러 콩콩이가 있는 곳까지 뛰어갔다. 아저씨가 없었다. 아저씨가 매번
앉아 있던 나무 의자에도, 불이 식은 장작 옆에도, 어디에도. 나는 고무 원판 위로 엉금엉금
기어 올라갔다. 팽팽한 고무 헝겊 위에 아저씨의 모자가 나뒹굴고 있었다. 닳고 볼품 없었는
데 아저씨는 이 것을 자신보다 아끼는 것 같았다. 나는 두 손으로 아저씨의 모자를 꼭 쥐고
그 위에서 뛰어 놀기 시작했다.
마을 곳곳의 기와 지붕 위에서는 연기와 재가 마음껏 날아다니고, 그 것을 지켜보는 나는
신이 나기 시작했다. <마왕공장>의 굵은 굴뚝은 아저씨의 담배~ 나는 노래를 부르면서 콩
콩콩 뛰었다. 나는 <더 높이! 더 높이!>를 외치면서 두 발에 힘들 쓰고, 힘을 쓰고, 힘을 썼
다. 다섯번째 뛰었을 때에는 하늘을 나는 듯한 착각이 들만큼 <높이!>였다. 나는 두 팔을 휘
저었다. 하늘을 날고 싶었다. 아저씨는 혹시 하늘 위로 올라가 버린 게 아닐까.
나는 눈을 번쩍 떴다.
-공장장님?
꿈이었다.
나는 어릴 적 기억이 다시 되살아남을 느꼈다. 작업복을 입은 간부가 나를 이상하게 쳐다본
다. 나는 미숙하게 웃으면서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책 위에 묻은 침을 닦았다.
-영 잠을 못 자서... 무슨 일이예요?
나는 체온이 감당못할 정도의 한기가 느껴져서 몸을 움츠리며 물었다.
-손님이 찾아오셨는데.
-응? 무슨 손님이...
나는 별안간 추위는 고사하고 온 몸에 열이 나는 것 같았다. 더운 기운이 잠시 나를 들었다
놓는다. 간부의 옆에서 인자한 미소를 짓고 선 사람은 거렁뱅이 아니, 마법사 아니, 아저씨
였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아저씨가 말을 걸기 전까지는.
-오랜만이지?
-나, 나가서 일 보세요. 아저씨는 드, 들어오시구요.
나는 이만큼 컸는데 아저씨의 모습은 그대로였다. 달라진 건 차분해진 인상 하나.
-기절할 뻔 했어요.
-왜?
아저씨가 뚜벅뚜벅 걸어 들어오면서 물었다. 문이 닫히고, 나는 소파에 앉았다.
-앉으세요.
아저씨는 내 맞은편에 앉았다. 아저씨는 30년 전 모습 그대로였다.
-그 땐 어렸는데도 지금 아저씨 얼굴을 너무 잘 알아봐서.
-내가 하나도 늙지 않았다는 말이지?
-네. 커피 드려요?
나는 커피포트가 꽂힌 선반 위로 걸어갔다.
-마법사라고 했잖냐.
컵 두 개에 커피를 나눠 담으려던 내 손이 잠시 멈췄다. 또 저 소리.
-그 때, 왜 거짓말 했어요?
-무슨?
나는 커피를 만드느라 바쁜 척 팔을 자주 움직이며 말했다.
-울 엄마... 올 거랬잖아요.
나는 일부러 끓인 물에 담긴 스푼을 세게 휘젓는다.
-엄마도 아빠도 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내가 온 거잖냐.
나는 돌아설 수가 없었다. 따뜻한 커피 냄새가 흐르고, 좁은 공간을 머물렀다.
-내 힘으로 삶을 꾸리고, 돈을 벌었어요. 공장을 세울만큼 큰 돈을 벌었을 때, 기다리자 했
어요. 아저씨가 선물해 준 이 공간에서.
-찾아오기가 수월했어, 고맙다.
-미안하지만 콩콩이는 처분했어요. 아, 그리고...
나는 천천히 책상으로 걸어가서 서랍을 열었다. 닳고 헤진 회색 모자, 그것을 꺼내들었다.
