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9년전 '조선인 강제노동 시인' … 한국 군함도 전례 사도 금산협상 무기로 삼을 수 있을까 / 6/10(월) / 중앙일보 일본어판
조선인 강제 노역 사실을 언급하지 않은 채 사도 가나야마를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는 일본의 움직임을 저지하기 위한 한국의 외교전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한일 간 협의의 시작점은 하시마 탄광(일명 군함도)의 전례가 될 전망이다. 2015년 일본은 군함도에 대해서도 같은 꼼수를 써서 등록을 노렸지만 결과적으로는 세계 앞에서 '조선인이 강제로 노동한 사실'을 인정하게 됐다.
한국이 이런 전례를 활용할 수 있는 이유는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이코모스)의 권고 때문이다. 이코모스는 6일 등록 보류와 함께 역사 전체를 전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에도시대에 한정해 사도가네야마의 가치에 대해 인정을 받고자 했던 일본의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에 앞서 2015년 군함도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할 때도 일본은 강제노역(1940년대) 시기를 제외한 1850~1910년대로 한정해 군함도의 세계문화유산 인정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당시에도 이코모스는 역사 전체를 다루라고 권고했고, 한일 협상 국면도 순식간에 뒤집혔다.
당시 등록 판단을 받으면서도 전례 없는 권고를 받았던 일본은 더욱 불리한 입장에서 한국을 상대해야 했다. 결국 일본이 등록 확정과 동시에 1940년대 일부 시설에서 많은 한국인과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의사에 반해 동원돼(brought against their will) 가혹한 환경에서 강제로 노동한(forced to work) 사실이 있음을 인식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 사도금산 협상 출발선 될 '군함도'
사도금산에 대한 연구 권위자인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는 9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양국이 2015년 군함도 세계유산 등재 사례를 놓고 사도금산에 대한 협의를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정 대표는 "이번 이코모스 권고의 핵심은 관련국과의 협의로 2015년 군함도 등록 당시 일본이 강제성을 인정한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이번 사도가네야마 등록 추진 과정이 여러 면에서 당시와 비슷하다는 점에서 한국은 일본이 한국인 강제동원을 사실상 인정할 당시 전례를 기준으로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 특히 군함도 등록 당시 일본이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어 우리로서는 여기서 후퇴할 이유가 없다. 일본은 도쿄에 산업유산정보센터를 설립해 차별은 없었다는 내용만 반영해 세계유산위원회로부터 약속 미이행 지적을 받아왔다.
◇ 유산등재 '전체합의'로 이뤄진다
한국이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이라는 점은 군함도 등재 당시보다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통상 유산 등록은 21개국 전체의 합의(컨센서스)로 결정된다. 한 위원국이라도 반대하면 합의가 불가능하지만 한국이 투표권을 갖고 있는 만큼 이런 절차에 관여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
이와 관련해 일본이 끝까지 버티면서 협상이 사실상 결렬됐고, 투표로 등록 여부를 결정하는 최악의 상황도 가정할 수 있다는 게 정부 측 분위기다. 투표까지 한 뒤에는 위원 3분의 2가 찬성해야 등록이 결정되지만 사실 어느 쪽도 충분한 표를 얻을 수 있을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한국의 위원국 임기는 2027년까지로 일본이 2025년까지 위원국으로 활동할 수 있는 것과 비교하면 길다. 정부 관계자는 "내년까지 위원국으로 활동할 수 있는 일본 입장에서는 올해 등록하지 못하면 내년부터는 사실상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있어 올해 등록에 필사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한국뿐 아니라 중국 등 다른 피해국이 존재했던 군함도와 달리 사도 금산에서는 한국인 강제 노역만 이뤄진 점은 주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만큼 객관적 증거 확보에 어려움이 예상되고 국제 여론전에서 한계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변화된 정치환경은 '변수'
달라진 정치 환경도 변수로 꼽힌다. 2015년 협상 당시 아베 신조 총리는 높은 지지율을 얻은 데 반해 현재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역대 최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군함도에서 의사에 반해 강제로 노동했다는 것을 인정하고도 보수 여론의 비판을 돌파할 수 있었던 아베 전 총리 때와는 달리 9월 재선을 노리는 기시다 총리 입장에서는 사도가네야마의 협상에서 양보한 것처럼 비치는 결정은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셔틀외교를 재개하는 등 한일관계 개선이 진행됐지만 역사 문제가 양국 정상의 새로운 아킬레스건이 될 수도 있다는 시각도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이번 한일 협상이 국민 정서를 거스르는 정치적 문제로 비화하지 않도록 합리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