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에이지운동을 저지하라(1)
리버티대학상담학 교수: 게리 콜린스
우리는 고린도후서 5:17절에 나오는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 입니다. 동시에 새로운 피조물 된 우리는 세상과 화목케 하는 직분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화목의 대사(Messenger)가 된 것이지요. 2년 전 어느 교회에서 이 말씀을 가지고 강의할 때 [뉴에이지운동(New Age) 속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들]이라는 제목을 택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뉴에이지운동(New Age Movement)"이라는 것에 의해 혼미 가운데 빠져들고 있습니다.
뉴에이지운동은 오늘날 서양세계를 온통 뒤흔들고 있는, 동양의 사상이 서양으로 이전되어서 다시 일어난 운동입니다. 그것은 현재 미국과 유럽 특별히 호주에서 아주 크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운동이 사용하는 많은 용어는 신학적 심리학적 용어들이며, 어떤 사람은 뉴에이지운동을 "아주 그럴듯한 지적 용어로 포장된 사단의 운동"이라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이 강의를 하면서 세 가지에 초점을 두고자 합니다. 첫째, 뉴에이지운동이란 무엇인가. 뉴에이지운동에 입각한 사고방식은 어떤 것인가. 이러한 질문은 뉴에이지운동의 정의가 될 것입니다. 둘째, 뉴에이지운동을 우리 크리스천들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셋째, 뉴에이지운동이 크리스천에게 어떤 영향을 끼쳐왔고, 또한 끼치고 있는가. 특별히 교회와의 관계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가.
= 뉴에이지운동은 반기독교 운동=
그럼 뉴에이지운동이 무엇인지 알아봅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운동을 정확하게 말하기가 아주 어렵다고 합니다. 지난 수년간 이 운동에 관한 책이 여러 권 출판되었는데. 어떤 저자는 다음과 같이 정의를 써 놓았다.
이 뉴에이지운동이라는 것은 영적인, 사회적인, 정치적인 것의 혼합체이며 사회학, 신학 그리고 순수과학을 다 포괄하고 있는 운동이다. 또한 그것은 의학이나 인류학, 역사학까지도 포괄하는 운동이며, 인간의 잠재력을 중요시하는 운동 가운데 하나요, 스포츠, 공상과학소설, 영화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운동이다.
그만큼 이 운동은 여러 사상이 혼합된 복잡다단한 것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운동을 신봉하는 사람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이렇습니다.
이 세계는 심오한 돌파구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낡고 오래된 사고방식에 젖어왔다 이 세계는 아주 혁명적인 사고의 변화(전환)가 일어나고 있다. 이와 같은 사고의 전환이 앞으로 계속해서 일어나게 되면 20년 후, 이 세상엔 평화와 번영이 찾아올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옛 윤리에 얽매일 필요가 없고 뉴에이지운동에 입각하여 새롭게 선과 악을 구분하는 사고를 갖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이 세상 속에 일 같은 전혀 새로운 뉴에이지의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 곳곳에서, 특별히 미국에서 뉴에이지운동 세미나가 활발히 열리고 있습니다. 미국의 어느 서점이든 한쪽에 뉴에이지운동에 관한 책들이 비치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뉴에이지음악도 있고 이 운동에 입각한 식사법가지도 개발된 상황입니다. 호주에서는 호주 돈으로 약 1000만 불의 돈이 매년 뉴에이지운동에 관한 출판과 세미나를 위해 쓰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이와 같은 현상을 결코 소홀히 지나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뉴에이지적인"사고방식에는 반기독교적인 이단요소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운동에 의하면 성윤리와 여러 가지 선과 악을 분별하는 가치관이 점점 타락하게 됩니다. 흔히 이 운동을 주도하는 데는 많은 사람이 그룹으로 활동합니다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한 사람은 여배우 셜리 맥클레인이란 사람입니다. 알다시피 미국은 배우출신 대통령이 8년 동안 통치했습니다. 그러데 그뿐 아니라 미국을 사로잡고 있는 뉴에이지운동의 주도자 한 사람이 여배우란 사실에서 여러분은 어떤 느낌을 받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이 운동이 일시적으로 일어났다 사라지는 그런 운동되길 바랍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발행된 한 잡지는 이 뉴에이지운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종교이다. 그것은 기독교와도 어느 정도 희미한 연관을 갖고 있고 또한 동양의 여러 신비종교와 연관을 갖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마술이나 범신론도 관련되어 이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를 도래시키기 위해서 합리적인 사고를 다 벗어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고도의 기술문명을 배제시킨다. 그 사람들은 우리에게 특별한 통찰력이 생겨서 이 우주와 특별한 접촉을 해야 한다고 한다. 이와 같이 뉴에이지가 도래하게 되면 모든 사람에게 행복이 주어지고 번영이 약속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어떤 사람은 이 운동을 현대 심리학의 요체라고 설명하고, 또 다른 사람은 뉴에이지운동에 상당한 매력을 가지고 자기 이론을 전개하기도 합니다. 오늘날 신유운동을 하는 많은 사람이"뉴에이지적인" 사고방식에 크게 의존하고 있고, 의학 의료분야 등 전문적 분야에도 뉴에이지 운동이 깊숙이 침투되어 있습니다.
