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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우표 없는 편지 원문보기 글쓴이: 청풍명월
어머니는 친숙지만, 막심 고리끼는 한 번은 들어본 것 같기는 한데도 조금은 생소하다. 그의 본명은 ‘알렉세이 페쉬코프’로 1868년 러시아 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 태어났다. 톨스토이(1828∼1910)보다 약간 뒤지만, 같은 시대를 살아 만나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어렸을 때 집안이 가난해 11살 때 학업을 중단하고 제화점 점원, 화공, 주방일 등을 하였고, 커서는 러시아 전역을 돌며 품팔이, 어부, 기선에서의 접시닦이, 철도원 등으로 일했다, 1892년 〈카프카즈〉신문에 ‘막심 고리끼’라는 필명으로 단편소설인 「마카르 추드라」를 발표해 주목받고 〈사마라〉신문 주필이 되었으며, ‘이에구질 흘라미드’라는 필명으로 2백여 편 칼럼과 르포, 평론, 단편소설을 발표했다. 모스크바 예술극장 고정 작가로 활동하다 정치적 이유로 1905년 러시아를 떠나 미국, 이탈리아 등을 전전했다. 1913년 러시아로 돌아와서 『어머니』, 『고백』, 『필요 없는 인간의 삶』, 『여름』, 『마트베이 코줴먀킨의 삶』, 『어린시절』등 많은 작품을 발표했고, 러시아를 대표하는 유명작가가 됐다. 78세 때인 1936년 지병으로 사망했다.
『어머니』! 이 소설은 1907년 발간된 이래, 전 세계 수천만 독자들에게 혁명의 교과서로 20세기 소비에트 문학의 정점이자 인간다운 삶의 권리를 일깨우는 영원한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한 노동자의 어머니가 인간세계와 자신을 자각해 나가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1912년 러시아에서 그리보예도프상을 수상했고, 1966년에는 동아일보 선정 〈한국 명사들의 추천 도서〉, 1993년 서울대학교 선정 〈동서 고전 200선〉, 1993년 한겨레 신문의 〈좋은 책 100권〉, 1999년 경향신문의 〈20세기의 문학〉에 선정됐는데, 선정 이유가 세대 간 갈등이 가장 큰 사회 문제로 나타나고 있던 당시, 필히 읽어야 할 작품으로 꼽았기 때문이었다. 세대 간 갈등이 가장 첨예했던 러시아에서 노동자이던 아들의 정치적 관점을 이해하려는 어머니의 끊임없는 노력. 어머니라는 단어를 ‘희생’이라는 키워드로만 읽어버릇하던 한국인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그만큼 컸다고 할 수 있다. 한국서도 사랑받은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를 읽으면서 어째서 한국인들에게도 사랑받았는지, 사랑받아야 하는 이유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람해 본다.
20세기 초까지는 우리 어머니, 할머니들도 그랬듯이 여자는 여필종부(女必從夫)라는 틀에 갇혀 살았고, 아버지, 할아버지들은 내일이 없이, 권력자에게 핍박받고, 노동의 가치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오늘에 부대끼면서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소설의 배경이 된 러시아도 그랬다.
[ 1 ]
“열쇠공 미하일 블라소프 역시 그렇게 살았다. 그는 눈이 작은데다 온몸에 털이 많이 난 무뚝뚝한 사람이었다. 그는 짙은 눈썹 아래 작은 눈으로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 냉소를 머금고서 누구든 의심쩍게 바라보았다. 공장에서는 첫째가는 열쇠공이자 공장촌에서는 가장 힘센 장사인 그였지만, 윗사람에게 무례하게 굴었기 때문에 품삯을 제대로 쳐 받지도 못했을뿐더러 휴일만 되면 누구에게건 행패를 부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좋게 보지도 않거니와 두려워하기조차 했다.”
