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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살에 요절한 에곤 쉴레, 그가 사랑한 여인들
[하성태의 사이드뷰] 가뿐히 1만 돌파한 <에곤 쉴레: 욕망이 그린 그림>
오마이뉴스 기사 등록 : 2016.12.28. 09:57
글 : 하성태(woodyh)
편집 : 곽우신(gorapakr)
화가라는 예술가들의 삶을 그린 영화들은 대개 일정한 패턴이 존재한다. 아니, 그렇게 분류할 수 있다. 우선 명작의 탄생 비화가 궁금하다. 그럼 화가와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를 둘러보는 게 먼저다. 그러다 보면, 주변 가족과 연인(이나 뮤즈), 친구(와 소울 메이트)들이 두둥실 떠오른다. 이를 위해 특정 시기를 조명하기도 하고, 전체 인생 여정을 따라 잡기도 한다.
이 모두는 예술가의 고뇌로 수렴되기 마련이다. 숱한 화가와 예술가의 삶을 그린 영화들이 이렇게 범주화된다. 그러 패턴이 존재하건만, 관객들은 궁금하고 또 궁금한가 보다. 그 예술가들의 창작 혼이 어디로부터 연유하는지, 또 그들 각자의 사정은 어땠는지 말이다.
그렇게 화가를, 예술가의 생애를 조명한 주목할 만한 '예술'영화들이 한 해에만 어림잡아 서너 편은 꼭 소개된다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작품들은 한국 관객들이 유달리 좋아하는, '빼도 박도 못하는' '실화'(!)아닌가.
인상주의 미술의 거장 폴 세잔과 19세기 프랑스 문학의 대명사 에밀 졸라의 발자취와 우정을 그린 영화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에 이어 또 한 편의 예술가가 세밑 극장가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22일 개봉, 주말 관객 1만을 돌파하며 26일까지 1만3617명을 동원한 <에곤 쉴레: 욕망이 그린 그림>(아래 <에곤 쉴레>)가 바로 그 작품이다.
매년 연말, 대형 미술 전시가 북새통을 이루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에곤 쉴레>의 흥행 역시 스크린으로 에곤 쉴레의 작품을 감상하려는 예술영화 관객들이 극장을 찾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19세 이상 관람가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에곤 쉴레>는 크리스마스 당일 34%라는 높은 좌석점유율을 기록했고, 26일까지 영화진흥위원회 다양성 영화 박스오피스 1위를 고수하는 중이다.
그렇다면 <에곤 쉴레>는 이른바 '예술가 영화'의 패턴에서 얼마나 같고, 또 얼마나 다를까.
에곤 쉴레와 그의 네 여인들
가난과는 거리가 멀 정도로 유복했다. 대신 매독에 걸린 아버지는 광기에 사로잡혔고, 어머니는 남매에게 지독히도 무관심했다. 두 살부터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지만, 정식 미술 교육은 받지 않았다. 그래도 빈 예술 아카데미에 최연소로 입학했다.
그러나 태생적인 자유분방함이 아카데믹하고 보수적인 학풍과 맞을 리 만무했다.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구스타프 클림트도 질투했던, '죽음과 소녀' 등의 작품으로 우리에게도 친근한 오스트리아 출신의 화가 에곤 쉴레는 '천재'였다.
이 천재의 죽음의 목전에서부터 짧았던 전성기를 되짚는 <에곤 쉴레>를 연출한 디터 베르너 감독은 아마도 에곤 쉴레의 먼 후배쯤 될 듯싶다. 역시 오스트리아인으로서 먼저 배우로 커리어를 시작했고, 이후 연극과 드라마, 영화 연출 등 다방면에서 활동 중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인 만큼, 에곤 쉴레의 영감을 자극한 실제 오스트리아 빈을 비롯해 체코, 이탈리아, 룩셈브루크 등 유럽의 풍광을 유려하게 담아냈다. 또 영화 말미, 에곤 쉴레가 속한 '빈 분리파'가 전시회에 등장하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베토벤 프리즈'는 실제 작품이기도 하다. <에곤 쉴레>는 그런 '메이드 인 오스트리아', '메이드 인 유럽'의 흥취가 물씬 배어난다.