= 범신론에 근거한 뉴에이지운동 =
이와 같은 뉴에이지운동은 비록 현대에 발생한 현상임에도 그 사상의 뿌리는 대단히 오래된 것입니다. 그 특징은, 그들이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그들은 "모든 것은 하나(All is on e),라는 주장을 합니다. 인간, 동물, 식물, 책상 등 모든 것은 하나이고 동시에 그것들은 하나의 여러 측면이라고 말합니다.
둘째, "모든 것이 신(All is God)"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크리스천이 믿는 것처럼 유일한 분,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은 근본적으로 하나이고 동시에 신이다 (범신론)"라고 말합니다.
셋째, "모든 인간은 신"이라고 주장합니다. 당신 신이고 나도 신이고 모두가 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맥클레인이라는 여배우는 세미나에 나가서 "나는 신이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당신은 다른 어떤 신을 경배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당신이 바로 신이기 때문이다"는 말입니다.
사도행전 12장 내용을 기억하십니까? 21절 이하에 보면, 사람이면서 신이라고 추앙받는 한 인물의 종말을 보게 됩니다.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위에 앉아 백성을 효유한대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 하거늘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하는 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행12:21-24).
만일 우리가 뉴에이지운동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대로 나도 신이고 여러분도 신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즉, 여러분이 신이라면 다른 어떤 사람의 말도 들을 필요가 없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으며, 원하는 것은 다 가질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물질주의적이 될 수 있고 원한다면 비도덕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거기는 죄가 있을 수 없습니다.
넷째, 그들이 강조하는 것은 "계몽"입니다. 우리 모두는 신이라는 사 실을 깨우치게 되면 얼마든지 삶 속에서 적용할 수 있게 되고 우리가하는 사업하는데 성공할 수 있게 되고 우리가 하는 사업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신이 사업하는데 성공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병들었을 때도 그렇게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신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적극적 인 사고방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비즈니스에 대한 세미나를 열어, 어떻게 하면 비즈니스 세계에서 성공할 수 있나를 가르칩니다. 이와 같은 새로운 사고방식을 갖게 되면 스포츠에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고 합니다. 도한 학자들도 적극적이고 새로운 사고방식을 갖게 되면 학자로서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온갖 종류의 약속을 보장해주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것을 들으면 흥분하고 놀랍니다. 그들은 여러분이 깊이 명상하는 법을 배우면 우주에 대한 통찰력을 갖게 되고 그것이 여러분의 모든 점에서 다 유익할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또한 그들은 모든 종교가 실패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여러분이 이미 옛날 종교는 실패했다고 인정한다면 여러분이 우주의 중심이고, 신이라는 사실을 깨우치고 스스로 의식시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와 같이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합리적으로 접근해서 이야기하기가 참 힘듭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합리적인 사고 자체를 던져버렸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시 태어나는 것, 즉 환생을 믿습니다. 그리고 죽은 자와의 대화를 믿고, 사후 세계의 경험을 믿습니다.
= 뉴에이지운동과 위험한 "중매자" 사상
여기서 그들이 말하는 계몽, 즉 깨우침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아봅시다.
