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에서는 일의 결과만을 말씀하고 있으며 과정이 생략된 경우가 많다. 특히 기적이나 예언의 성취가 당사자들의 노력과 그 과정이 생략된 채, 결과만을 묘사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광야를 헤멧으나 의복과 신발이 헤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그들이 새 의복과 신발을 만들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험난한 광야 생활에도 불구하고 의식주 생활이 무난히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이 노력만 하면 살 수 있는 환경을 자연(=하느님의 도움)이 제공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기적과 예언의 성취, 특히 오늘의 성서 본문과 관련하여 살펴 볼, 죄가 지워져 사라지는 과정에, 당사자의 각고의 노력이 생략된 것이다. 그것은 진심으로 반성하고 각고의 노력을 할 때, 결국은 죄가 사라지고 원래의 상태로 말끔히 돌아올 수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마치 믿는다고 말만 번드르하게 하면 구원이 저절로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복음이 그저 주어진다'라고 하니까 비용이 들지 않고 빵이 저절로 생긴다는 뜻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처럼, 죄가 저절로 지워진다니 잘못했다는 말 한 마디로 모든 죄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완전한 오산이다. 죄는 반드시 댓가를 치루어야 지워지지만, 뼈저린 반성과 각고의 노력이 있다면 그 반성과 노력조차 자기 안에 계신 하느님의 인도로 되는 것이기 때문에, 마치 자기 자신의 노력이 들지 않는 것처럼 읽힐 뿐이다. 전 칼럼에서도 언급했듯이 대부분의 심각한 죄들은 뼈저린 반성을 하지 않으면, 시간에 따라 복리의 이자로 처벌이 늘어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반성과 함께 선행을 베풀고 용서하는 행위를 함으로써 처벌의 이자와 원금을 나눠서 일정한 기간 동안 갚아 나가, 마침내 시간이 흘러 완전히 죄의 기운이 사라지고 죄가 없었던 원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 이것은 한 개인에게 적용될 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에게도 적용된다. 사람들의 탐욕과 교만이 원인이 되어 그 처벌이 전쟁, 범죄, 부패, 폭력의 형태로 나타나지만, 하느님께서 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는 성서의 약속은, 인간의 노력이라는 과정없이 마법의 상자를 통과해서 순간적으로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마술사의 눈속임을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며, 종교 단체가 신도들에게 그 단체에 속해 있는 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면서 모든 지정적 재원과 신도들의 시간을 그 종교 조직에 올인하라고 요구하는 행위로 나타나게 된다. 특히 워치타워 법인의 가르침은 큰 환난과 아마겟돈을 통과하면 순간적으로 인간의 수명이 천년 이상 늘어나 천년 동안 교육을 받아 영원히 살 수 있다고,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을 씨부린다. 어리석게도, 공짜를 좋아하는 인간의 마음과 혹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도박의 심리가 작용하여 자기의 시간과 노력을 그렇게 될 수 있는 정상적인 과정에 바치기 보다는 한탕주의 도박이나 로또 복권에 당첨되려는 정신으로 그가 속한 종교 조직에 올인하는 도박에 빠지게 되고, 인생 말년에 후회하거나 자포자기하는 인지부조화의 상태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혹자는 자기의 종교가 기적이나 예언을 떠나서 도덕적 기준에 따라 살도록 가르치기 때문에 참종교라고 내심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도덕과 윤리란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간 과거의 역사를 정확히 이해하고 다가올 미래의 비젼을 올곧게 가질 때, 현재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의 기준이 서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도덕과 윤리가 발생하고 그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전통과 인습으로 굳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과거에 대한 정확한 역사를 알아야 하며, 내가 가진 미래의 희망이 얼마나 실현 가능성이 있는가 그리고 그 희망이 이루어지는 절차가 합리적이고 현실 가능한가를 살펴 보아야 하는 것이다. |