이 베르너 감독이 영화화의 모태로 삼은 작품은 <죽음과 소녀–에곤 쉴레와 여자들>이다. 5년간의 조사를 거친 작가 힐데 베르거는 에곤 쉴레와 뮤즈들의 관계가 그의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천착했다. 에곤 쉴레가 미성년자 납치 및 추행 혐의로 고소된 사건이나 그의 마지막 뮤즈였던 에디트 하름스에 관한 영화 속 내용 역시 이 원작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런 점에서, '에곤 쉴레의 여자들'이란 원작의 부제는 영화의 부제라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에곤 쉴레의 강렬했던 청춘을 조명하는 <에곤 쉴레> 또한 그의 예술 세계를 풀어 가는 실마리로 그를 사랑했고, 그에게 영감을 줬던 네 여인과의 순간을 이야기의 주요 얼개로 배치했기 때문이다.
극장에서 만나는 에곤 쉴레의 작품과 그의 생애
유일하게 정을 나눈 혈육이자 남매를 넘어선 교감과 애정 관계로 그려진 동생 게르티 쉴레, 역시 유일하게 에곤 쉴레의 작품 속에 이름을 남긴 댄서 모아 만두, '영혼의 반쪽'이라 할 만한 모델 발리 노이질,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한 부인 에디트 하름스. <에곤 쉴레>의 이야기 구조는 이 네 여성과의 만남과 헤어짐을 그리는 것으로 채워진다.
여성을 작품의 전면에 내세웠고, 사랑하는 여인들을 꾸준히 모델로 삼았던 에곤 쉴레였기에,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일견 적절한 선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중 중심을 차지하는 인물은 클림트를 통해 소개 받은 발리 노이질이다. 에곤 쉴레가 발리 노이질과의 사랑과 이별을 담았다고 평가받는 <죽음과 소녀>는 영화 속에서 가장 인상 깊게 등장하는 그림이기도 하다.
발리 노이질은 모델뿐만 아니라 에곤 쉴레의 정신적, 일상적 지지자이자 동반자였고, 미성년자 납치 및 추행 혐의로 재판에 구금됐을 때나 군에 복무하게 됐을 때도 그의 곁을 지키며 헌신했다. 베르너 감독은 <죽음과 소녀>와 같은 구도의 장면을 그대로 찍었을 만큼, 둘의 관계를 영화의 중심 축에 가져다 놓는다.
그리하여 발리 노이질과의 관계와 파국이야말로 <에곤 쉴레>에서 격정적인 삶을 살았던 한 젊은 예술가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으로 기능한다. 한편으론, 발리 노이질과 여타 여성들과의 관계는 결국 무엇이 에곤 쉴레를 고뇌하게 만들었고, 또 어떻게 범인들과는 다른 길을 갔는가를 드러내는 반사판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물론 관계와 사랑이 전부는 아니다. 20세기 초 오스트리아가 배경인 <에곤 쉴레>는 그가 겪는 음란함에 대한 시시비비나 군 징병을 통해 당대의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나 제1차 세계대전한창이던 유럽의 역사적인 맥락이 어떻게 예술가에게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거시적인 시각까지 제공해 준다.
그리고, 에곤 쉴레의 작품들. 에곤 쉴레는 1918년 10월 31일, 28세의 나이로 사망하기 전까지 약 300여 점의 유화와 2000여 점이 넘는 데생과 수채화를 남겼다. <에곤 쉴레>는 그의 미완성적인 <가족>을 필두로, 발렌 노이질을 모델로 한 <발리의 초상>, <검정 스타킹을 신은 발리 노이질> 등이 등장하고, <무용수 모아>, <소도시> 등 작품이 탄생하는 순간을 고루 포착해 미술 애호가들의 구미를 자극시킨다.
에곤 쉴레가 드로잉을 하거나 다양한 방법으로 작품을 구상하고 그리는 장면도 빠지지 않는다. 여기에 구스타프 클림트의 팬이라면, 그림 교환 장면에서 등장하는 <검은 머리 소녀>나 <죽음의 삶>이 스크린으로 비칠 때 무척이나 반가울 듯 하다.
결론적으로, 여타 예술가의 초상을 그린 작품마냥 <에곤 쉴레>가 영화사에 길이 남을 역작이나 문제작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범인들의 시각에서 예술가의 예술혼의 어떤 양상을 훔쳐보는 경험은 분명 흥미진진한 일이다. <에곤 쉴레>가 그리는 뜨거운 청춘과 시대를 앞서간 작품 세계, 다소 비극적인 죽음의 궤적 역시 이 범주에 충실하다고 할 수 있다.
미술애호가라면, 에곤 쉴레의 팬이라면, 극장에서 그의 삶과 작품 세계를 알현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의 작품도, 영화의 주제도 결국은 젊은 예술가의 예술혼과 사랑으로 귀결된다. 보편적인 예술가의 이야기로 읽어도 무방하다. 오스트리아로부터 날아 온 <에곤 쉴레>는 그렇게 충분히 '클래식'하다.
