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쉬반
가장 지루한 달을 찬양하며
어젯밤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남편이 헤쉬반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달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헤쉬반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거든요. 사람들은 쇼파르(수컷 양의 뿔), 수카(절기용 초막), 손님들로 가득 찬 식탁이 있는 티슈레이를 좋아합니다. 니산과 유월절 세데르도 좋아하죠. 어떤 이들은 여름과 길고 여유로운 휴가 날들을 좋아합니다. 이제 시작된 헤쉬반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명절도 없고, 금식도 없습니다. 달력에는 일, 학교, 빨래 말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유대교 전통에서는 이 달을 ‘마르-헤쉬반(Mar-Cheshvan)’, 즉 ‘쓴 헤쉬반’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로 바로 그 공허함을 꼽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일상을 좋아합니다. 몇 주 동안 이어진 명절 요리, 늦은 밤, 그리고 끝내 제대로 치워지지 않은 집안 사정 끝에, 그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한 달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날 밤 늦게, 저는 이번 주 토라 구절인 노아의 이야기를 읽으며 어느새 남편의 입장에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아무 일도 없는 한 달이 과연 거룩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평범한 일상은 단지 중요한 날들 사이의 대기실에 불과한 것일까요?
성경은 대홍수의 시기를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בִּשְׁנַת שֵׁשׁ־מֵאוֹת שָׁנָה לְחַיֵּי־נֹחַ בַּחֹדֶשׁ הַשֵּׁנִי בְּשִׁבְעָה־עָשָׂר יוֹם לַחֹדֶשׁ בַּיּוֹם הַזֶּה נִבְקְעוּ כָּל־מַעְיְנֹת תְּהוֹם רַבָּה וַאֲרֻבֹּת הַשָּׁמַיִם נִפְתָּחוּ׃
“노아가 여섯백 살이 되던 해, 둘째 달 열일곱째 날, 그날에 큰 심연의 모든 샘이 터지고 하늘의 창문이 열렸다.” (창세기 7:11)
וּבַחֹדֶשׁ הַשֵּׁנִי בְּשִׁבְעָה וְעֶשְׂרִים יוֹם לַחֹדֶשׁ יָבְשָׁה הָאָרֶץ׃
“그리고 둘째 달 이십칠 일, 땅이 마르니라.” (창세기 8:14)
비는 둘째 달 17일에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1년 후, 같은 달 27일에 땅은 말랐습니다. 노아 시대에는 니산월부터 달을 세라는 명령(출애굽기 12:2)이 내려지기 전이었기에, 달은 티슈리월에 세상이 창조된 날을 기점으로 세어졌으며, 이에 따라 둘째 달은 헤쉬반월이 되었습니다. 대홍수는 이 고요한 달에 시작되어 끝났습니다.
노아는 일 년 내내 평범한 삶이 멈춘, 물 위에 떠 있는 세상에서 살았습니다. 밭을 갈지도, 씨를 뿌리지도, 수확도 없었습니다. 땅 위의 모든 생물은 하나님의 보호 아래 한 배 안에서 나란히 살아갔습니다. 그러다 물이 빠지고 땅이 마르자, 노아는 그 자리에 머물렀습니다.
וַיְדַבֵּר אֱלֹהִים אֶל־נֹחַ לֵאמֹר׃
“하쉠이 노아에게 말씀하시기를,” (창세기 8:15)
צֵא מִן־הַתֵּבָה אַתָּה וְאִשְׁתְּךָ וּבָנֶיךָ וּנְשֵׁי־בָנֶיךָ אִתָּךְ׃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아들들의 아내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오라.” (창세기 8:16)
노아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때까지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현자들은 노아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서야 방주에 들어갔듯이,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서야 비로소 방주를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어떤 이들은 이를 충실한 순종으로 해석합니다. 다른 이들은 그 말에서 망설임의 기색을 읽습니다.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진흙과 폐허,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엄청난 고생을 마주해야 함을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노아가 밖으로 나왔을 때, 그는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약속으로 응답하셨습니다:
וַיָּרַח יְהֹוָה אֶת־רֵיחַ הַנִּיחֹחַ וַיֹּאמֶר יְהֹוָה אֶל־לִבּוֹ לֹא־אֹסִף לְקַלֵּל עוֹד אֶת־הָאֲדָמָה בַּעֲבוּר הָאָדָם כִּי יֵצֶר לֵב הָאָדָם רַע מִנְּעֻרָיו וְלֹא־אֹסִף עוֹד לְהַכּוֹת אֶת־כָּל־חַי כַּאֲשֶׁר עָשִׂיתִי׃
“하쉠께서는 그 기분 좋은 향기를 맡으시고 스스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 때문에 다시는 땅을 멸망시키지 않겠노라. 사람의 마음의 생각은 어릴 때부터 악하니라. 또한 내가 전에 했던 것처럼 다시는 모든 생물을 멸망시키지 않겠노라.” (창세기 8:21)
עֹד כָּל־יְמֵי הָאָרֶץ זֶרַע וְקָצִיר וְקֹר וָחֹם וְקַיִץ וָחֹרֶף וְיוֹם וָלַיְלָה לֹא יִשְׁבֹּתוּ׃
“땅이 존재하는 한, 파종과 수확,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은 결코 그치지 아니하리라.” (창세기 8:22)
재앙으로 인해 텅 비어버린 세상에 한 가지 선물이 주어지는데, 그 선물은 기적이 아닙니다. 바로 리듬입니다. 여름이 지나면 겨울이 오고, 낮이 지나면 밤이 오는, 끊임없이, 변함없이 반복되는 리듬입니다. 현실이 멈춰버린 듯한 1년이 지난 후,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축복은 삶이 다시 예측 가능해지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알고 보니, 일상은 하나님께서 세상에 주신 약속의 일부입니다.
