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23 마지막 이야기 입니다.
영업사원은 실적이 말해 주듯이
판매실적이 얼굴이며,
나는 입사 2년차 까지는 그다지
실적이 저조 하였으나
그동안 뿌려논 명암으로 인해
3년차 부터는 상위 랭킹은 아니더래도
나름대로 판매실적이 괜찮았습니다.
프라이드 한대 가격이 4백만원대
판매수당은 4만원 겨우 1%의 수당이며
3대 이상이면, 누진제가 붙어 나오고,
우스게 소리로 전집 책 한질이 40만원인데
수당은 4만원 이고, 책장사 보다 못한다고,
그당시 (88~93년도) 평균 기본급하고
수당까지 합쳐 봉급이 200백만원 내외
한달 최대 많이 판 (출고싯점)대수는
15대 정도이며, 하루 최대 계약대수는
20대, 기업체의 대량 계약대수가 아닌
오로지 개인별 댓수이고,
이것은 A급고객, B급고객이 한날에
이루어진 것이고 아침부터 저녁 귀사
할때까지 점심도 차안에서
빵과 우유로 요기하며서 계약한것입니다.
입사동기중에 나이는 나와 같고,
숭실대를 나온 친구가 있는데 이친구는
덩치도 있고, 머리도 반백(별명 백태)
카다록을 들고 초방을 나가면
나 같은 경우는 필요없어요! 명함놓고 가세요!
필요하면 연락드릴께요! 하는데
이친구에게는 정중히 쇼파에 자리를 권하고
마주 앉자 무엇때문에 오셨습니까?
라고 물으니, 나 원참~~
이 친구는 대우받고 영업하고
나는 문전박대가 일수니~ㅠㅠ
(아무튼 남자는 덩치가 있어야 무시못하지)
이친구하곤 아삼육이 되어 퇴근후에
매일 붙어 다니니~~^^
또 한친구는 인하대(58년개띠,키 183cm)
나오고 우리보다 3깃수 위인 즉 선배는
지점에서 판매 1위 탑인데, 잡기에 능하고
놀기좋아해서 우리후배를 퇴근후 데리고
다니며, 결국 피치못할 사고로 퇴사
영종도 개발할때 중장비업체들의 부품을
독식 주인에게 엄청난 부를 안겨주고
그 현대모비스 대리점을 맡아서 현재 운영
대리점이 3개로 확장
어제도 통화 와이프하고 24일 수욜날
방문한다고~
자동차 세일즈맨시절 나의 최대의 실적은
사내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난것이며
나이가 일곱살 밑인 올해 50세(양띠) 여성이고
7남매의 막내 외동딸(고명딸)이면서
오빠들에게 두터운 신임을 받는 막내딸.
고향은 충청도 신탄진에서도 20분정도
들어가는 구즉면 (현 묵마을) 둔곡리
(지금은 대전시로 편입 되어있음)
구즉면에서 큰고개를 넘어야 되는데
나는 처음 밤에 갈때 무서워서 자동차
문을 다 잠그고 출발하였네요~~ㅎ
그런데요! 쉿! 조용히!
제가요 고백할께 있어유~
자동차 세일즈맨들은 모두가 대학교를
나온지 알지, 그당시 아내는 나를 의심의
눈초리는 없었지만
순간 처남들하고 첫 대면한 장소에서
(친구가 명지대를 다니는 녀석이 있어서) 그만
명지전문대를 다녔다고 하고 말았으니
아이고! 요 거짓말이 평생가는구나~
(아내는 지금은 알고 있지만, 처남들과
아내는 학교에 별 관심이 없음)
현재 장모님을 내가 모시고 있으니
처남들은 나를 극진히 대접하지유~
미국에 있는 처남은 매일 조석으로
전화하고, 둘째처남은 하루도 안걸르고
우리집에 와서 문안 인사하고, 처남들은
하나같이 효자들이지~~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딸하고 사시는게 편하다고 하시니
결국은 내가 편한게 아닌지~~ㅎ
먹을께 있으면 먼저 할머니에게 드리지
않으면 모시고 나와 같이 먹게 아이들에게
항상 이야기하고 나도 실천하지유~
삼부자가 팬티만 입고있고 다니고,
할머니 방에서 온가족이 모여서 TV 시청하고
밤이 깊어 가는줄 모르고 오손도손
이야기 하지유~~
결혼후 어려운 상황을 슬기롭고
지혜롭게 극복한 나의 반쪽입니다.