영화로 보는 인문학 - 짧지만 강렬한 '벚꽃'같은 '에곤 쉴레'
충북일보 미디어전략팀 웹출고시간 : 2022.04.11 16:22:26, 최종수정 2022.04.25 13:55:30
안소현 : 지역발전연구소함께 대표
불현듯 찾아와서 세상을 온통 연분홍빛으로 물들이더니, 그 설렘으로 한껏 부풀려 놓은 가슴을 가라앉히기도 전에 소리 없이 사라져가는 벚꽃 같은 사람이 있다.
잠깐 스쳐서 지나갔을 뿐인데 그 향기가 온몸에 베어버려서 비누로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는 치명적인 인연이 있다.
에곤 쉴레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16년 한국인 최초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흥미롭게 읽은 후 기존의 한국문학에서 느낄 수 없었던 가부장제와 몽고반점, 자유로운 성 관념 등에 대한 우회적인 표현들로 복잡해진 마음으로 책장을 덮은 후 발견한 책 표지 때문이었다. 우울한 적갈색 나뭇잎과 비쩍 말라서 앙상한 몸으로 곧게 서 있는 처절할 정도로 짙은 회색빛 나뭇가지가 고흐의 진노랑과 주황이 감도는 노을을 배경으로 서 있는 그림을 보게 되었다. 그 그림은 소설의 주인공 '영혜' 같았다. 나신으로 물구나무를 하고 머리에서 뿌리가, 다리에서 가지가, 사타구니에서 꽃이 형상화되는 형이상학적인 생각의 소유자 영혜를 이해하기 벅찼던 나는 책표지의 그림을 발견하고 어느 정도 내용이 이해되었다. 극도의 외로움과 해결할 수 없는 처지의 자아가 영양부족으로 뒤틀린 나무처럼 그저 하루하루 살아내면서 갖는 자기부정과 주변으로부터의 보호 본능.
에곤 쉴레의 작품 '나무 네 그루'가 그려진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의 겉표지는 책의 내용과 완벽한 일치를 보여 주었다.
그 후로 에곤 쉴레를 분석하고 관찰하고 그의 작품을 감상한다. 비록 노트북을 통한 검색이지만 충분히 교감할 수 있다. 특히 이유 없는 외로움이 찾아들 때 그의 작품은 폐부로 비집고 들어와서 모세혈관을 마비시킨다. 그의 비난받는 집착들이 넌더리 나게 싫지만, 그의 작품은 슬픈 눈으로 보는 이들을 쓰다듬어 주는 마력이 있다. 분리파의 일원으로 구스타프 클림트의 제자인 에곤 쉴레. 스승인 클림트를 능가했던 천재 화가에게 영감을 준 네 명의 뮤즈와 단 하나의 사랑을 알아채지 못하고 28세에 스페인 독감으로 짧고 강렬한 생을 마감한 에곤 쉴레의 인생을 담은 영화 '에곤실레: 욕망이 그린 그림'이 2016년에 개봉한다는 소식에 간절하게 기다렸던 나를 회상하며 이 영화를 소개한다. 휘날리는 벚꽃처럼 스쳐 지나가 슬픈 화려함을 안겨 주었지만, 그의 작품들은 가슴 속에 깊이 남아서 지워지지 않는 낙인이 돼버렸다.
1890년 오스트리아 빈 근교의 툴른에서 태어난 에곤 쉴레의 광기 어린 아버지와 어머니의 무관심은 그를 자신만의 작품세계에 집착하게 만든다. 어려서부터 그림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고 명문인 빈 예술 아카데미에 최연소로 입학을 하지만 보수주의 학풍으로 인해 학교를 그만두고 '신예술가 그룹'을 결성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당시 최고의 화가 구스타프 크림트는 에곤 쉴레의 스승으로 그의 재능을 인정하면서도 질투했다는 일화도 잘 알려져 있다. 과격한 터치와 적나라한 인체 표현으로 '죽음과 에로티시즘'을 주로 표현했지만 28세의 짧은 인생만 아니었다면 인생을 더 깊이 있게 관조한 걸작을 많이 남겼을 것이다.