헤쉬반은 평범한 삶의 거룩함에 관한 또 다른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건조한 땅이라 여름이 끝날 무렵이면 비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우기는 수코트 직후에 시작되며, 명절이 끝나자마자 우리는 비를 내려주시는 분으로서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에서는 명절이 끝난 지 15일 후인 헤쉬반 7일이 될 때까지, 매일 드리는 중심 기도가 되는 아미다에서 실제로 비를 구하지 않습니다.
왜 목마른 땅에 사는 사람들이 비를 구하는 기도를 미루는 것일까요? 현인들은 성전 시대에 유프라테스 강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까지 순례자들이 예루살렘으로 왔다고 설명합니다. 공동체는 마지막 여행자라도 마른 길을 따라 집에 무사히 도착할 때까지 기다린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께 비를 구했습니다.
우리 자신의 필요를 위해 기도하기 전에, 다른 모든 사람이 안전하게 집에 도착할 수 있도록 먼저 확인합니다. 이것이 바로 평범한 평일에 드러나는 거룩함의 모습입니다.
이 달에는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이 숨겨져 있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솔로몬 왕은 헤쉬반월에 제 1성전 건축을 마쳤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וּבַשָּׁנָה הָאַחַת עֶשְׂרֵה בְּיֶרַח בּוּל הוּא הַחֹדֶשׁ הַשְּׁמִינִי כָּלָה הַבַּיִת לְכָל־דְּבָרָיו וּלְכָל־משפטו [מִשְׁפָּטָיו] וַיִּבְנֵהוּ שֶׁבַע שָׁנִים׃
“제11년, 불월, 곧 여덟째 달에 성전이 모든 세부 사항과 규격에 따라 완공되었다. 그가 성전을 짓는 데 7년이 걸렸다.” (열왕기상 6:38)
‘불(Bul)’은 헤쉬반을 가리키는 고대 성경상의 이름입니다. 솔로몬 시대에는 니산월부터 달을 세기 시작했기 때문에, 대홍수 당시 ‘두 번째 달’로 불리던 달은 여덟 번째 달이 되었습니다.
솔로몬은 거의 1년 후인 티슈리에 들어서야 성전을 봉헌했습니다(열왕기상 8:2). 헤쉬반은 그 일을 마무리했지만, 아무런 축하도 받지 못했습니다. 현인들은 하나님께서 이 달에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고 가르칩니다. 바로 제 3성전의 봉헌식이 헤쉬반월에 열릴 것이라는 것입니다.
왜 하필 헤쉬반일까요? 아마도 그것이 구원이 어떤 모습일지를 보여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이모니데스는 구원이 올 때 세상이 평소와 다름없이 돌아갈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계절은 바뀌고, 사람들은 일하며, 삶은 계속되겠지만, 온 세상이 하나님을 아는 데 몰두하게 될 것입니다.
제 1성전은 명절이 이어지는 달에 봉헌식을 거행했습니다. 아마도 제 3성전은 평범한 날들이 이어지는 달에 봉헌식을 거행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결국, 평범한 일상 속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줄곧 계셨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 남편의 말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명절은 우리를 고양시켜 주지만, 삶의 대부분이 펼쳐지는 곳은 아닙니다. 삶은 평범한 주일들 속에서 펼쳐집니다. 손님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설거지가 끝나고, 티슈리의 영감이 실제적인 결과로 이어질지 결정해야 할 때 말입니다.
아무 일도 없는 한 달이 거룩할 수 있을까요? 헤쉬반은 ‘그렇다’고 답합니다. 거룩함이란 노아가 방주에서 내려 진흙 땅에 다시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낯선 이가 무사히 집에 돌아올 때까지 온 민족이 비를 기원하기를 미루는 것입니다. 성전을 세우는 조용하고 꾸준한 노동입니다.
헤쉬반은 우리에게도 똑같은 것을 요구합니다. 방주에서 걸어 나오십시오. 다시 일에 매진하십시오. 주변 사람들을 돌보십시오. 그리고 파종과 수확을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일상의 순간들 속에도 함께 계신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By Shira Schechter (the content editor for TheIsraelBib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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