(이혼을 당했어도 무방하지유~
단지 착해서 데리고 산다고 하네요)
총각일때 화곡동 까지터널옆에 28평형
연립주택을 매입하고, 결혼과 동시에
다시 한채구입하여 부모님 모시고 신접살림
이렇게 잘 나갈 즈음, 세일즈맨들은
자기 사업이최대의 소망을 같고 있기 때문에
결혼 2년후 93년도(7년간근무, 대리직함)에
목동 아파트 단지내에 청소년 스포츠 센타
에서 수영복 판매점이 있었고
인천 월미도에서 호프치킨가게 중에
선택의 기로에서 월미도를 택했으며,
누구나 살아가면서 매사에 선택의
연속이고, 그 선택에 희비가 좌우되는
것이니 신중을 기할필요가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한가지가 잘 풀리지 않을때에는
설상가상으로 다른 부분도 동반되어 어려우니
치킨가게는 여름철내내 새벽 5시에
노점장사하고, 저녁에는 호프치킨 파니
12시에 문을 닫고 정리하면 새벽 두시경
12시가 되도 젊은이들이 안가니 셧터를
내리고 장사하다가 앞집가게에서 신고하여
그쪽라인 4개점포가 일주일간 영업정지,
우리는 통닭장작구이까지 하였으니,
잠은 한두시간 잠을 못자니 얼굴이 누렇게
뜨고 따라와 준 아내에게 미안하고,
장인어른은 이쁜 고명딸이 술장사한다고
하셨지만 나에게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니
이때 호프가게 앞 공터에 새벽에 영종도로
들어가는 피서객덕분에 새벽에 노점을 펼쳐
우동 오뎅 김밥 홍합 핫도그 등을 판매하고
겨울철에는 손님들이 뜸한 관계로
2월달(지금이맘때)에 장비들을 차에 싣고
대학교 졸업식을 한달내내 다녔지유~
서울대학교가 장사는 제일잘됨
(보통 한학생에 10명이상) 연세대에선
물먹었고(사람이 워낙많은 신촌독수리상에
자리를 잡았으니) 인하대는 보잉기앞에
매출이 5시간동안 한 100만원 올렸지유~
장사를 접기이전에 월미도 바닷가 앞에
노점상들이 많이 있는데, 이 노점상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로지
원주민들만 장사을 할 수 있지유~~
그중에 노점상 총무가 나에게 노점상을
한번 해보지 않으려냐고 제안이 왔었지~
(그때 했으면 지금은 인천시민~~^^)
두채의 집은 빗보증에 살고있는 집은 경매
또 한채는 전세입주자에게 급매
모든것 제외하니 단돈 4백만원~~ㅠㅠ
갈곳이 없어 어머님은 누나네로
나는 아이를 데리고 처남네로~~
우리의 모든살림은 매형의 본가 창고로 갔었으니~
(한채는 양자간 형이, 또한채는 나의
자랑스러운 동생이~~ 보증은 절대 안됩니다)
나의 시련은 다시시작 되었던 것입니다.
오토바이 타고 20kg 가스통 배달하기
(20대초반에 잠깐동안)
가스 충전소 충전하기
뷔페 웨딩홀 근무
부천 도당동에서 샌딩(임가공)운영
김밥천국 누나가 운영, 겨따리 음식배달
기아자동차 재입사 추진
(영등포지점추천 지역본부통과 본사에서거부,
IMF시기때, 구조조정하는데 충원불가피)
피닉스 식기세척기 영업
(특별히 대리점에 소속시켜 자유영업)
여기서 부터는 아내의 공이 100%
사당동 태평백화점 입점
시마 1020 쇼핑몰 임대
현 홈플러스 동수원 입점 (10년간 운영중)
박 창선 피닉스 식기세척기 사장은
내가 가는곳마다 찾아와 격려와 웃음을 주고,
밥사주고 술사서 먹이고, 아무튼 진짜
멋있는 사나이 입니다.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학례도 고생을 많이
했구나?~아픈 마음을
건드려 미안하이~^^
용성이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데..대통령의 표창같은 것은 필요없고...오로지 얻은 보물은 지금의 마누라일세.
앞으로도 모든일이 잘 되리라..깊이있고 긴 장편의 글을 적어내느라 수고했네..
속에 있던 생각을
토해내니 후련하네~~
음~ 참으로 친구의 위대하고 아름다운글을 읽고 지나치기는 비겁한것 같아 보답의 글을 적어본다..
마치 기다리는 연재의 소설이나 만화를 보는것처럼 200%의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고맙게 잘읽었고
무엇보다 솔직하고 진정성있는 글과 마음에 다시한번 박수를 보낸다..
친구의 인생과 글에 경의를 표하면서 용성이 친구도 늘 행복하고 좋은일만
가정에 가득하길 기원하네...^^
잘 읽어주고 격려까지
해주니 정말 고맙네요!
용성 정말 수고하고 애썼어!!
용성의 솔직한 글을 읽으면서
나도 돌아보고 항상 본인이
힘들다 생각했던 것들이
사치였다는것을 깨닫게 되더라
고맙다 나를 돌아보게 해줘서~~~
그려~
이렇게 생각해주니
고마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