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아 사도는 열두 사도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배반자 유다의 자리를 메우려고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뒤에
사도로 뽑힌 인물이다(사도 1,21-26 참조).
그는 예수님의 공생활 초기부터 다른 제자들과 함께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가르침을 받고,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부활 그리고 승천까지 목격한 이로
예수님의 일흔두 제자(루카 10,1-2 참조) 가운데 하나로 보고 있다.
마티아 사도의 활동과 죽음에 관하여 확실하게 알려진 것은 없으나,
예루살렘에서 선교 활동을 펼친 데 이어
이방인 지역 특히 에티오피아에서 선교하였다고 전해진다.
예수님께서는 수난과 죽음을 앞두시고
당신 자신과 제자들을 위해 아버지께 기도하신다.
예수님의 기도는, 아버지께서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시고,
제자들을 지켜 주시며 그들이 하나가 되게 해 주십사는 것이다(요한 15,9-17).
요즘 들어 사람들 사이에서 많이 오가는 말이 ‘버킷 리스트’(bucket list)입니다.
이는 죽기 전에 꼭 해 보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의 유래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중세에는 교수형을 집행할 때 사람에게 올가미를 목에 두른 뒤
뒤집어 놓은 양동이(bucket)에 올라가게 한 다음
양동이를 걷어참으로써 사형에 처했답니다.
이처럼 ‘버킷 리스트’란 ‘양동이를 치우다’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때를 앞두고 당신 자신과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당신 자신을 위해서는 아버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기도드리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위해서는 그들을 지켜 주시고 하나가 되도록 기도드리십니다.
예수님의 ‘버킷 리스트’를 요약하자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제자들을 지켜 주시고 그들이 하나가 되는 것’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죽기 전에 제일 후회하는 것이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한 것이라고 합니다.
후회 없는 삶을 살려면 오늘 나는 무엇을 하겠습니까?
진정으로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 한번 그 목록을 작성해 봅시다.
그리고 예수님의 그것과 비교해 봅시다.
사람의 일 / 류 근
내가 잘되었을 때 스스로 기뻐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겠지.
내 아들이 잘되었을 때, 내 딸이 잘되었을 때,
내 아내가 잘되었을 때, 내 남편이 잘되었을 때,
내 가족이 내 핏줄이 잘되었을 때
기뻐하고 축복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겠지.
나는 오늘 많이 슬프고 부끄럽네.
나보다 잘된 사람에 대해서
내 아들보다 내 딸보다 잘된 아들딸들에 대해서
내 아내와 남편보다 잘된 아내와 남편 들에 대해서
내 가족과 핏줄보다 잘된 그들에 대해서
나 진심으로 기뻐하고 축복한 적 없네.
진심으로 감사하고 박수치며 기도한 적 없네.
마치 내 것을 빼앗기기라도 한듯,
내가 마땅히 가져야할 것을 빼앗기기라도 한듯
원망하고 욕하고 침을 뱉었네.
땅을 쳤네.
할 수만 있다면 하느님의 저주까지를 빌려다 쓰고 싶었네.
슬프고 부끄럽네.
나보다 가난하고 힘없고 어려운 사람에게
마음 보태고 손 내미는 것 참 쉬운 일.
그냥 가만히 있는 것보다 더 쉬운 일.
나는 무엇을 위해 그들에게 마음과 손을 내밀었나.
흔한 얼굴과 위로를 베풀었나.
어쩌면 그건 얕고 가벼운 양심을 쓰다듬는 일.
그냥 그런대로 잠깐씩 속이는 일.
뭐 이 정도면 나 꽤 괜찮은 사람이지, 자위하는 일.
남들에게 적당한 이웃으로 살아남는 일.
결국 스스로를 잘 속이는 일.
나보다 잘된 사람의 기쁨에 동참하라고
오늘도 우주는 제가 가진 모든 별자리를 살리고 지구를 살리고
봄과 여름과 꽃밭과 구름을 살리고
삶과 죽음을 살리고
결국 내 마음의 깊은 흠집을 살리고
가난한 마음 앞에 곧게 곧게 바르게 서게 하신다.
나보다 잘된 사람을 위해 진심으로 기뻐하고
나보다 잘된 사람을 위해 진심으로 축복하고
나보다 잘된 사람을 위해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일.
하느님의 기쁨과 축복과 행복을 대신하는 일.
그리고 우리보다 못한 사람들을 다시 생각하는 일.
결국 하느님의 마음을 대신하는 일.
사람의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