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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사회사업 스크랩 동네 젊은이 살피는 인정, 아이들의 관심
이주상 추천 0 조회 74 09.08.27 23:11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우르르쾅쾅,

천둥소리가 가까이 들립니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하며

눈을 뜹니다.

 

바깥에서 내리는 시원한 빗소리,

도서관 입구와 뒤편 베란다 문을 엽니다.

 

도서관 청소를 시작합니다.

 

투드득, 타닥타닥

대지가 비를 머금어가는 소리에 맞추어

비질하고 밀대걸레를 밉니다.

 

평화로운 아침입니다.

비소리를 음악삼아 청소합니다.

비가 와서 고맙습니다.

 

 

 

오늘은 마을순환버스가 정비 받는 날이라

7시에 아이들 집으로 가는 시간 말고는

운행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9시가 넘자

아빠차를 타고 도서관에 은혜, 진성, 진희 남매가 왔습니다.

 

진성이랑 반갑게 인사하며 안아줍니다.

 

은혜도 어제보다 오늘 더 반갑게 맞아줍니다.

고맙습니다.

 

진성이가 교육실 안 컴퓨터에 앉아

멍하니 있습니다.

심심한가 봅니다.

 

 

진성이는 무슨 이유인지 잘 모르겠지만

말을 하는 게 조금 서투릅니다.

 

그래도 자기 의사표현이 분명해서

동생, 친구들과 지낼 때

어려움 없이 잘 지냅니다.

 

진성이 말을 처음 듣게 되는 사람은

'무슨 문제가 있나'

'말을 잘 못하는 아이인가'하고 오해할 수 도 있지만

 

잘 어울려 노는 성진이, 도현이, 대근이, 형근이를 보면

진성이 말을 잘 알아듣고

같이 놀 때도 전혀 문제없이 잘 지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어려움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진성이를 형, 친구로 받아들이는 아이들이 고맙습니다.

 

"진성아, 심심해? 선생님하고 바깥에 놀러갈까?

 지금 비도 안 오던데, 공놀이 하러 갈까?"

 

도서관 옆 원두막에서 진성이와

누군가 흘리고 간 고무공을 가지고 놉니다.

 

던지고 받고

다시 던지고 받다가 제안합니다.

 

"진성아, 우리 야구할까? 선생님이랑 바꿔가면서 던지고 치고 하자.

 저기 보니까 다 먹은 옥수수 강냉이 있던데

 그걸로 방망이 하면 어때?"

 

"좋아요!"

 

"던진다~"

 

'빡'

 

"우와, 잘 하네~ 진성이"

 

비가 쏟아져 들어가자던 진성이,

 

"선생님, 우리 점심먹고 또 해요.

 내일도 해요."

 

"진성아, 컴퓨터 게임보다 공갖고 노는 게 더 재밌지?"

 

"네!"

 

 

오전에는 연세대 도활팀(도서관 희망원정대) 리더인 이진아 선생님께

도서관리 프로그램을 배웠습니다.

 

새로 온 책 등록 및 기타 도서 관련 업무를

메모하면서 배웠습니다.

 

프로그램 다루면서 주의해야할 점을

상세하게, 친절히 알려줍니다.

 

앞으로 일하면서

정 모르겠거나 궁금한 것 있으면

연락달라고 하시면서

연락처를 알려주셨습니다.

 

고향이 대전이라

한 달에 한 번꼴로 내려온다 하시며

가까이 있으니 도울 수 있을거라 하십니다.

 

고맙습니다.

든든합니다.

 

 

도활팀과 점심 식사 준비를 합니다.

오늘 메뉴는 돈가스와 카레.

 

카레에 들어갈 감자를 다듬습니다.

 

"진성아, 선생님하고 감자 깎을까?

 진성이 집에서 감자나 과일 깎아본 적 있니?"