물론인류는 한 형제입니다. 성경에서도 그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한 형제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은 신자가 되고 어떤 이는 불신자로 남아 있기 때문에 크리스천들이 보기에는 이 세상은 신자와 불신자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인류는 한 형제"라는 것만을 강조합니다.
깨우침의 두 번째 내용은 우리 속에 굉장한 잠재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될 것은 사람들 속에 있는 잠재력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잠재력을 주셨고 능력을 주신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갖고 있는 능력이란 더럽혀진 상태에 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될 때에만 비로소 하나님께서 우리의 잠재력을 사용하여서 하나님을 위해 살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뉴에이지운동에서는 그와 같은 사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깨우침의 세 번째 내용은 우리 모두 명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도 명상을 아주 중요시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편 1편이나 119편 보면 우리가 무엇을 명상해야 되는 가는 보여줍니다. 성경은 우리 내부에 있는 어떤 잠재력에 대해서 명상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잠재력을 묵상합니다.
또한 그들은 어떤 중매자로부터 통찰력을 얻어야 된다고 말합니다.
뉴에이지운동에서 이러한 중매자의 사상은 가장 위험스런 사상 가운데 하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중보자, 중매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특별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로서, 다른 사람이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주는 사람들이며, 마치 점쟁이나 동양 종교에서 말하는 스승 (구루)에 해당됩니다. 그래서 어떤 신봉자들은 이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무조건 다 믿으며, 그것이 궁극적으로 진리인 것처럼 따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성경을 보면 이와 같은 중매자들에 대해서 굉장히 경계하고 있는 것은 무조건 다 믿으며, 그것이 궁극적으로 진리인 것처럼 따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성경을 보면 이와 같은 중매자들에 대해서 굉장히 경계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런 중매자들이 하는 이야기는 진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야말로 진리라고 선언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모든 종교는 하나라고 주장합니다. 모든 종교는 서로 마찬가지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종교는 서로 마찬가지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지금보다도 더 나은 세계가 곧 도래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것은 바로 무제한적인 인간의 잠재력이 표출되는 그런 세계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세계에서는 우리 각 사람이 자기가 따라야 할 도덕을 정하는 자기중심적인 도덕이 있는 세계입니다. 그 세계는 우리가 어떤 것을 상상하기만 하면 그것은 얼마든지 가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이 세상에는 강력한 어떤 힘(잠재력)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 생명적인 세력과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접촉을 해야 하며, 생명력 있는 에너지 세력을 우리가 있는 곳으로 끌어내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바로 그 생명력의 원천, 그 세력에 접촉하기만 하면 우리는 지금까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그런 힘과 생명력을 갖게 되며, 그렇게 되면 우리의 미래는 무한정 열려있게 되고, 놀랄 만한 잠재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또한 병 같은 것은 얼마든지 치료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으며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장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얻을 수 있는 그런 세계 일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뉴에이지운동을 저지하라(2)
= 뉴에이지운동의 허황된 약속 =
그렇다면 이 운동을 크리스천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자유주의적인 교회는 운동에 대해서 대단히 개방적이기 때문에 그것을 많이 수용하고 있고, 반면에 보수적인 교회들은 이 사상이 교회에 스며들고 있는 것조차 잘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이 운동이 크리스천에게 위험한 첫 번째 이유는 그리스도가 없는 복음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게 헌신함이 없이도 우리가 얼마든지 해방되고 자유롭게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두 번째는 회개나 중생이 없이도 얼마든지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약속합니다. 죄를 믿지 않으니까 죄를 용서해 달라는 요청을 할 필요가 없는 것 이지요. 그들은 뉴에이지운동 세미나에 참석하면 여러분의 사고가 완전히 전환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죄를 속죄 받을 필요가 전혀 없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세 번째로 뉴에이지운동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깨우침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깨우침을 얻을 필요가 없이 그들 세미나에 가면 아까 말씀드린 생명력 있는 어떤 세력에 접붙임을 받아서 여러분도 생명력을 얻게 된다고 말합니다.
