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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三國志)제83편 ※
누구도 예상치 못한 여포의 계략 (上)
한편 남양의 원술은 책사 도저(策士 陶貯)와 함께 후원을 거닐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원술이 답답한 뜻이 가득 담긴 어조로 말문을 열었다.
"들려온 소식에 의하면 유비와 여포가 다시 화해를 하고 서주와 소패, 두 성에 의지해 공동 방어를 하기로 했다는데,
이렇게 나가다가 어느 세월에 우리가 서주를 얻게 되겠소?"
그 말을 듣고 도저가,
"주공께서 서주를 얻으시려면 유비와 여포를 각각 다루셔야 합니다.
우선 여포와 교류해 유비를 돕지 못 하게 만들고 소패성을 공격한 다음, 기회를 보아 서주까지 도모하는거지요."
그러자 원술이 고개를 흔들며 실망한 어조로, "아,이 !..왜, 나도 여포에게 잘 못한 것이 있지 않소?
약속했던 황금과 비단을 안 줬으니 말이오."
그 말을 듣고 도저가 한숨을 내쉬며,
"어,허 !... 그 말씀이라면 주공께서 잘못 처리하신겁니다.
대업을 이루려면 무엇보다도 신의가 우선이죠.
그런데 주공께서 여포같은 소인배에 까지 신의를 잃는다는 것은 어떤 군자에게 잃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한 것입니다."
원술은 도저의 말을 듣고 황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선생 말이 맞소! 그럼 어떡하면 좋겠소?"
하고 말을 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도저는 뒤따르며 손짓을 하며 말했다.
"아, 주공! 여포가 지금 가장 원하는 것이 뭐겠습니까?"
"헹! 그자가 원하는 것이 뭐겠소? 군량 아니겠소?.. 지금 여포가 도처에서 병사들을 모집하면서 군량을 약탈하는데 혈안이 되있다고 하던데...."
"우리에겐 얼마를 달라고 하더이까?"
"헹 ! 정말로 욕심도 많은 놈이오.
다짜고짜 십만 석이나 달라고 하지 않소? 십 만석!"
원술은 핏대를 올려가며 여포의 요구를 원망하는 어조로 탓 하며 말하였다.
그러자 도저는,
"하하하하... 주공 ! 여포에게 이십 만을 주십시오."하고 말을 하며 손가락 두 개를 펴서 흔들어 보인다.
"엉 ? 이십 만?"
원술이 도저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자, 오히려 도저는 당연하다는 듯이,
"네 ! 이십 만 !... 그 정도로도 차라리 싼 겁니다.
큰 일을 이루려는데 그깟 양식이 문제겠습니까?"
하고 단언하듯이 말했다.
그러자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원술이 의미 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좋소! 까짓것 줘 버립시다. 하하하하..."
이런 일이 있고 난 얼마 뒤, 원술은 조정 대신들을 한자리에 불러놓고 말한다.
"여포가 나에게 밀서를 보내 유비를 돕지 않겠다고 했으니 이제 우리는 안심하고 소패를 칠 수 있게 되었소.
장군들 중에 누가 유비를 치고 오겠소?"
"소장이 출정하겠습니다."하고 장군 기령이 명을 받든다.
"좋소. 유비는 기세가 꺾인 상태이고 소패의 군사도 이 만에 불과하오.
오만 대군을 내줄 테니 앞으로 열 흘안에 소패를 취하시오."
"알겠습니다."
기령의 대답이 끝나자 원술은 좌중을 향하여 명하였다.
"명이오! 나는 나가서 후방을 지원할 테니 여포에게 이상 징후가 보이면 동시에 공격하시오!"
원술의 명이 끝나자 좌중의 문무 대신 모두가, "알겠습니다!"하고 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한편, 남양의 원술이 오 만의 병력을 기령에게 주어 소패를 공략하러 출발했다는 소식을 들은 유비는 급히 여포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서한을 작성하였다.
"자룡! 솔직히 말해, 우리에게 이 만 정병이 있는 것 처럼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만 명도 채 안 되지 않는가?
익덕과 운장에게 군사를 나누게 했지만 이 정도의 병력으로는 진군해 오는 기령의 오 만 군사와 대적하기에는 숫적으로 현저한 열세일세.
그래서 여포에게 원군을 요청하는 서신을 썼으니 자네가 전달하고 답을 받아오게."
"예, 다녀오겠습니다. 헌데 만약 여포가 출병을 거절하게 되면요?"
"그러면 진궁을 찾아가게. 여포 보다 우호적이지는 않지만 그 자는 아주 영리한 사람이야.
그러니 소패를 잃게 되면 서주까지 위험해 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꺼야.
그러니 어서 가게."
"알겠습니다."
자룡은 그 길로 서주성을 향하여 말을 달렸다.
한편, 유비와 그의 가족을 비롯하여 관우, 장비, 자룡을 소패성으로 보내버린 여포는 비로서 안도의 숨을 내쉬며 승자의 기쁨을 누리고 있었다.
그리하여 물가에 있는 정자에서 새로 맞은 애첩 초선(愛妾 貂蟬)을 끼고 앉아 술을 마시며 풍류를 즐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때 소패성에서 달려온 유비의 서한을 받아본 진궁이 놀이에 빠져있는 여포를 찾아왔다.
"봉선 ! 원술의 대장, 기령이 대군을 이끌고 소패를 치려고 오는 마당에 어찌 여기서 태평하게 희희낙락 하고 있는거요. 예?"
그러자 여포가 술취한 얼굴로,
"뭐가 어때서요? 서주도 아니고 소패를 치러 온다는데 뭔 걱정입니까?"하고 사돈 남말 하듯이 대꾸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여포의 태도가 못 마땅한 진궁이,
"봉선 ! 내가 여러번 말하지 않았소? 일단 소패를 잃게 되면,
서주성은 방어막을 잃는 셈이라 위험에 빠지게 된다고..게다가 원술한테는 군량 이십 만석을 받고,
유비를 돕지 않겠다고 약조까지 했으니 진퇴 양난의 위기를 어찌 대처하실 생각이오?"