그런 그가 아침에 공장에서 사이렌이 울리는 시간에 죽었다. 관 속에 그는 입을 벌린 채로 누워 있었지만, 그의 두 눈썹은 잔뜩 화가 난 듯 침울해 보였다. 그의 아내, 아들, 그를 따랐던 개, 늙은 주정뱅이이자 공장에서 쫓겨난 사기꾼 다닐로 베소프쉬꼬프 그리고 공장촌의 몇몇 거지들이 장례를 치렀다. 아내는 말없이 눈물을 조금 흘렸지만, 아들 빠벨은 눈물조차 흘리지 않았다. 거리에서 관과 마주친 공장촌 사람들은 잠시 멈춰 서서 성호를 긋고는 수군거렸다. 「모르긴 몰라도 빨라게야는 좋아 미칠 지경일 거야. 그 작자가 죽어 버렸으니…‧」어떤 사람은 고쳐서 말했다. 「죽은 게 아니라 뒈진 거야…‧」
처음에 등장하는 소설의 주인공들이다. 죽은 블라소프와 그의 아내인 어머니와 아들 빨라게야다. 빠벨은 빨라게야의 애칭으로 이웃 사람들은 흔히, 어머니도 그렇게 아들을 불렀다. 빠벨과 어머니가 소설의 줄거리일 것이다. 누군가 ‘세상은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였듯이, 빠벨과 어머니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앞서 본 것처럼 아마 그것은‘20세기 소비에트 문학의 정점이자 인간다운 삶의 권리를 일깨우고자 하는 영원한 고전’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아버지가 죽은 뒤, 빠벨은 공장노동자 동지들과 이념논쟁에 빠져들고 이념 서적을 탐독하거나 정치토론을 벌이는 일이 일상화되었다. 그것은 마치 80년대 ‘독재 타도’를 외치던 우리 대학생들과 같이 암울한 현실을 타개하고자 하는 몸부림일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빠벨이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를 엿들으면서 그들의 주장을 이해하게 되고, 도와주기까지 하게 된다. 그렇지만 현실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고 빠벨은 자신들이 잡혀가거나 구속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당시 우리 학생들처럼….
“빠벨은 갈수록 더 자주, 더 길게 얘기했고 점점 더 격렬하게 논쟁을 벌였다. 그러는 동안에 빠벨은 더욱더 야위어만 갔다. 어머니가 보기에 빠벨이 나따샤와 이야기하거나 그녀를 바라볼 때면 그의 엄숙한 두 눈은 더욱 부드럽게 반짝이고 목소리는 더더욱 다정해지고 순박해지는 것 같았다. 〈주님의 은총이야!〉어머니는 잠시 생각에 잠겨 미소 지었다. 모임이 있을 때면 언제나 논쟁은 지나칠만큼 격렬한 성격을 띠었다. 그럴 때마다 우크라이나 인은 벌떡 일어나 마치 매달린 종처럼 흔들거리면서 둔탁하고 우렁찬 목소리로 뭔가 간결하면서도 훌륭한 말을 했다. 이 때문에 모두는 한결 진정되고 진지해졌다.”
빠벨과 동지들이 자신의 집에서 여러 번 만나는 것에서 우크라이나 인에게 호감이 갔던 어머니는 아들에게 ‘우크라이나 인을 우리 집에 하숙시키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빠벨은 어머니 좋으실 때로 하라고 해 이제 우크라이나 인은 그들과 함께 그들 집에서 같이 살게 되었다. 그러나 공장촌 변두리에 위치한 집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현란한 소문의 날개들이 그 집 담벼락 너머에 숨겨져 있을 어떤 신비스러운 것을 밝혀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하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밤에 누군가 창문으로, 방안으로 흘끔흘끔 엿보기도 하고 가끔 창문 유리를 두들겨 보다가 지레 겁먹고 재빠르게 저만큼 줄행랑을 치기도 했다. 사람들이 들락거리는데 대한 호기심이었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는 말이 있듯이 빠벨의 집으로 헌병과 경찰이 들이닥친 것은 그로부터 얼마 뒤였다. 그들은 빠벨의 동의를 구하는 말을 던지고는 집안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별다른 서적이나 증거를 찾지 못했지만, 현장에 있던 우크라이나 인, 안드레이와 빠벨의 동지 니꼴라이를 끌고 갔다. 빠벨은 어머니께 할 말이 없었다. 「전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어머니! 어머니께서 익숙해지시는 길밖엔…‧.」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고 소름 끼치는 공포를 애써 억제하면서 말했다.