-이거 찾으러 온 것 맞죠?
-가지고 있었냐?
-찾으러 오실 줄 알구요.
아저씨는 낡고 누런 자켓을 헐렁하게 걸치고, 무릎 부분의 면이 얋아진 바지를 딱 맞게 입
고, 지저분한 구두를 신은 체였다. 머리카락은 여전히 결 좋은 금빛이었다. 나는 커피를 들
고 소파에 앉으면서 살짝 웃었다.
-안 그래도 왜 왔냐고 다그치면 모자 얘기를 하려고 했어.
-모자 어딨는지 모르냐구요?
-그래.
나는 커피잔을 내려놓고, 모자를 아저씨의 머리에 씌워주었다. 그리고 머리카락도 잠깐 손
가락에 부딪쳤다. 드디어 완벽한 아저씨의 모습이었다.
-그 때, 모자 왜 두고 갔어요?
-다시 오려구. 찾으러 말이다.
아저씨는 조금 웃엇고, 나는 그 웃음이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커피맛이 좋아서였는지, 모자를 다시 찾아서였는지...
-난 네가 보고 싶었어.
아님, 나를 다시 만나서였는지...
나는 일어서서 아저씨의 옆으로 갔다. 그리고 아저씨의 변함없는 모습들을 늙어버린 나의
품에 안았다. 아저씨는 희미하게 움직이며 내 가슴에 고개를 기대었다.
-그 때는 어려서 안아줄 수가 없었으니까.
나는 내 행동의 이유를 변명같이 말했다.
-가야겠다, 얘야. 너도 보고, 내 날개도 찾았으니...
-가지 마세요. 이 곳은 우리 둘이 나눠 가지기로 했잖아요.
아저씨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지만 나는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를 안은 체
로 말이다.
-하늘로 갈거란다.
나는 말을 잠시 멈추고 아저씨의 얼굴을 감았던 두 팔을 풀었다. 나는 그의 옆자리에 조금
떨어져 앉았다. 인자하게 웃어주는 그 사람의 옆에서 나는 오히려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화려하게 장식된 테이블 보가 젖고, 커피 잔이 젖고 있었다. 나는 하염없이, 그리고 소리없
이 눈물을 흘렸다. 검은 커피가 점점 식어가고 있었다. 나는 울음에 지쳐서 눈을 포근하게
감았다. 촉촉한 느낌이 내 두 눈이 잠시 머물다 사라졌지만, 나는 눈을 뜨지 않았다.
깨어났을 땐 하늘은 이미 어두워진 후였고, 그는 없었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는 일
이었다. 하지만 이젠 조금 믿어진다. 모자 라는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아가겠다는 그의 말
이. 아무에게도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없었던 그의 번민을. 그리고 여기에 사랑스런 마법사
가 잠시 머물렀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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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게시판에 옮겨쓰는 데 두 시간 걸렸어요
아니 몇 장 안 되는데 왜 그렇게 길게 느껴지는지...
두 번째 단편 들구 왔습니다.
별루 사랑얘기도 아니고, 심오한 얘기도 아니예요.
다만 읽어주심 고마워요^^
꼬릿말은 사랑하구요 ㅋㅋㅋ
모, 어쨋든
기분 좋은 하루 되세요~!
첫댓글 제목이 이뻐서 봤어요! 감동많이먹었구요, 저도 마법사 한사람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아하하하하1!!
아 고마워요^^ 저는 제 주위에도 마법사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하거든요~ 하는 일이 갑자기 봇물 터지듯 잘 되거나 할 때요. 감동을 주고 싶었는데 감동을 받으셨네요!! 감사합니다~
공장에 불났다고 한부분이 살짝 오싹?했지만 결국은 좋게좋게 끝났거죠?히히 저도 이렇게 쓸수있으면 좋겠어요.. 부럽습니당~ㅠ _-
부럽다뇨ㅠ 많이 미숙한 저에게 ㅠ 결말은 해피엔딩이네요~ 따뜻하게 끝내려고 했어요. 불이 나는 장면이 갈등요소였는데 오싹하셨다니 저는 만족이예요 ㅋㅋㅋㅋㅋ 읽어주셔서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