작가 힐데 베르거의 원작 소설 '죽음과 소녀-에곤 쉴레와 여자들'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에곤 쉴레: 욕망이 그린 그림'은 28년에 짧은 생을 마감한 오스트리아 천재 화가 에곤 쉴레의 예술세계와 그의 인생, 뮤즈였던 네 여인의 이야기를 함께 다룬다. 에곤 쉴레의 도발적이고 에로틱하면서도 독특한 화풍은 유럽 화단을 떠들썩하게 한다. 영화는 화려한 예술가의 이면에 드리워진 시련과 고통을 담아낸다. 매독에 걸린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와 이로 인해 생긴 경제적인 부담, 그의 그림에 대한 외설 폄하 논란, 어린아이를 유괴했다는 누명,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군 입대 문제 등을 전반적으로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에곤 쉴레가 스페인 독감으로 죽기 전에 비로소 화가로서 명성을 떨치기 시작하게 된다. 네 명의 뮤즈로 완성된 위대한 작품들로 인해 진정한 예술가로 인정받는 순간, 세상은 위대한 예술가를 잃은 것이다.
영화는 에곤 쉴레의 강렬했던 삶을 여동생 게르티 쉴레의 관점으로 스토리를 전개한다. 당차고 열정적인 무명의 예술가, 인생의 전환이 된 구스타프 클림트와의 만남, 걸작을 탄생시킨 네 명의 뮤즈들(동생 게르티, 배우 모아, 모델 발리, 아내 에디트)이야기를 다 담아놓았다.
특히 중요한 점은 그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등장하는 작품은 에곤 쉴레의 단 하나의 사랑으로 불리는 발리 노이질을 모델로 한 '죽음과 소녀'이다. 그 외에 '검정 스타킹을 신은 발리 노이질', '소녀들', '모아', '발리의 초상', '가족', '포옹' 등 그의 작품들과 그 작품들이 완성되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어서 '에곤 쉴레 전시회'를 다녀온 기분이 든다.
동생 게르티 쉴레를 모델로 작업한 에곤 쉴레와 그의 초기 작품들, '신예술가 그룹'을 결성하고 다양한 작품세계에 빠져든 열정적인 에곤 쉴레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무용수 모아', '몰다우 강변의 크루마우의 풍경' 등의 실제 배경인 체코의 크루마우(현 체스키 크룸로프)에서 '신예술가 그룹'과 함께 작업하는 장면에서는 도시 전체가 문화유산으로 등록될 정도로 아름다운 크루마우의 절경에 감동했다. 어마어마한 다작을 남긴 것을 반증하듯 그의 작업실과 전시회 장면에 등장하는 걸작들을 감상하는 것도 관전 포인트이다. 또한, 구스타프 클림트의 대표작이기도 한 '죽음과 삶', '베토벤 프리즈'도 볼 수 있다.
에곤 쉴레의 삶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면 영혼의 동반자 발리 노이질과 결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에곤 쉴레의 재능을 알아보고 질투와 존경심을 느끼던 당대 최고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는 에곤 쉴레가 어린 모델들과 작업하는 것이 논란의 여지가 되자 자신의 모델들 중 한 명인 발리 노이질을 추천한다. 그때부터 시작된 둘의 관계는 예술가와 뮤즈 이상으로 발전하며 영혼의 동반자로 자리 잡는다. 발리 노이질은 에곤 쉴레의 모델일 뿐만 아니라 살림을 도맡아 하고 그림 판매까지 하며 재정을 관리해서 에곤 쉴레가 오로지 그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에곤 쉴레 인생의 가장 큰 위기였던 미성년자 납치 및 추행 혐의로 재판을 받고 구금되었던 순간에도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왔다. 동생 게르티 쉴레와 갈등이 생기자 발리 노이질은 둘 사이에서 화해하도록 큰 역할을 한다. 이처럼 에곤 쉴레의 삶에 가장 오래 머무르며 헌신한 발리 노이질과의 안타까운 이별에서 탄생한 위대한 걸작 '죽음과 소녀'는 영화 속에서 가장 인상 깊게 등장하는 작품이다. 에곤 쉴레의 끊임없는 창작욕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열정을 실감 나게 그려냄과 동시에 그에게 걸작을 남길 수 있도록 영감을 준 수많은 뮤즈 중, 온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사랑하고 서로를 아꼈던 발리 노이질과 아쉬운 만남을 조우하게 될 것이다.
4년 동안 연인이자 모델이었던 빌리가 "난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 에곤과 결혼하지 않겠다."는 대사가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아마 에곤 쉴레에게 사랑은 그림뿐이라고 생각하고 결국 그런 요구로 버림받고 상처받을까 봐 던졌던 말이 아니었을까. 에곤이 부유한 가정 출신의 다른 여자와 결혼하게 되자 그녀는 군대에 간호사로 지원해서 그의 곁을 떠나게 된다.
