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최씨 무신정권기의 내용 중 잘못된 것은?
1.삼별초는 최씨정권의 군사중심 기구였다.
2.중방은 무인들이 정책을 논의하던 군사협의 기관이다.
3.정색승선은 최이가 설치한 문인숙위기구인 서방에 있던 문신들을 말한다.
4.흥녕부는 최씨무신정권 시기의 막부성격을 지닌다.
2번 중방은 무신정권 초기 정중부때나 이의민 때 설치되어 최씨 정권까지 존속하는지 궁금하구요
3번 정색승선은 정방에 있던 문신들을 말하는 것이 아닌지요?
답변
중방은 고려초기 상장군 대장군이 참여하였던 무신최고회의기구였지요
이후 무신정권시기 권력기구로 존재하지요, 중방의 설치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대체로 이군육위의 군사제도가 완성된 현종 무렵으로 추측되는 것으로 봅니다.
이어서 아래 내용을 참고합시다.
1170년(의종 24) 정중부(鄭仲夫)·이고(李高)·이의방(李義方) 등이 정변을 일으켜 무신들이 정권을 장악하자, 문신이 권력을 독차지한 고려 전기 때와는 달리 중방은 막강한 정치권력 기관이 되었다.
즉 집권한 무신들이 문반(文班)과 무반(武班)의 고위관직을 차지한 뒤 중방에 모여 국가의 크고 작은 모든 문제를 공동으로 처리해 그 기능과 권한이 확대, 강화되었던 것이다. 궁성수비와 일반치안을 위한 병력 배치, 형옥치죄권(刑獄治罪權) 행사, 도량형 도구의 검사·통일, 관직의 증감 및 관리의 임면(任免) 등이 그것이다.
이는 정중부·경대승(慶大升)·이의민(李義旼)으로 이어지는 초기 무신정권시대에 집권무신의 정치·경제·군사적인 기반이 확고하지 못해 중방을 통한 정치가 이뤄진 것이다. 한편으로는 독자적인 집정부(執政府)를 형성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던 데서 연유한다.
최씨 정권시대에 이르러 최고집정부로서 교정도감(敎定都監), 인사기관으로서 정방(政房), 사병적인 군사조직으로서 도방(都房)이 각각 마련되어 안정적인 1인 독재가 형성되었다. 그래서 중방을 구성하는 상장군·대장군을 비롯한 무신들이 오히려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반면에 문신이 점차 우대, 등용되었으며, 중방의 기능과 성격도 이전으로 되돌아갔다.
중방은 충선왕 때 한 번 폐지되었다가 곧 부활된 뒤 조선 초기인 1393년(태조 2)에 폐지되었다.
그리고 정색승선에 대해서는 ...
고려 최씨 무인집권기 이후 인사권을 관장했던 정방(政房)에 속한 관직의 하나
고려의 인사행정은 원래 인사 주무관서인 이부(吏部)와 병부(兵部)가 정안(政案)에 의거하여 시행했는데, 최충헌이 집권하여 멋대로 임금을 폐립하고 그의 요속(僚屬)과 사사로이 정안을 취하여 인사행정을 자기 마음대로 했다. 이때 승선에 임명된 자가 들어가 그 내용을 왕에게 아뢰면, 왕은 부득이 따라야만 했다. 그뒤 1225년(고종 12) 집정무인이던 최우(崔瑀:崔怡)가 사제에서 이루어지던 인사행정을 공식기구화하여 정방이라는 기구를 만들고, 최씨집권가에서 마음대로 임명했던 승선을 정색승선이라 고쳐 그의 요속으로 삼았다. 정색승선 외에 정색상서(政色尙書)·정색소경(政色少卿)·정색서제(政色書題) 등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