"(겁나는 표정으로) 없어요"

"그래? 그럼 처음 깎는 건 겁이 날 수도 있으니까

 선생님이 껍질 깎으면,

 여기 당근 썰어놓은 것처럼 진성이가 잘라만 줄래?"

"네. 해볼게요."

"고마워, 진성아"

 

딱딱, 또각또각 감자써는 소리.

 

"진성아, 이 당근 크기 보이지?

 이 감자 그대로 먹으면 진성이한테 크지 않을까?

 한 번만 더 반 잘라줄래?"

"네, (자르면서) 이렇게요?"

"응! 잘 했네 진성이. 그렇게 하면 되겠다"

 

 

도서관에 아이들이 오는 사이

마을 분들도 간간히 들립니다.

 

면사무소 산악계장님과 한 분이 오셨습니다.

도활팀 수고한다고 드링크제 사서 들리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번에 회의하실 때 잠깐 ?었지요? 선생님.

 이주상 이라고 합니다.

 도서관 실무자로 일하게 됐습니다.

 시간내서 직접 한 번 인사드리러 가야 하는데

 이렇게 와주신 덕에 인사드리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간사님이시죠? 앞으로 고생 많을텐데, 잘 부탁해요."

 

의선이, 정선이 어머니가 자매를 데리러 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어제부터 안남 이사와서

 앞으로 도서관서 일할 이주상 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활짝 웃는 의선이, 정선이 어머니 뵈니

제 마음도 활짝 핍니다.

 

"고마워요, 선생님."

 

"제가 고마운걸요.

 정선이가 올 때마다 어찌나 반갑게 인사해주는지

 제가 힘이 나요.

 

 정선아, 잘 가~"

 

쑥스러운지 새침한 얼굴로 뒤돌아보곤

대답없이 어머니보다 먼저 길을 나섭니다.

 

"얘가 낯을 가리나봐요."

 

"둘이 있을 땐, 말도 곧잘 걸고

 저한테 잘 해줍니다.

 정선이가 참 살가워요."

 

수줍은 미소 지으시고

성큼성큼 가는 두 딸 따라

뛰어가는 어머니.

 

걸어가며 종종 뒤돌아보는 정선이,

눈 마주칠 때마다

손 흔들어주면서 인사합니다.

 

"잘 가, 정선아. 고맙다."

 

오토바이를 탄 아저씨 한 분이 도서관에 오십니다.

 

오늘 저와 인사할 때

절 낯설어하고 이름을 말하지 않은,

여자 아이의 아버지신가 봅니다.

 

"아버님, 안녕하세요.

 앞으로 김미희 선생님 대신에

 도서관 상근자로 일하게 된 이주상 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헬멧을 아이에게 씌우며) 그래요? 아유, 고마워요."

 

"네. 잘 부탁드립니다.

 잘 가렴, 오늘 도서관 와줘서 고맙다."

 

도서관 안에서 볼 적마다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피하거나 퉁명스레 대답하던 아이.

 

"안녕히 계세요~"

"응, 고마워"

 

아빠 등에 기대 허리 붙잡고

오토바이 타고서 멀어지는 모습,

맑게 갠 하늘 사이로 아득히 멀어져갑니다.

 

'아빠 등에 기대, 허리붙잡고 오토바이 타고 다닌

 그 때 그 기억이 얼마나 아련할까.'

 

눈가가 시큰해집니다.

 

마을 분들 한 분 한 분 뵐 때마다 인사드리면

살갑게 받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잘 부탁하네,

고생이 많네,

집은 어떻게 하고?,

밥은 어떻게 먹고 지내나?

 

염려와 애정 담긴 물음에

마음이 넉넉해집니다.

 

오늘 논술 지도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과 과자를 먹습니다.

 

먹고나서 설거지 할 사람을 정합니다.

 

김미희 선생님이 과자를 제일 많이 먹은,

순창이와 영빈이를 하라 합니다.

 

"싫어요!"

"야, 우리 튀자"

 

그렇지만, 가장 늦게까지 먹는 순창이와 영빈이.