에곤 쉴레는 왜 그녀와 결혼하지 않았을까. 사랑이 아니라 그림에 대한 열망으로 만들어진 관계였을까. 발리를 생각하면 마음이 저리다. 그래서 에곤 쉴레의 작품을 보면 슬프고 우울하며 몽환적이다. 예술적인 갈증을 해소하기에 충분한 영화이다. 못다 이룬 사랑의 찌꺼기를 거두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작품 전시회를 가 보고 싶은 사람에게도 추천한다.
예술인지 외설인지의 경계가 모호하지만 그의 열정을 작품으로 쏟아냈기에 그저 감사한다.
에곤 쉴레를 연기한 '노아 자베드라', 발리를 연기한 '발레리 파흐너', 영화만큼 매혹적인 엔딩 크레딧을 선사한 작곡가 '안드레이'에게 감사를 전한다.
물론 영화감독 디터 베르너에게도.
뚝뚝 떨어지는 벚꽃을 보며 짧고도 화려했던 에곤 쉴레를 추억한다.
에곤 쉴레 : 욕망이 그린 그림 (2016년 작)-에곤 쉴레
'에곤 쉴레: 욕망이 그린 그림'은 쉴레의 삶을 그대로 그려낸 영화 입니다.
이 영화 속에는 4명의 중요한 여자들이 등장합니다.
1) 게르티 쉴레
게르티 쉴레는 에곤 쉴레의 여동생이자 첫 모델입니다.
매독에 걸린 아버지와 가족에게 무관심 했던 어머니 아래서 에곤 쉴레는 여동생에게 많은 의지를 했었다고 합니다.
에곤 쉴레보다 네 살 아래의 그녀는 오빠를 위해 기꺼이 누드 모델을 하기도 했었는데요.
남매 사이에 누드 모델을 했었다는 사실은 당시에도 큰 충격이었기에 그 둘을 둘러싼 이야기가 굉장히 많았다고 합니다.
1909년 작품 [Portrait of Gerti Schiele]가 여동생을 모델로 그린 그림 중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2. 모아 만두
당시 댄서였던 모아 만두는 유명 배우를 꿈꾸던 자유로운 영혼이었다고 합니다.
에곤 쉴레의 작품의 모델이 되기를 수락한 그녀는 요구조건을 내걸었는데요.
바로 그녀의 이름을 그림 속에 넣는 것.
그래서 1911년 작품 [Moa]는 에곤 쉴레의 작품 중 모델의 이름이 들어간 유일한 그림이 되었습니다.
3. 발리 노이질
에곤 쉴레의 영혼의 동반자이자 그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는 모델입니다.
발리 노이질은 클림트의 모델이기도 하였으며 그녀가 17살이 되던 해, 클림트의 소개로 두 사람은 만났다고 합니다.
발리는 쉴레의 연인이자 뮤즈이기도 했는데요 쉴레의 옥살이를 돕기도 하였고 그를 헌신적으로 도왔지만 쉴레는 결국 부유한 에디트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쉴레는 에디트와 결혼하면서 발리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는데, 에디트와의 결혼 후에도 자신과 에디트, 발리 셋이서 주기적으로 여행을 떠나기를 제안합니다. 쉴레는 연인으로써 계속 그의 곁에 남아주기를 바라지만 발리는 그 제안을 거절하고 그 이후 쉴레를 떠나 두 번 다시는 그를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 충격으로 인해 그려진 작품이 바로 '죽음과 소녀’(Death and the maiden, 1915~6)이며, '에곤 쉴레: 욕망이 그린 그림' 또한 이 그림을 기반으로 만들어 졌다고 합니다.
4. 에디트 쉴레 (결혼 전 이름_에디트 하름스)
쉴레는 에디트와 결혼 후 바로 세계 1차대전때문에 군대로 징집되게 됩니다.
에디트는 쉴레에게 누드화만 그리는 것이 아닌 정물, 풍경을 그리는 것도 제안하였고
다양한 종류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1918년 작품 [The Family]는 에디트의 임신 소식을 들은 쉴레가 그린 작품으로 가족을 이뤘다는 것에 대한 기쁨과 희망을 그린 작품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희망은 이루어 지지 않았습니다.
결혼 이후 쉴레가 안정되는 듯 해보였으나, 결혼 4일 만에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던 에디트에게는 그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을까요.
임신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결국 에디트는 뱃속의 아이와 함께 쉴레의 곁을 떠납니다.
또한 그녀가 사망한 3일 뒤, 쉴레도 스페인 독감으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영화는 소개해드린 4명의 여인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에곤 쉴레에게 큰 영향을 끼친 4명의 여인과, 그의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영화를 감상 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Egon Schiele, Self-portrait, 1912
[에곤 실레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 레오폴트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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