「그놈들이 잡아간 애들을 고문하지 않을까? 사지를 찢고 뼈를 으깨는 건 아닌지 몰라. 이런 생각을 하면…‧ 오, 빠샤(빠벨의 애칭), 너무 끔찍하구나!」「그들은 영혼을 으깰 거예요…‧. 추잡한 손으로 영혼을 으깬다. 이건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이에요」이튿날은 사모일로프, 소모프, 그리고 그 밖의 다섯 명을 더 체포되어 갔다. 저녁때 페쟈 마진이 빠벨을 찾아왔다. 그의 집도 수색당했다고 했다.
공장 안에서는 우리도 흔히 보았던 노동자 집회가 열렸다. 봉급의 1%를 공제해 공장 뒤편에 있는 소택지를 정비한다는 것에 반대하는 집회였다. 집회 도중에 사장이 군중을 밀치고 연단에 올라와서 말했다. 「이건 무슨 집회야? 왜 작업을 중단했지?」연사로 올라와 있던 빠벨이 말했다.
「우리는 동지들로부터 1% 공제조치 철회를 당신에게 요구하라는 위임을 받았습니다.」빠벨을 쳐다보지도 않고 사장은 「무슨 이유로?」라고 했고, 「우리는 우리에게 강요된 그 공제가 부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빠벨이 답했다. 「그러니까 자네 말은 소택지를 메우자고 하는 내 계획이 단지 노동자들을 착취하려는 것일 뿐, 결코 자네들의 작업 환경 개선을 위한 배려가 될 수는 없다. 그 말이지? 그런가?」「그렇습니다.」「당신도 같은 생각이오?」사장이 옆에 서 있던 리빈에게 물었다. 「우리 모두 같은 생각입니다.」「이보쇼, 당신은 어떻소?」이번에는 시조프를 보고 물었다. 「나도 마찬가지요. 우린 한 푼이라도 깎이는 걸 원치 않소.」사장은 빠벨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자네 꽤 나 유식해 보이는데, 아니 그래, 자네 같은 사람이 정말로 이 조치가 얼마나 유익한지를 이해할 수 없단 말인가?」빠벨이 큰소리로 대답했다. 「만일 공장 돈으로 소택지를 메운다면 그거야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지요.」사장이 말했다. 「공장이 무슨 자선사업하는 댄 줄 아나? 난 여러분 모두에게 즉각 작업을 시작할 것을 명령한다.」그리고 아무도 쳐다보지 않고, 고철 더미를 조심스레 발로 더듬으면서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일이 있고 난 며칠 뒤, 한밤중에 헌병들이 집으로 쳐들어와 빠벨을 데려갔다. 빠벨은 이미 어머니에게 자신이 잡혀갈 것이라고 알렸으므로 어머니는 「그리스도가 너와 함께 하길…」하면서 기도했다. 날씨가 몹시 추웠다. 빗방울이 창문에 부딪치고 있었다. 밤 동안에 시뻘건 얼굴에 긴 팔을 가진 회색빛 모습들이 집 주위를 어슬렁대고 누구를 잡아가려는 듯 몰래 숨어 있는 것 같았다. 〈나도 함께 잡아갈 일이지〉
노동자들을 일터로 불러내는 공장 사이렌이 울부짖는 소리를 내었다. 오늘은 왠지 그 울부짖음이 공허하고 음울하며 망설이듯 했다. 문을 열고 리빈이 들어왔다. 그는 어머니 앞에 우뚝 서서 손바닥으로 수염에 흐르는 빗방울을 훔쳐내면서 물었다. 「빠벨을 잡아갔지요?」바벨이 잡혀가고 며칠 뒤 그전에 잡혀갔던 우크라이나 인, 안드레이가 풀려나 어머니를 찾아왔다. 「난 너를 너무너무 사랑한단다. 안드류샤!」그녀는 그를 깊이 포옹했다. 안드레이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새까만 덤불처럼 머리카락이 덥수룩한 얼굴에 웃음이 나는 듯 바라보면서 말했다. 「전 과분한 사랑을 원치 않습니다. 전 어머니가 절 사랑하신다는 걸 알아요. 어머니의 가슴은 한없이 깊으시니까 말입니다.」우크라이나 인이 의자를 흔들면서 말했다. 「그렇지 않아. 난 널 특별히 사랑한단다! 만약 네게 어머니가 계신다면 사람들은 네 어머니를 부러워할 거야. 너 같은 아들을 두셨으니…‧.」어머니가 고집스럽게 말했다.