네 번째로 그들은 합리적인 생각 없이도 얼마든지 성숙할 수 있다고 주장 합니다. 일반적으로 열심히 일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개발하면 할수록 사람은 점점 성숙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뉴에이지운동에서는 그런 것은 필요 없다고 말합니다. 생각하지 않고는 얼마든지 성숙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셜리 맥클레인 세미나에 참석하면 생명력 있는 세력에 접붙임을 받게 되고 금방 여러분도 성숙할 수 있습니다.
즉, 어떤 노력과 수고가 없이도 성숙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끝으로 그들은 고난 또는 실재가 없는 낙관주의를 주장합니다. 낙관주의적 사고만가지면 되지 현실주의적이 될 필요는 없다고 합니다. 내가 언급한 것처럼 이것은 동양의 신비주의가 서양의 옷을 입은 모습입니다.
= 뉴에이지운동과 크리스탈의 비밀 =
이와 같은 운동에 대해서 과연 크리스천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지난 수년 동안 뉴에이지운동을 비판하는 여러 서적들이 출판되었습니다. 물론 어떤 책들은 정확성이 없는 책들도 있습니다. 때로는 비판을 하지 않아도 될 사람들까지 비판하는가 하면, 어떤 경우는 크리스천 심리자들이 그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해서 도매금으로 모든 크리스천을 비난하기도 합니다. 물론 심리학 안에도 뉴에이지사상이 들어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나는 심리학자입니다. 그래서 나를 보고도 뉴에이지운동과 관련되어 있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굉장히 공평하지 못한 처사이이지요.
어떤 책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책들도 있습니다. 얼마 전에 뉴에이지운동 을 비판한 한 잡지를 보았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뉴에이지운동은 일종의 종교다. 그것은 기독교와 힌두교, 도교, 선으로 부터 끄집어낸 종교이다. 만약 우리 자신이 우리의 행동에 대해서 모두 책임이 있다면, 그리고 뉴에이지운동에서 말하는 대로 우리 모두가 신이라면, 당신이 잘못이다. 또 그곳에 태어난 것은 그들의 잘못이기 때문에 다른 부유한 곳에 사는 사람들이 그들을 도울 필요가 없다. 그것은 그들이 전생에 잘못을 지었기 때문에 그렇게 환생한 것이다. 그 사람들이 그곳에서 착하게 살면 그 다음에 환생할 때는 더 좋은 곳에서 태어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재산을 축적해서 못사는 사람, 굶어죽는 사람을 도울 필요는 없다. 이것이 뉴에이지운동의 논리적인 결론이다.
또한 뉴에이지운동은 크리스탈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 크리스탈에는 어떤 마술적인 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크리스탈을 집에 갖다놓기도 하고, 자기 집 수영장에 갖다놓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크리스탈은 사람에게 생명력을 불어넣고, 새로운 에너지를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합리적인 사람들은 이와 같은 사고를 할 까닭이 없겠습니다만, 많은 사람들이 이 운동에 빠지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 운동이 장래의 번영과 성공을 약속하고 있고, 사람들에게 죄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아도 해방감과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운동은 아주 새로운 사고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 뉴에이지운동에 매료되는 이유 =
여러분 가운데 뉴에이지운동의 창설자나 기원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압니다만 대답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이 운동은 특별한 창설자가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 시작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것과 관련해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비틀즈에 대해서 아시지요? 그들은 팝 싱어들입니다. 그들은 마약에 깊은 관계를 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매료되었습니다. 또한 존 레넌과 그 멤버들이 인도의 사상이 분명히 훌륭한 것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사상이 문화 속에 침투된 한 예로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영화들을 들 수 있습니다. 이 영화들은 뉴에이지운동을 흡수해서 만든 것입니다. 기독교 사상이 없는 어린이들이 이 영화를 보면 많은 영향을 받게 됩니다.
또 하나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비즈니스계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뉴에이지운동"의 원리를 이용합니다. 그들은 세미나 방에 모여 명상 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잠재력을 개발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명상하는 것이 아니라 환상 속에 빠져드는 자아개발이란 점에서 매우 위험한 접근이라 하겠습니다.