그러자 여포는 아무런 일도 아닌 듯이 대단히 침착한 어조로 말한다.
"선생,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세상 일이란 사람의 뜻대로 되는 것만은 아니잖소?"
그러자 진궁이 답답하단 어조로 여포를 닥달한다.
"봉선 ! 장비가 술을 탐하다가 서주를 잃었다는 것을 잊으셨소? 그런데도 이러고 있는거요?"
그 말을 듣고 여포가 퉁명스러운 대답을 한다.
"장비? 아니, 그런 놈을 어찌 나하고 비교하는 거요? 나는 적토마와 방천화극이 있질않소?"
그러자 진궁은 여포의 대답이 한심스럽다는 듯이, 술취해 앉아 있는 여포를 붙잡아 일으키며,
"지금 당장 군사를 이끌고 소패를 구하러 가야 하오!"하고 소리 치자,
여포가 진궁에 못 이겨 끌려 나가며 소리친다.
"그래요! 나가요, 나가!"
※ 삼국지(三國志)제84편 ※
누구도 예상치 못한 여포의 계략 (下)
한편, 서주성을 다녀온 조자룡은 기령을 맞아 싸우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성밖으로 나오던 유비를 맞아 마상(馬上)에서 보고했다.
"주공! 여포가 출병하겠답니다."
"좋아! 여포군이 언제쯤 소패에 도착할 것 같은가?"
"여포가 오리파에 도착하는대로 연회를 마련할테니 주공께서 꼭 오시라는 당부가 있었습니다."
"연회? 그게 무슨 뜻인가? 생사가 걸린 전투가 눈앞에 닥쳤는데 어찌 한가로이 술을 마시잔건가?"
거기에 대해서는 자룡도 의문을 갖고 말한다.
"모르겠습니다. 연회를 통하여 적을 물리치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지금까지 아무 말 없이 지켜보던 장비가 한마디 한다.
"형님, 아무래도 여포놈이 원술에게 매수된 게 아닐까요?
그 연회는 필시 형님의 목숨을 노리는 계략일게요. 그러니 형님, 절대 가시면 안 됩니다."
그러자 관우도 한마디 한다.
"형님, 여포가 원술에게 군량지원을 받았으니 그의 의도가 불분명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대비를 해야 합니다."
그러자 장비와 관우의 말을 유심히 듣던 유비가 결심한 어조로 말했다.
"가봐야겠네."
"넷?"
"형님!"
관우는 물론, 장비까지 유비의 대답에 깜짝 놀라며 연회 참석을 만류하였다.
그런 기미를 알아채고 유비가 입을 열어 말한다.
"여포가 나를 해치려 하진 않을걸세. 게다가 원술의 대군과 싸우려면 위험에 빠지는 한이 있어도 직접 부딪쳐야 할 것이야..."
유비의 결심이 확고하다고 느낀 장비는,
"정, 가시겠다면 내가 호위하겠소."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유비가 장비를
돌아보며,
"자네는 여포를 보자마자 싸우려 들 텐데 안 되네!"하고 잘라 말했다.
그러자 머쓱해진 장비는,
"음! 그러나 나는 꼭 가야하겠소. 이랴!"
하고 말을 달리며 저만치 앞서가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미 장비를 붙잡기는 틀렸다고 생각한 유비는 관우와 자룡을 돌아보며,
"운장, 자룡! 성을 지키고 있게!
다녀오겠네."하고 말을 마침과 동시에 박차를 가해 멀찍이 앞서가는 장비의 뒤를 쫒아갔다.
"형님! 조심하십시오!"
유비의 등 뒤에서 관우가 당부의 말을 크게 외치었다.
두 사람은 얼마쯤 말을 달려 여포가 거대하게 진을 치고 있는 오리파 목책 앞에 도착하였다.
유비가 장비에게 말한다.
"셋째, 보고있나? 여포군의 위세 말일쎄. 여포가 주색을 밝히기는 하지만 싸움에 있어서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최고의 맹장일세."
그러자 장비는 코웃음을 치며,
"헹! 여우같은 놈! 카악~ 퇘!"하고 침을 뱉었다.
잠시후, 두 사람이 도착한 것을 발견한 수문장이 문을 열고 달려나온다.
"장군들! 저희 주공께서 안으로 드시랍니다."
하며 앞장 서서 가는 것이었다.
잠시후, 유비가 수문장을 따라 여포의 군막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자 여포가 밖으로 나와 유비를 영접한다.
"현덕! 훗날 형편이 좋아지면 오늘의 은덕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오."하고 웃으면서 말하였다.
그러자 유비는 고개를 숙이며,
"선(先)장군의 은혜를 어찌 잊겠습니까."하고 말을 마치는 순간, 이어서 수문장이 외쳐댄다.
"남양에 기령 장군 도착이오!"
그러자 유비는 물론 장비도 깜짝 놀랐다.
그것은 수문장의 안내로 여포의 군막 계단을 오르던 기령도 마찬가지로 먼저 도착해 있던 유비와 장비를 놀란 눈으로 번갈아 쳐다 보았다.
순간, 장비가 칼을 뽑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유비는 얼른 손으로 장비의 칼을 제지하였다.
이것을 본 여포가,
"아니, 아니... 익덕 형! 무기에 손대면 안 되지!"
"헹! 내가 왜 네 형제냐?"
역시 장비다운 대꾸였다.
그러자 여포가 <뺀줄뺀줄> 웃으면서,
"마음대로 하라지! 그러나 술에 있어서는 우리는 형제가 아니오? 응?..."
"그렇치! 나 장비는 천 잔을 마시더라도 안 취한다!"하고 예의 그의 성품대로 내뱉듯이 여포에게 쏘아 붙였다.
