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애기야 / 남길순
국수를 삶았니라 할머니 돌아간 날 손님 대접할 잔치국수를, 마을 사람들 모두 먹을 만큼 넉넉하게 흰 국숫발 삶고 있는데 끓는 가마솥 오르는 김 속에 배고파 설운 할머니가 서 있었니라 삶은 국수를 광주리에 건져 사리 지어 놓았는데 새애기야, 이게 다 뭐냐 찬물에 헹구지 않아서 떡이 되어 버린 국수사리, 불 아궁이 곁에 서서 매운 눈동자 달아오르고 황당한 나머지 뜨거운 거기 들어가 숨어버리고 싶었다 배고픈 사람들 돌아가지 않고 구신 마냥 마당 가득 들끓는데, 국수 다발 사러 간 사람 아직 멀고 막차가 도착하도록 맹물이 끓고 있었지 어둠 속에서 국수 잔치가 벌어졌니라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사람들 앉아 후루룩 국수 먹느라 말 수가 줄어드는데 저 마당 가운데 할머니가 우두커니 앉아 보았니라 막 살림이 피던 때라 장작 불똥 너머로 헤아릴 수 없이 별 뜨고 방안에는 죽은 사람이 누워 있고 새애기야, 새애기야, 이승 저승에서 번갈아 바쁘게 나를 부르는 소리 ㅡ웹진 《공정한시인의사회》 2024년 9월호 --------------------------------
* 남길순 시인 1962년 전남 순천 출생. 순천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2012년 《시로 여는 세상》 등단. 시집 『분홍의 시작』 『한밤의 트램펄린』. 합동시집 『시골시인Q』. 디카시집 『호텔 순천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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