= 적극적 사고방식과 뉴에이지운동 =
또 어떤 사람은 로버트 슐러의 "적극적인 사고방식"과 뉴에이지운동이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가, 하워드 클라인벨의 크로스 카운슬링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질문합니다. 이 두 사람을 병행해 놓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두 사람의 강조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워드 클라인벨은 신학적으로는 자유주의적이지만 많은 목회자들에게 유익한 책들을 썼습니다. 그는 우리 속에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로버트 슐러는 어떤 "가능성 있는 사고"를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어떤 것이든 계속 상상하면 결국에는 그것이 성취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큰 크리스탈교회를 상상했는데 그것이 실제로 나중에 건축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슐러의 "적극적인 사고방식"속에는 상당히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는 슐러의 가르침 가운데 어떤 부분에 비판적 태도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어떤 것을 계속 상상하면 그것이 성취된다는 약속이 성경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상상을 아무리 해도 성취되지 않은 경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리고 슐러의 신학에는 죄가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나는 로버트 슐러가 헌신된 크리스천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죄에 대해서 듣고 싶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슐러는 분명히 복음을 들고 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슐러는 결국 반쪽 복음만을 사람들에게도 슐러는 분명히 복음만을 사람들에게 전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면과 긍정적인 면만을 강조하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반면에 제자로서 치러야할 값 이라든지 회개해야할 측면들은 언급하지 않습니다.
나 자신은 내가 가지고 싶고, 도달하고 싶은 것을 상상이나 적극적인 사고만으로 성취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한국의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해서 한국의 대통령이 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이지요. 우리는 어느 것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물어봐야 합니다. 물론 슐러를 뉴에이지운동에 속해 있는 사람이라고는 절대로 생각지 않지만, 뉴에이지적인 사고방식이 슐러의 가르침 속에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 뉴에이지운동과 잠재력 개발 =
또한 초월명상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나타냅니다. 여기에는 힌두교적 요소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언급하지 않는 경우가 흔합니다. 몇 년 전에 이 문제를 가지고 미국에서 논쟁이 있었습니다. 어떤 공립학교 교사가 자기 학생들에게 초월명상을 가르치겠다고 주장했는데 학교 주위의 크리스천 학부형들이 이를 반대했습니다. 그 이유는 초월명상이 힌두교의 철학에 기초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이 문제는 법원에 소송되었고 판다는 초월명상이 힌두 철학이기 때문에 가르칠 수 없다고 판결 내렸습니다.
그 후 어느 하버드 대학 교수가 사람들이 초월명상을 통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기도 하였지만, 크리스천은 초월명상이 하나님의 말씀을 명상하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마음을 비우는 것이란 점에서 한 치의 양보 없이 반대하였던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나도 여러분이 초월명상에 빠지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뉴에이지운동을 저지하라(3)
= 뉴에이지운동과 잠재력 개발 =
또 어떤 사람은 제 3 의 심리학과 뉴에이지운동의 차이점을 밝혀달라는 질문을 합니다. 역사적으로 심리학은 세 가지 줄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프로이드로부터 시작하는 임상심리학으로서 심리적인 문제를 다룹니다. 두 번째 흐름은 실험적인 연구와 조사에 초점이 되는 심리학입니다. 그것은 독일에서 시작되었고 실험심리학이라 합니다. 그런데 25-30년 전부터 이 두 흐름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나타나났습니다. 이 두 심리학은 인간이 겪는 문제들을 현실적으로 다루지 못하고 너무 복잡하기만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세 번째 흐름의 심리학이 등장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주의적인 심리학입니다. 바로 인간자체, 인간의 잠재력에 초점을 두는 심리학입니다.
프로이드 심리학에서는 종교는 해로운 것이라고 생각했고, 실험심리학에서는 종교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이 세상과 별 상관이 없다고 보았으며 인간주의적 심리학에서는 하나님을 믿는 종교가 아니라 인간의 잠재력을 믿는 종교를 아주 중요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내가 생각할 때, 뉴에이지운동은 바로 세 번째 인간주의적 심리학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칼 라쥐라는 카운슬링의 한 지도자가 있었는데 그는 말년에 이단 사교에 깊이 관여했습니다. 인도로 여행가서 동양 사상에 심취했고. 서양심리학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가 바로 인간주의적 심리학자였습니다.