"하하하핫... ! 익덕은 허풍이 쎄군! (유비를 가르키며)
이 형제가 출정한 다음날은 많이 취한 것 같던데?..."
여포가 장비의 아픈 곳을 찔렀다. 그러자,
"에잇!" ...
장비는 더이상 대꾸하지 못하였다.
여포가 장비와의 입씨름을 끝내고 미소를 지으며 유비와 기령의 손을 각각 잡고 군막안으로 이끌며,
"내가 기분이 매우 좋아 두 분을 오시라고 해서 한잔 하려고 청했소.
자! 들어 갑시다."
여포의 군막안에는 술상이 차려져 있었다.
중앙에 앉은 여포의 우측에는 기령의 자리가, 좌측에는 유비의 자리가 서로 마주보고 있었고,
장비는 유비의 뒤로 한 계단 밑에 자리했다.
여포가 술잔을 들고 기령과 유비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자, 건배!"
이렇게 한잔을 마신 여포가 입을 연다.
"이렇게 좋은 술에 풍악이 없는 것이 아쉽구려.
다음에는 다시 좋은 자리를 만들어 술과 함께 풍악이 있도록 하겠소."
그러자, 싸우러 온 적장 유비와 예상하지 못 한 술자리에 동석한 기령이 여포를 향해, "상 장군! 그런데 나를 죽일 셈이오?"하고 퉁명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그러자 여포는,
"아니오. 절대!...."
그러자 기령이 유비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여포에게 되묻는다.
"그럼, 저 귀 큰 놈을 죽일거요?"
그 순간 장비가 칼을 움켜잡으며 기령을 쏘아보며 중얼거린다.
"저 놈이!..."
"아니오, 아니오 !..."
여포가 황급히 손을 들어 장비를 제지하고 기령을 향해 말한다.
"이런, 성급하시긴... 그게 아니래두요."
그러자 이번에는 유비가 여포에게,
"그게 아니라면 장군께서는 연회를 거두시고 기령 장군과 자웅을 겨루도록 해 주시오."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여포는 유비와 기령을 향하여 양 손으로 제지하는 모습을 보이며,
"아니오, 그건 안 되오!
나 여포가 그동안 많은 사람을 죽였지만 평소 싸우는 것을 싫어하오.
그래서 싸우기 전에는 항상 화해를 우선시 했소.
내가 오늘 두 분을 청한건 술자리를 통해, 화해를 시키려 함이오."
그러자 기령이 눈알을 굴리며 여포에게 물었다.
"상 장군, 그게 무슨 뜻이오?"
그러자 여포는 미소를 머금으며 기령에게 의외의 대꾸를 하였다.
"말해 보시오. 몇 근의 활을 쏠 수 있고 사거리는 얼마인지?"
그러자 기령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소장 무능하나, 오백 근짜리 활을 쏘아서 오십 보내의 적군의 심장을 관통할 수 있소."하고 자신만만한 어조로 말하였다.
그러자 여포가,
"으흠, 훌륭하군! 그럼, 장익덕! 당신은 몇 근의 활을 쏠 수가 있고, 사거리는 얼마요?"하고 장비를 보며 말했다.
그러자 장비는 헛웃음을 켜며, 따라 놓았던 술을 단숨에 들이키고 잔을 <탁> 내려 놓으며 말한다.
"난 팔백 근짜리 활로, 팔십 보내의 적군의 갑옷을 관통시킬 수가 있다!"
그 말을 듣고 여포는,
"하하하하..."하고 웃으며 부하에게 명한다.
"여봐라!"
"옛!"
부하가 달려와 여포앞에 무릅을 꿇고 부복하자 여포가 명령한다.
"내 방천화극을 군문 앞에 꼿아 놓아라!"
"넷!"
그리고 여포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여러분! 밖으로 나갑시다."하고 유비와 기령, 장비에게 손짓을 하며 밖으로 나갈 것을 표시하고 자신이 앞서 군막 밖으로 나갔다.
여포의 군막에서 바라본 군문 아래에는 방천화극이 땅바닥에 꼿혀 있었다.
여포가 방천화극을 향하여 손을 들어 보이며 말한다.
"저 군문까지는 백 이십 보는 될꺼요. 내가 활을 쏘아 방천화극에 달린 술(鉥)을 맞추면 두 사람은 화해를 하고 빗 나간다면 마음껏 싸우시오.
싸울지 말지는 하늘의 뜻일 테니 어떻게 하시겠소?"
기령은 여포의 말을 듣고, 속으로,
(거리도 멀고, 더구나 방천화극 끝에 달린 술을 맞춘다니, 그건 불가능해... 절대 불가능해 !...)하고 중얼거렸다.
한편, 유비도 속으로,
(이제는 모든 것을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하늘이 여포를 도와 명중
시켜야 할텐데...)
하는 걱정을 하였다.
그러자 여포의 뒤에 서있던 장비는,
"여포 이놈, 허풍떨지 마라. 저걸 어찌 맞춘다는 말이냐?"하고 투덜대었다.
그러자 여포는,
"흐음!..."하며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군문 앞에 꼿힌 자신의 방천화극을 바라보았다.
유비가 여포를 향해
"쏘십시오."하고 고개를 숙여 보이며 말했다.
그러자 기령은 커다란 눈알을 굴리며,
"쏘십시오."하고 당연히 못마출것이라고 속으로 생각하였다.
여포가 쏜화살 이 정확하게 방천화극 끝에달린 술을 맞추어 떨어뜨렸다.
※ 삼국지(三國志)제85편 ※
소패왕(小覇王) 손책(孫策)의 등장
기령은 어쩔 수 없이 대군을 그냥 거느리고 면목없이 남양으로 돌아왔다.
그리하여 원술에게 전후 곡절을 낱낱이 고하고 여포의 편지를 내보이며 말했다.
"여포가 머리를 써서 소장과 휴전을 하도록 했습니다.
