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771
우리 불자님들 명심하십시오. 우리 불자님들 가운데서는 가정적으로 갈등이 계시는 분도 있겠지요. 또는 우리 스님네 가운데서는 하나의 종단적으로 하나의 문중적으로 갈등이 계신 분도 있겠지요. 이런 때는 선선히 자기가 바보가 되는 길이 제일 좋습니다. 무슨 일로 경합할 때는 자기가 물러나서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우리 할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저같이 칠순이 넘은 이가 역시 오래 됐지만은 저도 지금 이 한국 들어와서 올 겨울에 선방가서 한 철을 다시 공부할 셈입니다. 공부가 미숙해서 그럽니다. 칠십 넘은 노승(老僧)이 무슨 청승으로 무슨 청승으로 그러는가 아 비웃은 분도 있겠지요. 그러나 저는 제 지처를 제가 가장 잘 압니다. 부처님 정상까지는 지금도 천리만리란 말입니다 금생에 제가 할 것은 무엇인가 진여불성(眞如佛性)이라 하는 우주의 그런 공변(공편) 고향자리, 거기에, 금생에 다만 한 발이라도 더 다가서기 위함입니다.
진여불성은 바로 생명의 광명 자리입니다. 하나의 우리가 원자력, 원자력 단계도 역시 다 모두가 다 방사선 그런 광명이 있습니다. 헌데 그러한 각 원자의 가장 기본되는 생명의 본질, 본질인 진여불성 자리는 우주에 충만한, 우주에 충만한 광명 자리입니다. 그러게 대일여래(大日如來)라 대일여래는 바로 법신불(法身佛)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입니다. 비로자나불은 광명변조(光明遍照)라. 광명도 이 태양광선 같이 전기 빛같이 이와 같이 그런 눈부신 광명이 아닙니다 청정적광입니다. 청정적광(淸淨寂光)이 우주에 충만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중생은 자기 공부에 따라서 그 광명을 광명을 조금 보기도 하고 많이 보기도 하고 드디어는 그 광명과 하나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광명하고 광명과 접근되면은 자기 존재가 어떻게 변화가 되는 것인가. 광명과 접근 돼가면 돼 갈수록 자기 몸에는 변화가 옵니다. 욕계, 색계, 무색계가 중생이 윤회하는 세계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세계는 모두가 다 광명의 척도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 욕계가 가장 어두운 세계고 말입니다 색계부터서는 광명 뿐입니다 색계는 천상이니까 인제 광명입니다. 무색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참다운 부처님 세계는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법신불 세계라. 비로자나불 세계입니다.
그러기에 정토경(정토삼부경) 보면은 청정부처님 아미타불 그런 별명이 청정광불(淸淨光佛)이라. 또는 상대가 없다고 그래서 무대광불(無對光佛)이란 말입니다. 또는 거리낌이 없다고 해서 무애광불(無碍光佛)이라. 또는 그 생명이 영생불멸한다고 그래서 목숨 수(壽)자 무량수불(無量壽佛)이라 말입니다. 이렇게 가지가지 이름이 있습니다 모두가 다 진여불성(眞如佛性)자리의 공덕 이름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자성(自性) 우리 자성, 우리 불성의 이것이 본래 다 공덕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신통, 부처님 공덕은 아라한도를 성취한 무수한 성자가 무수한 세월 동안에 부처님 공덕을 자비도 많다 지혜도 많다 뭣도 많다 이렇게 다 헤아려도 무수한 세월동안도 능히 헤아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부처님은 신비부사의합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은 알고서 법신부처님을 모르면 그때는 소승에 불과합니다. 진여불성이나 또는 그야말로 불심이나 그런 자리는 소승권의 소승불교에서는 없습니다 그러게 스리랑카에서 나온 그런 스님들을 만나보면 참 딱딱합니다. 우리는 한국이라 하는 정말로 축복된 나라입니다 축복된 나라입니다. 지금 고생이 얼마나 많습니까 분단의 고통도 얼마나 심각합니까 그러나 그렇더라도 이런 고생 저런 고생 경험한 모두를 다 감안하더라도 우리 한국은 가장 축복된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신라 800년의 그런 불교시대 고려 500년의 불교시대 말입니다.
조선 500년 동안에는 비록 핍박은 받았다 하더라도 그래도 산중에서 공부를 많이 해서 우리 잠재력을 많이 키웠습니다. 저는 여러나라 불교를 다 경험을 다 했습니다. 일본 불교도 미국 들어가서 그 정토종 정토진종 같은 것은 훌륭한 그런 대학도 있습니다. 그 임제종 조동종 모두가 다 그 큰 선원이 여러 군데가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할 때는 그런 사람들 불교는 좋기는 좋은데 허우대는 좋은데 기가 빠져 있단 말입니다. 우리 한국 불교는 기가 살아 있습니다. 우리 젊은 스님네들 보면은 구참납자나 그런 분들을 보면은 저는 굉장히 존경심을 냅니다.