또한 아브라함 메슬러는 우리의 심리학을 최대로 살려서 개발해야 된다고 주장합니다. 자기의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개발할 수 있도록 직업하고 격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메슬러의 사고에서는 죄와 회개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인격적이고 전능한 하나님은 더군다나 찾아볼 수 없습니다.
또한 셜리맥클레인이라는 뉴에이지운동 지도자는 자주 세미나를 통해 인간의 잠재력에 대해 말합니다. 자아실현이란 자아를 최대한 개발하자는 것인데, 맥클레인의 자아개발은 모든 주장의 핵심에 하나님이 빠지고 인간이 그 중심에 놓여 있습니다. 물론 크리스천으로서 그 사람의 잠재력을 개발하도록 격려하고 도울 필요는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크리스천은 성령께서 우리 속에 살아계시고 우리에게 힘을 공급하며, 우리로 하여금 죄를 멀리하고 은사를 주어 그 은사의 활용으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는데 사용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아의 잠재력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잠재력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즉, 우리 속에 살아계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개발시키고 우리를 도와서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는 그런 인물이 되도록 하는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 뉴에이지운동과 "마녀사냥(witch hunting)"=
이제 끝으로 크리스천으로서 뉴에이지운동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 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 운동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미국에는 뉴에이지운동 비판서적이 많이 나오는데 앞으로는 한국말로도 출판되리라 생각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어떤 현상이 있는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아덴에 있을 때 알지 못하는 신에 대해서 알고 있었고, 그들의 시까지도 인용할 정도로 깊이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바울은 그들의 문화와 사고방식 뿐 아니라 자신이 진정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바울은 바로 복음을 전해야 된다는 목표의식을 분명히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글 쓰는 많은 사람들은 뉴에이지 운동에 대해서만 깊이 연구하고 분석할 뿐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자기의 할 일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일에는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엑소시즘에 대해서 굉장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한 친구는 너무 그 일에 심취한 나머지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보다 오히려 마귀에 대해서 더 많이 아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늘 마귀에 대해 이야기하고 마귀의 전설을 말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대단히 염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뉴에이지 운동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함과 동시에 우리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늘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는 우리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이 운동에 참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참여한다는 말에 오해 없길 바랍니다. 그것은 관심을 적극적으로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연예계에는 이미 이 운동이 깊숙이 침투했고 교육계와 비즈니스계 그리고 세속 심리학 소게도 상당히 침투한 것으로 압니다. 어떤 사람은 그런 현상을 보고 그렇다면 나는 이 분야에서 손을 떼겠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심리학에 뉴에이지운동이 침투했기 때문에 나는 심리학과는 담을 쌓겠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세상에 도피하라고 부른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운동을 잘 알고 참여하여 복음으로 그들과 대처해 야 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나는 미국 심리학협회의 한 회원입니다. 그 협회 안에는 뉴에이지운동을 강조하는 심리학자들이 많습니다. 어느 심리학자는 더 이상 그런 분위기에는 적응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탈퇴한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들의 어떤 확신이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존중합니다. 그러나 나는 협회에 계속 남아있길 결심했고, 비록 작은 힘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이라도 미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난 우리가 세계 속에 깊이 참여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세 번째, 우리는 "마녀"사냥(witch hunting)"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마녀사냥이란 중세에 유행했던 하나의 어두운 현상입니다. 당시 교회 안에는 "마녀"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그들을 가려내어 불태워 죽이는 일을 자행했습니다. 누가 마녀인지를 가려내기 위해서 여러 가지 이상한 질문과 방법들을 개발해냈습니다. 마녀가 발견되면 호수 속에 익사시키기도 했습니다. 호수 속에 던져 넣어서 시체가 떠오르면 마녀였다고 확신하고 그 시체를 끄집어내어 불태우고, 만일 시체가 떠오르지 않으면 마녀가 아니라고 간주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죽어간 애매한 사람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지난달 미국에선 [마녀사냥](Witch hunting)이라는 한 권의 책이 출판된 일이 있습니다. 두 명의 헌신된 크리스천이 공동 저술한 그 책에서는 교회 안에서 뉴에이지운동을 하는 사람을 가려낸다고 남을 무조건 의심하거나 비판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혹 어떤 사람은 로버트 슐러가 "뉴에이지운동가"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조용기 목사가 그렇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지난 수년간 큰 영향력을 미쳐왔던 데이빗 헌터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두 달 전 뉴질랜드의 한 교회에서 설교를 하면서 뉴에이지운동에 대해 경계해야 할 사람을 지적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거기서 교황으로부터 모든 사람들을 예로 들어가면서 경계해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듣고 있던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당신이 비판하지 않는 사람이 과연 한사람이라도 있는가?" 데이빗 헌터는 과잉반응을 보였던 것입니다.