누구든 천명을 거역하는 자는 자기가 나서서 징벌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원술이 쓴 입 맛을 다시며 화를 낸다.
"이런, 후레자식 같으니, 괘씸하구나! 전에는 군량 이십 만석을 갈취하더니 이젠 그따위 장난질로 사람을 희롱해?
그놈이 그렇게 나온다면 이제는 내가 몸소 대군을 거느리고 나가 서주와 소패를 한꺼번에 치리라."
기령은 자신의 면목없음을 부끄러워하면서도 그것만은 말린다.
"주공! 여포를 섣불리 거드리면 안 되옵니다.
그는 용맹하기만 한 장수인 줄로만 알았는데 정작 만나 보니 계략도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더구나 서주는 공격하기에 어렵고 지키기에는 쉬운 곳이므로 대군이 출병하더라도 쉽게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책사 도저(策士 陶貯)가 앞으로 나서며 말한다.
"주공! 노여움을 거두십시오. 제 생각에는 주공께서 출병하시어 여포를 죽여 버리게 되면 우리에게는 하나도 이로울 것이 없습니다.
우선 우리가 보낸 군량이 실제로 적군에 의해 쓰일 것이고 여포와 대적하게 되면 유비는 여포편에 서게 될 것이니,
둘이 손잡고 우리와 대치하게 되면 역시 조조의 바람대로 되는 것이옵니다."
그러자 원술이,
"나도 아오. 대업을 이루려면 작은 것을 탐 할순 없지. 그러나 여포 그놈이 괘씸해서 참을 수가 없소."
"주공! 그러나 적을 미워해서만은 안 됩니다. 그건 판단력만 흐려질 뿐입나다.
기억하시겠지만 조조는 적이라고 생각되면 그 어느 누구보다 더 친밀감을 표시하고 웃는 낯으로 대한다고 합니다."
"그렇소. 사실 조조란 자는 여포보다 더 무서운 간웅임에는 틀림없지."
"제 생각에는 여포가 괘씸하기는 하나 군문에서 보면 천하의 활솜씨로 천하의 용맹함을 떨쳤으니,
주공께서 대업을 이루시려면 이정도 일 쯤은 그냥 참으셔야 합니다.
그런데 주공께서는 왜 여포를 적으로만 대하고 우리의 친밀한 우방으로 둘 생각을 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주공, 기회는 아직 많이 있습니다."
책사 도저가 여기까지 말했을 때, 시종 하나가 달려오며,
"주공! 여강 태수 육강(陸康)을 치러 갔던 손책(孫策) 장군이 방금 개선하여 뵙기를 청합니다."하고 아뢴다.
그러자 원술은 반색을 하며,
"오오, 소패왕(小覇王 : 손책의 별명) 손책이 개선을 하였다고? 어서 들라 하여라!"
잠시 후에 몸에는 갑옷을 입고 허리에 장도(長刀)를 찬 홍안 미소년 손책이 정보(程普), 황개(黃蓋), 한당(韓當), 조무(祖茂) 등 백발이 성성한 노장들을 거느리고 들어와 아뢴다.
"소장 손책이 주공의 명을 받들고 나가 육강을 치고 돌아왔습니다."
원술은 당상에서 벌떡 일어나며 반색을 하며 물었다.
"그래? 여강은 이곳에서 팔 백리나 떨어진 곳인데 어찌 이리 빨리도 여강을 정벌하고 왔는가?"
그러자 손책은,
"정예군 오 천을 거느리고 주야로 말을 달려 사흘안에 여강에 도착하였고,
육강이 전열을 가다듬기 전에 선제공격을 하여 단숨에 그의 수급을 취했습니다."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자 좌중에 문무 대신들은 원술과 더불어 화들짝 놀라며 반색을 한다.
손책이 할 말을 잊고 입을 벌리고 좋아하는 원술에게 계속해 아뢴다.
"이제, 여강의 이 군(二 郡), 사 현(四 縣), 다섯 개의 성(五 城)은 모두 주공의 휘하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여강 태수 육강의 수급은 여기 가져왔습니다."하면서 나무상자를 열어 보이는데 그 속에는 소금에 절인 육강의 수급이 들어있었다.
손책의 말을 들은 원술은 너무도 기쁜 나머지 단하로 달려 내려와 몸소 손책의 손을 잡아 당기며 당상으로 이끌었다.
"그대의 용맹은 부친인 손견 장군에 비하여 나으면 낫지 못 하지 않네.
나에게 이렇듯 용맹무쌍한 손랑(孫郞)이 있으니 천하의 여포라도 두렵지 않군.
하하하하 !... 여봐라! 연회를 열어라! 개선 장군 손랑을 취하게 하리라!"
이리하여 이십일 세인 소년장군 손책은 당상으로 올라가 술잔을 받는다.
이 소년이야말로 한때에는 천하를 주름잡다가 양양 현산 싸움에서 무참하게 불귀의 객이 되어 버린 강동(江東)의 명장 손견(孫堅)의 맏아들이었다.
아버지 손견이 세상을 떠났을 때 손책은 아직 열여섯 살이었다.
어려서부터 머리가 총명하고 무예에 능통했던 손책은 아버지의 위업을 이어 받아 보려고 무척 애를 썼다.
그러나 소년의 힘으로 일국을 유지하기에는 세상이 호락하지 않으므로 그는 마침내 장사(長沙)를 빼앗기고 가족을 곡아(曲阿) 땅으로 옮긴 다음,
객지로 떠돌아 다니다가 이 년 전에 아버지의 친구인 원술의 휘하에서 식객 노릇을 하며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던 것이다.
이날 밤, 손책은 술이 취해 숙소로 돌아왔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불세출(不世出)의 영웅이셨는데, 나는 아직도 남의 식객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으니 내 운명이 장차 어찌 될 것인가?)