틀림없이 부처님 가르침 가운데서 아까 제가 말씀드린 바와 같이 달마 때부터 육조 혜능까지 순선시대(純禪時代) 순선시대의 수행법은 자성선(自性禪)입니다 자성선(自性禪)이라 바로 불성선(佛性禪)입니다. 또는 일행삼매(一行三昧)입니다. 참선의 교과서 같은 육조단경에서 보면은 일행삼매(一行三昧)라는 말이 다섯 군데나 있습니다. 그래서 그 단경 부촉품에 가서 보면은 그대들이 만약 여래의 일체종지를 얻을라고 하면은 일상삼매와 일행삼매를 공부할지니라 이런 말씀이 있단 말입니다. 사조 도신스님께서는 달마 때부터 육조혜능까지 내려 올적에 사조 도신스님 때의 법문이 제일 많습니다. 거기에도 일행삼매一行三昧 말씀이 있습니다. 일행삼매를 어디서 말했는고 하면은 문수설반야경文殊設般若經이라. 그 문수설반야경을 다 들먹이면서 사조 도신스님이 역설을 했습니다.
내 선법은 딴 것이 아니라 오직 달마때부터 말해 온 제불심제일(諸佛心第一)이라. 모두가 다 진여가 다 불성뿐이다 하는 그것과 또는 문수설반야경에서 말하는 일상삼매 일행삼매라 이렇게 말씀해서 그 방법까지도 구체적으로 말씀했습니다. 천지우주가 불성뿐이거니 화두도 역시 불성을 찾는데 하나의 방편에 불과합니다. 천지우주가 불성뿐이다 모두가 불성 아님이 없다 이렇게 안다고 생각할 때는 새삼스럽게 의심 할 아무런꺼리가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 불자님들은 굉장히 지금 총명한 그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웬만한 분들은 다 고등학교 이상 나오고 또는 고등교육을 받은 분들이기 때문에 논리학 체계도 다 갖춘 것이고 말입니다. 논리적으로 모순이 있으면 납득이 안갑니다. 그런데 부처님 말씀은 가장 합리적이고 가장 합법적이고 합니다 바로 우주의 도리이니까 말입니다.
아까 제가 말씀드린 바와 같이 순풍의 돛단배같이 부처님 가르침은 사실은 쉬운 것인데 너무나 잘나고 똑똑한 분들이 중간에들 많이 그냥 계셔 가지고서 자기들 나름대로 고집도 부리고 했기 때문에 부처님의 순수한 가르침 우주의 도리로 해서 순탄하게 갈 수 있는 그런 탄탄대로를 좀 어렵게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또 그런 분들이 계셨기에 우리가 또 재차 분발되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바로 생각하면은 모두가 다 고마울 뿐이고 감사의 합장만 우리가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불자님들 우리는 지금 다른 길이 없습니다. 오직 외길입니다. 또 우리 생명은 바람 가운데 등불이나 똑같습니다. 내일 갈 지 모래 갈 지 모릅니다.
아까 제가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저도 역시 6년 전에 이 자리에 제가 올 때도 다시 이 자리에 올 것인가 마치 루터(Luther, Martin 1483∼1546)가 그렇듯이 저도 역시 마지막 설법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때도 말씀했습니다마는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다행히 6년 뒤에도 이 자리에 와서 말씀드리게 된 것을 대단히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6년 동안에는 저 가까운 도반들이 벌써 저하고 어금 지금 나이가 드는 도반 스님들이 두분이나 가셔 버리셨습니다. 저도 70이 넘었거니 뭐 진작 저도 가버렸다 하더라도 미련을 둘만 하는 것은 조금도 없습니다마는 그와 같이 인생무상을 나이가 먹으면 먹을수록 절감이 됩니다. 우리 불자님들 내 생명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을 절대로 말으십시오. 우리 생명은 죽음이라 하는 것이 노소부정(老小不定)이라. (우리 생명은) 젊다고 해서 그야말로 뒤에 하고 늙다고 그래서 빨리 가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정말로 다 아시는 바와 같이 머리에 (붙은) 불탄 불을 끄듯이 꼭 서둘러서 부처님 길을 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렇다 그래서 꼭 저희같이 출가사문이 돼야만이 공부를 할 수가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처소는 어디가 있든지 간에 장사를 하시던 또는 무슨 사업을 하시든 또는 무슨 소임을 보시든 말입니다. 어떤 처소에 있다 하더라도 자기 주변 사람들 자기 주변 모두를, 모두를 부처님같이 생각을 꼭 하셔야 됩니다.
그렇게 하시는 것이 바로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화합적으로 보나 또는 사업이나 어떤 그런 일의 능률을 위해서나 가장 이것이 옳은 길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렇게 하셔서 금생에 마지막 길에 절대로 후회를 말으시고 저같이 칠십이 넘어서 청승맞다는 그런 말을 듣지 않도록 여러분은 아주 소장의 나이에 부처님 대사를 마치시기를 간절히 기원해서 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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