또 한 번은 내가 썼던 한 책에 대해서 비판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내 책의 20페이지 밖에 읽지 않고 "이 책은 너무도 나쁘다. 이단 사설로 가득 차 있으며 더 이상 읽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나는 마태복음18장에 의거해 그 사람이 적어도 나를 비난하는 책을 쓰기 전에 먼저 나에게 대화를 요청하길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그러질 못했습니다.
어떤 사람의 책을 일부분만 읽고 책의 전체를 비판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미국에서는 많은 크리스천들이 진정 해야 할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에게 제자로 삼는 일보다는 다른 크리스천들을 헐뜯고 비판하는 일에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교회 안에서 다른 사람들의 조그만 결점을 가지고 그 사람을 헐뜯고 비난하면 교회만 분열 될 뿐입니다.
바울이 아덴에서 설교할 때 아덴 사람들에게 여러분은 알지 못하는 신에게 경배하지만 나는 여러분에게 진짜 신을 소개하겠다고 말한 것처럼,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사상이나 입장을 알고 난 뒤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복음을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가 될 것입니다.
= 뉴에이지운동 분별방법 =
우리는 목회자로서 상담을 자주 하게 됩니다. 언젠가는 뉴에이지운동에 대한문제로 갈등과 충돌을 빚을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런 경우를 당하면 우리는 뉴에이지운동에 대한 잘못된 사고를 도려내고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한 성경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이 뉴에이지운동에 사로잡혀 있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성경적인 사고방식인가 알 수 있을까요? 여기서 몇 가지 기본적인 분별방법을 제함으로써 본 강의를 끝맺겠습니다.
1) 모든 상황 속에서 경건한 삶을 살고 영적인 성숙을 도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상담자 자신이 모든 상황을 이해하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경건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적인 상담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이 영적인 삶을 실제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2) 규칙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너무 바빠서 실제로는 못할 때가 많지요.
3) 우리가 성경 말씀을 인용할 때는 말씀 앞뒤에 있는 문맥을 반드시 알고 인용해야 합니다. 즉, 말씀 하나만 뚝 떼어서 전혀 상황(context) 에 맞지 않은 해석을 해서는 안 된다 말입니다.
4) 우리는 모든 상담 방법, 가정(comsumption), 가치관, 조언, 충고들은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서 시험해 보아야 합니다. 상담을 비롯하여 우리가 하는 활동의 모든 것을 테스트하는 기준은 하나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5) 여러분 상담을 하면서 <성령인도를 계속해서 구하십시오. 보통 우리가 접하게 되는 모든 문제는 각각 독특한 것입니다. 때문에 성령께서 우리는 도우셔서 효과적인 상담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6) 성경이 직접적으로 상담에 대한 공식을 우리에게 제공한다고 기대해서 안 된다 것입니다. 분명히 성경은 우리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에 대해서 답변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성경이 마치 교과서처럼 우리가 카운슬링을 할 때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다 대답하고 제공하지는 않습니다.
성경은 다만 우리가 카운슬링을 갖는데 꼭 필요한 "지침"을 제시하고 있을 뿐입니다.
7) 상담방법에는 성경적인 방법이 단 한가지 밖에는 없다고 가정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여러 교단에 속해 있습니다. 각자의 선교에 대한 전략도 다양하고 성경구절에 대한 해석도 각기 분분한 것이 사실입니다.
또한 상담 방법도 가지각색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각자의 개성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의 개성과 병행 조회되도록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한 상담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