손책은 앞날을 생각하면 가슴에서 피가 끓어오르는 것만 같았다.
이날 밤은 마침 달이 무척 밝았다. 손책은 이런저런 생각에 잠을 이룰 수가 없어서 뜰로 나와 달을 우러러보고 있노라니까 불현듯 설움이 걷잡을 수 없이 복받쳐 올랐다.
그리하여 소리내어 흐느껴 울고 있노라니까, 문득 어디선가 인기척이 나며.
"도련님! 부질없이 울기는 왜 우시오? 전도가 양양한 청년 장군이 우시다니 말이 되는 소리요?"하고 가볍게 꾸짖는 사람이 있었다.
손책이 눈물을 훔치며 깜짝 놀라 돌아보니 아버지 때부터 가신으로 내려오는 주치(朱治)였다.
"오오, 주치였소? 나는 오늘 하루를 헛되이 보낸 것이 돌아가신 아버지께 부끄럽고 원통해서 울었소.
우리들은 언제나 옛 고향, 장사(長沙)로 찾아가게 되겠소?.. 그래도 그대만은 나의 이 안타까운 심정을 헤아려 주는구려 !"
"오오, 제가 도련님의 원대한 뜻을 어찌 모르오리까? 나도 강동의 가신(家臣)이 아니옵니까?"
"나는 이미 이십일 세가 되었으나 아직도 선친의 땅을 찾지 못하고 원술의 그늘에서 식객 노릇이나 하고 있으니 사내 대장부로서 이처럼 면목없는 일이 어디 있겠소?"
주치는 그 말을 듣고 크게 감격하며,
"도련님께서 그렇듯 큰 뜻이 있다면, 지금 불운에 처해 있는 외숙 오경(外叔 吳璟)을 구한다는 구실로 원술에게서 군사를 빌려 가지고 강동으로 가서 큰일을 도모해 보면 어떻겠소?"
손책은 그 말을 듣자 불현듯 얼굴에 환희의 빛이 떠올랐다.
"그거 참 좋은 생각이오."
마침 그때 그들의 말을 엿듣고 있던 사나이가 불쑥 나타나며 말한다.
"두 분의 계획은 나도 찬성이오.
만약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면 나도 수하의 정병 백여 명을 거느리고 동참하겠소."
이렇게 두 사람을 놀라게 하면서 나타난 사람은 원술의 모사인 여범(範)이었다.
손책은 크게 기뻐하며 그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여범은 손책을 경건히 우러러 보면서 말한다.
"강동으로 돌아가 대업을 도모하신다는 데는 진심으로 찬성이오.
그러나 원술이 군사를 순순히 빌려 줄지는 그게 걱정이오."
"내게 생각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오."
"어떤 좋은 생각을 가지고 계신데..."
"원술이 평소부터 몹시 탐내는 물건이 내게 있는데, 그것을 담보로 군사를 빌릴 수가 있을 것이오."
손책은 그렇게 말하고 자신있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것이 무엇이온데...."
"여범과 주치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의아스러워하자 손책은, "내가 선친에게 전국 옥새(傳國 玉璽)를 물려받았는데 원술은 예전부터 그것을 탐내왔소."
"예엣? 옥새를? 아아, 그러면 전국 옥새를 도련님이 가지고 계셨던가요?"
"그렇소. 선친께서 돌아가신 뒤로 내가 소중히 간직해 두었는데.
원술은 심증은 있었지만 증거가 없어 그동안 나의 눈치를 보면서 전국 옥새의 행방에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오."
"아, 인제 알겠습니다. 원술이 도련님을 친자식처럼 가까이 하려는 이유가 거기 있었군요.
그러나 그렇게 소중한 옥새를 원술에게 내주는 것은 생각할 일이 아닐까요?"
"옥새가 아무리 소중하기로, 그 물건에 얽매어 큰 뜻을 행동으로 ...
※ 삼국지(三國志)제86편 ※
,소패왕 손책의 활약상 (上)
손책은 네 사람의 장수들과 궁을 빠져나오며 말한다.
"장군들! 반 시각내에 집을 정리하고 가솔들을 강동으로 은밀히 보내도록 하십시오."
그러자 황개가 반문한다.
"공자! 그렇게 서두를것까지야...."
"원술이 마음이 변하면 군사를 보내 추격할 겁니다.
지금은 원술과 싸울 때가 아닙니다."
그 말을 듣고 네사람의 장수는 일제히,
"알겠습니다!"하고 대답하며 뿔뿔히 흩어졌다.
이리하여 소년장군 손책은 그날로 삼천의 군사와 혁혁한 장수 네 사람을 거느리고 원정 길에 올랐다.
손책의 뒤를 따르는 사람은 여범, 주치를 비롯하여 선친 때부터의 가신(家臣) 정보(程普), 황개(黃蓋), 한당(韓當), 조무(祖茂) 등의 믿음직스러운 장수들이었다.
손책 일행이 역양(歷陽)에 이르렀을 때, 홀연 젊은 무사 한 사람이 달려와 말에서 뛰어 내리며,
"손책 형님 오랜만입니다!"하고 외치는 것이었다.
"오오, 자네는 주유 아닌가?"
손책은 너무도 반가워 자신도 말에서 뛰어내리며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그 젊은 무사는 여강(廬江) 출신의 주유(周瑜)로 손책과는 어린시절부터 각별히 지낸 죽마고우(竹馬故友)였다.
주유는 손책이 큰 뜻을 품고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도 그를 돕기위해 찾아오는 길이었던 것이다.
"참 잘 와 주었네. 부디 나를 도와주게!"
"내가 형님을 위해서야 무엇을 아끼겠소. 목숨을 걸고 도와 드리리다."
두 사람은 마상에 올라 행군을 하면서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형님! 대사를 도모하려면 많은 현인(賢人)이 있어야 하는데, 강동에 두 사람의 현인이 있다는 것을 아시오?"