 

"순창아, 영빈아.

 선생님도 오늘 설거지 같이 할래.

 우리 놀면서 설거지 하자. 어때?"

 

"설거지를 어떻게 놀면서 해요~?"

 

"왜 못 해, 설거지를 놀이 하면서 하면 돼지~

 가자~ 이왕 하는거, 재밌고 신나게 하자.

 어때? 알았지?"

 

'어떻게 하면 설거지를 피하는 아이들을

재미나게 하게 할 수 있을까'

 

싱크대에 컵과 그릇을 놓고 묻습니다.

 

"영빈아, 순창아.

 우리 어떻게 하면 설거지를 재미나게 할 수 있을까?"

 

"비누방울 불어요"

 

"이야 그거 좋은 생각이다. 뭘로 하지?"

 

"빨대만 있으면 돼요~ 제가 갖고 올게요"

 

"와, 재밌겠다. 영빈이가 갖다주면 고맙지~"

 

"선생님, (가위들고서)빨대 끝을 이렇게 네 갈래로 자르고요.

 퐁퐁을 이렇게 넣고, 물을 넣으면 돼요.

 이거 봐요. 돼죠?"

 

"응, 그러네.

 이야~ 오랜만에 하니까 선생님도 재미있다.

 순창이랑 영빈이 덕분이네.

 누가 더 크게 불기 하나 할까?

 하나 둘 셋~ (후우~)"

 

"아, 아쉽다. 안 터질 수 있었는데..."

 

"그러게, 영빈이는 크게 부는 거보다 많이 부는 걸 잘 하네"

 

많이 불기,

접시에 대고 불기,

크게 불어보기,

거품풍선 서로 합치기,

누구 거가 오래 가나 지켜보기...

 

10분 정도 비누거품 놀이를 합니다.

 

"아, 재미있다~ 우리 이 퐁퐁담은 컵만 두고

 이제 다른 거 먼저 씻을까?"

 

"네, 저기 치워놓고 해요"

 

"선생님이 씻을테니, 거품내서 닦고 선생님한테 줄래?"

 

"네, 그렇게 해요~ 전 스펀지로 할래요."

 

"하얀 스펀지로 하니까 재미있다.

 스펀지로 거품내니까 크림 같애~"

 

"그러게요, 이거 봐요. 많이 나오죠~? 선생님"

 

"응, 정말 그러네. 쭉 짜니까 우유 짜는 것 같다. 하하"

 

"선생님, 그런데 도서관에 언제까지 일하실 거에요?"

 

"선생님 앞으로 여기서 살건데.

 결혼도 하고, 안남 살면서

 도서관에서 쭉 일하고 싶은데?"

 

"정말요? 결혼도 할 거에요? 집은요?"

 

"집은 차차 구해야지.

 도서관에서 당분간 먹고 자고,

 앞으로 마을에 인사다니면서 여쭤보려고.

 

 선생님 도서관에서 쭉 일할건데

 잘 부탁할게 영빈아, 순창아.

 그러니까 앞으로 선생님 잘 해주라."

 

"네! 알겠어요."

 

어쩌면 영빈이와 순창이가 궁금했던 건

이 사람이 잠시 왔다갈 사람인지,

 

앞으로 자기들과 오래 지내며 만날 사람인지

그게 궁금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 마지막으로 과자 담았던 판 여기있다~"

 

"이건 빡빡 닦아야 돼요. 기름기 있어요"

 

"아, 그렇지? 영빈이가 꼼꼼하게 해주니까 좋네"

 

"(순창) 뒤집어서도 잘 닦아야 돼요. 음료수 묻었어요."

 

"정말 그렇네? 순창이도 고맙다. 이야, 설거지 정말 꼼꼼하게 잘 하네"

 

영빈이가 김미희 선생님이 불러서 잠시 간 사이

설거지가 끝납니다.