계절이 바뀌고 나서 빠벨이 풀려났다. 우크라이나 인으로부터 어머니가 밥장사를 핑계로 전단지를 공장 안으로 날라다 주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빠벨은 어머니에게 말했다. 「고마워요, 어머니!」아들의 부드러운 표정과 목소리에 너무도 기쁜 나머지 흥분한 어머니는 아들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심장의 고동을 억제하느라 애쓰면서 나직하게 말했다.
「그리스도가 널 도우셨어! 안 그러냐…, 내가 한 일이 뭐가 있다고…」
봄은 성큼 다가오고 공장에서는 메이데이 축제를 위한 기념제 준비가 한창이었다. 베소프쉬꼬프는 우울한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 「때가 왔어! 더 이상 숨바꼭질은 필요 없어.」페쟈 미진을 비롯한 몇몇은 이번 기회에 무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빠벨과 우크라이나 인, 소모프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무장에는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 이고르가 주장했다. 「본질적인 제도를 변혁하는 과업은 정녕 위대한 과업입니다. 동지들, 그러나 그 과업이 제대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새 장화를 한 켤레 장만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그가 다 헤지고 물에 젖은 자기 구두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는 사모일로 동지가 제안한 무장시위는 절대 반대한다면서 대신 나를 튼튼한 장화로 무장시켜 줄 것을 제안하였고, 사회주의 승리를 위해서는 그것이 유익하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던 어머니는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 「정말 그러오, 이고르 이바노비치?」하고 물었다. 그는 껄껄 웃고 나서 손으로 가슴을 비비면서 말했다. 「예, 그렇습니다. 어머님! 어머님의 말씀은 역사라는 황소에다 뿔을 붙이신 격입니다. 이 누르스름한 바탕에 몇 가지의 장식들, 이를테면 수를 놓으신 겁니다. 그러나 눈꼽만큼도 전체를 바꾸어 놓지는 않으셨어요! 다시 말해 살이 디룩디룩 찐 놈들이 가장 흉악한 놈들이고, 민중을 갉아먹는 가장 해로운 독충이라는 거지요. 프랑스 사람들은 그들을 일컬어 부르주아라는 아주 적절한 명칭을 갖다 붙였습니다. 부르주아가 어떤 놈들인지 잘 기억해 두세요. 그놈들은 우리 민중을 씹어먹다 못해 아주 피를 빨아먹는 놈들이랍니다…‧.」
이튿날 빠벨과 우크라이나 인이 공장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꼬르슈노바가 찾아와 창문을 소란스럽게 두드리고는 숨넘어갈 듯이 소리쳤다. 「이사이가 죽었다오. 가봅시다…‧.」어머니는 몸이 후들후들 떨리면서 뇌리에 살인자의 이름이 전광석화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누가 죽였답니까?」 어머니가 숄을 걸치면서 짧게 물었다. 어머니와 마리아가 현장에 갔을 때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었지만, 누구 하나도 그의 죽음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 것 같았다. 사람들 속에서 누군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주먹으로 내리친 게 분명해…‧.」, 「주둥아릴 하도 나불대서 입을 막은 거야…‧.」사람들은 고소하다는 듯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의 죽음은 아무도 불쌍히 여기질 않는구나.) 라고 생각한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왔다.