"강동의 두 현인?.... 그 분들은 어떤 분인가?"
"초야에 숨어 사는 두 현인으로, 한 사람은 장소(張昭), 또 한 사람은 장굉(張紘) 이라는 분이오.
장소라는 분은 천문 지리에 밝고, 장굉이라는 분은 재기(才氣)가 넘치는 분으로 경서(經書)에 능통하여 따를 자가 없다하여 두 분을 강동의 현자라고 합니다."
"그렇게나 휼륭한 분이라면 어떻게 해야 모셔올 수가 있겠나?"
"권력으로 굴복시키려 해도, 재물을 산처럼 싸 들고 가도 꿈쩍하지 않겠지만,
형이 직접 찾아가서 예의를 갖추고 뜨거운 마음으로 그들을 감동시켜 보시오.
그러면 마음을 움직이시지 않겠소?"
"그렇다면 내가 직접 그분들을 찾아 뵙기로 하겠네."
손책은 강동에 도착하자, 몸소 장소를 찾아갔다.
그리하여 자신의 뜻을 말하며 도와 줄 것을 정중히 간청하였다.
"하하하. 손 공. 보다시피 나는 초야에 묻혀 책이나 읽는 사람이오.
새삼스러이 어지러운 세상으로 나갈 마음이 없소이다."
"허나, 아무것도 모르는 저에게 채찔질을 하셔서, 부친의 원수를 갚고 강동의 백성들이 선친의 시절처럼 걱정없이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손책은 수없이 고개를 조아렸다.
"뭐라 해도 내 마음은 바뀌지 않을 것이오.
이제 그만 돌아가 줬으면 좋겠소."
장소는 꿋꿋하게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오늘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만, 허락을 하실 때까지 매일 찾아 뵙겠습니다."
그날부터 손책은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매일같이 장소의 집을 찾아갔다.
그리고는 장소의 서재에서 매일 같이 그가 읽는 책을 함께 물려 읽으며 여러 날을 함께 보냈다.
그러던 어느날 손책이 아침 문안을 드리자 장소가 손책을 곧 방안으로 들어 오라고 말하며,
"허어... 내가 손 공의 끈기에 졌소.
내가 힘이 될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운명을 같이해 봅시다.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손책은 반색을 하며,
"정말이십니까? 뭐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부디 많은 가르침을 주소서..."
장소가 손책에게 넘어가자, 장굉도 쉽사리 그의 편이 되었다.
장소가 인정한 사람이라면 믿어도 될 것 같아서였다.
그리하여 손책은 장소를 장사(長史)겸 무군중랑장(撫軍中郞將)에 봉하고, 장굉은 참모 정의교위(正議敎尉)에 봉하여 자신의 외숙 오경을 내쫒은 양주 자사 (楊州 刺史) 유요(劉繇)를 칠 일을 함께 논의하였다.
유요는 한실 종친인 태위 유총(太尉 劉寵)의 조카요, 연주 자사 유대의 아우이다.
따라서 그의 휘하에는 많은 맹장이 있었다.
유요는 손견의 아들 손책이 자기를 치기 위해 많은 군사를 몰고 왔다는 소식을 듣고 장수들을 불러 모아 상의하였다.
"놈이 제 외숙을 단양 땅에서 내몰아 버린 데 대한 앙심을 품고 왔구나."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 손책의 병력은?"
"군선 수십 척에 병사는 대략 삼천 정도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장영(張英)은 즉시 우저(牛渚)의 요새에 잠복해 있다가 손책을 쳐부숴라."
그러자 말석에 앉아 있던 한 젊은 사람이 큰소리로 외친다,
"저를 선봉으로 삼아 주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적을 쳐부수겠습니다."
그 말에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바라보니, 그는 동래 황현(東來 黃縣)의 태사자(太史慈)라는 젊은 장수였다.
유요는 태사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자네같은 풋내기가 이런 싸움에 선봉을 맡다니, 아직은 자격이 없다!"하고 일언지하로 퉁겨버렸다.
태사자는 얼굴을 붉히며 입을 다물었다. 만좌중에 수모를 당한 것이 몹시 불쾌했던 것이다.
장영은 군령을 받고 군사를 거느리고 우저로 나아가 군량 십만 석을 저각(邸閣)에 쌓아 놓고 손책을 기다렸다.
한편 손책은 군사를 거느리고 우저로 진군하였다.
양편 군사들이 우저에서 맞서게 되자 장영이 선두에 나서서 손책을 바라보며 호령한다.
"이놈, 손책은 듣거라. 너같이 어린 놈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내가 누구라고 감히 덤벼오느냐?"
장영의 입에서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노장 황개가 장영을 향하여 창을 휘두르며 달려나온다.
"이놈아! 헛소리 그만하고 내 창을 받아라!"
황개와 장영이 한창 어울려 싸우는데, 돌연 장영의 군 뒤에서 까닭모를 소란이 일어난다.
장영이 놀라 군사를 돌이키니 손책은 그 기회를 이용해 맹렬하게 엄습했다.
장영이 급히 본진으로 돌아오다 보니 성안에서 난데없는 불길이 타오르며 검은 연기가 하늘을 덮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저게 웬 불이냐?"
"어떤 놈이 우리를 배반하고 배후에서 군량고(軍糧庫)에 불을 질렀습니다."
성을 지키던 부하들이 성밖으로 쫒겨오며 소리친다.
"도대체 어떤 놈이 이런 일을 계획했단 말이냐?"
장영은 깊은 산 속으로 들어와 호흡을 가다듬으며 물었다.
그러나 그 내막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것을 모르는 점에 있어서는, 의외의 승리를 거둔 손책도 마찬가지였다.
"대체, 적들이 지키고 있던 성안에서 불을 놓아 우리를 도와 준 사람은 누구였을까?"
손책이 부하들과 그런 공론을 벌이고 있을때, 저 멀리 산 위에서 삼백여 기의 군마가 깃발을 날리고 진고를 울리며 이리로 내려오고 있었다.
