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이 타는 가을 강(江)
박재삼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 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江)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 죽은 가을 강(江)을 처음 보것네.
* 이 시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내가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바로 울산고등학교에 근무할 때 문학시간에 가르친 시다.
가르치면서도 좋아서 그 강열한 '울음이 타는 가을 강'으로 빠져 들었다. 말간 울산고 2학년 남자 아이들의 얼굴과 잘 다려진 교복 와이셔츠에 흐르는 싱싱한 선의 자태가 어우러져서 그 분위기에
도취되었다.
때는 가을이었고 김해에서 울산까지 출퇴근하며 장장 5시간을 길바닥에 버리고 다녔지만 차 안에서 오며가며 교재들을 펼쳐서 보았다.
내 청춘이 미친듯이 끓고 있었고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심한 열기에 휩싸였었다. 청춘의 나이는 꼭 10대가 아니고 꼭 20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의 온도가 가장 상승하는 시점이 바로 청춘의 시작점이 아닐까 한다.
그때 내 나이가 33세였다.
어느날 아이를 업고 현관문으로 나가는 문 앞에 비친 나를 보고 이대로 살 수 없어! 이대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때, 내 몸의 온도가 아마 40도는 넘었을 것이다.
무조건 공부가 하고 싶었고 공부를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다. 나는 그랬다. 이유도 없었고 그냥 죽느니 공부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대학원에 진학했다. 물론 내가 공부를 잘한 것은 전혀 아니고 열정만 충분했다.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만나면 그 시절이 떠 올라 내 몸이 후끈 달아올라 몸의 온도가 상승한다. 그리곤 다시 열병을 앓는다.
아마도 그래서 박재삼문학상 수상식에 기를 쓰고 갔을 것이다.
삼천포(사천)의 바다를 보면서 마음을 식혔지만 아직도 훅 달아오른 마음이 남아있다.
*
첫댓글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오죽하면 서정시의 휴앤락이라고 내가 그랬을까요.
해당화님의 열정이 바로 시에서 흘러 나왔군요. 가끔씩, 특히 새벽에 싯줄과 접신이라도 하는 듯 받아 적은
나이가 있었지요. 왜 내마음이 지금 후끈 달아오르는지 .... 해당화님과 나는 지금 접선중인가 봐요.
훌륭한 시와 붙인 글에 한참 머물면서 경의를 표합니다. ()
무엇엔가 젖어 있었다는 것이 나를 살아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됩니다.
때로는 어리석게 미친듯이 하나에 빠져있 헤매는 시간이 좋습니다.
윤영샘 계속 시심이 식지 않기를 바랍니다.
33년 산 열병에 취해 나도 비틀. 목이 탄다, 목이 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