우크라이나 인이 그와 말다툼을 벌이다가 주먹으로 쥐어박은 것이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고 혼자 괴로워했다. 며칠인가 지나고 베소프쉬꼬프가 찾아왔다. 그는 누더기 차림에 불만이 가득한 채로 「누가 이사이를 죽였는지 혹 못 들었어?」하고 빠벨에게 물었다. 「못 들었어.」빠벨은 딱 잘라 대꾸했다. 「제 할 일도 분간 못 하는 사람이 있어, 내가 그놈을 해치우려고 이때껏 별렀는데 그 일은 내일이었어. 내가 아주 적격이었다고.」「집어치워. 니꼴라이 그런 애길랑!」빠벨이 우정어린 말투로 그의 말을 끊었다.
빠벨과 동지들이 차근차근 준비한 메이데이가 다가왔다. 수많은 군중이 모인 가운데 빠벨이 연단에 올라가 외치듯 말했다. 「동지들! 이 세상에는 유대인, 독일인, 영국인, 그리고 따따르인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다양한 민족이 있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난 이 말을 믿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오직 두 개의 민족, 두 개의 종족이 있을 뿐으로, 다름 아닌 배부른 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있을 뿐입니다. 사람들은 옷차림새도, 하는 말도 가지각색입니다. 부유한 프랑스인, 독일인, 영국인이 노동자들을 이렇게 대하고 있는가 한번 보십시오. 그럼 그자들 모두가 하나같이 노동자들에게는 불한당이요, 목에 뼈다귀가 걸려 뒈질 놈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겁니다.」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고 이번에는 우크라이나 인, 안드레이가 연단에 올라 외쳤다. 「외국의 노동자들은 이미 이런 진리를 깨닫고 화창한 오늘, 메이데이에…‧」
그때「경찰이다.」하고 누군가가 외쳤다.
「해산하라…‧.」
「노동자 만세!」「전세계 노동자 만세!」양쪽의 구호가 엇갈렸다. 정신이 아찔할 정도의 소리로 수천의 메아리를 만들며 빠벨의 구호에 군중이 대답했다. ‘일어나세, 깨어나세, 노동자들이여, 적을 향해 나가세, 굶주린 민중이여…‧.’그러나 그 함성에는 일률적이고, 흔들리지 않는 확신은 없었으며 이미 불안이 느껴지고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통에 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던 어머니는 군중을 밀어젖히며 빠르게 앞으로 밀고 나가 보았지만, 사람들이 여전히 그녀 쪽으로 뒷걸음치고 있었다. 이미 경찰의 완력에 밀리고 있었던 것이다. 빠벨의 목소리는 단호하게 울려 퍼졌고,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사람들의 가슴에 똑똑히 아로새겨졌지만, 군중의 대열은 허물어지고 한 사람 한 사람 좌우 양편에 늘어서 있는 집으로 밀려 나가거나 담벼락에 붙어 버렸다.
「앞에 ― 총!」
「해산하라. 해산하라!」
키가 작은 장교 하나가 허연 구두를 휘두르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그는 무릎을 굽히지도 않고 두 발을 높이 들어 올렸다가 발뒤꿈치로 땅바닥을 신경질적으로 내리밟았다. 어머니의 눈에 번쩍번쩍 광이 나도록 잘 닦여진 장화가 언뜻 보였다. 장교 조금 뒤에는 백발의 콧수염을 기른 사내가 무거운 발걸음을 떼어놓고 있었다. 그는 붉은색 밑줄을 댄 기다란 회색 외투와 재봉선에 노란 줄을 수놓은 바지 차림이었는데 그는 뒷짐을 진 자세로 짙은 백발의 눈썹을 위로 치켜뜨고 빠벨을 노려보고 있었다.
시지프의 도움을 받아 집에 돌아온 어머니는 아들 빠벨과 우크라이나 인의 소식을 알 수가 없었다. 그녀는 집 앞에서 겨우 깃대에 몸을 기댄 채 뒤따라온 사람들에게 ‘고맙소’하는 인사를 하고는 자기 생각, 자기 가슴에 싹을 틔운 듯한 느낌이 드는 새로운 생각을 기억해 내고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우리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당하시지 않았다면, 우리에게 그분은 계시지도 않았을 것이다….」군중들은 말없이 그녀를 응시했다. 어머니는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인사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시지프도 고개를 떨구고 그녀를 따라 들어갔다.
[ 2 ]
이하 덧붙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