"우리는 손 장군 편이니, 공격하지 마시오!"
선봉에 선 대장인 듯한 사람이 이쪽을 향하여 소리치는 것이었다.
이윽고 거리가 가까워져오자 대장인 듯싶은 두 사람이 말에서 내려 손 장군을 만나게 해달라고 외친다.
한 사람은 얼굴이 시커먼 데다가 수염이 몹시 사납게 난 장수였고, 다른 한 사람은 눈이 날카롭게 빛나 보이는 구 척 장신이었다.
"내가 손책이오. 당신들은 누구시오?"
손책이 앞으로 나서며 대꾸하자, 검은 수염의 사내가 앞으로 나서며 말한다.
"아, 귀 공이 손 장군이오? 나는 구강(九江)의 호적(湖賊) 두목으로, 장흠(蔣欽)이라 하고, 옆에 이 사람은 내 아우뻘 되는 주태(周泰)라고 하오."
"허어, 호적이라니?"
"호적이란 배 위에서 살면서 양자강(揚子江)을 오르내리는 배의 재물을 빼앗아 먹고 살아가는 일종의 해적이란 말이오."
그 소리를 듣자 손책은 정색을 하고, 꾸짖듯이 말했다.
"나는 불의를 징벌하고 양민을 돕는 사람이오.
그러한 나를 당신들은 무슨 까닭으로 찾아왔소?"
"우리들은 손견 장군의 아드님인 손책 장군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그 옛날 양민의 시절로 돌아가기 위해 개과천선(改過遷善)하려고 찾아온 것이오."
"음 ....선친의 양민시절로 돌아가겠다고요?"
"그렇소. 그렇다고 무작정 찾아와서 부하로 써달라기는 너무도 몰염치한 것 같아 우리들이 장영의 진영으로 달려 들어가 군량고에 불을 질러 결국은 그들을 물리치는데 한몫을 하였소.
※ 삼국지(三國志)제87편 ※
소패왕 손책의 활약상 (中)
손책이 도망치는 자신을 추격해 온다
는 소식을 듣자, 유요는 말릉으로 가려던 방향을 틀어 남은 병력으로 우저로 향했다.
손책이 추격전을 펼치느라고 우저는 방비가 소홀하리 라고 짐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요의 동태가 즉각 손책에게 보고되자 정보를 시켜 한편으론 유요를 추격하게 하고, 손책 자신은 주력군(主力軍)을 이끌고 우저로 향했다.
손책이 우저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어느덧 가까이 다가온 적장 우미
(于靡)가 결사적으로 덤벼들었다.
손책은 두세 합을 싸우다가 도망치는 우미의 뒷덜미를 답싹 움켜잡았다.
그러자 우미의 몸이 말등을 떠나 손책의 한 손에 대롱대롤 매달리며 질질 끌려온다.
그 모양을 보고 유요의 부장 번능(副將 樊能)이 쫒아나오며 소리쳤다.
"이놈, 손책아, 게 섯거라!"
그러나 손책이 말머리를 힐끗 돌리며 검을 후려치자 달려오던 번능이 단칼에 목이 달아나며 말에서 고꾸라져 떨어지는 것이었다.
이런 손책의 활약상을 지켜보던 유요의 군사들은 감히 싸울 생각을 못하고 뒤로 도망치기에 급급하였다.
그리하여 유요는 얼마 남지 않은 군사를 거두어 가지고 형주(荊州)를 바라보고 떠났다.
이제는 형주에 있는 유표(劉表)에게 의지하는 수밖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다고 생각 되었기 때문이다.
손책은 곧 군사를 거두어 말릉에 남은 유요의 잔당을 치러 갔다.
말릉에는 적장 설례를 비롯하여 장영, 전횡 등의 장수들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손책이 부근 일대의 패잔병을 소탕하며 말릉에 이르자, 성 위에서 장영이 손책을 발견하고,
"앗, 저게 손책이 아니냐!"하고,소리치며 손책을 향하여 활을 냅다 쏘아 갈겼다.
화살은 명중하였다. 화살이 손책의 다리에 꽂히는 바람에 손책은 말에서 떨어졌다.
"앗! 손 장군이 적의 화살에!"손책의 수하 장수들이 우르르 달려와 손책을 잡아 일으켰다.
그러나 손책은 일어나지 않았다.
부하들이 손책을 업고 진중으로 피신하였다.
그날 밤, 손책의 진중에는 조기(弔旗)가 높이 걸리고 군사들은 슬픔에 싸여 울었다.
"손책 장군이 적의 화살에 어의없게 세상을 떠났다."
소문은 일파만파로 퍼져나가며 군사들은 목을 놓아 울기까지 하였다.
장영은 척후병에게 그런 소식을 전해 듣고 무릎을 치며 기뻐하였다.
"그럼 그렇지. 내 화살에 살아 남을 놈이 어디 있단 말이냐!"
그러면서도 확실을 기하기 위해 일반 백성들에게 알아 보니 손책의 진중에서는 오늘 아침부터 장례준비에 여념이 없다는 것이 아닌가?
이제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장례는 삼일장으로 거행 하기로 했다는 소리까지 듣고 보니,
"손책은 분명히 죽었다. 이제는 우리의 세상이 되었다!"
장영과 전횡은 미소를 지으며 기뻐하였다.
손책이 장영의 화살을 맞고 쓰러진지 삼일 째, 손책의 상여가 많은 군사들에 들려서 산중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산과 들에 숨어있던 장영, 전횡의 군사들이 일시에 상여 행렬을 기습하였다.
이번에야 말로, 손책의 군사를 전멸시킬 수가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이쪽 군사들이 사방에서 함성을 지르며 덤벼들자 지금까지 장례 행렬인 줄만 알았던 손책의 부하들이 별안간 사방으로 흩어지며 공격 대열을 정연히 갖추면서,
"장영과 전횡을 붙잡아라!"하고, 천지가 진동할 듯한 고함을 지르며 공격해 오는 것이 아닌가?