 

(하이 파이브 하듯, 손바닥을 내밀자)

 

'짝'하며 손바닥을 맞부딪혀 줍니다.

 

"순창아, 참 수고했다.

 순창이 덕분에 오늘 비누거품도 갖고 놀고

 설거지도 재밌게 했다. 선생님이 더 신나네.

 고맙다."

 

영빈이가 돌아옵니다.

 

"선생님, 사탕 몇 개 드실래요?"

 

"응? 영빈이가 주고 싶은만큼 주라."

 

"여기 두 개요. 원래 저랑 순창이 것만 줬는데,

 선생님 것도 달라고 그랬어요."

 

"정말? 진짜 고맙다, 영빈아."

 

 

왜 여기 왔는지,

그리고 안남과 도서관에서

어떻게 앞으로 지낼 건지

솔직하게 터놓고 서로 묻고 얘기하는 것 만으로도

 

오늘 영빈이와 순창이 마음에 한 발 다가갔습니다.

 

특별한 기술, 재주 부리지 않아도

묻고 답하고 했을 뿐인데,

진심으로 다가와준 영빈이와 순창이가 고마울 따름입니다.

 

 

도서관 근처 비닐하우스에서

깻잎 따는 아저씨 한 분이 계십니다.

 

낮이고 밤이고 가까이 계시다보니

종종 도서관에 들리십니다.

 

지난 번에 관장님 말씀하시기론

조금 지적으로 낮은 분이라셨는데

 

인사드리고 대화할수록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평범하게 가까이서 깻잎 농사짓는 아저씨로 보입니다.

 

비닐하우스 깻잎이 생소해서

깻잎농사 짓는 얘기를 여쭈니

얘기가 물꼬 트인듯 나옵니다.

 

"9월엔 그래도 나아.

 겨울 되면은, 깻잎 수막 제대로 나오나 보려고

 비닐하우스에 내내 붙어있어야 돼

 

 ...

 

 작목반이 일이 대근해서(힘들어서) 많이들 못 해.

 겨울에는 하루종일 있어야 되거든.

 

 그런데 살 집은 구했나?"

 

"아뇨, 이제 슬슬 마을에 인사다니면서

 여기저기 여쭤봐야지요."

 

"아이고, 내가 자네 술이나 한 번 사줘야할텐데."

 

"술은 제가 잘 못해서 괜찮고요,

 시간 나시면 밥이나 한 끼 얻어먹어도 되겠습니까?"

 

"그게 뭐 힘들다고.

 하긴 술 마실 시간도 읍어, 깻잎 딸라고 하면"

 

 

도서관 오갈 적에 인사 드리고

안부 여쭙기만 했는데,

 

도활팀하고 얘기 나누다 가시면서

잠시 글쓰느라 다용도실에 있는 저를 찾으셨답니다.

 

동네 젊은이 챙기는 인정과 관심을

피부로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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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8.28 12:10

    첫댓글 재밋다. 동화를 읽고 있는듯 하다.

  • 09.08.28 21:13

    읽기만 해도 가슴 한구석이 따뜻해져 오는... 비가 오는 작은 일상에도 감사하는 선생님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게 됩니다.옥천의 아이들이 너무 사랑스럽네요^^

  • 09.08.29 09:09

    전부 하룻동안 이야기에요? 이주상 선생 신바람~

  • 09.08.29 09:12

    도활팀 이진아 선생님 고맙습니다. 이진아 선생님은 철암어린이도서관에 2007년 2월 제2기 도활부터 2008년 제4기 도활까지 오셨어요. 연세대 문헌정보학과 선후배들과 함께 책분류와 바코드작업을 하셨지요. 도서관 운영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참 고마운 도활팀.

  • 09.08.29 11:26

    오빠의 글을 읽는데 뭉클 뭉클 합니다. 특별한 것 없이도 아이들과 진심으로 이야기 하는 오빠의 모습이 그려져요. 앞으로도 어떤 마음 따뜻한 이야기들이 펼쳐질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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