"앗, 속았구나!"
장영은 기겁을 하며 놀라 군사를 되돌리려 하자 손책이 숲속에서 달려나오며,
"네가 찾던 손책은 여기 있다. 장영, 네가 어디로 도망을 치려 하느냐! 내 창을 받아라!"
손책의 고함소리와 함께 장영은 몸에서 피를 뿜으며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전횡도 황개가 휘두르는 칼에 목이 떨어져 나갔다.
그리하여 두 장수를 잃은 군사들은 제각기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였다.
이리하여 말릉성은 손책의 계교에 감쪽같이 넘어가 완전히 점령당했다.
그러나 이로써 유요의 세력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아직도 손책의 머리에 인상깊게 남아 있는 사람은 적장 태사자였다.
그가 남아있는 동안에는 아무리 손책이라도 안심되지 않았다.
더구나 태사자가 군사를 이천 명이나 거느리고 경현(涇縣)에 있다는소식을 듣고 나니 더욱 안심이 되지 않았다.
손책은 태사자를 제압하기 위해 경현에 도착한 뒤에 얼른 공격하지 아니하고 주유를 불러 물었다.
"주유! 경현을 쳐서 태사자를 사로잡으려면 어떤 방법을 쓰면 좋겠나?"
"태사자를 사로잡기는 매우 어려울 겁니다.
그러나 성안에 불을 지르고 우리가 동문만을 남겨두고 나머지 남, 북, 서문으로 공격을 한다면 적들은 필시 동문으로 달아날 터이니 그때 성밖 멀찌감치에 복병을 매복하였다가 태사자를 함정에 빠뜨리면 생포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아, 그거 참 좋은 생각이네!"
손책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진무가 날쌘 부하 십여 명을 데리고 적병으로 가장하고 성안으로 잠입해 여기저기에 불을 질렀다.
때를 놓치지 않고 손책군이 삼면으로 치열한 공격을 퍼붇자 태사자는 훈련이 덜 된 군사를 데리고 싸울 형편이 못되었다.
그리하여 태사자는 군사들을 이끌고 동문으로 급히 달아나기 시작하였다.
손책은 동문 멀찌감치 떨어져 있으면서 도망치는 태사자의 뒤를 급히 추격하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태사자가 필마단기로 쫒기는 동안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였고 사람도 말도 지쳐갈 무렵, 태사자는 손책의 군사들이 미리 마련해 놓은 함정에 말과 함께 곤두박질하며 빠지고 말았다.
복병들은 아우성을 치며 달려들어 그를 사로잡았다.
태사자는 마침내 결박을 당한 채 손책 앞으로 끌려 나오게 되었다.
"손 장군! 빨리 나의 목을 잘라 주시오."
태사자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이 눈을 무겁게 감고 중얼거렸다.
그러자 손책은 태사자 곁으로 친히 다가가 결박을 끌러 주고 비단 옷을 입혀 주며,
" 태 장군은 왜 그렇게 부질없는 생각을 하시오."하고 가장 친근한 어조로 말하였다.
그러자 태사자는 의외란 듯이 눈을 동그렇게 뜨며 묻는다.
"장군은 어찌하여 나를 죽이지 아니하고 이렇게 하시는게요?"
그러자 손책은 태사자의 어깨를 정답게 잡아 흔들며 말했다.
"나는 지난 날 장군의 의협심과 무술 실력에 크게 놀란 사람이오.
그런 장군이 어리석은 유요의 휘하에서 지낸다는 것이 몹시도 안타까워 이러는 것이오.
장군은 혹시 오늘부터 나를 도와 주실 수는 없겠소? 나는 지난 날 이후로 장군이 내 편이 되어 주기를 갈망하고 있었소."
태사자는 자신을 알아 주는 손책의 말에 감동되었는지 별안간 얼굴이 숙연해 지더니,
"장군이 나를 수하로 거두어 주시겠다구요? 그렇다면 삼가 견마의 수고를 사양치 않으리다."
하고 손책에게 귀순할 뜻을 전했다.
손책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는 태사자의 손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지난날 신정령에서 단둘이 맹렬하게 싸웠는데 그때 만약 내가 붙잡혔다면 장군은 나를 살려 주셨겠소?"
"아마 나는 장군을 죽였을 것이오."
태사자도 웃으면서 솔직히 대답한다.
손책은 태사자와 함께 장중(帳中)으로 들어와 친히 환영연을 열어 주며 말했다.
"장군의 말이라면 무슨 말이라도 들을 테니 이제부터는 좋은 계책이 있으면 말해 주시오."
그러자 태사자는 이렇게 말한다.
"유요가 싸움에서는 패하긴 하였지만 그의 군사는 결코 약한 군사가 아니오.
이제 내가 가서 그들을 수습해 데리고 온다면 우리 편에 크게 도움이 되리다.
그러나 한 가지 염려스러운 점은 장군이 나를 믿고 보내 주실지 모르겠소이다."
손책은그 말을 듣고 태사자의 손을 힘차게 움켜잡았다.
"내가 어찌 장군을 의심하겠소. 그것은 내가 원하던 바이니 부디 내일이라도 떠나시오."
"고마우신 말씀, 그러면 내일 정오에 떠났다가 사흘 후 정오에 꼭 돌아오겠소이다."
태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책에게 절하고 물러났다.
다음날, 손책의 부하 장수들이 그 말을 듣고 모두 놀라며,
"엣? 태사자를 놓아 보내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오.
모르긴 모르되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오."
"태사자는 신의를 아는 사람이기에 반드시 돌아올 것이오.
만약 그만한 신의가 없는 사람이라면 돌아오지 않기로 아까울 것도 없습니다."
장수들은 손책의 대담성에 놀라면서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약속한사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